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12. 18. 05;30
12월이 되자마자 날을 숨기지 않은 칼바람이 매일 기승을 부리더니
오늘 새벽 수은주는 영하 13℃까지 떨어졌다.
목덜미를 스치는 차가운 바람에 온몸이 오싹하다.
눈 들어 하늘을 보니 불과 며칠 전까지 휘영청 빛나던 보름달이 어느새 실낫을 그리는
그믐달로 변했구나.
휘어진 그믐달에 돛대와 삿대만 달면 가없는 밤하늘을 떠다닐 수 있으려나.
08;00
어느덧 12월도 막바지라 2014년도 다 끝나간다.
올해 한해는 어떻게 살았을까.
연초부터 누구나 행복해지기를 바랐고, 나 역시 행복해지려고 노력을 했지.
그런데 막상 해(年)가 거의 다 가니 남는 건 회한(悔恨)과 분노(憤怒)뿐이라,
꿈속에서 시험을 보다 정답을 잘못 써 허둥지둥 거리다가 종료시간을 알리는 종소리를
듣는 기분이다.
어차피 백수의 삶이라 연초에 거창한 계획을 세운 거도 아닌데, 정답을 알아도 실천을
할 수 없는 문제로 답답했다.
내년은 어떻게 살 것인가, 이대로 진부하게 살 것인가?
어떻게 신명나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생각하다 보니 눈이 빡빡해지고 머리가 아프다.
노후엔 여가자금, 죽을 때까지 즐길 취미와 운동으로 단련하던지 체력이 중요한
변수가 된다는데 나는 은퇴 후 돈과 경제생활, 인간관계, 건강은 제대로 챙겼을까.
최근 두 친구가 영면(永眠)에 들어가고 6명이나 암투병 중이며, 두 친구는 뇌졸증으로
투병생활을 한다.
09;30
예산읍내로 들어서며 처음 보는 거리는 생소함을 느끼기 보다는 약간 흥분을 느끼게 한다.
누구네 과수원이지?
사과나무에 까치밥용 사과가 주렁주렁 달려있다.
새들이 쪼다말아 상처 난 사과도 있고, 온전한 사과도 있다.
흔히들 까치가 쪼아 먹은 과일이 더 맛있다고 하며 감이나 다른 과일도 새나 벌레들이
쪼아먹은 과일이 더 맛있다고 하는데 실제로 새들은 맛있는 과일을 알지 못한다고 한다.
열매가 다치고 나면 과일이 맛있어지는 건 사실이다.
이는 어미인 나무가 상처 난 열매가 안쓰러워서 살려 보려고 영양분을 과다 공급하기
때문이라는 자연스런 자연(自然)의 이치다.
말 못하는 나무는 부모의 마음으로 뿌리로부터 영양분을 더 공급하여 상처 난 열매를
보듬는다.
특히 나무는 열매를 소유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열매를 누군가에게 나눠주고 씨앗으로
자기의 자손을 퍼뜨리려 하기에 열매를 따지 않고 그냥 놔두면 나무는 골병이 든다.
과수원을 스쳐 지나가며 부모의 마음으로 나무를 바라본다.
과수원집 아들로 자라난 나는 좋은 부모였을까,
자식에게 좋은 밑거름이 되었을까?
비와 바람을 막아주는 우산이 되고 방패 역할을 충실히 하였을까,
위험하고 힘들었을 때 잘 보듬었을까?
스스로 문답(問答)을 하며 잠시 가슴이 먹먹해진다.
'남은들' 누군가의 집 뜰안의 감나무 가지에서 까치와 어치가 바쁘게 움직인다.
아직도 새들을 위해 감을 따지않고 새밥으로 남겨두었으니 조금 전 지나온 과수원과
더불어 집주인은 참 넉넉한 사람이다.
새들은 지혜롭다.
겨우내 먹을 양식으로 아는지 가지마다 주렁주렁 달린 감을 한꺼번에 먹지 않고
두고두고 쪼아 먹는데 멀쩡한 감이 더 많다.
눈 내리는 한겨울에 주황색 꽃이 핀 하늘을 바라본다.
09;40
호서지방의 제일 명산으로 꼽히는 가야산 자락으로 들어선다.
백제 때 중국에서 바다를 건너온 불교가 정착한 곳으로 불교 전성기에는 이 산 일대에
아흔아홉 암자를 거느린 가야사(伽倻寺)가 있었다는데 흔적이 남아 있을까.
인적이 끊긴 가야산의 입구에서 오방색으로 단청이 고운 '상여집(중요 민속자료 제31호)'이
나를 맞는다.
혹시나 꽃상여가 있을까 안을 들여다보니 차가운 시멘트 바닥엔 아무 것도 없이 휑하다.
남연군묘를 이곳으로 이장한 후 이장 때 썼던 상여를 이곳 주민들에게 하사를 하였다는데
오늘 '남은들' 주민에게 상사(喪事)가 있는 걸까.
문득 나 어릴 적 숨바꼭질을 하며 놀던 상여집이 생각난다.
향교골에서 학동이골로 가는 개울 뚝 위에 볏짚으로 이엉을 이어 덮은 상여집의 문은
굵은 나무로 얼키설키 만들었고, 창문은 그대로 구멍이 뚫린 채 혼자 덩그러니 서 있었지
고향에서는 '행여집'이라고도 했는데 바닥에는 상여가 덩그러니 놓여있었고, 벽에는
상여를 올려놓는 받침대와 온갖 만장이 기대고 있어 그 사이로 숨으면 찾기가 힘들었지.
처음에는 무서워 접근을 하지 못하다가 여럿이서 두려움을 감추고 들락거리더니
어느새 우리들의 놀이터가 되었다.
상여집을 스쳐온 칼바람이 날을 숨기지 않고 아이젠을 차는 몸에 사정없이 부딪치더니
밭두렁에 있는 마른 낙엽들도 몸을 뒤척이게 한다.
'남연군묘'가 왕릉처럼 거대한 봉분의 꼭대기에 얹혀져 있다.
사가(死家)터로는 천하제일 명당으로 알려진 남원군묘가 한눈에 들어온다.
옥양봉~석문봉~가사봉으로 이어지는 가야산 능선이 한눈에 들어 오기에 명당자리일까?
석문봉을 중심으로 가야산 줄기가 둘러싸 마치 거대한 원형극장의 중앙무대에 선 느낌을
받는다.
이승과 저승의 경계를 넘어 저승의 공간인 '남연군묘'로 올라간다.
< 저승의 공간
입김이 눈앞에서 얼어 붙길래
고개 들어 하늘 보니
올라갈 산봉우리 까마득하고
기러기 떼 지나간 하늘 새파랗다.
내 입김이 하늘 높이 올라가
구름이 되려나.
산 사람 숨소리 메아리 치는
저승의 공간 오싹하다. 석천 >
이 묘자리는 무슨 형(形)일까?
금계포란형일까, 아님 장군대좌형일까.
난 풍수지리에 대해선 전혀 모르는 문외한이다.
그러나 된바람이 몰아치는 남연군묘에 올라서자 오대산 적멸보궁에서 비로봉을 올려다 보던
느낌과 흡사하니 가야산의 각 봉우리들과 능선의 모든 정기(精氣)가 이곳으로 모인 모양이다.
명당자리는 정말로 존재하는 걸까.
조선시대 흥선대원군 이하응은 경기도 연천 남송정에 있는 부친 이구(李球)의 묘소가
풍수지리상 좋지 않은 자리로 생각해왔다.
부친 남연군이 작고한지 9년째 되는 해, 흥선군이 25세 때 1,400년이나 되는 천년고찰
가야사가 있는 이곳에 와 지사(地師)정만인에게 간청해 명당자리를 지정 받는다.
당대의 풍수대가인 정만인은 2대에 걸쳐 황제가 나올 자리라며 가야사 마당의 5층 석탑인
금탑 자리를 점 찍었고, 대원군은 이 금탑을 지키듯이 자리한 가야사 보웅전(普雄殿)이
눈에 거슬리자 당시 이 일대 최고의 땅부자인 윤석문(尹石門)의 증손에게 간청해 금탑에서
북서쪽으로 약 400m 떨어진 구광(舊壙)터에 묘소를 임시로 이장한다.
구광터로 아버지 묘소를 옮긴 후 이듬해 충청도 관찰사에게 압력을 넣자 관찰사는
덕산현감에게 명령하여 가야사에 승려가 살지 못하게 폐사(廢寺)로 만들고,
그다음 해 자객을 보내 승려를 물에 빠뜨려 죽이더니 보웅전에 불을 지른다.
또 한 해가 되자 봄에 금탑마저 허물고 구광터에 있던 남원군 묘소를 금탑이 있던 자리로 옮긴다.
묘를 옮긴지 7년 후 차남인 명복(命福)을 낳았고, 후사가 없는 철종이 죽자 종손인 명복이
12세의 나이로 왕위(王位)에 오르니 그가 바로 고종황제이다.
이어 순종황제까지 2대에 걸쳐 왕위에 오르는 명당자리가 맞긴 맞는데,
조선 최고의 명당 자리에 있던 가야사와 금탑이 불타는 비운(悲運)을 당했으니 정말
명당자리일까?
죽어서도 두 번이나 이장(移葬)을 당하며 괴롭힘을 당한 남연군의 입장에서 과연 자손에게
발복을 했을까?
절을 불 질렀으니 부처님의 노함은 없었을까?
아무래도 불안해서인지 대원군은 자신의 아들이 임금이 된 뒤 남원군묘 맞은편 서운산
기슭에 아들이 왕위에 오른 것에 대한 은덕에 보답한다는 뜻을 가진 보덕사(報德寺)란
이름을 내린 사찰을 짓는다.
이 사찰은 조선왕조의 마지막 왕실원찰(王室願刹)이 되지만 6.25전쟁 중 불타 없어지고
지금은 아담한 비구니 사찰로 남아있다고 한다.
1,400년이나 되는 절을 불태우고, 승려를 죽이고 금탑을 없애며 그 자리를 빼앗아 자신의
부친 묘소를 이장하는 침상핍하(僭上逼下)를 저질렀으니,
고종에 이어 순종까지 이대(二代)에 걸친 황제는 탄생하였지만 훗날 후손이 끊기고, 나라는
망해 일본에 먹혔다가 천신만고 끝에 독립을 했어도 그 것마저 반쪽에 그치고 동족상잔이라는
어마어마한 비극을 당하는 나라가 되었으니 과연 명당자리일까?
오히려 흉당(凶堂)이라면 모를까 나는 결코 명당자리로 인정을 못하겠다.
세월이 흐른 후 1866년 독일 상인 '오페르트'가 남연군묘를 도굴하지만 석회를 300포나
사용한 관에는 손을 대지 못하고 돌아 갔다는데, 이 사건으로 인하여 대원군이 쇄국(鎖國)과
천주교를 탄압하는 계기가 된다.
나는 이 대목에서 아주 아쉬운 역사를 생각한다.
풍수장이 말대로 남연군이 수차례 이장을 당하는 괴롭힘 속에서 자신의 자손은 2대에 걸쳐
왕위에 오르지만, 대원군이 쇄국정책과 서학(西學)이라는 이유로 천주교를 탄압하며
제때 개방을 하지 못해 서방의 최신 문물을 도입하지 못하는 바람에 주변 열강들에게
시달리다가 결국은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끼고, 전세계에서 유일하게 남한과 북한으로
나뉘어지는 분단의 국가로 남게 되었으며, 이후 6.25전쟁이라는 민족 최대의 비극상잔이
벌어진다.
차라리 대원군의 아들이 왕위에 오르지 않고 다른 왕족이 왕위에 올라 개방을 서둘렀더라면,
처음 들어온 천주교가 유일신과 평등사상을 잠시 접고 신분사회와 조상숭배 등 조선 고유의
문화를 존종하며 서서히 문물을 전파하였더라면, 일본보다 훨씬 먼저 근대화가 되었을
텐데 라는 진한 아쉬움이 든다.
남연군묘를 바라보며 후세에 이를 따라 대통령병에 걸린 김대중, 김종필, 이회창 등이
조상의 묘소를 이장하는 소동을 벌렸던 진기한 장면들이 생각난다.
이회창 전총리는 선영을 16대 대선을 앞두고 예산 신양으로 옮겼다가 17대 대선을 앞두고
다시 이장을 했다는데 우리나라의 대법관과 국무총리를 지낸 사람이 대통령이 되기 위한
처신이었다면 선량한 국민들이 과연 이해를 할까?
김종필 전 총리도 선친의 묘소를 예산 신양으로 옮겼으며, 목포 사람인 한화갑 전 민주당
총재도 공주 유고로 선친의 묘소를 옮겼으며, 박정희 대통령의 영부인 묘소에 물이 차고
손톱이 커진다고 해 유명해진 자칭 신안(神眼) 육관 손석우의 묘도 심장마비로 죽은 뒤
지금 내가 밟고 있는 남연군묘에서 400m 위 저수지 옆에 있다고 하는데 하산을 하면서
들릴 수가 있을지 모르겠다.
풍수가들은 혈(穴)의 생기가 태조산(太祖山)인 가야산 가사봉(678m)부터 출발하여
석문봉(652m)과 조산(助山)인 옥양봉(593m)을 거쳐 내려오고, 좌측 천을(天乙)인
서원산(473m)의 높이에 비해 안산(案山)은 20km이상이 떨어진 예당저수지옆의
봉수산(484m)이라 안산의 구실로는 약하다고 한다.
또한 남쪽 방위를 지키는 붉은 봉황인 주작은 신하가 엎드린 형상이어야 하며, 안산은 묘소의
주산(主山)보다 높이 솟아 막으면 안된다고 하는데,
석중지토혈(石中之土穴)이라는 명당자리의 남연군 묘소는 도굴로 인하여 생기가 급격히
소진된다.
09;50
12월은 나에게 무슨 시간일까.
겨울산은 무척 수척해지더니 산의 속살을 다 보여준다.
녹색이 뚝뚝 떨어지던 여름, 색(色)의 향연을 누리던 가을이 소리 없이 지나자마자
12월 초하루부터 오늘까지 강추위가 이어진다.
천하명당도 겨울 추위엔 어쩔 수 없는지 눈 쌓인 풍경은 휑하고 쓸쓸하다.
10;00
가야산 들머리에서 동네사람들과 뒤섞여 잠시 시끄럽지만,
이 산에 대해 잘 아는 아주머니는 석문봉으로 곧장 치면 매우 가파른 계곡길이라
위험하다며 옥양봉으로 올랐다가 능선을 따라 석문봉으로 오르면 안전하다고 이야기를
한다.
석문봉으로 바로 치고 오르려던 계획을 수정해 옥양봉 방향으로 걸음을 재촉한다.
언젠가 올랐던 거처럼 익숙한 산길이다.
내 기억 속엔 분명 초행길인데 편안하고 익숙하니 웬일일까.
반짝이는 눈밭에서 내가 잠시 흔들린다.
왜 이리 시리고 흔들릴까?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이곳에서 뒹굴고 싶으니,
한적(閑寂)한 산길을 천천히 오르며 그 여유로움에 비로소 숨통이 트이는 모양이다.
낙엽이 다 떨어져 텅 빈 산을 눈(雪)이 메꾸고 내가 같이 메꾼다.
일을 다 떨군 나무들 사이로 겨울 산의 맨살이 드러난다.
잠시 선 자리에 몇 잎 남아 말라비틀어진 단풍나무 이파리가 파르르 떨린다.
이 잎마저 떨어지면 가야산은 깊은 동안거(冬安居)에 들어갈 건가.
무채색 풍경으로 서서히 빨려 들어간다.
10;30
해마다 이맘 때는 연하장이 많이 왔지만 이젠 문자 메일로 풍속이 바뀌었다.
시끄러울 정도로 많이 들어오던 연하 메일도 이젠 뜸해졌다.
은퇴 후 꽤 많은 시일이 흘러서인지 잊어진 사람이 된 모양이다.
그래도 12월은 나에게 소중한 달이다.
매월 빠지지 않고 장거리 산행을 하며 백수의 특권인 자유를 만끽하면서도
어쩌다 시간의 공백이 생기면 무엇엔가 쫓기듯 초조해지기도 하고, 깊은 상념에 빠지게
되면 잠을 설치기도 한다.
조급함, 소심함 모두 다 버리고 능선 위로 흐르는 구름같이 올라야 하는데
나오는 콧김을 바라보며 괜히 조급해진다.
나는 가끔 착각을 한다.
이런 산속에서 느림을 찾을 게 아니라 내 마음속에서 느림을 찾아야 하는데,
괜히 조바심을 내니 오늘따라 배낭을 진 내 모습이 초라하다.
가야산에는 느림이 있다.
이젠 느림의 세월 속에 나를 던지자.
한참을 걸으니 마음이 차츰 가라앉으며 차분해진다.
잠시 머무는 숲의 맑은 공기는 나의 폐를 말끔하게 씻어내 순해지게 만들며 나를 바꿔
놓는다.
시리도록 파란 하늘은 금방이라도 깨질 거 같다.
목덜미를 파고드는 바람에 몸이 움츠러들지만 입으로 바람의 결을 담아야겠다.
모자라고 부족해야 담을 수 있다는데, 내 안의 그릇은 어떨까.
관음전 오르는 길에 강아지 한 마리가 아는 척을 한다.
앞장서서 우리를 안내 하려나 기대를 하지만 바로 나타난 스님과 함께 아래로 내려간다.
관음전을 지나며 어제 15cm 가량 내린 눈에 길이 사라졌다.
여느 산마다 흔하게 달린 산악회 리본도 여기에선 보이질 않는다.
잠시 후 익산에서 왔다는 개인택시 기사들이 앞장서서 길을 개척한다.
앞서간 사람들의 발길을 따라 오르며 러셀이 제대로 되지 않은 길을 오르려니 숨이 가쁘다.
스패츠를 차지 않은 등산화 속으로 눈(雪)이 들어오고, 땀으로 등판이 젖더니 영하 13도의
매서운 강추위는 슬그머니 사라졌다.
11;00
길이 눈에 묻혀 사라졌지만 앞선 이들이 애써 만든 길을 천천히 느리게 풍경을 느끼며
올라간다.
산을 오를수록 하늘은 가까워지고 기러기 떼 멀어진 하늘은 파랗기만 하다.
11;30
12월은 세상이 침묵하는 달이다.
산속의 나무들은 옷을 다 벗고 알몸으로 서서 눈바람을 맞는다.
그러나 매서운 칼바람 속에서도 의연하게 서서 다시 찾아올 봄을 일구고 있는 나무의
모습은 오히려 행복해 보이기도 한다.
잠시 눈꽃이 핀 나무 옆에 서서 침묵의 의미를 생각해본다.
강추위 덕분일까.
능선의 나무마다 눈꽃과 상고대가 피었다.
나무가지 마다 새하얀 꽃을 피웠으니, 한겨울의 시린 추위가 봄바람보다 먼저 흰 꽃을 피웠다.
설국(雪國)이다.
묵묵히 걸으며 눈의 나라를 만끽하자.
봄이 오기 전에 서둘러 눈의 나라를 맛보자.
눈 쌓인 산길에는 적막(寂寞)과 고요(孤蓼)가 그득하다.
머리에 흰 눈을 수북히 이고 있는 소나무가 금방이라도 부러질 듯 위태롭다.
조금이라도 흔들어 눈의 무게를 덜어주고 싶지만 큰 나무라 내 힘으로는 어림도 없다.
해발 700m도 되지 않는 산이라 별로 힘들지 않으리라는 예상은 이미 깨졌다.
쌓인 눈 무게만큼이나 두 배 넘게 힘이 들고 산행시간이 지체된다.
숨을 몰아쉬니 입김이 하늘로 올라가다 부셔진다.
까마귀는 얼었는지 사라져 간데없고, 이 산에서 움직이는 건 우리뿐이다.
흰색을 오래도록 보고 걷다보니 어느새 연두색이 그리워진다.
사람의 마음은 참 간사한 모양이다.
세상의 소요(騷擾)와 관계없는 곳.
잠시 머물렀다 가는 곳이지만 꿈결 같은 눈길을 터벅터벅 걷는다.
산길엔 신갈나무가 빼곡하게 찼고 이따금 소나무와 굴참나무가 보인다.
요즘 들어서 평생을 지키던 10-4 원칙이 무너졌다.
즉, 10시 취침 4시 기상인데 군대생활에서도 깨지지 않던 평생 습관이 무너지며 만사가
귀찮아지는 번 아웃(Burn out)의 상태에 빠졌다.
우울증이 온 거도 아닌데 만사가 귀찮고 무기력함을 느낀다.
삶의 지루함은 여유로움, 한가로움과 달리 또 다른 나 스스로의 싸움인 모양이다.
며칠 남지 않은 12월은 나에게 소중한 며칠이다.
단 며칠이라도 나 자신을 위해 스스로를 위해보자.
배고프면 먹고 졸리면 자고 술과 책이 생각나면 술도 마시고 책도 읽어보자.
때로는 단순무식하게 사는 게 '번 아웃'의 상태에서 벗어나는 방법일 수도 있겠다.
그래야 내년에도 이어지는 백수의 삶을 나름대로 행복하게 보내겠지.
지금 이 시각에도 시간은 또각또각 달려간다.
이젠 백수의 지루함에서 벗어나자.
어젠 책상 서랍을 정리했지.
금년엔 어떤 사람을 만났을까?
새로운 사람은 없고 늘 만나던 사람만 만난 걸까?
서랍 속엔 새로운 명함도 없고 새로운 사람을 만난 기억도 없다.
연말이면 늘 하는 서랍정리, 주변정리도 특별하게 할 게 없으니 점점 낯을 가리는 걸까?
지나고 보면 세상이 사람이고 사람이 바로 세상이다.
살다 보면 끊임없이 누군가를 만나고 그 누군가들이 모여 세상을 이루는 게 자연의
섭리이고, 세상을 살며 사람과 사람이 만나고 맺어지는 게 인연이 아닌가?
그런데 올해 한해는 유달리 맺은 인연이 없는지 명함첩에는 익숙한 명함만 보인다.
언제부터인가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이 피곤하다.
다들 나이 탓이라고 하지만 이만큼 살아 왔고 은퇴하기 전까지 직장생활의 대부분을
사람을 상대로 하는 영업을 해왔기에 반관상장이가 되었는지 새로운 사람을 만나게 되면
예사롭지 않게 보며 조심을 하게 된다.
따라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게 되는 것이 부담스럽고 귀찮을 때가 있다.
누군가는 새로운 사람을 만나기 보다는 주변에 있는 사람을 관리하는 게 더 좋다고 말을
하기도 하지만 나이가 들면 총기(聰氣)가 떨어져 나한테 익숙한 사람만 찾게 되고
만나게 된다.
서랍을 정리하면서 별로 버릴 게 없다는 사실을 알자 피식 웃음이 나온다.
이 세상에는 좋은 기운을 가진 사람도 많지만 나쁜 기운을 갖고 있는 사람도 많다.
이젠 익숙한 사람을 자주 만나는 것은 물론 수양이 잘돼 인품이 좋은 사람, 기품과 온화함,
지성과 교양이 몸에 밴 사람과 만나 대화를 나누고 싶다.
어떤 사람은 대화를 하면서 일방적인 이야기로 혼자 말을 다하려고 하며 상대방을
피곤하게 한다.
며칠 전 송년회에서 옛동료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며 몹시 피곤을 느낀 적이 있다.
이야기를 들으며 머릿속에 잡념도 들고 탁한 기운이 나도 모르게 흘러나와 먼저 간다고
말을 자르며 일어선다.
전철을 타러 가며 이 세상에는 좋은 기운을 가진 사람도 많은데 내가 왜 이럴까 하는
자괴감이 들며 나이 먹은 탓으로 돌린다.
대화를 하며 마음의 상기된 에너지가 내려가고 안정화 되는 사람을 찾는 건 또 하나의
욕심일까.
한 달 만에 단조로웠던 삶에서 벗어나 일상탈출을 하지만 최근 연이어 친구를 잃으니 가슴이
아프다.
함께 견딘 세월이 얼마인데,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는 게 인생이지.
만남과 이별을 되풀이 하는 게 인생이라지만 그래도 이별은 싫다.
살아있다는 거 하나만 가지고도 내 후반기 삶에는 소중한 의미가 있지.
풍경 속에 나를 내려놓고 눈 쌓인 능선을 걷는다.
이 길이야말로 고요함과 평안함, 위안과 용서, 그리고 인생의 조화를 생각하게 하는 길이다.
눈꽃 핀 나뭇가지 사이로 경치가 터지며 남연군묘와 상가저수지의 푸른 물이 보인다.
12;10
해마다 12월이 되면 더 많은걸 생각하게 된다.
금년 한 해는 잘 보낸 걸까?
급할 거도 없는 백수의 삶이라 정신없이 달려온 거도 아닌데 특별한 기억이 별로 나지 않으니
별 볼 일 없는 한해였던 모양이다.
지나간 시간이 발목을 잡은 것도 아니고 새로 오는 해가 특별한 희망이 있는 해도 아닌데,
12월이라는 한해의 종착역에 도달하고 보니 좋은 일보다는 후회스런 일이 더 기억난다.
시간은 지치지도 않고 주춤거리지도 않고 여유를 주지도 않고 마냥 흘러간다.
방에 꼼짝 않고 있으면 안 되는 거냐며,
이 추운 겨울에 눈도 많이 왔는데 장거리 산행을 한다고 주변에서 걱정을 많이 한다.
느긋하게 사무실에 있으면 편하고 좋을 텐데 굳이 칼바람 맞으러 산으로 가는 내 모습이
안 돼보였나 보다.
추위에 스트레스를 받으면 손해를 보는데 굳이 나가는 이유는 지루함을 이겨내고 생존하기
위해서이지.
지루함을 견딜 수 없어 산이라도 찾으면 기분전환이 되기도 하지만 내가 추구하는 산행에
진정한 행복을 느끼며 어리석음에서 벗어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언제부터인가 지루함에서 벗어나기가 힘드니 지루함은 백수의 비참한 숙명(宿命)인 모양이다.
나는 한가로움과 지루함을 여태까지 분간하지 못했지만 이제는 구분한다.
한가함은 아무 것도 할 필요가 없는 시간이지만, 지루함은 무엇인가 하고 싶을 때 할 수 없는
환경일 때이다.
따라서 지루함을 피하기 위해 추워도 산엘 오르는 거다.
쉼터에 쌓인 눈은 묘한 상상을 하게 만든다.
입을 다문 악어가 누워있는 걸까?
잠시 숨을 돌리며 호흡을 정리하고 스틱을 바로 쥔다.
이제 정상이 바로 코앞이다.
1,000m도 채 되지 않는 석문봉 정상(653m)의 전망이 이렇게 좋아도 되는 건가?
온 세상이 거침없이 드러나는 풍경의 중앙에 내가 서 있다.
태안과 서산의 바다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가야산의 적수가 될 만한 산은 근처에 보이질 않는다.
장해물이 되는 산이 없기에 왕(王)의 산세라 하는 모양이다.
남쪽으로 이곳 석문봉보다 조금 더 높은 가사봉(678m)이 있지만 머리에 통신 안테나를
주렁주렁 이고 있어 산꾼들은 이곳 석문봉이 실질적인 정상이라 했다.
12;30
천하길지의 주산인 석문봉의 태극기가 외롭다.
석문봉 정상인 문다라미의 외로운 정상석에 잠시 몸을 기대어 인간세상을 내려다본다.
거대한 지맥(地脈)은 아니지만 석문지맥이 아래로 꿈틀거린다.
석문봉은 거대한 암봉으로 이루어졌다.
석문(石門)은 인체 기혈상 배꼽 아래의 중요한 혈(穴)자리로 단전의 중심이기도 하다.
서해의 일몰(日沒)이 아름답다는 석문봉(石門峰),
아직도 영하 10℃ 가까이 되는 추위라 잠시도 지체할 수가 없어 하산을 서두른다.
조선시대 대표적인 인문지리학자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충청도에서는 내포를 제일
좋은 곳으로 쳤다. 가야산을 중심으로 서쪽은 큰 바다요, 북쪽은 큰 만(灣)이고 동쪽은 큰 평야,
남쪽은 그 지맥(地脈)이 이어지는 가야산 둘레 열 개 고을을 총칭하는 내포지방'의 넓은 들이
산 아래로 거침없이 펼쳐진다.
아름다운 하늘 아래 거침없는 평야와 아득한 바다의 수평선이 파노라마를 그린다.
부드럽고 고요하지만 어느 때는 거칠게도 변하기도 하는 풍경 속에 내가 제왕(帝王)이라도
된 기분으로 천하를 내려다보니 끝까지 오른 자만이 누릴 수 있는 자연의 선물이다.
이 가야산 자락엔 가야사, 수덕사, 개심사, 보원사 등 100여 사찰이 있었다고 한다.
수덕사와 개심사는 얼마 전에 둘러봤고, 신라 때 제사를 지냈다는 가야사는 불타 없어졌으니
부처님이 무척 서운하시겠다.
옛날 중국을 오가는 뱃길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던 가사봉(袈裟峰)의 정상을 통신 안테나가
차지하고 있다.
서서히 구름이 가야산 하늘을 덮는다.
석문봉을 내려가는 산길은 눈 쌓인 외길이다.
아쉽지만 힘이 잔뜩 들어가 있는 바위를 뒤로 하고 이동을 한다.
거대한 덩치의 암봉에서 한발만 미끄러지면 천길만길 낭떠러지 아래로 떨어지기에
안전로프를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가고 잠시도 긴장을 늦출 수가 없다.
정상에서 가사봉으로 이어지는 송낙바위 능선은 칼날 위를 걷는 거처럼 아슬아슬하다.
위험한 곳에서는 빨리 가는 게 능사가 아니니 서두르지 말고 작은 풍경 하나라도 무시로
흘리지 말자.
풍경에서 또 다른 풍경으로 이어지는 곳은 급경사이다.
13;00
사람의 만남은 우연히 이루어지는 조우(遭遇)와 오랫동안 헤어졌다가 만나는
해후(邂逅)가 있지.
또한 사람의 인연은 뜻하지 않게 일어나는 우연(偶然)이 있고 반드시 그렇게 되는
필연(必然)이 있다.
인연은 좋은 인연과 나쁜 인연이 있다.
재미없고 나쁜 인연은 좋은 인연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깨닫게 해준다.
누구든지 살다 보면 사람과 사람의 인연이 이어지며 가끔은 갈등과 앙금이 생기게 마련이다.
서로가 인고(忍苦)의 세월을 같이한 만큼 신뢰가 쌓였어도 신뢰가 무너지는 건 한순간이다.
내가 살아가며 무엇을 쥐고 있을 나이도 아니고, 앙금을 쌓아둘 만큼 한가로운 나이도
아니지만 난 가끔 무시(無視)와 모욕(侮辱)을 생각한다.
이제껏 살아온 삶 속에 다른 사람이 나를 사랑하지 않고 무시를 하고 모욕을 준다면
내가 한평생을 헛되게 산 모양이지.
아님 내가 사람 볼 줄도 모르는 헛된 인생을 산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 해(年)가 다 가기 전에 내가 사랑을 받기보다는 내가 다른 사람을 열심히 사랑해야겠다.
아무리 좋은 친구라도 때로는 나를 아프게 한다는 것을 이제야 깨닫고, 그들을 용서해야
한다는 생각이 이제야 드니 내가 모자라도 한참 모자른 모양이다.
시간이 흐르고 지나면 용서와 이해를 하게 되고 애뜻한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겠지.
잊어버리지는 못하겠지만 이젠 용서를 할 수 있겠다.
오늘은 특별한 날이 아니고 평범한 나날 중의 하루지만 이 산을 내려가면 그냥 툴툴
털어버리고 용서를 하자.
지루함에서 오는 건지 며칠째 약한 두통이 이어지고 제때 잠이 오질 않는다.
겨우 한 두 시간 자고 뜬 눈으로 새운 밤이 몇날며칠이다.
세상에 체중 가지고 울고 웃는 사람이 있을까,
불면증이 오면서 체중이 빠지며 젖가슴이 축 늘어지고 얼굴이 쭈글거린다.
며칠간 지독한 불면증으로 시달리다 아차 싶어 체중계에 오르니 무려 2kg이 빠져
75.8kg이다.
종합검진을 한지 한 달이 채 안 되었는데 왜 이러지?
검사결과 여러 가지 암수치를 비롯해 모든 수치가 정상으로 나오고 심지어는 지방간마저
거의 없어졌으며 늘 신경 쓰이던 대장에 용종도 없어 주치의가 고개를 갸우뚱했는데,
왜 이럴까?
그동안 백팔배를 하며 체중이 7kg 정도가 빠져 기분이 좋았는데 안정화 되었던 체중이
느닷없이 2kg이나 빠지니 기분이 묘하다.
12월초에 집중된 송년회에서 술과 고기를 절제한 탓일까?
그동안 절제하던 술과 고기를 먹으니 금세 600g 이 늘어 기분이 좋더니 며칠 후 75.4kg으로
먼저보다 약 2.5kg이 줄어 은근히 걱정이 된다.
체중 가지고도 일희일비(一喜一悲)하니 나이가 들면 사람이 단순해지는 걸까?
내가 참 바보라는 생각이 든다.
13;10
눈 쌓인 급경사를 내려가며 로프에 매달린다.
아이젠과 스틱으로는 해결이 되지 않고 지금 잡고 있는 로프는 나의 생명줄이다.
지금 발밑을 똑바로 보지 않으면 순식간에 몇 십m 아래로 추락을 하기 십상이다.
불교에서는 조고각하(照顧脚下), 즉 발밑을 직시하라는 말을 쓴다.
물론 '자기 마음 돌아보아 하심(下心)을 먼저 하라'는 형이상학적인 뜻이겠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마음을 돌아보기는커녕 발밑을 똑바로 보기도 힘들다.
먼산과 하늘을 보지 못하고 아래만 보고 내려가니 눈도 아프고 고개도 아프다.
옆으로 시선을 돌릴 수도 없이 긴장한다.
된비알을 내려가며,
한참 만에 만난 바위가 내 마음에 평화를 선물하기에 잠시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본다.
오늘 얼마를 걸었을까?
남연군묘에서 관음전을 지나 옥양봉 사이로 석문봉 정상까지 약 5km를 오르고,
석문봉을 지나 급경사를 약 3km 정도 내려 왔으니 8km 정도 산행을 한 모양이다.
14;20
통신 안테나가 즐비하게 들어선 가사봉이 나를 굽어본다.
2년 전 2012년 4월 18일에는 만대영화지(萬代榮華地)라는 홍성의 오서산을 올랐고,
오늘은 이대천자지(二代天子地)라는 가야산을 두루두루 살펴보고 가는 발걸음이 가볍다.
언제까지 방황과 유랑(流浪)을 할 거냐며 친구가 나에게 묻는다.
인생이란 끝나지 않은 여정이라,
눈앞에 그리운 풍경이 펼쳐지는 한,
배낭을 메고 전국을 떠도는 산행은 살아있는 한 계속 이어질 것이다.
돌이켜 보면 참 시끄럽고 복잡한 한해였지.
많은 국민도 지쳤겠지만 나 또한 몸과 마음이 지칠 대로 지쳤다.
연초부터 경주에서 생떼같이 젊은 대학생들이 눈사태로 떼죽음을 당하고,
4월엔 세월호 침몰로 일 년 내내 시끄럽더니, 이젠 청와대 문건 유출과 대한항공 부사장의
땅콩 갑질로 세상이 뒤집어졌다.
이 복잡한 세상에서 우리같이 평범한 사람은 속세의 때에 파묻혀 제대로 살 수가 없다.
오열하는 유가족의 울음을 배경으로 권력이라도 잡은 양 일부 유가족의 오만불손하고
못난 행동으로 세상 사람들의 등을 돌리게 만들더니 이젠 그들의 얼굴만 봐도 짜증이 나며
분노(憤怒)를 느낀다.
그동안 힘들고 화가 났을 때의 국민 정서는 한(恨)이었고, 남이 잘되고 사촌이 땅을
사면 배 아파하는 정도였다.
예전엔 슬그머니 지나갈 일도 건드리면 분노(憤怒)가 터지는 게 요즘의 국민 정서이다.
한동안은 헌법 위에 떼법이 있고, 떼법 위에 '국민정서법'이 최상위법이라는 농담이
국민들에게 회자(膾
금년은 유달리 분노할 일이 너무 많아 모두가 힘들었지만 슬픔이 한풀이로, 분노가 분풀이로
끝나선 안 되리라.
14;35
어느 한순간이라도 정지된 시간을 경험할 수 없는 게 우리의 삶이라지만,
나는 산중의 호수에서 분명 정지된 시간을 맞으며 인생의 쉼표를 본다.
지금은 복잡한 세상에서 숨 가쁘게 달려온 한 해를 정리하는 '쉼표'가 필요한 순간이다.
살다 보면 인생에서 도돌이표는 없지만 쉼표가 있고, 쉼표가 사라지면 마침표를 찍는 게
인생이라지.
지점장 후배가 전화를 하더니 평생 열심히 일했으니 쉬는 게 정답이 아니냐고 반문을 한다.
지칠줄 모르는 시간은 자꾸만 흘러가는데 나는 쉬는 법을 정말 몰랐던 걸까?
그동안 쉬는 방법도 모르고 가만히 있는 방법도 몰랐던 걸까?
인생에서 무슨 갈등과 갈증이 남았던 거도 아닌데, 그냥 호수를 바라보며 백수의 서글픈
자화상을 그려본다.
15;30
썰렁한 안면도의 남당항은 인적이 끊겼다.
강한 바람으로 이방인의 접근을 거부하기에 하릴없이 숙소로 발길을 돌린다.
숙소의 거울은 마음을 비추는 거울인 모양이다.
세파에 시달린 내 마음을 읽었는지 거울이 흐리다.
입김을 불어 맑지 않은 거울을 닦고 들여다보니 거울 속에 내 아버지가 계시네.
지금 이 시간에도 세상은 변하고 나 또한 변한다.
거울 속에 주름진 얼굴은 영락없는 내 아버지의 모습이라 잠시 당혹감을 느끼다가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으로 갑자기 가슴이 먹먹해진다.
보릿고개가 있던 시절 7남매와 사촌까지 몸뚱이 하나로 책임을 지며 혹독하게 살아내야
했던 아버지.
세상이 어지럽고 사는 게 어려워질수록 속내를 보이지 않았던 아버지의 부성(父性)이
문득 그리워진다.
살아가며 힘들어도 드러내기가 어색하고 서툴렀던 아버지.
당신의 행복을 덜어 자식에게 행복을 채워주며 너털웃음을 웃으시던 아버지.
가족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며 간경화로 스러진 아버지의 속내가 한없이 여리기만 했음을
내가 부모가 돼서야 아버지 삶을 들여다보며 비로소 알게 된다.
< 이나무
능선 위에 남았던 해가
길게 꼬리를 남긴 채
지평선 저쪽으로 서둘러 사라진다.
노을이 사라지며
눈앞으로 지나는 세월도 꼬리를 남긴다.
쭈글거리는 얼굴
주름 투성이도 서러운데
귀밑 머리까지 하얗게 세는구나
바다에서 온 된바람이 기세등등하게
굽어지는 내 등을 밀어내도
내장산에서 걸어 올라온 '이나무'는
빨간 열매를 배고픈 동박새에게 내주더니
내년에도 꽃을 피우겠다며
나에게 다시 오라 한다. 석천 >
18;00
휴양림의 창가에 우두커니 서서 창밖을 바라본다.
오늘 하루가 노을과 함께 지나가며 어둠이 몰려온다.
한번 흘러간 시간은 무심하게도 되돌아오지 않는다.
한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해도, 매일 태양이 떠오르고 달이 지겠지.
그러나 어제와 오늘의 하늘빛이 다르듯이 내일의 하늘빛도 다를 것이다.
이젠 순간순간에 충실하자.
배고프면 먹고 목마르면 물을 마시자.
졸리면 자고 잡념이 들면 그냥 잡념에 푹 빠져보자.
종일 느릿느릿하게 걸으며 호흡했고 더운물로 샤워까지 했으니 서서히
올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해의 희망을 품어보자.
2014. 12. 18. 가야산에서
석천 흥만 졸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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