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6. 12. 13;00
이수회(二水會) 집합 시간이 되자 음식점은 우리
일행으로 금세 꽉 찼다.
2001년 10월 23일 12명이 모여 만든 이수회,
어느새 23년 세월이 훌쩍 지났으니 참 오래도 만났다.
길동과 둔촌동에서 만나다가 서초동으로 옮겼고,
다시 교대역으로 장소를 바꿨고 새로운 장소에서 오늘
처음 만나는 날이다.
매월 30명 안팎으로 모이다가 시간을 저녁시간에서
점심시간으로 바꿨다.
그러자 친구들의 적극적인 호응으로 오늘은 무려
60여 명이 참석하겠다고 신청을 했으니 야간활동에
제약을 받던 친구들이 그렇게도 많았나 보다.
멀리 충북 괴산, 전북 전주, 경기 화성에서 고속버스를
타고 올라온 친구도 보인다.
인사차 한 바퀴를 돌며 인생 5단계에서 임서기(林棲期)를
지나 방랑기(放朗期)에 접어든 친구들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당나라 시성(詩聖) 두보는 곡강시(曲江詩)에서
인생칠십고래회(人生七十高來稀)라 했다.
살날은 점점 줄어드는데 친구들의 표정은 의외로
담담하고 평화롭다.
얼마 전까지도 체력이 단단했고,
찾아오는 온갖 세파(世波)를 두려워하지 않고 의연하게
이겨내던 모습들이 굵은 주름살로 변해간다.
생로병사(生老病死)에서 누구나 비껴가기를 원하는
병마(病魔)로 신음하는 친구 몇 명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전쟁통에 태어나 보릿고개, 중동 근로자, 월남전 등
험난한 삶에서 굳세게 살아남았지만 흐르는 세월 앞에는
장사가 없는 법,
강철 같았던 뼈마디가 녹기 시작했다.
힘찼던 기운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사그라들었고,
숨소리도 가늘어지는 나이가 되어 이젠 삶을 배우는 게
아니라 죽음을 배워야 하는 게 숙명(宿命)이 되었으니
말이다.
한쪽에 앉은 친구 몇 명은 지긋지긋한 암 투병에서 벗어나
품위 있는 노신사가 되었고,
어느 친구는 늙고 병들었던 몸에서 벗어나 평온을
되찾았으니 인간승리라 할까.
인생 팔고(八苦)에서 특히 생로병사(生老病死)는 누구나
피할 수 없다.
사람으로 태어났기에 죽을 수밖에 없는 게 사람의 숙명
(宿命)이 아니던가.
생명을 주관하는 칠성신에게 다시 돌아가는 길이 얼마나
남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삶에서 대기시간이 확연하게
줄어든 것만은 사실이다.
눈 뜨면 아침,
눈 한번 감았다가 또 눈 뜨면 점심이요,
해가 중천에 뜬 대낮에 꼬박꼬박 졸다가 하품 세 번 하면
금세 저녁이 되니 사조제의 문해피사(文海彼沙)를 거론
할 거 없이 모두가 신 노인지반(新 老人之反)이 되었다.
하루가 반나절이요,
일주일이 한나절 같으니 이것저것 따질 새도 없이
한 달은 훌쩍 지나가고,
며칠 후 하지가 지나면 금년 상반기도 하릴없이 지나간다.
금년이 아직도 6개월씩이나 남았다고 허세를 부리는
사람들이 부지기수(不知其數)인데,
6개월밖에 남지 않았다며 안달복달을 하며 흐르는
세월을 아쉬워하는 내가 바보인지도 모르겠다.
아!
죽음은 태어남이요,
태어남은 바로 죽음이 아니던가,
사시사철 피고 지는 꽃처럼 내 영혼은 어디로 사라질까.
그리고 친구들의 영혼은 어디로 사라질까.
사람에게 시간은 똑같이 흐르는데 나만 '한계효용체감'의
법칙을 따지면 뭐 하나.
인생길 어차피 다 연목구어(緣木求魚)가 아니던가.
사는 일이 사라진 바람 같다.
인생길을 나선 지 어느새 종심(從心),
이젠 너무 멀리 와버렸다.
그리고 결코 돌아갈 수 없는 시간이 돼버렸다.
2024. 6. 12.
석천 흥만 졸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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