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 345

느림의 미학 855 산 자와 죽은 자가 공존하는 '동구릉'

2024.  12.  11.  11;00동구릉 경내는 낙엽 떨어지는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친구들의 숨소리와 발자국 소리만 겨우 들릴뿐숲은 침정(沈靜)에 빠졌다. 살아서 절대권력을 누렸던 왕과 왕비들의 사후 안식처이자 백성들의 침 삼키는 소리도 불경스러운 곳, 왕이나 고관대작들, 그리고 능참봉이나 들락거렸던 동구릉에 힘없는 장삼이사(張三李四)가들어섰다. 이곳 죽음의 세계에 누운 절대권력자들은 살아생전 국가를 진정으로 사랑하고 백성들을 위했을까. 아니면 본인과 가족, 권신들만을 위해 권력을사용하고 백성들을 개돼지로 부렸을까. 조선 태조 이성계의 능(陵)인 건원릉을 비롯하여 현릉, 목릉, 휘릉, 숭릉, 혜릉, 원릉, 경릉, 수릉 등 9개의 능이 있는 동구릉은 7명의 왕과 10명의 왕후가 안장된 능(陵)이다...

여행 이야기 2024.12.14

느림의 미학 850 마중과 배웅

2024.  11.  23.  08;59춘천행 열차가 플랫폼(platform)으로 들어오더니 추위로 웅성거리던 승객들을 다 쓸어 담는다.  소실점(消失點)을 향해 속도를 내던 기차는어느 순간 사라지고,군복 입은 연인을 배웅하던 한 젊은 여인이 사라지는 기차를 망연히 바라보다 돌아서는 모습이 쓸쓸해 보인다. 언제나 그랬듯이 기차는 만남과 이별이라는숙명을 품었다. 성악가 '조수미'가 불러 익숙해진 노래,'8시에 기차는 떠나가네'라는 곡이 생각나는 장면을 보며 괜스레 안타깝기만 하다.  나치에 저항한 그리스의 젊은 레지탕스,전쟁이 끝났어도 돌아올 줄 모르는 연인을 기다리는 '카테리니'역, 8시에 기차역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는데기다리는 연인은 끝내 나타나지 않았고, 그 연인은 멀리 숨어서 지켜보고만 있었다는 안타..

여행 이야기 2024.11.24

느림의 미학 844 무아(無我)의 길을 품은 '풍수원 성당'

2024.  10.  30.  10;30횡성호 둘레길 주차장의 분위기가 묘하다.관광버스에서 내린 관광객들의 표정이 일그러졌고,우리 또한 통행금지가 된 둘레길 들머리의 광경에한숨이 나온다. 주차장 지킴이는 지난 금요일 횡성에 폭우가 내렸고,미처 물을 빼지 못해 호수 둘레길이 몽땅 물에 잠겼으며,  물을 빼더라도 피해복구 및 안전점검에  꽤 많은 시간이 걸린다며 '숲 체원' 등으로 목적지를 바꾸면 좋을 거 같다고 말한다. 이번에도 여행은 미완성인가.모처럼 잡은 일박 산행 일정에 차질이 생겼다. '국립 횡성 숲 체원'의 숲길을 걸을까 망설이다가 청태산 자연휴양림 잣나무 숲길로 행선지를 바꾸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누구의 잘못인가,관리인은 홈페이지에 입장불가라고 공지를 하였다는데그 공지를 보고 올 사람이 과연 몇..

여행 이야기 2024.11.03

느림의 미학 843 별 세는 밤

2024.  10.  31.  04;30그놈의 버릇 참 고약하다.여행의 고단함으로 아침까지 늘어지게 자야 하는데 새벽 4시가 되자 자동으로 눈이 떠졌으니 이 습관은 평생 고칠 수가 없는 모양이다. 꼬끼요♬!수십 년 만에 들리는 닭 울음소리에 귀를 기울인다.암탉은 울지 못한다.그렇다면 수탉은 어디서 우는 걸까. 고향집 사립문옆에 닭장이 있었고 뒤꼍에는 돼지우리가 있었다.굴뚝 아래 토끼장이 있었고, 토끼장 옆 나무상자에는 이맘때 딴 땡감이 가득 들었고 홍시가 될 때마다 식구들이 간식으로 꺼내 먹었다. 어느 날 족제비가 토끼장 철망을 교묘하게 뜯고 들어가 토끼 한 마리는 물어가고 나머지는 다 물어 죽였는데 조금 사나운 수탉이 있는 닭장은 건드리지 않았다. 수탉은 싸움닭으로 많은 암탉을 거느렸으니 감히침범을 못..

여행 이야기 2024.10.31

느림의 미학 839 인생은 미완성<춘천 김유정 문학관>

2024.  10.  4.  09;00춘천행 고속도로 위 하늘은 티끌 하나 없이 맑고 푸르다.5월의 하늘이 저랬을까, 어느 예술가도 감히 흉내 내지 못할 시월의 높고 푸른 하늘을 바라보며 잠시 멍을 때렸다. 10;40어느 누군가 말했다.다리가 떨리면 늦었다, 가슴이 떨릴 때 길을 나서라고했던가.  그렇게 말한 사람은 현자(賢者)일까, 지자(智者)일까,아니면 인자(仁者)일까. 당초 계획된 58명 중 이런저런 사유와같이 떠나고 싶은 마음은 있으나 지병으로 어지럽고,다리가 떨려 민폐를 끼칠까 두려워 포기를 한 친구가 8명이나 발생했다. 지금 김유정 생가와 문학관을 관람하기 위해 철길을 한가로이 걷는 친구들은 어느 부류에 속할까 곱씹는 나쁜 버릇이 발동했다. 현자란 무엇이고, 지자와 인자를 구분하는 기준은무엇일..

여행 이야기 2024.10.05

느림의 미학 810 천국과 지옥이 공존하는 연천 고대산(高臺山 832m)

2024.  3.  23.  11;00전철을 타면 고대산에 갈 수 있을까,신탄리역으로 가는 대중교통을 이용할까 고민하다 승용차로 고대산에 왔다. 사람들은 고대산(高臺山 832m)이 때 묻지 않은 산이라 했다.군 장병들이 곳곳에 폐타이어로 계단을 만들어 안전한산이라고 하는데 과연 그럴까? 해발 고도 832m로 그리 높지 않은 고대산,연천과 철원의 경계를 이루는 산으로 등산이 허용된산(山)으로는 북한과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산이라고 해궁금했던 고대산을 오른다. 고대산 들머리에 '금낭화'가 곱게 피어 나를 환영한다.  금낭화는 토질이 산성이면 흰색이나 연분홍색으로 피는데 꽃색깔이 붉은색에 가까우니 이곳 토질은 알칼리성에 가깝겠다. 시기가 늦어 얼레지와 바람꽃, 처녀치마 등을 기대하긴어렵겠지만 서울근교보다 개화기..

여행 이야기 2024.05.26

느림의 미학 802 청주 상당산성의 각시붓꽃

2024.  4. 25.  06;00상당산성 국립휴양림 숙소 창문을 연다. 솔향기가 콧속으로 솔솔 들어오고 계곡 물소리에서 발생한알파波(alpha wave's)와 함께 들이마시니 정기신(精氣神)이 맑아진다. 08;20상당산성으로 들어서며 폐부를 활짝 열어 청량한 산소를 무제한 들이마신다. 솔바람 소리, 솔향기와 함께 느끼는 숲의 냄새는 나를 선인의 경지에 오르게 해 줬다.무협소설에서 하늘을 날아다니는 주인공이 바로 이런 기분일까. 산성(山城)은 적의 침입에 대비해 전투에 유리한 산을 이용하여 쌓은 성을 말하는데,  내가 다녀본 금정산성, 남한산성, 강화산성 등이 포곡식 산성이고,청주시 동쪽 상당산을 감싸는 상당산성 또한 포곡식(包谷式) 산성이다. 포곡식이라 함은 옥수수 알갱이처럼 돌로 성벽을 쌓아 계곡을..

여행 이야기 2024.04.28

느림의 미학 801 청주 낙가산(483m)과 사람의 품격

2024.  4.  24.  09;00봄비가 추적추적 내린다.황량했던 산과 들에 하얗게 수를 놓았던 벚꽃이 일제히 사라지고, 5월 중순에 피는 이팝나무꽃이 성급하게 그 자리를 메꿔나간다. 누런 속살을 보였던 산과 들판은 연두색을 제친 초록이 꽉꽉 채워가고 하늘엔 검은 비구름이 넘실댄다. 모처럼 일정을 잡은 일박산행,청주 낙가산은 어떤 모습을 나에게 보여줄까,하늘은 설레는 나의 마음을 아랑곳하지 않고 제법 굵은빗줄기를 뿌려댄다. 인터넷으로 날씨를 다시 확인하니 우리가 도착할 무렵인11시부터 비가 그침으로 나온다.비가 그쳐 비를 맞지 않고 산에 오르는 게  좋을까,아니면 추적추적 내리는 봄비를 맞으며 오르는 게 좋을까. 어느 게 정답인지는 모르지만,예비옷을 가져왔으니 오랜만에 비를 맞고 산행을 하는 것도 괜..

여행 이야기 2024.04.25

느림의 미학 780 서울숲에서 본 43 친구의 정반합(正反合)

2023. 12. 2. 09;00 어느새 12월, 금년의 마지막 달이다. 탁상용 달력에서 11월을 넘기고 마지막장을 보며 세월 참 빠르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요즘은 달력 트렌드(trend)가 많이 달라졌다. 벽에 거는 달력은 식당 등 요식업소에서나 볼 수 있고, 매일 한 장씩 뜯어내는 일력은 사라졌는지 잘 보이지 않는다. 12월은 비움의 달이다. 오늘은 무엇을 해야 할까. 개불알꽃이나 봄맞이꽃은 하고현상(夏枯現象)으로 가을꽃은 낙엽과 함께 일제히 사라졌다. 그 꽃처럼 사라질 수 없는 게 사람이기에 서울숲으로 가는 전철에 오른다. 10;10 서울숲 성수동 옛 경마장 터에 '서울숲'이라는 공원이 생긴 지 13년이 되었다는데 처음 왔으니 기대감에 은근히 가슴 설렌다. 이 땅에 경마장이 있었다. 그리고 골..

여행 이야기 2023.12.03

느림의 미학 779 DMZ 하늘을 날다.

2023. 11. 18. 10;00 영하 6도까지 떨어진 날, 임진각 휴게소에는 내국인은 별로 보이지 않고, 외국인 관광객들로 붐빈다. 어느 여성 외국인에게 "Where are you from?" 하고 물으니 " I'm Incheon"이라고 간단명료하게 답한다. 인천에서 일하는 외국여성에게 질문을 했으니 우문현답인가. 괜히 머쓱해져서 "Well come to korea!"라고 답하고 시선을 다른쪽으로 돌린다. 11시가 되자 내가 탄 곤돌라는 땅을 박차고 부드럽게 하늘을 난다. 하늘을 날아 민통선을 쉽게 통과를 하다니 언감생심(焉敢生心) 세상 참 많이 변했다. 양구 가칠봉 204GP에 가까운 을지전망대에 오르려면 미리 양구군청에 신청하여 허가를 받아야 하고, 18RG~19RG~21RG 등 세 개의 검문소를..

여행 이야기 2023.11.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