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

느림의 미학 274 <한라산>산행은 미완성

김흥만 2017. 3. 26. 15:39

2015.  1.  21. 07;00

비가 추적추적 내린다.

한라산 천지(天地)에 뿌려진 눈의 결정체들은 설국(雪國)을 만들었겠지.

빗속에 솟아 오른 오름이 실루엣을 그리고 그 사이로 잠든 나무들의 풍경이 꿈 속처럼

평화롭다.

 

설레었던 여정의 한라산.

꼭 일 년 만에 다시 만나는 한라산.

수많은 오름을 거느린 한라산을 내가 탄 차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구불구불 오른다.

 

09;30

성판악에는 비가 눈으로 바뀌겠지 하던 내 희망은 무참히 깨지고, 우울한 심정으로

우의를 꺼내 입는다.

 

지난 세월 늘 좋은 날만 있던 거도 아니고, 나쁜 날만 늘 있던 거도 아니니,

기상이 악화되면 도중에 하산을 하기로 하고 비를 맞으며 우중산행을 준비 한다.



하늘과 땅의 경계가 지워진 곳.

구슬프게 내리는 비는 그칠 줄 모르고 내 몸은 서서히 젖어든다.

 

                    <       한라산의  비

            

                         겨울비가 내리네.

                         눈 쌓인 산속에 겨울비가 내리니

                         네 속도 제정신이 아니겠다.

 

                         설산(雪山)이라는 이름을 지우려는지

                         추적추적 내리는 비는

                         네 속을 확 터지게 만들더니

                         기어이 내 울화통마저 터지게 만드는구나.

 

                         산길을 눈 녹은 물로 질퍽하게 만들어서

                         누구를 뒹굴게 만들려나.

                         시린 네 속을 누가 알려만은

                         나는 그래도 알려고 노력한다네.

 

                         긴긴겨울의 아픔을 쟁여왔으니

                         내가 어찌 너만 하겠는가.

                         빗물이 얼굴을 때릴지라도

                         어찌 시(詩) 한 수 없을쏘냐 .                                     석천    >

 

변덕스러운 날씨도 고집과 열정을 꺽지는 못한다.

한라산의 품 안에서 하루를 보내볼까.


변하지 않은 성판악의 풍경, 

빗속에서도 시간은 흘러가고 우비와 아이젠을 착용하며 우중산행을 준비하는 산객들로

소란스럽다.

 

산행 준비를 끝내고 비 내리는 숲을 망연히 바라본다.


친구의 "전투준비 완료!"라는 말 한마디에 비(雨)로 우울해진 마음을 돌리고,

카메라에 커버를 씌워 옆으로 메고 온몸에 힘을 뺀다.

 

배낭의 무게도 줄였으니 이제부터는 마음속의 허세도 벗어던지고 진짜 나를 찾아볼까?

허세와 욕심은 모든 고통의 근원이라 숲은 내 속의 허세를 감싸주겠지.

 

모자를 뚫고 흘러내리는 빗물이 얼굴에 흐른다.

우중산행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과 반대의사를 무릅쓰고 왜 산에 오를까.

 

굳이 산이 아니라도 우산을 쓰고 다닐 수 있는 트래킹 코스가 여러 군데나 있는데 

왜 기를 쓰고 한라산을 오르려 하고, 산을 오르면 무슨 의미가 있는 걸까.

 

나는 우중산행을 하며 무기력과 우울함을 한 방에 날리는 숲의 정적을 깨고 싶은 거다.

운이 좋은 건지 나쁜 것인지는 몰라도 은퇴 후 30년을 더 살아야 하는 이유를 알고

싶어 오르는지도 모르겠다.


다른 사람들은 이해를 할 수가 없지.

황혼의 삶에 희망을 찾으려 함과 꺼져가는 생(生)의 의미를 되살리고 싶은 간절함이

이유인데 말이다.

 

어쩌면 비를 맞으며 눈을 밟는 산행길에서 수평적인 삶, 평범한 삶에서 오는 지루함을

깨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어차피 이상과 현실은 서로 평행선을 그리는 게 자연의 섭리지만 그 소실점 끝에서라도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고 '나'라는 존재를 찾고 싶은 거다.

 

또 다른 평행선을 미지의 세상에서 재발견하고 싶기도 하지만,

산에 오르면 끊임없이 삶의 의미를 부여하며 바람의 결을 가슴에 담을 수 있겠지



산길로 들어서 눈길을 사박사박 걷는다.

숲은 흰 눈으로 사방이 덮히고 구름 속에 숨은 태양은 붉은 기운은 커녕 전혀 힘을 쓰지 못한다.

 

뽀드득 뽀드득~♬♪

눈 밟는 소리가 조용한 숲 속을 메우기 시작한다.

내가 내는 발자국 소리에 동안거에 들어간 뭇생명들이 깨어날까 조심스럽다.

 

그래도 눈길에서 뽀드득 거리며 걸어가는 소리는 바스락 대는 소리보다 더 설레는 발자국

소리가 아닌가?

적어도 이 숲 속에서는 사랑하는 사람을 그리워하며 또각또각 달려가는 소리와 맞먹는다. 

 

굴거리나무의 커다란 잎사귀가 바람에 흔들리더니 그 사이로 서어나무가 눈길에

슬그머니 눕는다.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조그만 돌무더기가 눈이 벗겨져 유일하게 눈이 가리지 못한

풍경을 보여준다.

 

하늘과 바람의 땅인가?

눈과 바람이 주인인 이 산의 아름다움은 곡선의 부드러움이다.

산길은 부드럽게 이어진다.

 

비바람 속에 펼쳐지는는 숲의 세계,

나무와 짐승들이 평화롭고 편하게 살 수 있는 곳이지만 산이 나를 싫어하는지

내 몸이 눈길에 아직 적응을 하지 못했는지 휘청거린다.

 

아이젠을 착용했어도 반질반질 달은 눈길은 빗물이 스며들어 얼음판같이 미끄럽다.

한라산의 눈은 제왕(帝王)적이라 내 시야를 압도하며 눈 쌓인 풍경에서 눈을 돌리지

못하게 한다.

 

3년 연속 1월이면 한라산을 오른다.

눈 쌓인 길에서 비를 맞더라도 오늘은 어린아이가 되고 강아지가 되고 싶다.

비와 눈이 부리는 횡포에 꼼짝 못해 엉금엉금 기는 산행을 하고 있으니 나는

오늘 비(雨)와 눈(雪)의 노예가 되었다.

내륙지방에는 눈이 오질 않아 건조주의보가 발령되었는데, 오늘 내 눈(目)은

눈(雪)에 의해 호강을 하고 있으니 눈의 노예가 되어도 좋다.

 

자연에 대한 경외감을 주는 한라산의 눈길,

나와 땅 사이를 조심스럽게 해주는 눈길이 좋아 나는 강아지처럼 종종걸음을 한다.

 

비 오는 한라산은 작년 등반과는 또다른 맛을 풍긴다.

작년에는 보이지 않던, 그때는 느끼지 못했던 삶의 소중한 의미들이 발견되는

소중한 산행길이다.

 

10;00

쉬운 구간을 지나 된비알을 오르기 시작한다.

편안히 내쉬던 숨은 가빠지기 시작하고 심장이 터질 것만 같다.

이 고비만 넘기면 굳었던 몸이 풀어지며 편안해질 테니 천천히 오르자.

 

산에 오르지 않으면 육신이 편안할 텐데 굳이 이 추운 겨울에 비를 맞으며 산엘 오른다.

그것도 우리나라 남한지역에서 가장 높은 한라산을 오른다.

며칠 전 친구가 "자기도 잘 오를 수 있을까?"라고 묻기에 "김흥만이도 갈 수 있다."

"자넨 분명 잘 오를 수 있을 거야"라며 격려를 한다.

 

무슨 일을 하고자 할 때, 토론을 할 때, 또는 논문이라든지 글을 쓸 때는

기승전결(起承轉結)의 방식으로 서론(序論) 본론(本論) 결론(結論)의 과정을 거친다.

 

삶을 살아가며 행동을 할 때도 글을 쓸 때와 마찬가지로 육하원칙(六何原則)이 중요하다.

누가(Who) 언제(When) 어디서(Where) 무엇을(What) 어떻게(How) 왜(Why)였지?

 

예전 힘들 때에는 Why(왜)라는 말을 끊임없이 생각했는데, 요즘에는 How(어떻게)

라는 생각을 하며 결론을 내고 행동에 옮긴다.

Why는 끊임없이 동기부여를 하지만 정상을 오르기 위해서는 많은 고통이 따라온다.

 

그 고통을 이기기 위해선 How를 생각하는데 여기에선 한 가지 방법밖에 없다.

천천히 꾸준히 오르는 방법밖에 없으니 느림의 미학으로 대자연을 보며 오른다.



속을 말끔히 비운 산을 눈이 메꿨다.

뜨거운 열정을 자랑하던 산은 모든 것을 내려놓고 동안거에 들었다

 

아무 생각이 없으니 무념무상일까?

뽀드득 뽀드득 눈 밟는 소리가 경쾌하다.

돌도 눈에 묻혔기에 산길은 부드럽다.

 

산은 오르막 내리막이 적당히 있어야 제격인데 이 산에는 오로지 오르막만 있다.

제 빛깔을 하얗게 지워버린 산속에서 내리는 겨울비를 맞으며 총천연색 우비를 입은

산객들도 하나의 풍경이 된다.

 

산고비를 넘자 소담한 눈꽃은 무채색의 세계를 연출하고,

한쪽으로 거대한 물푸레나무가 뿌리를 드러낸 채 쓰러져 있다.

 

누가 한 짓일까.

이곳을 지나던 태풍이 저지른 짓일까.

안온하던 숲이 속절없이 흔들리고 나도 흔들린다.

 

산도 상처를 받는다.

그러나 치유되기엔 긴 세월이 필요하다.

 

우리네 삶에도 바람이 불면, 느닷없이 들이치는 된바람에 속절없이 넘어지고 다친다.

그래도 원망과 한탄보다는 저기 넘어진 나무와 같이 눕지 말고 추스르고 일어나 걸어야겠지. 

 

눈부시게 빛나는 설국(雪國)을 기대하며 남쪽 끝자락까지 내려왔건만,

새하얀 꽃가루는커녕 빗방울이 온몸을 젖게 만든다.

 

비가 내려도 순백의 산길을 걷는다.

돌아보면 삼십 년 세월을 울리고 웃기던 산.

산과의 뿌리 깊은 인연으로 고약한 병마를 이겨내기도 했지만,

몸과 마음을 낮추며 가지 않은 길, 가보지 않은 길을 걷는 즐거움은 인생에 행복을 준다.

 

하늘은 계속 두터운 비구름이다.

혹시나 하늘이 개일까 슬며시 올려다보니 원망스러운 빗방울이 얼굴을 직접 때린다.

가뭄에 시달리는 육지에서는 반가운 비건만 나는 반갑지 않으니 내 속엔 욕심이 가득한

모양이다.

 

순백의 설원 위로 야속하게 쏟아지는 빗방울로 멀리 못보고 앞만 보고 오른다.

안전을 위해서 소실점까지 이어지는 정상을 걷어 차고 등을 돌려 하산을 해야 되는가 보다.

 

모자를 잔뜩 적신 빗물이 양 볼을 타고 흘러내린다.

다시 하늘을 본다.

한쪽이 뚫리는가 싶더니 도로 먹구름이 몰려와 두텁게 하늘을 깐다.

이젠 바지도 젖어오고 12시가 가까워져 진달래대피소를 통과할 시간도 놓쳤다.


시린바람이 몰아치고 젖은 몸이 섬뜻하다.

기대 반 우려 반으로 시작된 오름길은 여기서 끝난다.

 

오를수록 깊이를 더하는 풍경이 아쉽지만,

설경의 아름다움을 눈에 담고자 오르는 산행은 여기까지이다.

 

원래 우중산행(雨中山行)을 즐기지만 오늘은 상황이 다르다.

한발만 더하면 되는데 아쉬움과 욕심을 접고 돌아선다.


11;00

숱한 세월이 흘러도 제자리를 지키고 서 있는 속밭대피소(1,100m).

부지런히 흐르는 세월 속에 남은 게 무엇일까.

청춘은 영원할 거 같았는데 어느새 황혼이 깃들었으니 기억 속 낡은 필름을 돌려본다.



비에 젖은 카메라로 겨우 몇 장을 더 찍는다.

젖은 장갑 속의 손가락은 얼어서 감각이 없어진지 오래지만 다리는 멀쩡하다.

산을 내려오면서 조심조심 발걸음을 옮기는데도 계속 미끄러지고 몸이 휘청거린다.

 

휘청거리는 건 직립보행을 하는 인간의 특권이 아닌가?

네 발 가진 짐승들은 잘 걸을 텐데, 두 발과 양손에 스틱을 쥐었으면 짐승과 같은 네 발이

아닌가?

직립보행을 하더라도 완벽하게 진화가 되지 않았음을 생각하다가 슬그머니 웃음이 나온다.

 

여기에선 길이 눈(雪)이요, 눈이 바로 길이다.

힘든 산행 길에서 느끼는 감정은 다 다르다.

고독한 산행이라도 즐거운 산행이 되기도 하고,

행복한 산행이 되는 사람도 있는 반면 괴로운 산행이 되는 사람도 있다.

 

나는 어떤 부류의 산객일까?

비를 맞고 올랐더라도 즐겁고 행복한 산행이 되어야겠지.

 

잠시 인적이 끊기고 거대한 자연 속 순백의 길을 혼자 걸으며,

숲의 고요에 넋을 뺏긴 채 적막을 누린다. 

 

산길은 울창한 삼나무와 전나무 사이로 활짝 열렸다.

숲에는 눈과 눈(雪雪), 나무와 나무(木木), 그리고 사람과 사람이니 '雪雪木木人人'이구나.

까마귀가 서운한지 저도 끼워달라고 까악대니 烏烏가 추가 되는 눈길이다.

 

비우고 채우기 위해 묵묵히 올랐다가 하산을 하는 걸까?

너는 무엇을 보았느냐,

나는 무엇을 깨달았느냐.

어차피 인생은 미완성이란 걸 알지만 괜히 심술이 나니 욕심이 과한 모양이다

 

한겨울의 비바람에도 흔들림 없는 전나무와 삼나무들,

흰 눈이 쌓였어도 여전히 푸름을 간직하고 비겁과 굴신(屈身)의 여지를 보이지 않는

나무들의 꿋꿋한 기상을 헤아리며 그 사이를 걸어간다. 


거대한 참나무가 전나무 사이를 비집고 서있다.

저 정도의 크기면 몇 개의 도토리가 달렸을까?

 

학자들은 큰 참나무에 달리는 도토리가 약 9만여 개라는데, 다람쥐 한 마리가 겨우내 소비하는

도토리가 약 50~60개 정도라니 이 나무 한 그루가 몇 마리의 다람쥐를 먹여 살리는 걸까?

평생 숫자를 다룬 직업이었으니 재빠르게 암산을 해본다.

 

다람쥐만 먹을까?

청설모도 있고, 멧돼지도 있고 사람도 그 틈 속에서 열심히 주워다 도토리묵을 만들어

먹으니 이 나무야말로 숲의 온갖 생명을 살리는 참다운 참나무이구나.

 

커다란 바위 옆에 영기(靈氣) 가득한 소나무가 나를 굽어본다.

전나무 삼나무가 빼곡한 숲 속에서 만나서인지 소나무는 더욱 돋보이고,

바위의 조그만 틈에 뿌리를 내리고 자라는 서어나무의 생명력에 경외감을 느낀다.

 

12;00

약 8시간이 걸리는 19.2km의 백록담 코스를 속밭대피소까지 8.2km의 산행만으로 끝내니

아쉬움이 크다.

 

17;00

한라산은 선이다.

 

흰 눈을 머금은 부드러운 능선이 햇살을 살짝 받아 빛나는 장엄한 모습에 잠시 넋을

빼앗긴다.

오름이 점점이 떠있고, 구름이 걷히며 오르지 못해 보지 못한 풍경은 진경산수화이다.

 

22;00

자리를 깔고 누우니 세상에서 가장 편안한 자리다.

아무 생각 없이 그냥 한숨 푹 자고 싶다.

 

인생이 피곤한 건가,

아님 별로 길지 않았던 산행 길에 마음이 피곤한 것인지 들고 있던 책을 놓고 눈을 감는다.

 

마음을 편안하게 가지니 정상에 오르지 못해 우울했던 내 가슴이 진정이 되고,

창밖에서 들려오는 파도소리와 별빛 떨어지는 소리에 장단 맞추다 잠이 든다.

                          

                                                        2015.  1.  21.  한라산 강정마을에서

                                                         석천  흥만  졸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