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림의 미학 455 보물찾기<백선>
2019. 5. 20. 06;30
비 그친 숲속에서 흰빛이 보여 발걸음을 멈춘다.
가까이 다가가니 '백선'이 묘한 몸짓으로 개망초 사이에 숨어있다.
자래초, 검화라고도 하는데 전 세계에 1,300종이 자라며 우리나라에는 20종이
분포한다는 백선을 들여다보며 냄새를 맡는다.
희고 선명하다는 뜻을 가진 백선은 꽃송이가 많고 향기가 은은하다.
뿌리를 봉삼, 봉황삼으로도 부르며 과민성 피부염, 알레르기 등에 약용으로
쓰이는데 최근 서울대 약학대학 김영중 교수팀이 퇴행성 뇌신경계 질환의 치료제로
개발될 수 있는 신약 후보물질이라고 해 더 관심이 많아진다.
'백선'을 수년전 등잔봉에서 만나고 뜻밖에도 이곳에서 만나다니,
산의 규모가 아주 작은 야산(野山)에 불과하지만 이 산은 분명 보물창고이다.
지난달에는 저쪽 모퉁이에서 '미선나무'를 만났고, 일주일전에는 '수레국화'를
만나 매일 새벽인사와 함께 사랑을 나누고 있는데 '백선'을 만나니 반갑다.
초등학교 시절 소풍을 가면 보물찾기가 행사 중 하이라이트(highlight)이다.
난 묘하게도 보물을 찾는데 소질이 없으니 그 시간이면 늘 이방인이 된다.
지금도 물건을 제대로 찾지 못해 잔소리를 듣는 편인데 산에만 들어오면 이런 꽃들이
바로 눈에 띄니 천만다행이다.
고향에서 초교시절 소풍을 갈 때,
가방에는 김밥, 삶은 계란 한 개, 사과 한 개, 오징어 한 마리, 사이다 한 병이 기본이었고,
어쩌다 담임선생님 도시락을 같이 가져갈 때도 있었지.
소풍의 단골장소로는 봉화산 자락, 김유신 장군의 태실이 있는 태령산 길상사,
문백의 농다리 부근에 있는 어룡리 소나무 숲 등이 기억난다.
선생님들은 참 묘한 곳에 보물쪽지를 잘 감춘다.
물건을 찾는데 영 재주가 없어 남들 찾는 것만 구경하고 소풍은 재미없이 끝날 때가
많았지.
내가 보물을 찾지 못하고 남들 신나게 좋아하는 모습을 바라보고만 있었는데,
4학년 담임 김혜순 선생님이 감추지 않았던 예비 보물쪽지를 슬그머니 주셔서
'공책'을 탄 추억도 있다.
매년 봄가을에 두 번 가는 소풍,
상산초등학교에서 소풍만 가려면 비가 왔다.
학교를 지을 때 판 우물에서 용이 나와 승천(昇天)하려는 것을 누군가 죽였다는
전설이 있어 소풍이나 운동회를 하려면 늘 비가 오곤 했는데 많은 세월이 흘러
이젠 빛바랜 추억이 되었구나.
비 그친 날 백선을 발견하면서 초교시절 보물찾기 동심으로 돌아갔으니
오늘은 참 행복한 날이다.
2019. 5. 20.
석천 흥만 졸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