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림의 미학 545 새대가리
2020. 3. 26. 06;10
툭 하는 소리와 함께 하늘에서 무엇인가 떨어진다.
청설모 두 마리가 서로 뒤엉켜 놀더니 참나무에 매달려있던 썩은 가지를
던지며 나를 희롱(戱弄)한다.
나는 요즘 이 녀석들이랑 부쩍 가까워졌다.
도통 나를 무서워하는 기색도 없이 발밑에까지 다가온다.
도토리나 잣이 먹이인데, 지난 가을 사람들이 많이 주워갔으니 배가 고프겠다.
까치 두 마리가 자기집 주변에서 극도의 경계심을 가진 소리로 짹짹댄다.
잠시 후 까치집 아래에서 낯익은 들개 네 마리가 줄지어 내려오다 나를 발견하고
숲속으로 도망친다.
작년 여름엔 작은 강아지였는데, 누군가 자주 가져다주는 사료를 먹었는지
통통하게 살이 찐 성견(成犬)이 되어 세 마리를 거느리고 다닌다.
전에는 가까이 다가와 주는 빵도 먹더니 이젠 어엿한 무리의 대장이 되어 경계심이
강해진 모양이다.
나무 꼭대기에 있는 까치집을 올려다보며 불현듯 고향집이 생각난다.
내가 성장한 집 앞 신작로엔 굵직굵직한 '플라타너스'나무가 가로수로 심어져
있었고 논두렁 밭두렁 군데군데에 플라타너스보다 높게 자란 '미루나무'가
있었지.
미루나무 꼭대기엔 으레껏 까치집이 있었고, 나무가 매끄러워 올라가기
힘들었기에 오르기가 조금 쉬운 플라타너스 나무에 올라가 미루나무에 있는
까치집을 구경할 때가 많았다.
세상에선 조금 멍청하고 우둔한 사람을 '새대가리'라고 표현할 때가 많은데
'새대가리' '닭대가리'라는 표현은 옳지 않다.
요즘 새들은 집을 지을 때 보온과 안락을 위해 깔개를 물어다가 바닥에 깔고
심지어는 지붕을 만들기도 한다.
서양에서는 "까치가 울면 낯선 이가 온다"며 반가운 손님이 아니라 재앙
(災殃)을 몰고 오는 불청객(不請客)이라할 정도로 까치의 상징은 대체로
어둡고 까치의 출현은 재앙의 전조로 여긴다.
우리나라에는 아침에 까치가 울면 반가운 손님이 오고, 저녁에 울면 사람이
죽거나 귀찮은 손님이 온다고 알려졌다.
전문가는 우리나라의 대표적 텃새인 까치가 머리가 좋아 자신의 영역 안에 있는
사람과 동물을 기억하므로 낯선 사람이 오면 경계해서 울기도 한다는 거다.
새들은 사람이 생각하는 이상으로 머리가 좋다.
두터운 열매를 땅에다 내쳐서 깨기도 하고, 물고기를 잡으면 패대기를 쳐 기절
시킨 후 천천히 먹기도 한다.
까치는 얼마 전까지 길조(吉鳥)로 대접을 받다가 농작물에 피해를 준다는 이유로
최근 유해조수(有害鳥獸)로 바뀌어 천덕꾸러기 신세가 되었다.
예전 나의 직장이었던 주택은행의 엠블렘(emblem)은 무지개 즉 레인보우
(Rainbow)였는데, 국민은행의 상징은 까치였을 정도로 대접을 받았다.
까치는 현재 울릉도를 제외한 우리나라 전역에 분포한 텃새이다.
제주도에는 없다가 1989년 아시아나 항공과 일간스포츠가 53마리를 제주도에
방사하면서 제주도에도 서식하게 되었다고 한다.
울릉도엔 1991년 경상북도에서 34마리를 방사하였으나 1997년 이후 묘하게
사라졌다는데 내가 조류학자는 아니지만 천연기념물 제215호인 울릉도 흑비둘기의
세력에 밀려 자취를 감추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07;20
산에서 내려와 뜰을 거닐다가 북쪽에 계신 임금을 사모하느라 꽃잎이 북쪽을
향해 핀다고 해서 '충성화'라고 별명이 붙은 백목련을 만난다.
백목련은 자기장(磁氣場)의 영향도 있지만 꽃봉오리의 아랫부분에 남쪽의 따뜻한
햇볕이 먼저 닿으면서 세포분열이 북쪽보다 빨리 이루어지기에 꽃봉오리는
자연스럽게 북쪽을 향하는데, 대부분의 꽃들이 해를 향해서 피는'해바라기성'인데
반해 목련은 반대로 피는 거다.
모퉁이를 돌아서 '서울제비꽃'을 만난다.
겨울이 가고 해동(解凍)이 될 무렵 제비꽃이 피면 어김없이 북방의 오랑캐가
쳐들어오고, 오랑캐가 쳐들어올 때를 맞춰 피는 꽃이라 해서 '오랑캐꽃이라는
별명이 붙은 제비꽃이라,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올 무렵에 피는 꽃이라해서 제비꽃이라는 이름이 붙은
서울제비꽃을 바라본다.
왜제비꽃, 알록제비꽃, 남산제비꽃, 잔털제비꽃, 단풍제비꽃, 콩제비꽃, 노랑제비꽃,
남산제비꽃, 태백제비꽃, 고깔제비꽃, 갑산제비꽃 등 제비꽃 종류가 우리나라에만
64가지가 되는데 나는 그동안 몇 종류를 찍었을까 마음속에서 꼽아본다.
'봄맞이꽃'이 봄까치꽃(개불알꽃)보다 늦게 핀다고 구박을 했는데,
어느새 내말을 알아듣고 제비꽃과 개불알꽃 옆에 봄맞이꽃이 피어 와글와글
재잘거린다.
초봄은 큰 꽃보다 이렇게 작은 꽃들이 여기저기 피어 더 아름다운지도 모르겠다.
떠돌이 고양이도 많이 대범해졌다.
향나무 아래에서 무릎을 꿇고 봄맞이꽃을 찍는데 두려워하지 않고 나와 눈을 맞춘다.
08;00
뉴스를 내보내는 모든 방송국이 코로나 소식으로 도배를 하기에 뉴스를 보지
않으려 애를 쓰지만 나의 인내심은 오래가지 못한다.
세상은 어떻게 변해갈까.
코로나로 인한 팬데믹(Pandemic) 사태가 끝나면 세상은 어떻게 변해있을까.
카메라집에 묻어 온 단풍 낙엽을 바라보며 생각을 한다.
공자는 제왕이 가져야할 덕목으로 '계신공구(戒愼恐懼)'를 꼽았다.
매사 경계하고 조심하는 마음으로 국사에 임해야 백성들의 고통을 제대로
풀어줄 수 있고 기쁨을 함께 누릴 수 있다는 뜻이다.
지금 과연 그럴까.
코로나 바이러스의 초기방역에 실패해 만여 명 가까이 감염자가 나왔다.
의료진과 국민들이 혼신을 다하여 전염을 막았기에 확산세가 조금 줄어들자,
대통령과 권력자들은 다른 나라에서 잘하고 있다는 외신 몇 건에 고무되어
기고만장(氣高萬丈)해서 자화자찬(自畵自讚)이나 하고 '문비어천가'를 부른다.
나는 코로나 팬데믹(Pandemic) 현상이 지난 후가 더 걱정이 된다.
외국인까지 불러들여 치료를 해주고 생활비까지 대주며 돈을 마구쓰는 나라,
탈원전, 소주성, 기업을 범죄시하여 나라의 근본을 망가뜨리는 거도 부족해
엉터리 선거제도를 만들어 싸움질이나 하는데 과연 제대로 회생(回生)을 할까.
충신은 임금이 재이(災異)나 재앙을 두려워하지 않을까를 염려하고,
간신은 임금이 재난이나 재해가 두렵다는 것을 알게될까를 염려한다는
이한우 선생의 간신열전을 읽으며 지금 대통령 주변에 제대로 된 충신이 보이지
않는다는 생각이 드니 참으로 답답하고 난감하다.
2020. 3. 26.
석천 흥만 졸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