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2. 1. 05;00
거참 희한(稀罕)하다.
생각의 차이겠지만 백수의 하루는 참 지루하다.
그러나 일주일은 빠르고 한 달은 더 빨리 지나가니 몸의 감각이
생각의 속도를 따르지 못하는 모양이다.
바쁜일도 바쁠일도 없으니 서두를 거도 없고,
시간이 되면 일어나서 새벽운동과 알바 근무를 하고
당구장에 나가 당구를 치다 보면 하루해가 다간다.
원래 나는 성격이 매우 급한 편이었지만,
이젠 충청도 사람 특유의 느긋한 성격과 긍정적인 사고방식으로
스타일을 바꾸고 속도위반을 하지 않아야겠다.
따라서 운전할 때도 교통위반을 하지 않고 법규를 다 지키며,
책을 볼 때도 30여분 정도가 지나면 눈이 가물가물해지기에
급히 속독(速讀)을 해야 마땅하지만, 예전보다 더 천천히 읽다가
눈이 아프면 책을 덮고 눈을 감기에 세 시간이면 충분히 읽을 수
있는 책을 완독(玩讀)하려면 일주일 이상이 걸린다.
인터넷 속도, 자동차 속도, 배터리의 충전속도, 배달속도 등
모든 것이 빠른 속도의 세상에서 나이 먹은 사람이 버티려면
어떻게 해야하나, 늘 궁금하고 답을 찾으려 노력한다.
생각의 속도도 사물의 속도와 같이 빨라야 하나?
한때 빠른 속도로 질주하는 자동차 번호를 몇 개까지 읽고 기억
할 수가 있는지 스스로 시험을 해봤다.
젊었을 때는 자동차 20여 대 번호가 순간적으로 머릿속에 입력이
되었지만 지금은 10여 대 이상을 외우지 못한다.
최근 병원 출입이 잦아지며 '가만히'라는 말을 곱씹는다.
이 나이에 보이는 사물을 빨리 그리고 많이 기억할 필요가 있을까.
사실 생각은 속도의 영역이 아니다.
어쩌면 생각이란 깊이와 방향성의 영역이 아닐까.
요즘은 천천히 생각하는 습관을 만들려 애쓴다.
또한 물건을 주문하거나 일을 진행시킬 때 지루할 정도로 천천히
오래 생각하고 결정을 한다.
생각의 속도를 늦추기 위해 아무도 다니지 않는 새벽시간에
산책을 즐기고, TV 등 여러 매체에서 진행하는 인문학을 많이
시청하고 관심을 갖는다.
충청도에서는 '찬찬히'라는 말을 많이 쓴다.
-성질이나 태도가 꼼꼼하고 차분하게-라는 뜻인데,
여기에다 '가만히'라는 말과 행동을 더해야겠다.
'가만히'라는 말의 사전적인 의미는
-움직이지 않고 그냥 아무 말이 없이-
-아무런 대책도 취하지 않고 현상태 그대로-
-거의 드러나지 않을 만큼 조용하고 차분하게-라는 뜻이다.
멈추고 들여다보고, 느리게 생각하고, 천천히 걷고, 일출도
천천히 여유있게 맞이하며 긴 호흡을 하는 것이야말로 살면서
놓치지 말아야 할 행복의 조건이 아닌가.
어느새 2월,
망월천 얼음장 밑으로 봄이 오는 소리가 가만히 흐른다.
이 봄에 가장 먼저 만날 제비꽃과 개불알꽃은 언제 피려나.
2023. 2. 1.
석천 흥만 졸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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