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11. 20. 05;40
가을빛이 서서히 저무는 만추(晩秋)의 새벽,
앞뜰에 마지막 남았던 목련 잎이 나풀거리며 힘없이 떨어진다.
일엽지추(一葉知秋)라,
제법 수북이 쌓인 가랑잎 더미를 밟으니 부스럭 거리는 소리가 제법 크고,
골목을 나서며 시린 목의 뒷덜미를 슬그머니 만진다.
물병의 물이 언 것을 보고 겨울이 온 것을 아는 병동지한(甁凍知寒)이 아니라도
어느새 입동(入冬)이 벌써 지나고, 모레면 소설(小雪)이니 머잖아 겨울에게 가을의
자리를 넘겨주려 싸늘한 바람이 부는구나.
10;40
겨울잠을 준비하는 들판 위 하늘은 파랗고 태양은 빛난다.
창녕에 들어서며 거대한 고분군(古墳群)을 만난다.
학자들은 창녕이 옛적에는 고령의 대가야와 같이 강했던 부족국가였기에
고분이 원래는 200여 기가 넘었으나 지금은 대부분 도굴피해를 입어 20여 기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삶과 죽음의 경계인 고분 길을 잠시 걷는다.
해질녘에 걷는다면 보다 고즈넉하게 저무는 시간을 볼 수 있을 텐데,
잠시 지나는 나그네의 시간으로는 기다릴 수가 없으니 그냥 스쳐 간다.
저 고분엔 누가 묻혔을까?
천 년이 넘는 시간을 훌쩍 넘어 무엇을 보여주려 내 앞에 나타난 걸까.
묘하게도 누군가가 묻힌 무덤이 아름다워 보이는 것은 저무는 가을이라서 일까?
난 잠시 상념에 잠겨 고분 길을 걷는다.
< 고독
빛 고운 단풍들이
세상사를 다 이야기하지 않았는데
가을은 뒤돌아보지 않고 슬그머니 떠나가네.
누군가는 해(年)가 가는 게 서글프다 하는데
이 말이 듣기 싫었는지
커피향 식기 전에 가을이 떠나가네.
세파에 시달려
세월에 시달려 멍든 가슴속에
살짝 들어왔던 가을이 떠나가려 하네
내주지 않으려 했던 나의 가을이
내 인생도 떠나가야 한다 하기에
기다려주지 않는 가을을 바라보다
커피에 진한 고독을 타서 마신다. 석천 >
11;10
나의 가을은 언제까지일까.
단풍이 다 떨어질 때까지인가?
들판에 누렇게 고개를 숙이던 벼이삭은 어느새 사라지고, 하늘엔 기러기떼 북으로
날아간다.
코스모스 꽃도 다 떨어지고, 벗나무 잎도 스치는 바람에 우수수 떨어지더니 벚나무는
순식간에 알몸만 남는다.
하늘에서 노란 은행잎 한 장이 나풀거리다가 발밑으로 사라지고 구석에 뭉쳐 있던
낙엽들이 흩어진다.
목덜미를 스치는 쌀쌀한 바람이 옷깃을 여미게 하니 어느새 내 가을은 끝이 났구나.
산을 교교히 물들게 하던 스산한 바람에 실린 찬기가 뒷덜미로 슬며시 들어와 마음까지도
썰렁하게 하니 이젠 만엽지동(漫葉知冬)이네.
여름이 타고 남은 가을.
이 가을이 단풍으로 타고 나면 하얀 재(滓)만 남을까?
가뜩이나 짧아 목마른 가을에 창녕 화왕산을 찾아 네 시간을 달려왔다.
땅은 서릿발이 내려 푸석거리고, 모였던 낙엽이 흩어지며 가을의 그림을 그린다.
노란 잎이 몇 장 남았던 은행나무에서 낙엽이 팔랑거리며 떨어진다.
산으로 들어서니 웬만한 나무들은 잎사귀를 전부 떨치고 알몸으로 겨울을 맞으며
휴면(休眠)을 시작했다.
낙엽귀근(落葉歸根)이라,
뿌리에서 생겨났던 잎사귀는 본디 제자리로 돌아가는 게 자연의 순리지.
여름내 제자리에서 제 몫을 다하고 흙으로 돌아가는 낙엽의 모습이 세상 인연을 다하고
이승을 떠나는 수행자의 모습으로 보이니 내 몸과 마음에도 황혼이 깃들기 시작하는구나.
화려했던 단풍의 색깔도 뺏기듯 지워진 늦가을의 나무들은 앞 다투어 맨몸을 드러낸다.
나도 나무처럼 내려놓을 때가 되었구나.
우리 발자국 소리만 들리는 11월의 숲.
벌거벗은 나무들이 서로를 부둥켜안고 다시 꽃과 이파리를 피울 날을 그린다.
산길을 다 태울 듯 불타오르던 단풍이 낙엽이 되어 길가를 나뒹굴며 길은 흔적(痕跡)을
없앴다.
나무들의 가지가 한결 가벼워졌지만 가을 끝자락의 스산함이 가슴으로 밀려들더니
오늘 따라 하늘도 휑하게 보인다.
12;00
길이 없는데 계속 올라야 할까?
올라온 길을 내려가 임도에서 다시 새 출발을 하자고 의견을 제시하니 그냥 오르자고 한다.
길이 있을 거라는 개연성으로 반대 의견도 나오는데, 상황을 보니 의견이 4대2로 갈라진다.
나이가 들면 정말 고집(苦輯)이 세지는 걸까.
몽니 아님 똥고집을 부리는 걸까.
한 시간 가량 올라온 게 아까워 옹고집을 부리는 게지.
고집불통의 일행들에게 이끌려 억지로 길을 찾아 진행을 하지만 이젠 정말 길이 없다.
수직절벽이 나오며 우회하는 길의 흔적이 없다.
화백이 용기를 내어 네 발로 절벽을 올라 길을 찾지만 희망이 없다며 고개를 가로젓는다.
12;20
어디서부터 잘못 된 거지?
첫단추를 잘못 끼웠으니 당초 예정했던 전망대가 나오지 않는다.
출발지에서 만난 동네사람은 전망대를 경유해 구룡산(740.7m)~관룡산(750m)~일야봉
산장으로 오르면 경치가 아주 좋다고 했는데, 결단을 내릴 때가 되었다.
절벽을 네 발로 기어 오르는 위험을 감수할 것인지,
출발지로 내려가 임도를 타고 오를 건지,
오르다 보면 산길이 있을 거라는 개연성만 가지고 진행하기엔 너무 위험하다.
게다가 낙엽이 쌓인 산길은 족적(足跡)이 아에 사라지고 리본마저 없다.
하산하여 이정표대로 오르기로 결정한다.
이제 취할 수 있는 행동은 처음 출발지로 무사히 내려가는 거다.
13;00
두 시간 정도를 허비하고 임도로 오른다.
특징 없는 시멘트 포장길을 오르며, 비록 조금 전 길을 못찾아 헤매었지만, 그 산행이
경직되었던 몸을 푸는데 약이 되었다.
바로 임도로 올랐으면 다소 싱거웠던 산행 추억으로 남겠지만, 두 시간 여의 낙엽 길을
미리 밟았으니 몸과 마음은 오히려 편안해진다.
속을 비우면 다시 채우는 게 삶의 평범한 진리 아니던가?
여름날의 열정을 잊지 못한 청단풍은 온몸이 화끈 달아 오지 않는 모양이다.
청단풍은 아직 그대로 있고, 몸이 달은 붉은 단풍만 낙엽이 되었다.
이슬 맞은 구절초의 꽃잎이 새초롬하다.
가는잎구절초의 향기를 마지막으로 가을이 떠나는 건가.
감국은 서리를 맞았는지 고개를 푹 숙였다.
가을의 뜨거운 열정이 떠나가는 숲에는 잘 익은 알밤이 떨어지는지 톡톡 소리가 난다.
알밤을 내어준 밤송이의 가시가 날카롭고 한동안 이어지던 숲길이 갑자기 훤해진다.
모퉁이를 도니 등 굽은 소나무가 자리를 지킨다.
금수능라와 같이 화려했던 단풍잎이 우수수 떨어지고 색바람이 스칠 때마다 은일(隱逸)한
숲 세계의 고요가 깨진다.
오랜만에 잠시 휴식을 즐길까.
계곡에서 아련히 들려오는 물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맑고 경쾌한 산.
무엇이 그리 바쁜지, 아님 몰라서인지 처음으로 찾은 '화왕산'에 생동감 넘치는 가을의 선율이
흐른다.
까마귀가 까악 대고, 낙엽 쌓인 길을 호젓하게 걷는 호사를 누리며 대자연의 품속으로
점점 깊이 들어간다.
나는 산에 들어서면 가끔 이런 생각이 든다.
이 나이가 되었어도 늘 산을 닮은 사람이 되고 싶은데,
자연이 사람에게 모든 것을 내주고 베풀듯이 나도 닮고 싶지만, 가을을 남기고 떠난 사람이
되면 너무 억울하지 않을까?
갑자기 이상한 생각이 들며 피식 웃음이 나온다.
이쪽 산행 길의 겨울은 아직 멀리 있는 듯 빨간 보석이 요염하게 반짝인다.
새들이 얼마나 좋아할까,
'마가목'의 빨간 열매가 숲을 환하게 밝힌다.
한 구비 두 구비 길을 휘도니,
가을이 품 안에서 떠나지 않으려는지 자연이 가진 모든 빛깔을 보여준다.
어깨를 맛 닿은 산에도 가을이 머무르고, 산세가 제법 험하지만 가을이 머물러 좋다.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에 까마귀 한 마리가 동그라미를 그린다.
"동그라미 그리려다 무심코 그린 얼굴, 내 마음 따라 피어났던 하얀 그 때 꿈을
잎에 연 이슬처럼 빛나던 눈동자, 동그랗게 동그랗게 맴돌다 가는 얼굴~~"
산 속에만 들어서면 왜 이리 마음이 편해지고 그리움이 쏟아져 나오는 걸까.
'얼굴'이란 노래가 생각나 흥얼거린다.
스치는 바람에 숲이 바스락거린다.
가을 숲은 이 시간이 되면 저 자신을 내려 놓느라 분주하다.
다람쥐는 내려온 숲에서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양볼 가득이 도토리를 담았다.
나도 잠시 나 자신을 내려놓고, 고요로 출렁이는 숲 위의 하늘을 바라본다.
어디선가 졸졸거리는 도랑물 소리, 나무를 스쳐 가는 가을바람 소리가 산길의 발자국
소리 위에 겹쳐진다.
< 고갯길
고개를 넘어가도 또 고개를 넘어도
또 한 고개 남았다.
넘어도 넘어가도 끝없는 고갯길
인생살이 세상살이 얼마 남았는가.
지친 다리 끌고 사방천지 싸돌아 다니다
석양 햇빛 바라보며
허망하게 넋 나가지 않으려
안간 힘을 쓰는 게 처량한가.
백 년 천 년 살 거도 아닌데
좋은 날 다 떠나보내고
인생 종착역 달려간다 슬퍼마소.
이보게!
산다는 것은 말야,
죽을 때까지 슬픔과 기쁨,
노함과 용서 사이에서 머물다 가는 먼 여정이라네. 석천 >
14;05
옥천 삼거리에 도착하니 붉은 단풍이 낙엽 되어 바람에 흩날리며 내 가슴에도 떨어진다.
나는 바스락거리는 낙엽의 밀어(蜜語)를 듣는다.
휴양림에서 정상까지 5.9km이니 왕복 12km가 되는 걸까?
처음에 올랐다가 되돌아 내려온 관룡산 코스까지 합하면 15km가 넘는 제법 긴 거리이다.
흩어지는 낙엽이 안쓰러워지며 마음이 저려온다.
이 가을에 바람에 쓸려 가면 그 빈자리의 공허(空虛)를 무엇으로 채울까.
나의 짧은 가을에 그리움은 쓸려가지 않겠지.
14;23
드라마 허준, 상도, 대장금을 촬영했다는 세트장이 나온다.
잠깐의 휴식이 필요하다.
긴 산행 길에 제대로 휴식을 취하지 못하고 이곳까지 강행군을 했으니 시장기를 느낀다.
정상부에 조그만 늪이 있다.
새 생명과 기존의 생명을 품은 이 늪의 이름은 무엇일까?
람사르 협약에 등록된 늪일까?
작년 9월에는 대암산 '용늪'을 올랐고, 흑산도의 먼발치에서 '장도'의 늪을 바라보았는데,
오늘도 늪을 만난다.
내일은 '우포늪' 트래킹을 하는데,
창녕은 낙동강변에 위치하여 우리나라 최대의 늪인 우포를 비롯하여 20여 개의 늪지가
있다고 한다.
낙동강 옆이고 곳곳에 늪지가 많아 '메기가 하품만 해도 물이 넘친다.'라는 우스갯말이
전할 정도로 수기(水氣)가 강하여,
불기운이 왕성하다는 뜻의 산 이름인 화왕(火旺)으로 수기를 누르기 위해 이름을 지었다고
전해진다.
도열한 억새꽃이 흰머리를 휘날리고,
시리게 선 나무들의 이파리가 몇 잎 남지 않아 아슬아슬하게 달렸기에 다가가서 살짝
안아준다.
세월이라는 유장한 강물이 거침없이 흐른다.
< 소슬바람
너울거리는 억새가
나를 초대하던 날은
미치도록 환한 가을날이었지.
화왕산 억새들은
슬픈 소리로 서걱대고,
내 흰머리는 소슬바람에 휘날린다. 석천 >
14;40
동문(東門)으로 들어선다.
화왕산성(火旺山城)은 전체적으로 가운데 허리 부분이 말안장과 같은 형태로, 절벽부를 따라
체성이 축조되어 있는 산정식(山頂式) 석성(石城)으로 둘레는 약 2.7km라 한다.
정유재란 때 곽재우 장군이 밀양, 창녕, 영상, 현풍 네 고을의 군사를 거느리고 들어오니,
사방에서 장수와 선비, 백성들이 곽 장군 휘하로 모여들어 동고록(同苦錄)을 작성하였으며
여기에 990명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는데,
이들은 성중에 나무더미를 쌓아두고 산성을 지킬 수 없을 경우 여기에 불을 질러 함께
타죽기로 각오를 하고 농성을 하였으며 일본군은 일주야 동안 동정을 살피다가 퇴각했다고
전해진다.
생각에도 길이 있고, 마음에도 길이 있는데 모름지기 걷는 길에도 길에 따라 다 맛이 다르다.
오늘은 거친 절벽길과 시멘트길, 부드러운 억새가 깔린 길과 흙길을 다 걷는다.
경사져 가파렀던 길을 뒤로 하고 넉넉한 평지의 길을 걷는다.
늦가을의 청명한 가을 하늘은 너무 투명해 칼이라도 살짝 대면 쨍하고 깨질 것만 같다.
흰머리를 거의 다 떨궈낸 억새가 갑자기 비명을 지른다.
세상은 거대한 갈색의 세계로 바뀌었다.
초록이 뚝뚝 떨어지던 세상에서 갈색으로 바뀌더니 다시 무색(無色)의 세계를 향해 달려간다.
흰머리를 흔들어대는 억새꽃이 가을바람에 일렁인다.
태양은 조용히 빛나고,
공(空)과 색(色)이 바뀌는 동안 세월은 소리 없이 흘러간다.
성벽 위 전망대엘 오르니 까마득하게 정상이 고개를 든다.
하얀 바위가 솟구쳐 오른 정상에 먼저 올라간 두 친구가 손을 흔들고,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순간 온몸에 아드레날린이 솟구친다.
가슴을 뛰게 하는 풍경은 한동안 메말랐던 내 감성을 깨우고 물 한 모금을 마시니 세상시름이
시나브로 사라진다.
이 시간부터는 세속에 속박을 받지 말고 한 사람의 자연인이 되자.
그러면 본디 나 자신으로 돌아가겠지.
낭떠러지 쪽에는 진달래나무들이 봄을 기다린다.
억새도 장관이지만 매년 4~5월에는 진달래가 산중턱과 벼랑을 빨갛게 물들이는데,
오늘은 너무 늦게 찾은 죄로 말라 비틀어지기 직전의 억새만 본다.
14;50
배바위가 하늘금을 그리며 아래를 굽어본다.
옛날 배를 붙들어 맨 곳이란 전설이 있어 '배바우'라 하며,
언젠가 군용기가 이 배바위에 부딪쳐 추락하는 바람에 바위가 깨졌다고 한다.
배바위는 쐐기형으로 갈라져 그 좁은 틈으로 한 바퀴 돌면서 기도를 하면 아들을
얻는다는데, 이미 아들과 손주 녀석이 둘이니 되니 기도를 할 일이 없어졌다.
이정표엔 정상에서 배바우까지 0.6km 라는데 시간이 벅차다.
몇 년 전 이곳에서 안전 불감증에 의한 참사가 벌어졌었지.
2009년 2월 10일 정월대보름 억새태우기 행사를 하던 중 역풍으로 방화선 25~50m를
날라온 불길에 6명이나 숨지고 61명이나 부상당했던 끔찍한 참사의 현장인 '배바우'는
조용히 침묵을 지킨다.
사람들은 바보지.
동해안 대화재 때 붉은 불덩어리가 산과 산, 하늘과 하늘을 날아 다녔는데, 고작 50m를
안전선으로 믿고 18만 5천㎡(약 5만 6천평)의 억새밭에 불을 질렀으니 하늘이 노(怒)한 거다.
사람들의 허망한 욕심으로 억새밭에 살던 수많은 산짐승과 곤충들을 불질러 죽이려들면
대자연이 반기를 들 거라고 생각을 못하는 아둔한 사람들이 정책 입안을 하고 실행에
옮겼으니 찾아온 관광객들만 심한 피해를 입었다.
끝까지 오른 사람에게만 보여주는 절경에 입을 다물고,
정상에서 조금 전 올랐던 봉우리를 바라본다.
거대하면서도 부드러운 능선은 자연이 그린 한 폭의 동양화이다.
선(線)과 여백(餘白)의 미를 중시하는 절대준(折帶皴)의 기법도 아닌데,
유려한 선(線)으로 대자연을 그렸으니 무슨 기법일까?
끄집어낸 걸까? 아님 찾아낸 걸까.
감히 대자연이 그린 그림을 보며 아무 지식도 없는 놈이 평한다고 하늘이 야단치겠다.
동양화를 그리려면 자연을 보고, 자연을 알고, 자연의 이치를 깨우쳐야 되는 법인데,
나 같은 둔재(鈍材)가 시(詩)와 서(書), 그리고 화(畵)의 3요소를 그림 속에 담아 표현할 수가
있을까?
15;03
화왕산 정상석(756.6m)은 외로움에 지쳐 묵상을 하는 사람과 닮았다.
지난여름의 푸른 열정이 지나간 가을,
열정을 잃은 통절한 울음을 삼키고 다시 올 세월을 고개 숙여 기다려야겠지.
나는 돌아갈 곳이 있는데 이 정상석은 여기를 지켜야 하니, 나 자신도 마음은 여기에
남기고 육신의 껍데기만 떠나자.
반복되는 백수의 일상속에 나는 나를 너무 자주 잊어버린다.
살아서 걸어 다니는 자체가 행복이고 즐거움인데 짧지도 길지도 않은 인생을 살며
행복을 모른 채 살아왔나 보다.
산에 올라 아래를 굽어 보면 가끔은 힘들고 흔들렸을 때가 생각난다.
오늘은 조용히 올랐으니 끝없이 펼쳐진 세상을 바라보며 잠시나마 세상사를 잊어보자.
탁 트인 세상이 펼쳐지고 그 세상 속에서 옹기종기 모여 사는 인간세상이 조화를 이룬다.
평화로운 풍경을 바라보며 이 시간 여기에 딛고 있음을 고마워한다.
거대한 산맥의 등뼈는 날카롭고 거칠다.
오를 때는 미끈하고 유려한 선(線)을 그렸는데 반대쪽은 엄청 거칠다.
인생의 짐을 벗을 수 있을까,
삶의 짐을 다 내려놓을 수 있을까?
내 배낭이 작다고 가끔 주봉이 시비를 건다.
산행을 할 때는 55리터 용량의 큰 배낭에서 20리터짜리 새끼배낭을 꺼낸다.
긴 산행 길에 무게를 조금이라도 줄이면 힘이 덜 들기 때문이다.
주봉은 40리터짜리를 짊어지고 오른다.
사실 짊어진 배낭이 무거워 벗어버리고 오르면 정상에 올라가도 먹을 게 없다.
대신 조금이라도 큰 짐을 짊어지면 먹을 건 가득하다.
삶의 짐을 벗으려 땀 흘려가며 올라가면서도 먹을 것에 집념을 갖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생존에 필요해서일까?
육신의 짐은 무겁고 무서워하면서도 마음의 짐은 가볍게 생각하는 우매함일까.
누구나 살아가며 저마다의 짐을 감당하다가 저세상으로 가는 게 우리네의 일생이고,
인생자체가 짐이라, 살면서 짐 아닌 게 없는데 말이다.
다리가 휘청거리고 숨이 가쁘고 생각의 끈이 짧아질지라도 오늘은 짐을 더 지고 오르자
하면서도 막상 출발지에서는 으레껏 짐을 줄이게 된다.
실제로는 정상에서 짐을 내려놓을 때 지고 온 짐의 무게만큼이나 더 행복을 얻게 되는 게
삶의 진리라,
이젠 육신의 짐도 중요하지만 긍정적인 삶의 짐도 더 지자.
내가 짊어 지었던 긍정의 짐은 나를 바르게 살게 했고, 겸손과 배려와 사랑을 알게 만들었으며
수많은 불의(不義)의 유혹에서 벗어나게도 했지.
가파른 길을 내려가며 고개가 수그러지고 걸음걸이가 조심스러워진다.
시선을 아래로 향하다가 고개를 들고 하늘을 바라보니 까마귀가 앞에 앉아 "까악"거리며
마치 이 산의 주인인양 경계를 한다.
바람 지나는 길목에 꽃이 다 떨어진 억새가 나뒹굴고,
하늘금을 이루는 능선 길은 긴 반달처럼 덤덤하게 누웠기에 파란하늘만 바라본다.
오늘 여기에서 내 뿌리를 찾고자 함이 아닌데 바위에 앉은 까마귀는 슬픈 울음을 보낸다.
까마귀도 떠나가는 가을을 아쉬워 하는지 회한(悔恨)에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모양이다.
내려가던 발걸음 멈추고 잊어졌던 삶의 의미를 잠시 생각한다.
가을이 떠나려 하니 괜스레 가슴이 아파 오지만, 소리 없이 떠나는 가을을 보내며
삶의 여운을 남기는 거도 좋겠지.
억새가 가득한 평원을 내려다보며 그동안 억새 산행을 한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재약산, 천황산의 억새에 취해 내려오다가 랜턴도 없이 거꾸로 된 이정표에 호되게 당하기도
하였고.
천관산 정상부의 억새밭에서는 김유신 장군과 천관녀의 애뜻한 사랑을 느끼기도 하였으며,
민둥산 정상에서는 할아버지 호칭에 기분이 상하기도 하였고, 신불산 억새 평원에서는
세월의 무상함에 회의를 느끼기도 하였다.
명성산 억새밭에서는 담배를 피우는 사람과 싸움도 하였으니, 즐겁고 시리고 가슴 아팠던
사연은 누구나 다 있게 마련이지.
계절이 저물어 가는 가을날의 오후,
해가 서쪽으로 기울며 마지막 빛을 발할 때 걷고 싶은 곳이기에 잠시 머무르고 싶은 강한
유혹을 받는다.
달빛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미련 없이 저무는 시간을 대하며 저린 가슴속을 채울 텐데,
시간의 자취가 짧은 가을 태양이 사라지려 할 때 느끼는 서글픔을 잊을 텐데,
기울어가는 해를 받아 하얀 머리를 흔들며 사각대는 억새평원의 유연한 곡선에
시선을 거둘 수가 없다,
나는 해 저무는 시간이 잘 어울리는 정상의 억새밭에서 억새꽃의 흐느낌을 듣는다.
< 화왕산의 신선세계
화왕산 정상에 신선세계 있어
바람과 구름 흘려 보내는구나.
온 세상에 나무없는 산이 없건만
화왕산은 산 아래로 거친 손길을 내보냈는지
나무 없는 산 정상이로구나.
산 안개 거친지 오래인데
다시 몰려오는 산안개를 거절할 수가 없구나
꽃처럼 예쁜 단장 꾸미지 않았어도
억새와 바위만 있는 정상 모습에
나 즐거웠으니
무릉도원이 따로 없다.
흥에 겨워 주름진 산능선은 푸르름이 첩첩인데
유독 화왕산만 황금물결 파도 친다.
억새는 나무를 밀어내고
상전벽해(桑田碧海)를 만들더니
우리 인생 가련한지
저만치 도망가는 햇볕을 불러 모은다. 석천 >
산 이름이 불 화(火)자를 쓰는 화왕산(火旺山)이고 정상부의 평원이 움푹 들어가 화산인 줄만
알았는데, 자료를 보니 우리나라 노년기 산의 전형적인 형상이라 한다.
부산대 윤성효 교수는
'마그마가 땅 속에서 식으면 심성암(深成岩), 지표로 드러나 식으면 화산암(火山岩)이 되는데,
화왕산은 심성암의 일종인 화강암 지대이고 다른 산에 비해 침식을 유달리 많이 받아서
지금과 같은 지형이 되었다고 설명을 한다.
비석이 서있다.
가까이 가려니 시간이 벅차다.
창녕군지(昌寧郡誌)에 의하면,
신라 한림학사 이광옥의 딸 예향이 배가 부어오르는 괴질에 걸려 이곳 화왕산 용담(龍潭)에서
목욕을 하다가 용자(龍子)와 사귀어 득남을 하였다는데,
그 아이 겨드랑 밑에 조(曺)자가 있었으므로 성을 조(曺) 이름을 계룡(繼龍)으로 지었다 하니
저곳이 바로 '창녕조씨 득성지지(昌寧曺氏 得姓之地)'인 모양이다.
15;50
그 흔한 잠자리 떼도 보이지 않는다.
새소리, 풀벌레 소리가 들리고, 만월(滿月)이 억새밭을 비춘다면 달빛 풍광을 즐겨볼 만도 한데,
유감스럽게 그믐이 가까우니 달빛을 기대할 수도 없고, 휴대폰 예비배터리로 랜턴을 켜는
모험도 하기가 쉽지 않다.
지금 시간 네 시가 가까운데 어디로 가는 비행기일까?
오후 5시쯤에는 하산을 완료해야 안전하니 부지런히 발길을 서두르자.
17;10
오늘 여정의 끝은 휴양림 숙소이다.
황홀한 저녁노을을 바라보며 고독을 느끼고 싶다.
그냥 산 속에서 나를 드러내지 않고 침묵에 귀를 기울일까.
가끔은 나다움을 잃지 않고 묵중한 고독을 삼키고 싶다.
그러다 보면 나도 모르게 마음 속에 평화가 오며 자유로움을 느끼겠지.
세상을 살다보면 우리네 인생은 그리움 투성이다.
지난 추억에 대한 그리움,
다가올 미래에 대한 그리움,
그리움이 많은 삶은 의미가 있는 걸까?
세상이 어둠 속으로 빨려든다.
깊어만 가는 가을밤.
별빛은 고요히 흐르고 산새들도 잠들었는지 부스럭대는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2014. 11. 20. 창녕 화왕산 산 속에서
석천 흥만 졸필
'여행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느림의 미학 272 천하 제일의 명당 서산<가야산 석문봉 563m>은 흉당(凶堂)이다. (2) | 2017.03.26 |
|---|---|
| 느림의 미학 270 피안의 세계와 차안의 세계가 공존하는 <창녕 우포늪> (0) | 2017.03.26 |
| 느림의 미학 268 마음이 슬픈 <예봉산 683m> (0) | 2017.03.26 |
| 느림의 미학 267 느림의 생각 2 <쓰시마 아리아께 有明山 558m>를 오르다 (0) | 2017.03.26 |
| 느림의 미학 266 느림의 생각 1 <부산 釜山에서> (0) | 2017.03.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