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

느림의 미학 268 마음이 슬픈 <예봉산 683m>

김흥만 2017. 3. 26. 15:27

2014.  11.  1.  10;00

한적(閑寂)하기만 했던 팔당역.

전철이 도착하자 많은 사람들이 쏟아져 나오며 북새통을 이룬다.

등산배낭을 맨 사람들, 온몸의 윤곽이 뚜렷하게 달라붙은 자전거 복장을 한 남녀

라이더들의 큰 목소리에 이어 등나무 아래 쉼터에서는 아침부터 술판이 벌어진다.

 

검단산이 산불보호기간으로 입산금지가 되면 늘 찾던 예봉산,

적막(寂寞)으로 쓸쓸하기만 했던 예봉산은 상전벽해(桑田碧海)로 변해 시골 맛은

사라지고, 전철개통 전에는 접근이 나빠 산꾼들만 다니던 산이 이젠 제법 인기 있는

산이 되었다.

 

강 건너 검단산이 붉은 단풍으로 온몸을 두르고 나를 기다리니

다음 주엔 검단산엘 올라 정상에서 새끼를 낳은 고양이를 만나야겠다.

 

예봉산도 변했지만 나도 많이 변했다.

전에는 주로 검단산엘 올랐지만 요즘은 먼저 오는 버스를 보고 결정을 한다.

검단산행 버스가 먼저 오면 검단산엘 오르고, 객산(客山)행 버스가 먼저 오면 객산을

오르는데 거의 객산행 버스가 먼저 온다.

 

남양주 와부 팔당지역에 있는 '예봉산(683m)'은 한북정맥이 가지를 친 능선 끝머리에 있는

산으로 래 이름은 운길산 또는 조곡산, 예빈산이라고 하였다.

지금은 수종사가 있는 조곡산이 운길산이고, 지금 내가 딛고 있는 이 산을 예봉산이라 하지만

이곳 사람들은 '사랑산'이라고도 해 나는 사랑산으로 부르기를 좋아한다.


주변에 있는 검단산(657m)과 운길산(610m)보다 약간 높으며, 남쪽으로 이어지는 산릉은

북한강과 남한강이 합치는 양수리 방면과 팔당댐에서 북서쪽으로 흘러가는 한강에서

가라앉히는데, 굴다리를 지나 등산로를 향해 발걸음을 옮긴다.

 

정설로는 왜정시대 예빈산의 '예'자와 봉안마을의 '봉'자를 따 '예봉'이라 하였다고 한다.

일제 강점기하에 산의 지명이 바뀐 곳이 한두 곳이 아니지만 이곳도 하루 빨리 제 이름을

찾았으면 하는 마음을 안고 동네로 들어선다. 

 

10;20

싸리나무집의 닭장에선 닭들이 '꼬꼬댁' 거리며 평화롭게 모이를 쪼고 있다.

내가 오늘 이 집에 들르지 않는 것을 이 닭들은 아는 걸까?

몇 해 전 여름 예봉산 정상에서 내려와 국수로 요기를 할까 하고 이 식당엘 들어와

생닭 복음탕을 주문한다.

 

그날 닭들이 비명을 지르며 난리를 친다.

아마도 죽음을 예견했는지 닭장을 날아서 탈출하려하다가 떨어지기도 하고,

필사적으로 도망을 치는 혼란 속에 한 마리가 잡혀 우리가 앉은 자리 앞에 놓인

탈수기로 들어가더니 5분 만에 털이 뽑힌 채 닭복음탕 요리의 재료가 되어 나온다.

 

그 요리를 대하며,

털이 뽑힌 닭에 미안한 생각이 들어 수저를 들지 못하고 안주 없이 막걸리를 마신다.

 아마도 우리가 주문하지 않았더라면 그 닭은 며칠이라도 더 살 수가 있었을텐데,

그 후 상품이 되어 나온 닭고기는 먹지만, 어느 식당엘 가도 생닭은 주문하지 못하는

소심한 사람이 되었다.

 

오전까지 비가 온다고 예보가 된 탓인지 하늘은 잔뜩 무겁다.

금방이라도 굵은 빗방울이 떨어질 거만 같았던 하늘이 북쪽부터 점차 개인다.

 

노란 감은 만추(晩秋)를 상징한다.

샛노란 감을 달고 있는 감나무가 아스라이 서 있기에 노란 감을 올려다 보며 눈이 부셔

잠시 눈을 감는다.

 

여름이 타고 남은 재(滓)인가,

이 풍경이 얼마나 더 갈까,

겨울이 이미 문턱까지 다가온 걸까,

금방이라도 떨어질 듯 아슬아슬한 아름다움을 풍기며 노랗게 익어가는 감 사이로 가을

햇볕은 무심히 스며든다.

 

오늘이 11월 초하루구나.

11월이 되면서 마음이 조금 급해진다.

금년이 다 가려면 아직도 두 달이 남았고, 설정된 목표가 있던 거도 아닌데 왜 이럴까.

 

어제와 오늘 새벽같이 가을비 한 번 올 때마다 겨울이 성급히 다가올까 마음을 졸이는 거도 

아닌데 11월은 낙엽이 되어 모든 게 사라지는 달이라서 인가?

계절은 여전히 내 곁을 흘러가고는 있어도 다 사라지는 건 아닌데 괜히 마음이 착잡해진다.

 

산은 곱게 물든 단풍으로 불타고, 조그만 과수원을 끼고 오른다.

 "동구 밖 과수원길 ~♬♪ 아카시아 꽃이 활짝 피었네.~~♬♪

내가 좋아하는 동요를 콧노래로 흥얼거린다.

 

등산로는 10여 개 정도로,

팔당역 뒤에서 바로 오르는 산행 길은 등산객들이 너무 많아 소란을 피할 수가 없다.

 

따라서 예봉정에서 남서릉 오른쪽 계곡을 타고 율리봉으로 올랐다가 벚나무쉼터를 경유해

예봉산 정상으로 오르는 6코스를 택한다.

 

이 길은 조용하고 호젓하여 산꾼들만 찾는다.

가을가뭄으로 물이 마른 계류를 두 번 건너 본격적인 등산로로 접어든다.

 

물소리, 매미 소리가 자취를 감추더니 풀벌레 소리도 들리지 않고, 주변을 둘러보니 흔하게

나오던 노랑망태버섯도 다 사라졌다.

하긴 11월에 그 흔적(痕跡)을 찾으려는 내가 바보지.

 

등산로는 돌이 많지만 급경사가 아니라서 위험한 구간은 없다. 

조금 더 올라서 오른쪽 개울을 건너면 바로 벚나무쉼터가 나오는데, 이곳에서 더 일찍

'율리봉'으로 방향을 튼다.

 

약 1km정도 더 돌지만 단풍과 낙엽이 쌓인 길은 심신을 Healing할 수 있는 길이기에

내 특유의 고집을 부린다.

 

박한 산길은 온갖 색깔로 단장을 하더니 떨어진 낙엽으로 포장이 되고,

산의 거친 매력과 온순한 매력이 상존하는 예봉의 계곡엔 노란 물감을 뿌려댔는지

국수나무의 연두와 생강나무의 노란 단풍이 숲을 지배한다.

두 얼굴을 가진 예봉의 온순하면서도 거친 산길을 천천히 오른다.

 

두릅나무는 가시만 보인다.

단풍나무와 철쭉이 군락을 이루고 마지막 단풍이 나를 서글프게 한다.

 

가을이 온지, 와서 머문 지가 얼마나 됐다고 벌써 가을이 떠나려 한다.

원래 짧은 가을이라 하지만 이번에는 유독 더 짧게 느껴지니 가는 세월이 아쉬운 건가?

가는 세월에 연연하지 않고 바닥에 떨어진 낙엽을 밟으며 발걸음을 재촉한다.

 

산을 아는 건 평생의 벗을 아는 거지.

붉은 단풍이 가는 걸음 붙잡더니 마음까지도 잡길래 포즈를 취해본다.

 

굉음을 울리며 초음속으로 날아가는 전투기가 산의 고요(孤寥)를 깬다.

 

11;00

율리고개로 오른다.

밤나무가 많은 율리고개의 오른쪽은 율리봉(587m), 직녀봉(589.9m), 견우봉(590m), 

승원봉(475m)으로 이어지다가 팔당호에서 사라진다.

 

지나온 아래삼거리에서 왼쪽 산행 길은 1.3km이지만 오른쪽 율리봉을 거쳐 예봉으로 오르는

길은 3.6km라 2.3km를 더 올라야 한다.  

 

 

'율리봉'으로 오르는 길이 경사가 급해 만만치가 않지만 나는 정약용, 정약전이 걷던 길을

걷는다.

그들은 이 길을 걸으며 무슨 생각을 하며 걸었을까.

천주교가 서학(西學)이라 하여 박해를 당하던 시절, 산이 주는 위안을 받으며 걸었을까?

 

단풍 숲길은 평안하다.

"가을이라 가을바람 솔솔 불어오니 나뭇잎은 붉은 치마 갈아 입고서,

 남쪽나라 찾아가는 제비 불러 모아 봄이 오면 다시 찾아오라~~~~♬♪♩"

 

어제의 오르막이 오늘의 내리막이 되는 인생길은 산과 닮았다.

형제같이 친근한 벗들이 없었으면 생겨나는 우울증을 어떻게 감당할까?

 

요즘은 사는 게 참 지루하다.

현역에서 은퇴 후 한동안은 여유로움과 한가함을 얻어 즐거웠지.

첫 해는 정신없이 지냈지만 백수의 세월이 쌓이면서 한가로움은 지루함으로 바뀐다. 

이 지루함이 쌓이면 어떻게 될까?

라는 생각이 잠시라도 들면 등판이 싸늘해지며 무서운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은퇴 후엔 공적인 시간보다 내 개인적인 시간이 많이 생기고 목표달성에 대한 스트레쓰가

없어 행복할 줄만 알았지.

지루함을 느끼는 건 아직 살아 있다는 증거일 수도 있지만,

요즘 들어서는 딱히 뭘 해야 좋을지 모르는 게 솔직한 나의 심정이다.

 

지루함을 느끼며 그대로 살아야 하나,

이대로 생명을 유지하며 자연사(自然死)할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가?

때로는 지루함과 즐거움이 뒤섞인 삶을 살겠다고 마음에 다짐을 하고 행동도 하지만

어느 순간이 지나면 사라지는 낙조(落照)와 같이 느끼는 쓸쓸함은 어쩔 수가 없다.

 

삶을 살며 지루함을 느끼는 건 후반기 인생에서 최대의 적(敵)이라 하기에

나는 이 산에서 지루함을 쫓아내고 마음을 가라앉히려 마음을 다스린다.

 

한가로움이 지루함으로 바뀌는 과정에 서 있는 나는

최근 모든 직(職)에서 벗어난 친구의 모습에서 허허(虛虛)로움을 발견하며

괜한 슬픔을 느낀다.

 

정상까지 469m 남은 '벚나무쉼터' 삼거리를 지난다.

여기서 부터 400m는 경사가 급해 많이 힘들지만, 정상까지 왼쪽 사면엔 드릅과 더덕이 많다.

 

옛 성터의 흔적이 나오며 정상이 가까워지고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돌무더기가 군데군데 있고, 예전에는 기우제(祈雨祭)를 지내던 제단이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헬기장으로 삼각점과 정상표지석이 있다.

 

11;40

돌을 밟고 오르니 더 이상 오를 데가 없고, 이미 도착한 등산객들로 예봉산 정상은

소란(騷亂) 그 자체이다.

 

적갑산(561m)과 철문봉(632m)엔 겨울이 다가왔는지 을씨년스러운 풍경을 보여준다.

적갑산은 예봉산과 붙어 있어 예봉산 봉우리 중 하나로 알려졌지만, 족보상으로는

예봉산의 형님뻘 되며, 한북정맥상의 산으로 독립된 산이다.

 

다산 '정약용' 선생의 형제들이 이 산을 오르내리며 웅지를 키우기도 하고, 즉 예봉의

북봉에 해당하는 철문봉에는 정약용 선생의 형제가 조안면 능내리에서 능선을 따라

이곳까지 와서 학문의 도(道)를 밝혔다고 전해진다.

 

새재고개와 갑산, 운길산이 보이고, 축령산 주금산이 박무 속에 아스라이 보인다.

북한산, 도봉산, 불암산이 손에 잡힐 듯 가깝고,

동쪽으로 천마산, 서리산, 축령산 다시 오른쪽으로 뾰루봉, 화야산, 중미산, 유명산,

용문산이 모습을 나타낸다.

 

난 산에만 오면 마음이 편해 좋다.

산에 들어서면 바로 선인(仙人)이 되고, 정상주 한잔에 마음이 일렁이면 바로 신선(神仙)이

되기도 하지만 특히 산은 갈 목표와 길이 뚜렷해서 좋다.

 

동동주를 감로주라 이름을 붙여 한잔에 2천 원을 받는데, 갈증이 난 터라

순식간에 동동주 한잔을 비운다.


예전에 가스 불을 피우다 나한테 잔소리를 들은 주인이 오랜만에 나타난 나를 알아보지

못한다.

어느새 세월이 그리 흘렀던가?

12;20

건너편 검단산자락 아래 '배알미리'가 보인다.

예전 관헌들이 벼슬을 제수 받아 영월 정선 등을 가며 삼각산이 마지막으로 보이는

이곳에서 임금에게 절을 하며 예를 갖춰 '예봉'이라 했고 건너편은 배알미리라 했다.

 

또한 외국의 사신이나 손님을 관장하는 예빈처에 예봉산의 나무벌채권을 줘 비용을

충당하게 했는데, 그 당시에는 산림이 울창하여 한양의 목재수요를 꽤나 많이 감당해

'예빈산'이라고도 했다.

 

예봉산은 높이가 683m로 그리 높지는 않지만 쉽게 오를 수 있는 산은 아니다.

때로는 거친 길도, 된비알도 있어 긴장이 필요한 산이다.

그렇지만 험하다고 겁낼 필요도 없고 평지라고 쉽게 볼 필요도 없다.

높이가 문제가 아니라 올랐다는 그 자체가 희열(憙悅)이기 때문이다.

 

전망대 아래로 팔당이 박무(薄霧)속에 침묵을 지킨다.

 

산수가 수려해 하늘에서 여덟 선녀가 내려와 살았다는 전설도 있으나,

팔당댐이 생기기 전 북한강과 남한강이 합수되는 지점으로 물길이 아주 거세 떼꾼 등

많은 사람이 죽었기에 그 원혼을 달래기 위한 당집이 8군데 있었으며, 그 중 당집이 위에

있는 지역은 상팔, 아래지역은 하팔이라 했다는 전설이 전해지며,

지금도 팔당역과 팔당댐 사이에 예전 남산에서 활약했다고 전해지는 거대한 당집이 있다.

 

동악 숭산이라 불리던 검단산이 동쪽의 한편을 차지했다.

한성 백제의 강역을 검단산과 함께 수비를 하고, 조선시대 임금이 주관하던 기우제(祈雨祭)를

지내던 명산 예봉산의 전망대에서 세상을 바라보며 예봉의 가을을 담는다. 

 

최근엔 항일의병을 도모했던 몽양 '여운형 선생'이 남쪽 끝머리 견우봉아래 천연동굴에서

피신을 했다고도 하는데,

다소 교통이 불편했던 이곳은 산꾼들만 찾았고, 나도 한적하게 등산을 즐기고자 할 때는

이 곳을 곧잘 찾곤 했지.

전철이 개통되어 주말엔 엄청난 인파가 몰린다.

 14;10

"통즉불통(通卽不痛) 불통즉통(不通卽痛)이라 통하면 아프지 않고 통하지 않으면 아프게

되어 있다"라고 의성(醫聖)으로 칭송 받는 구암 허준 선생은 말한다.

 

세상을 살다보면 조화로움만큼 중요한 것도 드물다고 하니 서로가 위로를 하며 기대고,

배려를 하면서 마음의 병을 이겨 내야 하겠지.

 

                        2014.  11.  1.  예봉산을 오르고

                                             석천  흥만  졸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