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느림의 미학 748 개근거지

김흥만 2023. 5. 20. 17:39

2023.  5.  20.  11;00

"개근거지"라니?

조정경기장 행사장에서 초등학생 둘이 대화를 나눈다.

 

'개근거지'라는 말은 초등학교 학생들 사이에서 요즘 유행하는

말로,

즉 학교에 하루도 빠지지 않고 등교를 하여 개근상(皆勤賞)을

받는 학생을 개근거지라 한다는 거다.

 

형편이 어려워 교외 체험학습이나 해외여행을 가지 못하는 

아이들을 빗대서 개근거지라고 놀리는 말을 들으며 세상 참

많이 바뀌었다는 걸 실감한다.

 

이 대목에서 "나 때는~" 이런 이야기를 쓰면 '라떼노인'이라고

핀잔을 받겠지.

사실 예전 학교나 직장에서 '개근'이라는 의미는 성실의

대명사였다.

 

담임 선생님이었던 고 정동환 선생님과 다른 은사들께서도

한결같이 말씀하셨다.

상(賞)의 종류로 우등상, 모범상, 개근상, 정근상 등 여러 상이

있지만 그중에서 개근상이 으뜸이라고 말이다.

 

요즘 학생들이 받는 상(賞)은 수십 가지로 학생들 모두가

상을 받는 거도 사실이다.

그러나 최근 학교에 개근하는 아이들이 '개근거지'라는 오명

(汚名)을 쓰고 놀림거리가 되는 현상에 대해 어떻게 이해를

해야 할까.

 

이밖에 '월거지'라는 말도 있다.

집 형편상 월세로 살면 월세 사는 거지의 줄임말로 '월거지'라

하고,

 

전세를 살면 '전거지'라는 의미로 학생들 사이에서 서로 계급

갈등을 조장하고 따돌림을 받는 현상에 대하여

임대차 삼법을 강행한 정치권과 어른들이 깊이 반성하고

개선해야 할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월수입이 200만 원대인 사람들을 이백충(二百蟲)이라며

벌레로 비하하는 일도 많다는데,

이렇게 부(富)를 과시하는 경향과 강한 경쟁의식 등이 계속

이어진다면 이를 내면화하면서 성장하는 아이들과 우리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한편 또 다른 Z세대에서는 요즘 '거지방'이 유행하고 있다고

한다.

자신의 소비실태를 공유하고 함께 절약하자는 취지의 오픈

채팅방인데 힘든 취업과 고물가 시대의 경제상황을 유쾌하게

대처하는 Z세대의 재치가 엿보인다.

                                   <     뱀무    >

 

야당의원이 뇌물을 받는 등 죄를 짓고 수사를 받으면 정치탄압

으로 말이 둔갑하고,

전직 국무총리로 대법원 확정판결까지 받아 감방에 수감 직전

백합꽃과 성경책을 들고 들어가는 이 나라의 현실에서 아이들과

국민들은 그들에게서 무엇을 배울까.

 

정의(正義)와 불의(不義)가 입장에 따라 뒤바뀌어 판단하기

어려운 세상에 가난이라는 코스프레(cospre)로 정치헌금을

가장 많이 받은 야당 국회의원이 코인거래로 수십억 이상

백억 원 가까운 돈을 벌었음이 확인되자 세상이 뒤집어졌다.

 

이들은 정의(正義)와 불의(不義),

악(惡)한 자와 선(善)한 자,

진실과 거짓, 성실과 불성실은 종이 한 장 차이라는 세상을

만들며 윤리의 기준을 바꾸었다.

 

전형적인 내로남불로

죄(罪)를 지은 자가 자신의 죄를 덮고 주장하고 싶은 것만 골라서

영화를 만들면 이를 본 지지자들은 환호를 하고,

 

죄인(罪人)이 된 자가 반성과 자숙을 하지 않고 자신이 쓴 책을

주제로 북 콘서트(book concert)를 열고 신나서 웃는 모습을

보면서 그 사람에 대한 환멸을 느끼기도 했다.

 

물론 세월이 흐르면서 말의 뜻이 변하고 왜곡되기도 한다.

6년 개근, 12년 개근이란 성실의 대명사가 가난의 뜻으로 변한

세상에서 "라테는 말이야(나 때는 말이야)"라는 세대의 사람은

당황할 수밖에 없다.

 

아내면 아내고 남편이면 남편이지 굳이 '아내분' '남편분' 또는

관객분 등 '분'이라는 말을 붙여 쓰면 존댓말로 알고 쓰는 세상이

된 걸 어쩌랴.

 

한국남성 전체를 벌레로 비유해 싸잡아 비하하는 한남충,

한치남(한국김치남), 씹치남(씨발김치남), 일베충, 김치녀,

된장녀, 한녀, 피싸개는 슬슬 고전으로 분류되기 시작한다.

 

짱깨, 똥남아, 개슬람(이슬람), 민주당의 개딸, 흑형(흑인), 감자

(강원도), 멍청도(충청도), 과메기(경상도), 홍어(전라도) 확찐자

(확진자)는 그나마 애교로 봐줄 수 있다.

 

엊그제는 병원 검사실에서 "XXX환자분 들어오실께요!"

'오실께요'라는 황당한 화법을 쓰는 간호사의 호출을 받으며

한숨과 쓴웃음을 짓기도 했다.

 

13;00

행사장에서 벗어나,

사방이 애기똥풀과 '노랑선 씀바귀'의 노란 꽃이 지천으로 핀

들판을 걷는다.

 

꽃이 사람의 귀에 들어가면 귀가 들리지 않게 된다고 해서

귀머거리풀로 불리는 '뱀무'도 보인다.

                       <     노랑선 씀바귀    >

 

'노랑선 씀바귀'는 요즘이 한참 필 시기다.

여러해살이풀로 땅속에 굵은 뿌리가 발달되어 있고, 잎과

뿌리에서 쓴맛이 나 씀바귀라는 이름이 붙었다.

 

일반인들이 꽃으로 씀바귀와 '고들빼기'를 구분하기는 어렵다.

꽃술이 검은색이면 씀바귀요, 꽃잎과 꽃술까지 노란색이면

고들빼기로 보면 된다.

흰꽃이 피고 줄기가 곧게 서면 '선씀바귀'인데 의외로 흔하지 않다.

 

씀바귀는 이른 봄 뿌리와 어린 순을 소금물이나 식초를 넣은 물에

담가 쓴맛을 없애고 나물이나 쌈으로 먹기도 했는데,

벚꽃 등 하얀 봄꽃과 진달래, 아카시아꽃 등이 사라진 요즘 들판의

주인공은 단연 애기똥풀과 '노랑선 씀바귀'이다.

 

한뿌리를 뽑아서 중간을 잘라본다.

애기똥풀은 노란색, 피나물은 붉은색 유액(乳液)이 나오는데

씀바귀는 특이하게 '흰 즙'이 나온다.

 

예전에는 씀바귀의 입이나 줄기는 종이나 천을 엷은 밤색으로

물들이는 염료로 썼다는데,

우리의 선조들은

천연 모기 기피제인 누리장나무 열매에서 옥색의 염료를,

치자나무와 노린재나무에서 노란색,

 

주목나무에서 자줏빛을 띤 적갈색의 염료,

청미래덩굴의 열매에선 붉은색, 덩굴에선 노란빛을 띤 적갈색의

염료,

 

붉은 서나물에선 붉은색,

옻나무, 떡갈나무, 고로쇠나무에서 흑색,

단풍나무, 쑥, 졸참나무, 물푸레나무에서는 푸른색을 추출하여

염료로 썼다고 전해진다.

 

봄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와 얼굴을 간질이는 봄날의 오후,

행사에 참여한 사람들의 함성을 귓전으로 흘리며 발걸음을 

돌린다.

 

                                   2023.  5.  20.     

                                       석천  흥만  졸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