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

느림의 미학 267 느림의 생각 2 <쓰시마 아리아께 有明山 558m>를 오르다

김흥만 2017. 3. 26. 15:25


2014.  10.  23.  07;40

가을은 다른 신(神)이 그린 그림인지 부산의 길가에도 여름의 녹색이 물러가고, 

가로수는 울긋불긋한 세상으로 거리를 바꿨다.

 

머리 위에 낙엽이 떨어지며 휑한 가을바람이 목덜미를 스치고, 발끝 아래 오들거리는

국화엔 가을 이슬이 오롯이 맺혀 있다.

이슬은 입을 대고 빨아먹고 싶으리만치 아침 햇살을 받아 영롱하게 빛난다.

 

새벽에 출발한 팀을 기다리느라 출국장에서 잠시 밖으로 나온다.

 

벚나무에서 빨간 이파리가 떨어지고 파란 하늘을 향해 손을 휘저으면 손에 파란 물감이 들겠다.

가을에 대한 그리움이 낙엽과 함께 발밑으로 떨어진다.

 

배에 올라 타는 소란은 잠시 후 멎고 배는 떠난다.

제대로 복장을 갖춘 여승무원이 안전교육을 시킨다.

의자 아래에는 저승길을 쉽게 보내지 않으려는 구명조끼가 덩그러니 놓여 있다.

 

전날 비가 많이 와 출항을 하지 못했는데도 의외로 배 안은 조용하고 바다는 잔잔하다.

배가 가끔은 큰 너울을 탔는지 몸이 슬그머니 앞으로 쏠리다가 뒤로 젖혀진다.

 

안전벨트 착용을 지시하고 통로 이동을 금하는 여승무원을 바라보며 문득 세월호 생각이 난다.

세월호와 똑같은 오하나마호를 타고 인천에서 제주를 다녀왔는데, 그 때는 전혀 교육이

없었고 소란 그 자체였지.

세월호 참사 후 승무원들에게 제대로 안전교육을 시킨 모양이다.

 

우리 사회의 안전이 제대로 관리가 되어야만 각 개인이 자유로워지는데,

세월호에 이어 판교참사까지를 지켜보면서 우리 사회의 기본을 다시 생각해본다.

 

분주하지 않은 '영도다리'의 표정이 평화스럽다.

 

유리창 밖으로 스치는 바다의 풍경을 바라보며 생각에 젖는다.

단순한 삶이란 무엇일까?



변덕스럽지 않고, 까탈스럽지 않게 사는 걸까,

그냥 주어진 여건대로 변화 없이 사는 건지 살다보면 가끔 혼동이 일어난다.

 

하늘엔 어제 땅에다 다 쏟아붓지 못한 빗물이 남았는지 먹구름이 으르렁대고 바다가

넘실거린다.

외해(外海)엔 망망대해(茫茫大海)가 펼쳐지고, 끝없는 수평선엔 화물선 한 척이

긴 항적을 그리며 어디론가 달려간다.

돛단배와 만선(滿船)의 기쁨을 표현하는 어선은 없고, 배를 따라오던 갈매기는 지쳐 육지로

돌아갔는지 이젠 보이지 않는다.

 

끝없는 망망대해의 수평선을 바라본다.

나는 어디를 가는가?

천변만화(千變萬和)하는 구름이 휘돌아친다.

 

10;25

내가 탄 쾌속선 코비는 시속 45노트, 즉 시속 83km로 달려 70분 만에 대마도에 도착해

가깝고도 먼 나라인 일본 땅에 나를 내려놓는다.

 

11;06

한국의 부산이 바라다 보인다는 한국 전망대에 올라선다.

조선역관이 탄 배가 침몰하여 생긴 많은 희생자의 혼을 기리는 비(碑)앞에 서니

일본방송국에서 나온 촬영 팀이 우리를 촬영한다.

무엇에 쓸 것인가?

 

1703년 이곳을 눈앞에 두고 배가 침몰해 정역(正譯) 한천석을 비롯하여 역관 108명과

쓰시마번사 4명이 목숨을 잃었다 한다.

그들을 기리기 위해 세운 추도비 '조선역관순란지비'를 한바퀴 돌면서 읽는다.

 

직선거리 49.5km의 부산이 가물거리며 보이는데, 내 카메라는 잡지를 못하니

오늘의 내 눈 컨디션은 카메라보다 좋은 모양이다.

 

가물거리는 한국을 보는 직선거리에 일본자위대 레이더 돔이 한국을 정확히 겨냥하고,

한국의 마산(馬山)과 마주 보고 있다 해서 대마도(大馬島)라는 이름이 붙여진 섬.

 

대마도는 부산까지 직선거리 49.5km, 섬 크기는 제주도의 38%이지만 울릉도의 9.5배에

달하며, 동서가 18km 남북이 82km 섬 넓이는 약 700㎢로 인구는 약 34천명이라고 하며,

농경지는 3.4%에 불과해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왜구(倭仇)라는 해적 떼가 우리나라를

수시로 괴롭히기도 했다.

 

무슨 꽃일까?

잎사귀는 울릉도에서 나는 '부지깽이'랑 비슷하고, 꽃잎은 분명 '쑥방망이'인데 잎사귀가

다르니 아리송하다.

 

일본 국화(菊花)일까?

크기가 2cm이하인 '산국'도 아니고, 꽃이 500원짜리 동전보다 큰 '감국'도 아니다.

바다 건너 다른 나라라 식생구조(植生構造)가 당연히 다르니 알 수가 없어 이 책 저 책을

찾아봐도 몰라 두 손을 들었지만,


세월이 한참 흐른 뒤 '털머위꽃'이라는 걸 알게 된다.

 

'미우다 해수욕장'의 외로운 섬에는 갈매기도 없이 흰 구름만 오락가락한다.

 

해수욕장의 미세한 모래는 매우 부드러워 신발을 벗고 맨발로 돌아다니고 싶은 유혹을

뿌리치지 못한 주봉이 맨발로 바닷물에 들어간다.

 

백사장 끝으로 이어진 작은 바위섬의 풍경은 선계(仙界)라,

주변의 풍경과 에메랄드빛으로 펼쳐지는 바다와 어우러진 경치는 일본의 해수욕장

100선에 올랐다고 한다.

 

14;00

112개의 계단을 올라 전망대에 선다.

 

섬들이 점점(点点)이 떠있다.

몇 개나 될까?

신안군의 1,004개 섬과 비교가 될까?

이 대목에서 꼭 숫자를 헤아려야만 되는 나의 버릇이 나온다.

 

거미는 한국이나 일본에서나 마찬가지로 바쁘다.

자귀나무 앞에서 바깥에 큰 거미줄을 그리고 안쪽으로 서서히 그믈을 만든다.

 

특이하게도 거미줄은 다 붙지 않으며, 한 줄씩 건너 거미의 발에 끈끈이가 묻지 않아

거미가 다니는 길이 별도로 있다고 한다.

작은 미물(微物)이라도 생존방식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가 없다.

 

신사(神社)로 들어선다.

도리이(鳥居)는 전통적인 일본신사 입구의 문으로 불경한 일반세계와 신성한 신(神)의

세계를 경계(境界)한다.

 

두 개의 기둥이 서 있고, 기둥 꼭대기를 서로 연결하는 가사기(笠木)으로 불리는

가로대가 놓여있으며 가로대의 약간 밑에 있는 두 번째 가로대는 누키(貫)라 불린다. 

 

신사(神社)는 일본의 고유종교인 신도(神道)에서 신령을 모시는 곳, 또는 신령을 부르는

곳이다.

 

신사는 3가지 부분으로 이루어지는데,

혼덴(本殿 또는 신덴 神殿)은 신령을 모시는 곳으로 신관(神官)만이 들어갈 수 있다.

헤이덴(폐전幣殿)은 신관에 의해 종교의식이 행해지고 기도를 올리는 곳이라고 하며,

하이덴(배전拜殿)은 경배하고 기도하는 곳이다.

 

일본 내에 신사(神社)는 9만 7,000개가 넘으며 회원은 약 1억 700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

 

어디서 많이 본듯한 해태상이다.

서울의 경계나 다리 입구, 궁궐 입구에는 해태상이 있다.

 

해태는 상상의 동물로서 불을 막는다고 하는데, 여기 신사(神社)도 불이 무서운지

입구에 해태상으로 화(火)를 경계한다.

 

내가 딛고 있는 대마도는 일본의 본토가 아니다.

섬인데도 신사의 곳곳에 일본인이 좋아하는 화(和)자가 붙어있다.

 

세상을 살다 보면 조화(調和) 만큼 중요한 것도 드물다.

곳곳에 원망, 미움, 갈등이 생기게 마련이지만 우리나라와 숱하게 갈등을 일으키는

일본땅에서 화(和)자를 대할 때마다 묘한 생각이 든다.

 

화(和)자는 일본을 상징하는 글자라는데,

세상사가 하나로 모아지면 조화가 되고 둘로 갈라지면 상극(相極)이 된다,

상극은 싸우고 갈라지고 터지고 부셔지는 나쁜 일의 연속이다.

 

화(和)자를 좋아하는 일본이 부디 자기를 버리고 상대방에 채워 주려나?

불가에서는 나를 버리고 너를 채워야 너와 내가 하나가 되어 비로소 조화로움이

완성되는 거라고 어렵게 설명을 한다.

 

그냥 편하게 서로 상대방을 이해하고 배려해주면 간단한 것을 참 어렵게 문제를

풀려 하는 일본사람들의 모습이 때로는 안쓰럽다.

 

15;30

'나제키세토' 운하 위에 서니 기분이 묘하다.

 

대마도는 원래 하나의 섬이었으나 1900년 '러일전쟁'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아소만(灣)에

있는 군함을 대마도 동쪽으로 이동시키기 위해 이 운하(運河)를 팠다.

 

거세게 흐르는 물이 수로(水路)를 채우며 나를 빨아들인다.

아직 여름이 남은 운하에 계절이 교차하고, 서서히 천변만화하는 자연을 바라본다. 

 

생각이 스며드는 곳.

'술패랭이'를 보며 삶의 소박한 진리를 발견한다.

 

일본에 와 꽃 한 송이 못 보고 갈 줄 알았는데, 뜻밖에도 온천탕 앞에서 술패랭이를

만난다.

재영이가 정선에서 찍은 '장백패랭이'보다 갈라진 잎이 길고, 색깔은 더 화려하다.

 

18;00

친구들의 얼굴을 바라본다.

비록 젊음이 사라진 얼굴이지만 지금 우리의 향기는 더 아름답고 그윽하다.

세월의 주름살이 차곡차곡 쌓인 모습이라 할지라도 때로는 난(蘭)의 암향(暗香)처럼

가슴속 깊이 배어든다.

 

나는 평소 새벽녘이 좋고, 붉은 새벽노을이 지는 날은 더욱 좋다.

새벽노을은 비를 예고하기에 요즘같이 쓸쓸한 가을날이면 더 기다려진다.

 

그러나 여행 중에는 어둑어둑 해질녘을 좋아한다.

해질녘은 어슴푸레한 빛결이 가슴속에 파고들며 객고를 풀 한잔 술이 유혹하기

때문이다.

 

오늘 밤은 한잔 술에 가슴을 흥건히 적셔볼까나,

또한 내가 이 세상에 살아 있음에 감사하자.

 

사람과 사람이 만나 만든 인연,

우연(遇蓮)이든 필연(必蓮)이든 참 소중한 인연이지.

이 귀한 인연을 너무 등한시하고 있지나 않은지 되돌아본다.

 

20;00

가로등불이 창문으로 고요히 들어온다.

문을 열고 나가 하늘을 바라보니 그믐이라 달빛은 간데없고 별빛만 쏟아진다.

마음을 담박(澹泊)하게 가지니 고요(孤寥)가 하늘 끝까지 이르는구나.

 

세상은 어둠에 잠기고,

잠자리에서는 오늘 지낸 일을 생각하며 삶의 의미를 느낄 수 있어야 하는데,

깊어만 가는 가을 밤하늘에서 내려오는 별빛이 창문으로 스며든다. 

 

 2014.  10.  24.  06;30

칼 면도를 하다 입술이 뜨끔해지더니 살점이 떨어지며 붉은 피가 아래로 주르륵 흘러내린다.

수건과 휴지로 지혈을 해도 그 때뿐이라 계속 피가 나온다.

 

피가 멈춘 후 거울을 바라본다.

세월 내려앉은 얼굴에 피가 흐르니 섬뜻하다.

 

거울 속엔 내 마음도 있는 건가?

마음을 비추는 거울이 맑지 못한가?

거울에 비치는 피를 닦고 본래의 나를 찾으려 머리를 단정하게 빗으며 생각을 다듬고

마음을 추스른다.

 

              [       내 자화상

 

                 눈가엔 잔주름투성이

                 이마엔 갈매기 굵은 주름,

                 머리털은 윤기가 없고

                 심술 볼엔 살이 늘어지고

                 목살은 쭈글쭈글 거린다.

        

                 눈썹과 머리털을 검게 변장했지만

                 슬그머니 새나오는 새치는 막을 수가 없구나.

 

                 그래도 마음은 청춘이라

                  모진 북풍 뚫고

                  세찬 비바람 이겨가며

                  백두, 한라, 설악, 덕유를 다 올랐으니

                  젊게 보이는 마법의 거울은 어디 없을까?              석천      ]

 

06;50

지금까지 절 운동을 몇 번 했을까?

동녘하늘에 해무를 뚫고 두둥실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며 숫자를 잊는다.

 

해조음(海潮音)이 들린다.

까마귀와 갈매기 울음소리도 들린다.

 

파도가 부셔지며 새소리 바닷바람 소리까지 합세해 오케스트라를 연주한다.

 

해수관음보살의 심정이 이럴까?

알파(α)음이 섞인 파도소리와 함께 하늘이 붉게 타오른다.

 

바다에서 툭 튀어나온 태양이 검은 해무 속으로 숨더니 장엄한 빛 내림이 시작되고,

절 운동을 잠시 멈춘 나는 붉은 하늘을 향해 손을 휘젓는다.

 

08;50

싱그러운 아침햇살이 반갑다.

이 산 저 산 아래는 다 붉다.

 

고운 빛깔로 치장을 마친 산에 가을을 맞으러 갈 시간이다.

시퍼렇게 멍든 가을하늘을 보며 난 가을 사냥꾼이 된다.

 

'아유모도시' 자연공원에 들어선다.

천지수(天地守)라니 하늘과 땅을 지키는 곳인 모양이다.

 

자연을 벗삼아 떠나는 여행.

햇살이 가득한 가을여행은 도시의 일상에서 무기력했던 나에게 활력을 준다.

 

봄은 땅에서 올라오지만 가을은 하늘에서 떨어진다.

보면 볼수록 선명해진 가을빛을 보면 누구라도 화가가 되고 시인이 된다.

 

출렁다리를 건너며 연어가 돌아온다는 뜻을 가진 여울로 내려선다.

넓은 화강암 암반 사이로 물이 여울져 요란하게 흐른다.

 

지금 내 앞에 흐르는 개울은 단순한 개울이 아니라 위에서 흘러 내려온 물이 폭이 좁아지며

물살이 빨라지는 여울이다.

세차게 들리는 물소리는 개울가에 서 있는 나무들의 붉은 이파리를 흔든다.

 

내 고향 내 집 앞에도 개울이 흘렀지.

비록 여울져 흐르진 못해도 가재, 미꾸라지, 피라미가 즐겨 노는 도랑이었지.

도랑물은 돌돌거리며 흐르고, 철부지들은 고추를 내놓고 물에 들어가 첨벙대던

그 도랑이 어느 날 고향엘 들르니 복개가 되어 눈앞에서 사라졌다.

 

문득 내 삶에서 사라진 그 개울이 생각난다.

제자리에 머물러 있으면 해뜰녘이나 해질녘에 나가 하염없이 흐르는 물을 바라볼 수

있을 텐데 사라진 개울이 그리워지는 건 가을이라서 일까?

                    

                     [        여울의  울음

 

                         골짜기마다 쏟아지는 물은

                         산의 울음인가?

                         시린 손 웅크리며 흐르는 여울물을 잡으려다

                         잡히질 않아 

                         허리를 펴고 흘러가는 흰 구름이라도

                         잡으려 팔을 휘젓는다.

                             

                                     가을이 되면 누구나 외로워지는 걸까?

                         파란 하늘을 바라보면

                         가슴 속으로 외로움이 들어오지.

                             

                                      쓸쓸하고 수많은 그리움이

                         슬며시 파고들어 고개를 숙이게 하는 건

                         생명의 유한(有限)함을 느껴서일까?

                        

                         풀벌레 소리를 들으면 더 외로워지고

                         물가에서 흐느끼는 억새를 보면

                         가슴이 더 아프다.                                  석천   ]

 

10;20

오늘은 아리아께(유명산) 등반이다.

일본의 산은 어떨까,

어제는 '술패랭이'를 만났는데 울릉도와 비슷할까?

 

관광자원은 제주도와 울릉도에 비해 한 수 아래다.

내 마음을 읽었는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관광을 다니며 비교하기를 좋아 한다며,

관광지의 좋고 나쁨을 비교하지 말고, 현상 그대로 보며 다른 점이나 특이한 점을 관찰하면

여행의 즐거움은 배가(倍加)가 될 거"라고 안내원은 말한다.

 

저 아래 어딘가에 물이 흐르는 계곡이 있는지 오름길 왼쪽에서 물소리 들린다.

메마른 산길을 오르며 등판은 금세 젖어든다.

 

찬란하던 녹색의 숲은 윤기가 조금 떨어졌지만 여전히 푸름을 자랑한다.

언제 황금빛으로 변하려나?

산길은 옹색하지 않아 둘이 이야기를 나누며 오를 수 있다.

 

전라도 사투리를 쓰는 사람들 네 명이 나를 추월해 저만치 사라진다.

산길은 금세 적막(寂寞)이 찾아들고 나는 이 적막이 좋아서 슬며시 웃음이 나온다.

 

가파른 길을 천천히 올라도 숨은 턱밑까지 차오른다.

단풍이 절정을 이루고 흰 머리 억새가 색바람에 하늘거리는 모습을 보려는 내 마음은

허욕(虛慾)이었던가?

 

삼나무, 편백나무, 사철나무가 햇볕을 독차지해 햇빛이 숲 속으로 스며들지 않으니

풀 한 포기 자라지 않는다.

 

사람의 흔적이 뚜렷한 길.

자세히 보니 사람도 다니고 산짐승도 다녔구나.

멧돼지가 나무 뿌리를 먹으려고 파헤친 흔적이 여기저기에 있다.

 

10;45

이정표는 우리나라 산의 이정표보다 세련되지 못하고 투박하다.

아리아께는 도상거리 2.85km라 왕복 5.7km에 산행시간은 약 세 시간 정도 걸린다고 한다.

 

우리나라 양평에 있는 유명산(有明山)과 이름이 같지만 분위기는 전혀 다르다.

물 흐르는 계곡도 없고, 산새 소리도 없고 풀과 가을꽃도 보이지 않는 산행 길은

다소 무미건조하다.

 

거친 된비알을 오르며 보이는 숲과 나무는 내 몸뿐만 아니라 마음까지도 같이 오르게 한다.

몸이 가면 마음도 가는 거라고 했는데, 무념무상(無念無想)으로 몸과 마음이 함께하니

산길은 길이라 하기 보다는 바로 도(道)가 되어 나 또한 도인(道人)이 된다.

 

11;00

거대한 고목이 벼락을 맞아 불에 타고 꺾어졌다.

커다란 구멍에 곰이 동면(冬眠)을 할 만한 장소라 구멍을 유심히 바라본다.

멧돼지 흔적은 여기저기 있는데, 이곳에도 곰이 있을까?

 

가을빛이 비친다.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단풍터널을 지나야 하는데, 이 산에는 특이하게 단풍나무는 없고

편백나무, 삼나무, 팽나무, 사철나무가 숲을 장악하고, 간혹 서어나무는 보이지만 참나무,

단풍나무, 철쭉은 보이지 않는다.

 

정상 부근에서 자라는 나무들은 누렇게 변한 암갈색의 나뭇잎이 떨어지며 알몸을 보여준다.

그래도 가을 다 가도록 푸른 잎으로 시치미를 떼는 나무들보다는 솔직해 더 정감이 간다.

 

무던한 길이 나온다.

힘차게 뻗은 주능선에서 말라 떨어진 낙엽을 밟는 소리가 사각대고, 겨울이 오기 전에

가을은 마지막 열정을 산에다 퍼부을 모양이다.

 

이리저리 뒹구는 낙엽 위에 찬 서리가 내리면 정처 없이 떠돌던 나뭇잎은 깊어지는

가을을 바라보며 서글퍼하겠지.

 

때가 되면 떨어지는 게 자연의 순리라 하지만 여름 내내 싱싱했던 녹색을 떨쳐내며

모진 추위를 생각하는 건 보통 일이 아니다.

낙엽을 보며 때가 되면 떨어져 굴러가더라도 모진 추위 이기고 이른 봄날 힘든 싹을

다시 피우라고 나무에게 부탁을 한다.

 

가을바람이 산 안으로 파고들면 산은 단풍으로 자기의 내면을 내어주는데 주능선에도

단풍이 없다.

빨간 단풍이 없어도 좋다.

선홍빛 단풍이 없어도, 노랗게 물드는 단풍이 없어도, 숲의 청량한 공기는 나보고 가을을

온전히 누리라 한다.

 

계곡을 가로 지르는 묘미도 없고, 그냥 오름길만 있는 밋밋한 산.

여기서 어떤 감동을 느낄까?

팽나무와 사철나무의 뭉친 잎 사이로 햇살이 파고든다.

 

11;40

아리아께(유명산 558m) 정상에 올라 사람이 사는 세상을 내려다본다.

흰 구름 두둥실 떠가고 모든 게 내 발밑에 있어 목청 크게 높여 부르지 않아도

세상이 다 보인다.

 

산릉과 봉우리, 그리고 바다가 해일처럼 밀려든다.

생성과 소멸이 반복되는 건 자연의 순리지.

파란 하늘에 풍덩 빠질까?

부드럽게 부는 바람이 목덜미를 스치다가 다 젖은 등짝에도 스며든다.

 

                 [     나는 누군가

 

                   정상에 올랐던 사람들은

                   하나둘씩 사라지고,

                   내가 누구지?

 

                   장엄한 대자연의 산봉우리에도

                   시간은 꿈결같이 흐르고

                   내가 누구인가 잠시 까맣게

                   잊어버렸구나.

 

                   바람결에 흔들리며

                   억새가 사각대는 소리에 취해,

                   떠다니는 흰 구름에 취해

                   내가 누구인줄 몰랐구나.                       석천      ]

 

쓰시마의 최고봉인 아리아께(유명산) 정상은 넓은 초원이 펼쳐져 바람도 구름도

쉬어가는 곳이니 여기서 별곡(別曲)을 써볼까?

 

발치에 펼쳐지는 넉넉한 풍경은 오랫동안 생각해왔던 나의 로망이라, 

이 맛에 산을 오르는 거겠지.

 

대마도 초등학교 학생들이 옹기종기 모여 도시락을 펼치고 식사를 한다.

예절교육이 잘 되었는지 조용히 앉아 식사를 하는 모습은 또 하나의 풍경이다.

 

12;00

갑자기 시장기를 느낀다.

배낭에 든 초콜릿과 과자로 간식을 하려고 하니 내려가 밥을 맛있게 먹자며 반대의견이

나온다.

 

갑자기 짜증이 나 나는 신경질을 부린다.

배고프면 먹고, 졸리면 자고, 힘들면 쉬는 것이 진정한 백수의 삶이 아니던가?

 

내가 쏟아낸 언어의 화살은 언젠가 나를 향하는 화살이 될 텐데 순간 후회가 되며,

내가 낸 화가 이 산에 나쁜 에너지로 남을까 걱정이 된다.

 

사람과 마찬가지로 산도 사람과 감정을 나눈다.

어떤 산을 가면 편안하고 어떤 산은 그렇지 않다.

나는 원주 치악산, 평창 두타산, 정선 가리왕산이 편안하질 않은데 그 이유를 알 수가 없다.

 

그냥 마음이 편한 산은 산의 어느 구석엘 가도 내 마음에 드는데, 그런 산이 바로 이 산인

모양이다.

이 산은 산과 나 사이에 의미를 만들고, 의미를 쌓아가며 정들이기를 하지만

내가 살아생전 이 산에 또 올 수가 있을까?

 

체중이 빠진 후 산행의 속도가 조금 빨라졌다.

원래부터 속도를 추구한 거는 아닌데도 자연스럽게 빨라진다.

 

몸만 빨라진 게 아니라 이젠 생각도 빨라진다.

세상을 살다 보면 빠른 게 좋은 거만은 아닌데 자꾸만 빨라지니 매사가 조급해진다.

 

사무실 컴퓨터를 7년 넘게 쓰다보니 부팅도 늦고 에러도 많다.

어떤 때는 몇 분씩 기다리기도 하고, 아들이 제 방에서 쓰던 컴퓨터로 교체해줘

요즘은 켜기가 무섭게 부팅도 되고 빠르니 살맛이 난다.

 

졸필이라도 쓰려고 자판을 두드리면 독수리타법에도 따라오지 못하던 컴퓨터의

속도가 이젠 내 손가락과 거의 비슷해져 생각할 여유를 주지 않는다.

그동안에는 자판을 두드리며 잠시 생각을 하고 기억을 되살려도 되는 속도였는데

이젠 두드리기가 무섭게 반응을 하니 점차 생각이 무디어진다.

 

사실 읽고 쓰는 속도가 빨라지면 성급한 의사 결정을 하게 되고,

성급한 결정과 결론은 신중하게 행동을 하고 차분하게 쓰는 일을 가로 막는다.

 

이순(耳順)의 나이엔 생각의 속도가 빠른 게 좋지는 않다.

생각은 깊이와 방향성의 영역이라 천천히 오랫동안 생각하는 습관이 필요하다.

비록 느리지만 어떤 문제에 대하여 천천히 생각하고 행동하면 실수는 거의 없다.

이것은 기업의 경영차원이나 정책집행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이다.

 

산을 오르며 가끔은 멈춰 서서 주위를 살펴보면 귀한 꽃들이 풀숲에 숨어 있고,

숲 속을 환하게 밝히기도 한다.

올라갈 때 힘들면 보이지 않다가도 내려올 때 좀 쉽게 내려오면 숨었던 것들이

보이기도 한다.

 

따라서 몸의 속도도 늦춰야 되겠지만 생각의 속도도 늦춰야 하는데 내 몸이 덩달아

빨라지니 생각의 끈이 없어진다.

 

12;50

삼나무가 숨이 막힐 정도로 빼곡하게 숲을 메웠다.

풀 한 포기 보이지 않는 땅바닥의 '고비' 사이로 '이끼'가 겨우 산다.

 

아리아께는 풀이 없어도 산은 산대로 자연의 법칙을 따르며 살고 있다.

식물 중 대부분은 자연의 순리에 적응해 사는데 특히 이끼는 더 조용히 산다.

 

지구상에 현존하는 식물 중 가장 오래되었다는 이끼는 무려 3억 5천만년이나 되었다는데,

이 생명체의 장수 비결은 위로 오르려 하지 않고 밑바닥에서 조용히 세상을 지배하며

단순함으로 살아왔기 때문이라고 학자들은 말한다.

 

이젠 삶의 단순화에 눈을 뜨자.

단순한 행복이 이어지면 보다 좋은 일이 덤으로 찾아오리라.

삶의 단순화에 대한 꿈은 꾸는 것이 아니라 이루는 것이다.

 

또한 몸의 속도도 늦춰야 되겠지만 생각의 속도도 늦춰야겠다.

바쁠수록 놓치지 말아야 할 행복의 조건은 행동과 생각의 '느림의 미학'이겠지. 

 

산모퉁이에 만난 '자리공'이 자연의 한 영역을 차지했다.

한방에서는 이뇨, 수종, 신장염 등에 쓰인다는데 유독성 식물이다.

 

14;10

내가 금방 다녀온 아리아께의 하늘이 시퍼렇게 멍들었다.

허공(虛空)을 쓸고 닦고 움켜쥘 수가 있을 거 같아 손을 휘저어본다.

내 손에 하늘의 파란 물감이 묻었다.

 

흘러가는 흰 구름을 무엇으로 잡을까?

또 손을 저어보지만 손바닥에는 아무 것도 잡히질 않는다.

번뇌(煩賴)의 실체가 없으니 해탈(解脫)인가.

 

15;30

모든 일정을 마치고 배에 오른다.

대마도는 긴꼬리를 보이며 따라오지만 내가 탄 배는 이를 뿌리치고 망망대해로 들어선다.

 

내가 또 저곳의 땅을 밟을 수 있을까?

조용히 고개를 가로젓는다.

 

17;20

하늘이 붉게 물든다.

핏빛으로 스러지는 노을은 만추(晩秋)의 서정인가,

부산항의 마지막 태양은 슬프도록 아름답다.

 

아주 먼 바다까지 나갔던 바닷물이 제자리로 돌아오고,

하늘이 붉게 익으니 바다도 붉게 익어간다.

 

어제가 쏜살같이 지나가고, 오늘도 지나가고 내일도 똑같이 지나갈 것이다.

며칠 후면 먹구름 울고 찬 서리 치겠지.

인생길 가는 길 멀다 해도 쉬어가며 떨어지는 석양을 바라보며 아쉬워 말자.

 

내가 이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것은 무엇일까?

책? 산행? 여행? 술? 친구?

이 가을에는 그리움이 있어 참 좋다.

 

                                2014.  10.  24. 대마도 아리아께(유명산)를 등반하고

                                                        석천  흥만  졸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