느림의 미학 137 신의 영역에 들어가다 <장가계 천자산1,264m>
2010. 12. 13
미친 듯이 불어대는 광풍을 타고 얼굴을 때리는 거친 눈보라 속의 '소백산',
정열이 흘러 넘쳐 진달래가 불타는 '영취산',
상큼한 바람에 취해 선뜻 정상에서 내려오지 못하고 미적대다 퍼붓는 폭우 속에
한줄기 눈물을 감추던 '국망봉',
억새꽃이 하얗게 일렁이는 '천관~ 두륜산',
기암괴석의 '청량산, 설악산 주전골', 파란 물 계곡의 '내련산'
바위가 흐르는 '비슬산', 천상의 화원 '황매산' , 바다를 품은 '변산'~~
숱한 산 속에서 보내던 한해가 또 저물어 가는구나.
여행은 떠남과 인연 만들기에 이은 추억 쌓기이다.
끝이 없을 줄 알았던 무더위와 살짝 가버린 가을을 아쉬워 할 새도 없이 겨울은 왔고,
세찬 바람에 낙엽만 날리는데 저무는 해가 아쉬워 미련 없이 몸 가는 대로 마음 가는 대로
아련한 추억을 뒤로 하고 훌쩍 떠난다.
흔적 없이 사라진 한 해의 서글픔 속에 나이를 더 먹는 건가, 아니 주는 거겠지.
그래도 마지막 순간까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할까.
목표가 없는 인생인데 무엇을 위해 최선을 다 하여야 할까?
답이 있을까,
인생의 후반기가 아니고 추가인생인데 말이다.
연말이 다가오니 괜히 가슴이 공허해진다.
외롭고 힘든 백수생활에 젖은 나 자신을 뒤돌아보며,
잠시나마 일상을 던지고 훌훌 떠나자.
이륙 후 30여 분이 지나며 난기류에 휩쓸린 비행기가 흔들리기 시작한다.
잠시 기내식 배급을 중지하고 비행기가 위로 아래로 좌로 우로 흔들리며 작은 비명도
들리기에 비행기의 천정을 쳐다본다.
혹시나?
산소호흡기가 내려오는 영화의 장면을 생각하며, 기도를 하는 사람도 많지만
나는 매 순간 기록을 한다.
옆에 앉은 친구는 눈을 살짝 감고 자는 척을 하면서 쉴 새 없이 눈 근육이 떨린다.
독실한 신앙을 가지고 있어도 불안하고 떨리는 마음은 어쩔 수가 없는 모양이다.
3시간 40여 분의 비행시간 중 2시간을 난기류에 의해 긴장하며 공포직전까지 간다.
승무원들은 별일 아닌 듯 행동하나 비행기 재난에 관한 영화를 많이 봐온 탓에
계속 불안하기만 하니 수양이 덜되었나 보다.
유럽여행 시 알프스 산맥을 넘으며 혼 줄이 났던 기억이 난다.
2010. 12. 14. 11;00
'김구선생'이 광복운동을 하셨던 '남목청 6호'를 보며 잠시 숙연해진다.
안중근의사, 이준 열사, 윤봉길 의사, 유관순 열사 등 의사 열사들 중에서도
왜 우리의 우상인 김구 선생은 역사의 흐름 속에서 '선생'으로만 불릴까.
김구선생 등이 긴급 시 대피하던 '지하 대피소'를 열어보며 그 높은 뜻을 잠시 기린다.
조선족 여인인 듯 정확한 발음을 구사하며 당시의 상황과 현재의 관리 상황을 설명해준다.
여행의 두 번째 코스로서 '중국 열사의 탑'을 관광한다.
나라를 위하여 절의를 굳게 지키며 충성을 다하여 싸운 사람을 열사(烈士)라 하며
의로운 지사(志士)를 의사(義士)라 한다
채근담에 의하면
'열사(烈士)는 양천승(讓千乘)하고 빈부(貧夫)는 쟁일문(爭一文)한다.'
즉 義士, 烈士는 나라를 준다 해도 사양하나 탐욕스런 사람은 한 푼의 돈도 다툰다는데,
우리나라에선 돈 때문에 농성하다 분신자살해도 '열사'라 부르니, 개나 소나 말도 열사로
둔갑한다.
15;30
스쳐 지나가는 목가적인 농촌의 풍경은 다소 우울하고 침체해 보이며,
지나는 사람 하나 없다.
단조로운 2~3층 집이 거의 대부분이며,
난방시설과 습기로 인해 1층은 창고 등으로 쓰고 2층은 주거용으로 쓴다고 하며
우리나라 60~70년대의 농촌풍경과 비슷하게 황량하다.
장사에서 무려 4시간여를 달려 '장가계'로 들어선다.
짙은 안개 속에 실루엣으로 보이는 산들이 예사롭지 않다.
간간이 내리던 빗방울은 어느새 눈발이 되어 날리더니 다시 진눈개비로 변한다.
중국 호남성 서북부에 위치하고 있는 장가계의 인구는 150만 명, 20개의 소수민족이 어우러져
산다하며, 그 중 70%가 토가족(土家族), 백족(白族), 묘족(苗族) 등의 소수민족으로 구성되어
있다.
토가족이 90여만 명으로 가장 많고, 백족 10만 명, 묘족이 3만 명 정도이다.
이번 여행 중 토가족이 절벽에서 장례를 지내는 특이한 절차를 볼 수 있으려나.
토가족은 사람이 죽으면 입관한 후 그관을 현애절벽에 난 동굴에 안치하는 '암관장'을 지내는데
언젠가 TV에서 방영한 적이 있다.
2010. 12. 15. 10;00
영상 7도인데 왜 이리도 추울까?
남쪽 해양성 기후에 2년 만에 내린 첫눈 속의 세찬바람이 살과 뼛속까지 파고든다.
간간이 뿌리는 빗방울 속에 제법 큰 눈송이도 보이는 기상악화로 '천자산' 일정이 황룡동굴로
변경이 된다.
추워 공연을 하지 않는 '황룡동굴' 입구의 공연장이 중국인들답게 거대한 모습으로
우리 이방인들을 압도한다.
귀도 시리고 손도 시리니 마음마저 시려온다.
우리나라 삼척의 '대금굴'과 8km에 달하는 '환선굴',
용암동굴로는 제주도에 13km 길이의 세계에서 가장 긴 '만장굴'을 들어가 본 기억이 있다.
우리나라 동굴의 기억을 살리며 황룡동굴을 천천히 둘러본다.
황룡동굴은 지각운동으로 이루어진 석회석 용암동굴로 4층으로 되어 있고, 2.5km 길이에
계단이 2,500개나 되며 아래층 2층에는 800m의 뱃길도 있어 보트를 타고 유람할 정도로
크고 웅장하다.
동굴 천정에서 물이 수직으로 떨어져 신비를 더해 준다.
바깥기온은 영하에 가까운데 이곳은 습기가 많은 탓인지 덥기만 하다.
등줄기는 다 젖고 팬티까지 젖어온다.
석순의 원형이 다 보존되고 있으니 이곳엔 우리나라 XX경찰서장 같은 놈들이 없는 모양이다.
꽤나 오래 전에 XX동굴에서 석순을 따 직위해제까지 수모를 당한 기억이 난다 .
용궁, 제1미사일, 제2미사일 등의 재미난 이름을 붙인 1,700여 개의 석순이 숲을 이뤄 현란한
조명 속에 빛을 발한다.
'중국 최대의 아름다운 저택'으로 불리는 멋진 종유석 중에서도 높이 19.2m, 둘레 40cm인
정해신침 (定海神針)이라는 바늘과 같이 생긴 석순이 단연 돋보인다.
부숴질까 우려로 1억 원짜리 보험까지 들었다는데,
석순이 1cm 자라는데 100년이 걸린다 하니 저 '정해신침'은 몇 년이 걸려야 천정에 닿을까?
약 6만 년~7만 년?
용(龍)에도 서열이 있는데 중국에서는 황룡을 1번으로 치는 모양이다.
붉은 색과 용(龍)을 좋아하는 민족으로서 즐비한 상점의 간판마다 거의 용(龍)자가 들어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청룡(靑龍)을 가장 앞 순위로 보고 흑룡, 백룡, 황룡 등으로 순위 아닌
순위를 매긴다.
용암이 흘러내리며 물결치는 특이한 모양으로 굳었다.
14;10
눈은 내리고 온몸은 떨린다.
모노레일을 타고 '십리화랑(十里畵廊)'으로 들어간다.
왕복 5km 라는데 눈보라 속에 대자연이 거침없이 그려진다.
거리 개념의 '십리화랑' 보다는 점점 깊이 빠져드는 심리회랑 (深裡懷廊)이 더 어울리지 않을까.
나 역시 점점 빨려들며 머리가 멍하다.
솟아오른 침봉과 안개 속에 의연히 아슬아슬하게 뿌리를 내린 소나무들 사이로 떨어지는
눈송이를 맞으며 선계(仙界)에 들어섬을 실감한다.
할아버지 할머니의 사연이 있는 암봉, 각종 동물들을 연상케 하는 바위와 소나무들 위로
눈송이는 하염없이 떨어진다.
안개는 점점 더 두꺼워진다.
나무도 돌멩이도 약간의 물이 흘러내리는 계곡물도 소나무도 숲도 그리고 방랑자인 나도
눈과 안개에 갇혀 버린다.
마치 어머니 품에 안긴 듯 편안하고 포근함을 느끼며 점점 더 깊숙이 안개 속으로 들어간다.
휴!!
대자연이 빚은 걸작품은 감히 인간이 범접하지 못할 정도로 풍광이 빼어나다.
거대한 협곡에 늘어선 기암괴석과 봉우리들이 넋을 잃게 만든다.
하늘을 찌르며 우뚝 솟은 기암 준봉, 곱고 곧게 뻗은 수려한 나무들이 제멋을 뽐내는
천하비경에 질린다.
그리고 복 받은 중국의 땅에 질투를 느낀다.
안내하는 이는 열심히 설명하나 귀에 들리지 않는다.
처절하리만큼 아름다운 산수에 취해 연속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기 바쁘다.
예비전지가 두 개나 더 있으니 원 없이 찍자.
특이한 것은 계곡에 물이 없다.
아래에 댐을 세운 뒤 수맥이 사라졌나 보다.
금편계곡(金鞭)이라 금으로 된 채찍계곡이라고?
입구에 '금편암과 취라한'이라 이름 붙인 두 개의 봉우리가 우뚝 솟아 거만하게 인간세상과
고작 100년도 못사는 우리네 인간들을 내려다 보고 있다.
선경의 입구, 또는 지옥의 입구'라고도 하는데,
그 지옥의 입구에서 한 병에 7천 원이나 하는 '포천 막걸리' 맛을 볼 수 있으니,
한잔 즐기며 지옥에 들어가는 것도 좋겠지.
신들이 그린 수묵화인가?
아니 신선들이 자기네들만 즐기고자 만든 동양화인 모양이다.
'사람이 태어나 장가계에 가보지 않았다면, 100세가 되어도 어찌 늙었다고 할 수가 있겠는가.
(人生不到張家界, 白歲豈能稱老翁)' 라며 교만을 부릴 자격이 있다.
국가삼림공원의 면적은 369㎢로 우리나라의 설악산 국립공원과 크기가 비슷하다.
희귀 동, 식물이 서식하고 있는 천연자원의 보고(寶庫)로 수달, 살쾡이, 금계, 붉은 뿔꿩등이
많아 학술적인 가치도 높은 곳이라고 한다.
길가에 원숭이들이 내려와 재롱을 부리는 모습도 볼 수 있다고 설명하나 전혀 보이지 않는다.
2년 만에 내린 첫 눈에 놀라 깊숙히 숨어버린 모양이다.
계곡 양쪽에 날카로운 바위들이 병풍처럼 펼쳐진 동화의 나라를 거닌다.
소나무, 후박나무 등이 군락을 이루고 조릿대도 무성하다.
계곡물 소리가 우렁차게 들리는 속에 난 무념무상(無念無想)으로 빠진다.
무릉원은 정녕 신들의 정원인데 신들은 천하비경을 왜 중국에만 내려줬을까?
지난달 '설악산 주전골'에서 탄성을 질렀던 내가 강한 질투심을 느끼니 말이다.
2010. 12. 16. 10;00
장가계의 보물인 산상호수 '보봉호'로 들어선다.
"만 원"~하고 외치는 가마꾼들을 애써 외면하며, 20여 분 가파른 계단을 올라가니
산 중턱에 한 폭의 그림 같은 호수가 떠있다..
유람선을 타고 한 굽이 돌아서니 원주민 토가족 아가씨가 청아한 목소리로 구성진 노래를
부르며 우리를 환영한다.
무슨 노래인지는 알 수 없지만 우리네의 삶과 너무나도 다른 모습이다.
저런 삶도 있을까.
난 문득 주변 환경이 너무나 다른 포천의 명성산 산정호수와 비교한다.
0.26km에 평균수심이 23.5m인 '산정호수'는 술집과 음식점이 늘비한데,
이곳 '보봉호'는 기념품 가게 3곳 밖에 없다.
물안개가 피어오르며 햇빛을 깊숙이 빨아들인 호수는 영롱한 청록색 비취이다.
가운데 암봉은 두꺼비 형상이라 매달인가 일 년에 한 번씩 보름달을 삼킨다고 한다.
2.5km의 길이에 평균수심은 72m의 인공호수 속에 있는 작은 섬과 기이한 봉우리들을 보며,
난 무릉도원에 사는 신선이 된다.
아찔한 나선형계단을 따라 내려오며 호수를 탈출하니 '보봉비폭 (寶峰飛瀑)'이 날 기다린다.
보봉호의 중간에 수로를 파 인공폭포를 만들어 낮에만 물을 흘리는데 폭포의 굉음에 귀가 멍하다.
아픔과 시련을 이긴 소나무들이 바위 위에 뿌리를 깊이 내리고 의연하게 제자리를 지킨다.
이 바위 위에 살고 있는 소나무들은 세찬 바람, 더위, 추위, 갈증 등 온갖 힘든 것을 다 참는다.
원망하고 불평해도 소용없다는 걸 아니까 바위와 대자연과 어울리며 조화를 이루고,
아름다운 풍광의 주인이 되며, 삶에 지친 우리 나그네에 힘을 준다
14;40
300여 개의 계단을 올라가 케이블카에 몸을 싣고 '천자산 풍경구'로 올라간다.
2,084m 길이의 케이블카를 약 7분 정도 타는데, 허공에 대롱대롱 매달려 올라가며
공중곡예를 하니 잠시 현기증이 난다.
간밤에 내린 눈으로 세상은 눈꽃을 피워 날 유혹을 한다.
순결한 모습으로 나를 맞이하는 천자산은 숨겼던 어떤 모습을 보여줄까?
망망대해처럼 펼쳐진 협곡, 암봉들이 발아래로 아득하다.
난 구름 위에 있는 걸까, 또 다시 몽환의 길로 들어선다.
토가족 두령이었던 '황왕천자'의 이름을 따 부르게 되었다는 천자산(1,264m)은
2,000여 개의 석봉과 폭포, 샘이 있다고 한다.
어떤 책자에서는 3천봉이라고도 하는데 어느 것이 맞는지는 잠시 머물렀다 가는
방랑객은 알 수가 없다.
눈꽃, 얼음꽃, 서리꽃까지 핀 천자산의 정상은 화려하다 못해 요염하다.
순백의 꽃들의 청초한 미를 어떻게 표현할까.
선경이로다!
3억 8천만 년이나 되었다는 몽환의 길.
인간의 솜씨로는 감히 흉내 낼 수 없는 자연의 위대함 속에 내가 꿈을 꾸는걸까.
신들의 영역에 들어온 난 정신이 없다.
여기에 머무를까, 동가식서가숙으로 떠돌며 방랑하던 내 육신을 잠시 여기에서
'쉼표'를 찍고 싶다.
몇 년 전 스위스 여행에서 느끼던 떨림과는 전혀 다른 감동의 물결이다.
난 그 당시 동행자들에게 이야기한다.
"이곳 스위스에서 살았더라면 난 진즉 죽었을 거다."라고~~왜냐고 묻길래
"이렇게 좋은 산 어느 곳이던 올라가다 떨어져 죽었을 거라고" 답을 준적이 있지.
난 또다시 묘한 충동을 느낀다.
이곳에서 인생의 쉼표를 찍을까, 아님 마침표를 찍을까?
라텍스 판매가게에서 영업을 하던 한국인 직원도 이곳 장가계에 홀딱 빠져,
토종인 토가족 여인과 결혼해 눌러 앉았다는 말이 아직도 귀에 여운을 남긴다.
잠시 바람이 거세게 불어온다.
암봉에 깔려있던 잔설이 바람에 흩날리며 얼굴에 뿌린다.
나 죽으면 장기와 시신까지 기증하고 화장한 잔뼛가루 중 이곳에 조금이라도 뿌려주면
내 혼은 육신이 갈 수 없는 저곳에 훨훨 날아가겠지.
허망한 욕심일까.
빼어난 자연경관으로 원시상태에 가까운 장가계는 아열대생물들의 생태보고이다.
약 3억 8천만 년 전 지각변동으로 해저가 솟아올라 육지가 되었다는데,
수억 년의 침수, 붕괴 등을 거쳐 깊은 협곡과 기이한 암봉 등 기암절경이 형성되었다.
한고조 유방은 초나라의 항우와 싸워 천하를 통일한 후 자신의 신하였던 한신과 영포, 팽월을
주살한다.
이어 승상인 소하마저 투옥되어 생명을 위협당하니 다음은 자신의 차례로 위험을 직감한
'장량'은
"이제 천하가 통일되어 사해가 평화로우니 이만 하직하기를 원한다."라 하고,
자취를 감췄다는데 그는 이곳 장가계의 저 깊은 암봉의 어느 곳에 터를 잡았고,
스승인 황석공이 도를 닦다가 신선이 되었다는 황석채에서 같이 신선이 된 모양이다.
전쟁에서 진 황제가 천자를 향해 쓰던 붓을 던졌다는 전설의 '어필봉'과
선녀가 꽃바구니를 들고 세상에 꽃을 뿌리는 형상의 '선녀헌화'도 내 눈길을 사로잡는다.
깎아지른 기암절벽에 간신히 뿌리를 내린 소나무, 하늘 금을 그린 봉우리들은 정녕 인간의
세계는 아니다.
"황제를 호위하는 천군만마의 기세로 솟아있는 봉우리가 운해에 휘둘리면 바위 숲이 바다를
이룬다." 하여 '천대서해'라고도 하는 기암절벽이 병풍처럼 두른다.
지난밤 눈과 세찬 바람에 시달렸지만 지금은 고요하며 쓸쓸한 바람만 맴돈다.
15;50
군인들인가.
한참이나 쳐다보다 지나는이 한테 물어 보니 신입직원 교육이라고 한다.
사회주의라서 회사의 신입교육도 군복을 입혀 군대식으로 훈련을 하는 모양이다.
끊임없이 펼쳐지는 소나무와 암봉들,
기묘한 산자락의 따뜻한 햇볕이 드는 양지바른 곳에서, 난 '방랑시인 석천'이 되어 자연의
풍광에 흠뻑 빠진다.
천자산의 방랑자
암암군군송송만 岩岩群群松松滿
바위와 바위가 무리를 이루니 소나무와 소나무가 그득하고
풍풍운운처처기 風風雲雲處處寄
바람과 바람, 구름과 구름이 절경이로다.
설설봉봉무애만 雪雪峯峯霧靄滿
눈쌓인 봉우리마다 안개와 아지랑이 가득한데
방랑자석천허무무상 放浪者石泉虛無霧翔
떠도는 석천이 허무함을 느낄 새도 없이
안개 속에 빙빙 돌아 나른다. 석천 ]
하늘 문이구나.
높이 300m의 커다란 두 개의 바위가 자연스럽게 연결된 '천하 제일교'는 '원가계'의 백미라
눈길을 조심하며 건너가 본다.
자연스럽게 형성된 천연석교는 신이 만들었는지 기막힌 걸작 조형물이다 .
천하 제일교를 지나며 내 넋을 빼앗으려는 미혼대(迷魂臺)가 날 유혹한다.
너는 누구냐?
나는 누구냐?
순간 나는 정체성의 혼란을 느낀다.
휴우!!!
이 몸을 저 깊은 곳으로 던지면 자유로운 영혼이 되어 훨훨 날겠지.
오금이 절일 정도로 아찔한 단애(斷崖)의 협곡과 '원가계'의 절경에 취하다가,
난 문득 이 절벽에 길을 만든 중국인들의 저력에 경외감과 두려움을 느낀다.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중국사람들을 한 수 아래로 보는데 그건 아니다.
무능한 정부와 여당, 대가리 속까지 빨간 좌빨이 야당 놈들 덕분에,
잠시라도 한 눈 팔면 순식간에 우리 국민들은 중국인의 발마사지를 하게 될 거다.
천자산 풍경구와 원가계 등에 오르내리는 백룡엘리베이터의 326m 구간 중 170m는
투명유리창을 통해 약 2분 정도 자연경관을 감상할 수 있게 만들었다.
선계(仙界)를 볼 수 있게 만든 발상이 신선하다.
16;50
바위 위에 간신히 뿌리내린 소나무들이 가꾼 정원수처럼 운치있는 '공중정원'이다.
철벽옹성을 이룬 '후화원', '천현백련'의 절경이 이어진다.
잔설이 흩날리며 얼굴에 상큼하고 시원한 솔바람이 스치니 잠시 막혔던 코가 뻥 뚫린다.
천 년 살 것도 백 년 살 것도 아닌데 집착하지 말고 바람처럼 가볍게 살다 어느 날
바람처럼 가고 싶다.
우리의 민속촌이나 낙안읍성 같은 '토가족'의 민속촌으로 들어선다.
토가족의 민속주 한 잔을 맛보며 기름도 짜보고 현지인 처녀와 결혼식도 올린다.
잘 울며, 수(繡)를 잘 놓고 발이 작아야 일등 신부 감이라는데 구성지게 잘 울기에 친구가
반해 즉석에서 결혼식을 올린다.
'토가족은 사람이 죽으면 노래와 춤을 추고, 결혼식 날짜를 받으면 헤어지기 서러워
잘 울어야 한다.'라는 전통이 있는 소수민족이다.
때 묻지 않은 순수한 표정인데 이 여인도 인생은 다 바람과 같은 거라는 걸 알까.
만남의 기쁨도 이별의 슬픔도 다 한 순간이란 걸 아는 표정이다.
때로는 사랑도 하고 미워하고,
후회를 하는 타성의 늪에서 살아가지만 어차피 반복되는 게 인생이다.
여행이 들려주는 수많은 이야기에 흠뻑 젖어 천자산편을 쓰며 부끄러운 생각이 든다.
우매한 인간의 졸필로서 감히 신의 영역인 '천자산'을 논하다니 말이다.
2010. 12. 16 천자산에서
석천 흥만 졸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