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림의 미학 155 원주 백운산(1,087m)의 건망증
2011. 7. 7.
아프다.
며칠째 머리가 심하게 아프다.
편두통과는 다르게 머리를 들 수 없을 정도로 무겁고 아프고 피곤하다.
날짜를 헤아려 보니 보름째인가?
그새 머리에 있는 종양이 커졌나?
검사를 해야 하나?
MRI, CT 촬영하라고 할 텐데 백수라 시간은 있지만 커졌으면 어쩌나?
양성이라도 커지면 뇌신경을 압박하여 사망에 이르기에 뇌종양은 양성이건 악성이건
있다는 자체가 선고이다.
왜 이러지?
아직 마비 증세는 없는데, 병원에 도착해서야 답이 나온다.
나는 우물 안 개구리(정저지와 井底之蛙)가 아닌 냄비 속의 개구리도 못되는 실험용
개구리인가.
찬물이 담긴 냄비 속의 개구리는 물이 따뜻해지고 뜨거워져도 탈출을 하지 못하고 죽는다.
하지만 난 실험용 개구리 중에서도 멍청한 개구리였던 거다.
주치의가
약을 한 알 더 처방해주며 "머리가 아플 수 있으니 만약에 아프면 복용을 중지하라."
고 했는데 처음엔 괜찮았다.
6일이 지나고 7일이 지나면서 상상도 못할 정도로 점점 더 아프고
통증은 무려 10여 일이 계속되며 아마도 보름 이상 아팠던 거 같다.
무려 보름 이상을 의사가 경고했던 말이 생각이 안나 아파도 계속 약을 먹었던 것이
병원 앞에 도착해서야 생각이 나다니 얼굴에 식은땀이 나고 다리가 후들거린다.
약을 끊었어도 후유증으로 5일 이상 두통이 지속되다가 오늘에서야 약간 진정이 된다.
허긴 아무리 찾아도 없던 넥타이핀을 점잖게 넥타이에 꼽고 있는 내 모습이 비친
거울을 보고 놀란 적도 있었으니 벌써 치매가 시작된 건지,
아님 건망증인가.
자정을 넘긴 12시 20분 <평창!!>이라는 '자크 로게' 올림픽위원장의 한마디에 온 몸이
떨린다.
동네 사방에서 환성이 터져 나오고, Tv에선 이 대통령과 관계자들이 껴안고,
노 기업인 이건희 회장이 감격에 겨워, 그간의 노고에 겨워 눈물을 흘린다.
김연아도 울고 '2018 동계올림픽'을 유치하느라 고생한 모든 이들이 기쁨의 눈물을 흘린다.
갑자기 TV화면이 뿌옇게 변한다.
어느새 나도 울고 있었던지 한줄기 눈물이 안경 아래로 떨어진다.
난 평창에 꿈이 있었다.
IMF 외환위기 당시 은퇴 후 여생을 보내고자 평창에 작은 땅을 준비했다.
이후 소송에 휘말리기도 했지만 꿈이 실현될 모양이다.
흥분 속에 뒤척이다 잠에서 깨니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듯 하늘이 잔뜩 찌푸리고 있다.
2011. 7. 7.
안개비가 내린다.
차창 밖으로 무심히 스쳐 지나가는 풍경 위에 내 얼굴이 오버랩 된다.
무심히 보냈던 세월들.
스쳐 지나가는 산은 사람과 닮았구나.
멀리 떨어져서 보면 넓게 보이고 가까이서 보면 좁게 보이고,
오랜 세월 동안 찾아오는 난관이 지나면 또 찾아오고,
봉우리를 오르면 또 다른 봉우리가 기다리니 인생의 난관과 같다.
09;50
백운산이 흰 구름 속에 숨었다.
멀고도 가깝고 맑다가도 흐리고, 멀리서 보는 저 모습이 기억 속에 아름답게
저장될 것이다.
논 가운데 백로가 한가롭다.
농부들의 순박한 얼굴들이 지난다.
삶에 지쳐 얼굴은 탔지만 농부들은 불편한 것에 익숙한 사람들이다.
10;20
매표소에서 4km를 올라와 임도를 따라 바람에 흔들리는 숲으로 들어선다.
여기서 정상까지는 1.6km인데 두 시간 정도 걸리려나.
초여름 산에 '뱀무'와 나무들이 빛난다.
푸른 숲이 빚어 놓은 절경과 수려한 산세가 백운산은 다른 산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 사이로 산의 속살이 보이고 계곡의 흐르는 물소리가 요란하다.
일상에서 자유롭게 산을 찾으니 마음도 산을 닮아 가는지 넉넉해진다.
위에서 누가 나를 반겨줄까?
정상을 향해 깊이 높이 다가간다.
비 오듯 흐르는 땀에 눈은 쓰리고, 땀에 젖은 옷은 이미 세계지도를 그렸다.
바람과 자연이 만들어 낸 풍경 속에 산이 높아질수록 숨이 가쁘다.
세월의 무게를 증명이라도 하듯 바위와 나무엔 이끼가 끼었고, 야생의 길은 누가 만든 길이
아닌 자연 그대로 생긴 길이다.
무더위와 고행의 길이라 걷다 보니 아무 생각이 안 난다.
하늘이 수상하다.
먹구름과 흰 구름이 서로 꼬리를 물고 하늘을 감싸더니,
한줄기 바람이 불어올 때마다 간간이 빗방울이 떨어진다.
잠시 하늘의 변화를 본다.
말이 없는 숲과 나무들이 숨을 죽인다.
금방이라도 호되게 쏟아질 거 같은 하늘은 산과 나를 짓누른다.
흐리면 흐린 대로 비가 내리면 내리는 대로 능선을 올라야겠지.
'금꿩의다리'가 풀숲에 피었다.
11;10
오롯이 걷고 또 걷는다.
구름과 비, 바람이 시시각각 변화를 주고 걷다 지친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걷는 것은 청복(淸福) 즉 맑은 복이라고 '정약용'은 말한다.
산의 속삭임을 들으며 고개를 숙여 삶의 먼지를 털자.
숱한 추억이 생각나고 침묵이 길어진다.
말이 들어 갈 자리는 없어지고 마음속에 나만의 낙엽이 쌓이는 듯 수북이 쌓이더니,
어느새 마음은 텅 빈다.
어느 순간부터 길은 험해 날 고단한 이방인으로 만든다.
산길에서 잠시 인생의 쉼표를 찍으며 가슴에 산을 품으라 하는지 갈 길이 바쁘지도 않은
나그네의 발걸음을 잡는다.
덩치가 당당하지만 바위가 별로 없는 부드러운 백운산은 1,000고지에 가까워도 울울창창한
낙엽송이 이어진다.
밑에서는 아기자기하게 보였던 산이 서서히 가팔라지더니 코가 땅에 닿을 듯이 급한
된비알이 나온다.
산은 보는 방향과 거리에 따라 모습이 달라지는구나.
시원하다.
구름이 가라앉은 주능선으로 올라오니 반대편에서 바람이 불어와 한참 달궈졌던
체온을 씻겨준다.
이 산에서 처음보는 덩치 큰 바위가 나온다.
내 마음은 솟아있는 바위를 향해 어떤 전설이 있는지를 묻는다.
시간과 세월을 품은 여름 산은 더욱 눈부시다.
제멋대로 불어오던 바람이 쉬어 가는지 갑자기 조용해진다.
헛된 욕심을 버리고 급할 거도 없으니 서두르지 말라고 하는 모양이다.
산이 모든 것을 내어주니 한 걸음 한 걸음 천천히 내딛으며 산새소리를 듣는다.
백운산은 사람들이 즐겨 찾는 산이 아닌 모양이다.
숲이 우거져 길이 보이질 않아 간신히 헤치며 나아간다.
11;50
임도를 가로질러 산행거리 1.6km에 100여 분이 걸려 정상(1,087m)에 도착한다.
하늘이 탁 트인다.
잿빛 하늘은 우울하고 산 아래 계곡은 깊은 초록으로 온 산을 덮었다.
언제나 너른 가슴으로 상처 입은 사람을 보듬어 주는 산 속에서 오늘도 나는 호강을 한다.
충북 제천과 강원도 원주시에서 만든 정상석인데 여기가 도경계선인 모양이다.
경계란 나눠지기도 하고 합쳐지기도 하는 것인데 산이라는 대자연 속에서 경계가
무슨 필요가 있을까?
다 쓸데없는 인간의 허망한 욕심이리라.
대부분 경계에 있는 산들의 정상석은 설치한 지자치마다 조금씩 다른데,
다행히 이곳 백운산 정상석의 높이는 일치가 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이름을 가진 산인 백운산은 전국에 몇 개나 될까?
30개라는데,
동강 백운산(882.4m), 함양 백운산(1,278.4m), 포천 백운산(937m), 정선 백운산(1,426m),
광양 백운산(1,217.8m), 밀양 백운산(884m), 김천 백운산(618m), 양평의 백운봉(940m) 등이
기억이 난다.
정상 부위가 항상 흰 구름에 둘러싸여 백운산인 모양이다.
금방이라도 비를 뿌릴 듯 잔뜩 찌푸린 먹구름이 몰려온다.
저 멀리 아스라이 보이는 곳이 제천 백운면 쪽인 거 같다.
재미있는 산이다.
양아치라 함은 '거지'를 속된 말로 표현하는 말인데,
백운산이 초행이라 지도를 찾아보니 '큰 양아치'라는 고개가 나온다.
양아치란,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남의 약점을 이용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등쳐 먹고, 속이고,
도덕성이 없는 사람을 말하며,
또 다른 표현으로는 주먹 사회에서 건달은 오로지 주먹만으로 싸우는 사람을 말하는데,
양아치는 각목, 칼 등 흉기를 이용하는 깡패를 말한다고 한다.
어쨌든 '양아치'는 부정적인 말이다.
고개에 양아치란 이름이 붙었으니 어떤 사연이 있을까?
최근에 차관급인 현직 광주지법 '선재성 수석판사'가 도마 위에 오르고 처벌받기 직전이다.
자기가 관리하는 법정관리업체에 자기 형을 감사로 집어넣고, 가까운 변호사와 유착을
하여 뇌물수수, 변호사법 위반, 직권남용으로 기소되어 예로부터 내려온 탐관오리의
전형적인 인물로 부각되었다.
교자이의(敎子以義)란 말이 있는데, '자식을 올바른 길로 가르치기'란 뜻이다.
옛날 호조판서 김좌명(金佐明)이 하인 최술(崔戌)을 서리로 임명해 중요한 자리를
맡긴 후 얼마 지나 과부인 최술의 어머니가 찾아와 그 직책에서 다른 자리로 옮겨
달라고 청한다.
"가난해 끼니를 잇지 못하다가 대감의 은덕으로 먹고 살 수 있게 되고, 중요한 직책을
맡자 부잣집에서 사위로 데려갔습니다.
그런데 아들이 사위가 되자 처가에서 뱅어국을 먹으며 맛이 없어 못 먹겠다고 합니다.
열흘 만에 사치한 마음이 생겼으니 재물을 관리하는 직무에 오래 있으면 큰 죄를 범하고
말 것입니다. 외아들이 벌 받는 것을 볼 수가 없으니 다른 일을 시키면서 그저 굶지 않게만
해 주십시오"라고 청하니
김좌명은 이를 기특하게 여겨 그대로 해주었다는 말이 일사유사(逸士遺事)에 나온다.
정승 남재(南在)의 손자 남지(南地)가 감찰이 되었을 때 남지가 할아버지와 매일매일
그날 있었던 일에 대하여 대화를 한다.
"하급 관리가 창고에서 비단을 슬쩍 품고 나오기에 다시 들어가게 했습니다.
세 번을 그랬더니 눈치를 채고 비단을 두고 나왔습니다."
이 말을 들은 할아버지는
"너같이 어린 것이 관리가 되었기에 매번 물어 득실을 알려고 했는데, 이제 묻지 않아도
되겠구나. (국조인물지 國朝人物志)"라고 했다.
나는 한양대 '정민 교수'의 '교자이의(敎子以義)'란 글을 보며 감탄을 한다.
사람이 올바르지 못하면 자식이나 주변의 사람들을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다.
올바르지 못하게 돈을 번 졸부들이 자식들에게 수 억짜리 스포츠카를 사주고
자식은 그 차로 노상에서 다른 사람들의 목숨은 아랑곳 하지 않고 광란의 질주를 벌인다.
제 자식 귀하게만 기르다 보니 위아래도 모르는 천하의 잡놈을 만들고,
좌파들의 권력 속에 잘못된 학생을 혼내면 부모들이 학교에 찾아와 선생을 폭행하고,
심지어는 학생의 이모란 여자가 교사의 머리채를 잡고 흔든다.
전교조와 좌파교육감의 영향을 받은 학생들이 선생 알기를 개떡으로 아는 게 요즘의
세태이다.
하물며 이 나라 최고의 지성인이라는 판사가 무소불위의 권력으로 전횡을 일삼는
탐관오리의 표본이 되었으니 이 나라의 장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과연 이 나라의 법정은 판결을 통하여 '선재성 판사'에게 법과 국민의 이름으로 준엄한
심판을 내릴까 아님 제 식구를 감쌀까.
자식은 막 자라고, 판사가 되었어도 권력을 농단하다가 제 몸을 망치고, 집안을 말아 먹고,
나라에 중대한 독을 끼치니 바로 이들이 '양아치'가 아닌가?
원주와 제천 백운면 사이엔 '배재'라는 고개도 있다.
신라가 망한 후 백운면의 이궁에 살던 신라의 마지막 왕인 경순왕과 그의 딸 덕주공주의
애틋한 사연이 전설로 남는다.
천년사직을 지키지 못한 죄인의 마음으로 경주를 바라보며 절을 했다고 배재(拜嶺)라는데
왕으로 있을 때 잘하지.
가야인 '우륵'의 가야금 전설이 있는 장금터(長琴垈)와
조선시대 과거를 보러가던 경상도의 젊은 선비 '박달(朴達)'과 청초하고 아름다웠던
백운면의 농촌처녀 '금봉'이와 이루지 못한 슬픈 전설의 '박달재'가 저곳인가?
'과거에 급제하지 못한 박달은 돌아오지 않고 금봉이는 상사병으로 한을 품은 채 죽는다.
금봉이가 죽었다는 소식을 고개 아래에서 듣고 땅을 치며 울던 박달은 금봉이 고갯마루를
향해 춤을 추며 달려가는 모습이 보이기에 달려가 고갯마루에서 금봉이를 안는 순간 천길
낭떠러지로 떨어져 죽었다.'라는 전설이 있는 박달재가 우거진 나무와 낮게 깔린 구름에
묻혀 잘 보이지 않는다.
습한 바람에 황량한 고독함을 담은 배낭의 무게가 무겁게 느껴진다.
세상의 근심이 가득 든 배낭의 짐을 내려 놓으라 산은 위안을 주더니 비대해진 세월의
무게도 내려놓으라 한다.
바람과 구름이 오르지 못하고 머무는 곳.
나무 그루터기에 앉아 한잔 술을 마시며 등산의 고단함을 푼다.
나는 왜 굳이 편한 길을 두고 힘든 산행 길에 나설까.
삶의 무게, 고독과 삶의 의미를 깨닫기 위해서인가.
이제 인생의 무거운 짐을 내려 놓고 막걸리 한 잔을 하자.
인생은 덧없음이다.
욕심, 욕망으로 가득찼던 가슴 속의 꿈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청춘은 간데 없이 꿈만
같으니 하늘의 조각구름만 괜히 부러워한다.
[ 삶의 꿈
한숨자고 일어나니
해는 어느새 뉘엿뉘엿
서산으로 넘어가고
어스름 달밤이 찾아드네.
긴 삶의 꿈을 꾸었나.
스치는 한줄기 바람에
찰나의 존재가 되었구나.
삶의 무게 속에 넓은 세상을
깨닫지도 못했는데
어느새 황혼 되어
아무 말도 하지 못하네. 석천 흥만 ]
대학생 25명이 올라온다.
반바지와 운동화 차림에 배낭도 없으니 비상식량도 없는 거 같다.
저 복장에 탈진을 하면 어떻게 하려고,
체온유지는? 물은? 비상식량은? 미끄러지면? 다치면 어쩌지 하며 괜한 걱정이 든다.
13;00
지금 시각 오후 한 시
세시부터 비가 많이 온다고 예보가 되었기에 무모한 학생들에게 안전과 조심을
당부하고도 자못 불안해 올라가는 뒷모습을 한참 바라다본다.
산이 깊을수록 물이 맑고 이름 모를 올망졸망한 꽃들이 지천이다.
이 산에도 애틋한 전설과 그리움이 있겠지.
푸른 숲 속에 나 홀로 빠져 '천남성'을 찍는다.
산삼이라도 있을까 두리번거리니 농약원료로 쓰이며 독성이 있는 삿갓나물이 보인다.
내리막길이다.
내려가는 즐거움과 올라가는 즐거움 중 어느 것이 더 좋을까.
계곡물에 손을 담그니 온몸이 짜릿할 정도로 찬물이다.
13;50
좋은 풍경을 닮은 친구들이다.
여행을 떠날 때 혼자는 고독하다.
더욱이 낯선 길을 걸을 때는 새로운 길 위에서 길을 잘못 들까봐 불안하고, 두렵고, 시간이
더 걸릴까, 위험할까 마음이 조급해진다.
하지만 그림자처럼 편한 동행이 돼주는 친구들이 있어 위안이 된다.
낯선 길을 함께 헤매는 즐거움이 얼마나 큰 지, 서로의 눈높이를 맞추며 대화하고.
고단한 인생길이라는 먼 길을 대포 한 잔 나누며 동행하는 친구들이 있어 참 좋다.
굵은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잠시 숨을 죽였던 숲들이 세찬 비바람에 요동을 친다.
[ 빗방울
추적추적 내리는 비.
삶의 길모퉁이에
서 있는 나는
한줄기 불어오는
바람에도 흔들린다.
흘러가는 잿빛 구름 아래
무거운 삶의 짐을 진 채
터벅터벅
비 오는 인생길을 걸어간다. 석천 흥만 ]
백합과의 '하늘말나리'가 흠뻑 비를 맞았다.
한방과 민간에서 종기, 토혈, 폐렴 등에 쓰인다.
15;00
굵은 빗줄기가 쏟아지며 온 산을 덮는다.
조금만 늦었더라면 비로 매우 힘들었겠다.
하산 길에 만났던 대학생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해발고도 1,100여m에 가까운 고산이라 위험하지는 않을까,
무사히 전원 하산을 했는지 걱정이 든다.
[ 무제
고운 햇살 그립고
만날 사람 없는데
비바람 불어
가슴 서리게 울렁인다.
비가 내리니
내 마음은 어딘가를
향해서 젖어들지만
허공엔 빗방울만 그득하다. 석천 흥만 ]
화를 잘 내지 않고 능글능글 하면서 상대방 비위를 잘 맞추면 바람둥이라고 한다.
물 같은 성격은 팔자에 물(水)이 많아 차근차근히 상대방의 감정을 흩어내기에
성질 급한 사람은 바람도 못 피운다.
바람둥이들은 신장과 방광이 발달해서 정력도 강하고 음식도 잘 먹는다.
서양의 카사노바는 바다에서 나오는 생굴, 숭어알을 말린 어란, 계란 흰자를 즐겨 먹었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갑오징어 먹물', 일본인들은 '자라'와 '장어'를 꼽으며, 중국인들은
'사슴힘줄'을 즐긴다.
우리나라의 정력가들은 무엇을 먹을까?
천연 비아그라인 '비수리' 즉 야관문(夜貫門)을 30도 이상 독한 소주에 100일 이상
숙성하여 자기 전에 한 잔씩 마시는 사람도 있고,
고기를 잘 먹는 사람, 천호식품 사장의 능글맞은 광고 덕인지 '산수유'와 '마늘'을 좋아하는
사람, '토마토', '커피'를 즐기는 사람도 있고,
부부간의 정을 오래 유지한다 해서 정구지(精久持)라는 '부추', 산에서 나는 '두메부추'를
꼽는 사람도 있다.
부추는 신장을 따뜻하고, 생식기능을 좋게 해 남자의 양기를 세운다 하여 기양초(起陽草),
과붓집에 월담을 할 정도로 힘이 생겨 월담초(越譚草),
섹스를 할 때는 초가삼간이 무너질 정도라 파벽초(破壁草)라고도 하였다.
봄 부추는 인삼, 녹용과도 바꾸지 않는다나?
어제 아침에 '녹두'를 사러 '팔당생명'이라는 가게엘 들어간다.
회원제라 해서 사진 못했지만 '하지(夏至)감자'가 진열되었다.
절기상으로 하지에 나오는 하지감자는 낮이 가장 긴 시점에 나와 양(陽)의 기운을 많이
함축해 고열을 가해도 맛이 변하지 않고 유지하는 힘이 강하다.
서양 사람들은 쇠고기 스테이크를 먹을 때 반드시 감자를 곁들여 먹는다.
황사가 날라올 때 일반인들이나, 탄광의 광부들은 '돼지비계'를 먹어야 좋다고 한다.
먼지를 걸러주고 힘을 준다는데 돼지(亥)에 나무(木)를 더하면 무시무시한 핵(核)이 되니
돼지고기 역시 힘을 주는 모양이다.
오행설에서는 색깔이 검으면 물을 상징하고, 검은색은 정력을 상징한다고 한다.
대체적으로 정력식품은 '밤', '하지감자', '돼지비계'라지만,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강장식품은 '계삼구칠우망흑월(鷄三狗七牛望黑月)'이다.
닭고기는 3일이요, 개고기는 7일이요. 쇠고기는 보름이요, 흑어(黑魚) 즉 가물치는 한 달이
감을 말하는 거다.
17;00
요즘같이 장마철의 더위에는 바람둥이가 아니라도,
특히 섭생에 신경을 써야 할 거 같아 우망(牛望)이라는 쇠갈비살과 안창살로 보양을 한다.
2011. 7. 8. 아침
비가 많이 와 오늘 일정인 강화도 트래킹을 취소하고 시골 신작로를 걸으며 어렸을 적
아버지와의 추억을 회상한다.
[ 신작로
꿈길에서
내 아버지
꾸부정한 어깨
자전거 딸딸거리고,
어쩌다
차 지나면
흙먼지 풀풀 날리던
미류나무 신작로.
돼지고기 한 근
신문지 둘둘말아
이십 리길 초평저수지
큰집엘 간다.
명절날
제삿날
올망졸망한 사촌들과
절을 하고,
아버지 손을 잡고
한 손으로 손을 들면
흙먼지 휘날리며
버스는 내 앞에 선다. 석천 흥만 ]
난 턱수염이 잘 자라고 많다.
전기면도기로 한번 민 후 칼면도기로 다시 한번 밀며 거울을 자세히 들여다 보니,
턱은 이중턱, 목은 굵은 주름이, 눈가에는 잔주름이 꽤나 많이 생겼고, 군데군데 저승반점도
생겼다.
머리야 염색을 해서 감출 수는 있지만 흰 눈썹은 감출 수 없다.
난 침대에서 책을 읽다 잠드는 버릇이 있다.
식탁에서도 화장실에서도 책을 읽어야만 일을 볼 수 있는 습관이 되었다.
특히 밀리터리 소설 매니아로 '김경진'작가의 '데프콘'이나 '김민수'작가의 '505특전대',
'국가의 적' '붉은 새벽' 등은 소장하고 벌써 3번 이상 읽어 거의 외우다시피 한다.
그런데 그젯밤 동계올림픽 유치로 흥분하니 잠이 안 온다.
책을 한 시간 정도 읽다보니 이미 읽은 책이었다.
처음부터 나오는 배경과 인물, 주제가 생소해 안 읽은 책인줄 알았는데,
순간 난 당황하고 화가 난다.
지난번 산행을 마치고 샤워를 한 후 욕실과 거실로 안경을 찾아다닌다.
친구가 눈에 쓰고 있는 게 안경 아니냐며 놀린다.
주차장에서 다시 집에 올라가 휴대폰을 빨리 갖다 달라고 한다.
아내는 손에 들고 있는 게 휴대폰 아니냐고 놀린다.
이내 얼굴이 화끈거리고 몸에 식은 땀이 난다.
어느새
총명했던 기억력도 많이 떨어진다.
세월의 무게 속에 듣고, 보고 나면 금방 까먹는다.
요즘은 수첩을 갖고 다니며 소중한 순간과, 기억, 추억을 수시로 메모를 하지만
특히 산행 시에 카메라는 필수품이 되었다.
카메라의 내장된 녹음기능에 녹음도 하고, 휴대폰에 기록도 한다.
대자연에서 찍고, 녹음하고, 메모하며
난 비로소 '자유와 행복'을 찾고, 기억하고 싶은 것을 기억하게 된다.
이제 온전히 내 자신이 될 수 있는 나이가 되었나 보다.
어느새 7월이니 금년도 반이 지났다.
세월 앞에 굴복을 하는 지 시간을 이기지 못하고 초조해진다
내 안엔 아직도 일하고 싶은 욕망이 숨겨진 젊음의 나이인데
나이라는 숫자가 휘청거리게 만드는구나.
더 늦기 전에 다시 한 번 해보고 싶다.
이순이라도 세월의 무게를 충분히 이길 수 있는데,
홀가분히 벗어나지 못한 채 인생은 흐르고, 세월은 저만큼 멀리 가있다.
산이 깊으니 물도 많다.
간밤에 폭우가 쏟아지고 용소폭포를 지나온 계곡물을 보니
"성년부중래 세월부대인(盛年不重來 歲月不待人)
청춘은 다시 오지 않고 세월은 사람을 기다리지 않네."라며 노래한 옛 시인이 생각난다.
멈춰 선 구름과 하늘이 우울하다.
아! 난 멈춰 선 이 시간들을 사랑하며 인생을 사랑한다.
2011. 7. 8 원주 백운산에서
석천 흥만 졸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