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

느림의 미학 750 샹그릴라를 찾아서 2(대관령 국민의 숲)

김흥만 2023. 5. 27. 11:26

2023.  5.  25.  05;00  대관령 옛길 숲 속

밤새도록 물소리가 들렸다.

계곡 암반을 휘돌아 내려오는 물소리가 그렇게 맑은 줄 예전엔

몰랐다.

 

뻐꾸기가 날아와 밤새 뻐꾹뻐꾹 울어댔다.

그리고 새벽이 되자 잠에서 깬 동박새, 직박구리도 날아왔다.

이어서 꾀꼬리까지 왔으니 여기야말로 속세를 벗어난 진짜

별유천지(別有天地)로구나.

 

새벽 2시쯤

악! 소리가 날 정도로 손가락에 통증을 느껴 잠이 깼다.

 

왼손이 퉁퉁 부었다.

산에 오기 전 '방아쇠 수지증후군'을 앓고 있는 손가락에 일주일

간격으로 마취주사를 두 번이나 맞았는데 아직도 통증을 느끼니

난감하다.

 

매년 8개월~1년 주기로 마취주사를 맞았고,

이번에는 15개월을 버티었기에 간격이 길어져 매우 긍정적인

의미로 받아들였는데 통증이 쉽게 가라앉지 않는다.

 

그동안은 마취주사를 맞고 이틀 정도 지나면 통증을 거의

느끼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엔 20일이 지나가도 아프니 손가락이 갈 때까지

모양이다.

                               

눈(眼)과 위(胃)에 이어 이번엔 손가락의 반란이다.

지금같이 계속 아프면 프랜 B를 세워야 하나.

 

내가 다니는 통증의학과 주치의는 82세라 했다.

나보다 10살 이상 나이가 많은데 언제까지 병원을 운영하려나.

 

이 의사를 만나기 전까지 여러 통증의학과를 전전하며

바가지도 많이 썼기에 무뚝뚝하지만 많이 신뢰했는데 어쩌지.

                               <   산딸나무  >

 

06;00

숙소에서 나와 대관령 옛길을 오른다.

 

수령이 수백 년 된 거대한 금강소나무 사이로 예수님 십자가

나무인 '산딸나무'의 하얀 꽃과 '초롱꽃'을 만났다.

                                   <     초롱꽃    >

 

'광릉골무꽃'을 찍으며 꽃에서 엄니 냄새를 맡았다.

엄니는 7남매나 되는 자식들 뒷바라지를 하느라 손가락에 자주

골무를 끼셨다.

 

손가락에 끼고 바늘을 꾹꾹 누르던 '골무'는 우리 엄니들의 애환이

듬뿍 담겼지.

 

골무꽃이라는 이름은 꽃이 진 다음 열매를 감싸고 있는 꽃받침통의

모양이 골무를 닮아서 붙여졌다고 전해진다.

                                       <     광릉골무꽃     >

 

숲 속 계곡에서 작은 폭포를 만났다.

 

높이는 5m 정도지만 수량이 많아 이곳까지 들리는 청량한 물소리는

눈과 귀를 맑게 해 주며 손가락의 통증까지 잊게 해 준다.

 

계곡에서 '염주괴불주머니'를 찍으며 옛날 아이들의 오색실로

만든 삼각형 노리개를 떠올린다.

 

어린아이의 주머니 끈 끝에 차는 노리개를 고양이의 음낭에

비유하여 '괴불주머니'라 한다.

 

우리 학자들은 골무꽃, 나리꽃, 진달래 등으로 예쁘게 이름

지었건만, 일본강점기 시절 '나카이', '오이'라는 일본인 식물

학자는 며느리밑씻개, 개불알꽃, 소경불알 등 아주 고약한

이름으로 지어 등록을 했다.

 

그가 우리나라 전국을 다니면서 약 1만 4000종의 식물표본을

채집하였기에 우리나라 자생식물 중  '나카이'라는 이름이 들어

간 것이 많으며,

 

프랑스 포리 신부는 '쥐오줌풀', 타케신부는 '한라부추',

러시아 학자 코마로프는 '솔붓꽃', '날개하늘나리' 등을 채집하고

등록하였다.

 

그놈의 선취권(先取權)때문에 식물의 이름을 바꾸지도 못하고,

또한 바꾼다한들 국제적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우리의 힘이 미치지 못함을 언제까지 한탄만 하고 있어야 할까.

                               <     염주 괴불주머니   >

 

08;50

발왕산 일정을 변경하고 대관령 '국민의 숲길'중 국사성황당길에

도착한다. 

 

이 길은 초행이다.

눈 많이 온 겨울날 2009년 1월 7일 영하 14도에도 불구하고

양떼목장을 거쳐 선자령(1,157m)에 올랐는데,

오늘은 양떼목장을 생략하고 바로 성황당길로 오른다.

 

프랑스 포리신부가 이름을 지었다는 '쥐오줌풀꽃'이 활짝 피었다.

                         <     쥐오줌풀     >

 

'미나리아재비꽃'을 보며 2014. 5. 16일 올랐던 곰배령이

생각난다.

 

명성에 걸맞지 않게 곰배령에 야생화가 적어 실망을 했고,

곰배령 산길가에서 겨우 '홀아비바람꽃'과 '쌍둥이바람꽃'을

찍었던 기억이 난다.

                                        <     미나리아재비    >

                                     <     노루오줌     >

 

두문동재에 올라 금대봉을 거쳐 대덕산 쪽으로 가는 길이 천상의

화원이라 했다.

이길 또한 그곳에 못지않다.

 

여기저기 핀 '미나리아재비'와 '전호'를 바라보며 오늘도 나만의

샹그릴라를 만난 거다.

                                 <     전호     >

 

2020년 6월 24일 이곳 대관령에서 '능경봉(1123.2m)'을 오르며

참 좋은 산이라 생각했었다.

그때도 온갖 야생화가 만발하였고 안개까지 낀 몽환의 길이라

엄청 행복했었지.

 

영주 부석사와 능경봉 오르는 길이 나만의 유토피아라 생각

했었는데, 지금 오르는 성황당길 또한 매력이 넘쳐흐른다.

나만의 뉴 유토피아(new utopia)로 이름을 지어야겠다.

 

하얀 '범꼬리풀'이 녹색의 숲 속에서 튀어나와 발길을 멈추게 한다.

 

09;20

대관령 깊은 곳 성황사(城隍祠)에서 꽹과리와 장구 치는 소리가

흘러나온다.

 

이곳은 국사성황신이자 고려초 고승인 범일국사(810~889)를

모시는 사당이다.

성황사 안 중앙에는 전립을 쓰고 백마를 탄 범일국사 화상을

모셨다.

 

코로나가 극성을 부리기 전 Tv에서 강릉단오제 프로를 시청한

기억이 난다.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인 강릉단오제(국가 무형문화재

제13호)는 이곳 대관령 성황당의 범일국사에게 제사를 드리는

의식에서 시작된다.

 

순서를 보면

매년 음력 4월 15일 산신각에서 먼저 산신제를 올린다.

이어 성황사에서 '국사성황제'를 지내고 '신맞이 굿'을 한 다음

뒷산에서 신목(神木)인 '단풍나무'를 베어 들고 강릉으로 행차한다.

 

이것을 '대관령국사성황신행차'라고 하며 신목은 강릉 시내

홍제동에 있는 대관령국사여성황사에 봉안하였다가 음력 5월 3일

영신제를 지내고, 시내를 도는 영신행차를 한 후 남대천 단오장

제단에 봉안하고 단오제를 치른다. 

 

바로 위 산신각에는 신라 김유신장군을 모셨다는데

호랑이를 타고 있는 산신이 김유신 장군일까.

 

한 여인이 제물을 올리고 정성스럽게 기도를 한다.

무슨 소원을 비는 걸까.

                            <     붉은병꽃나무    >

 

10;00

'붉은병꽃'을 바라보며 나만의 샹그릴라에서 힐링이 끝나간다.

오늘 여기서 일정이 끝나면 다시 시끄러운 속세로 돌아간다.

 

세상사에서 관점(觀點)을 바꾸면 삶은 빡빡하지 않고

여유로워진다.

 

많은 생각을 하지 않고, 생각을 따라가지 않고, 생각을 거둬

들이고 산멍과 꽃멍을 하였더니 내 정기신(精氣神)은 비로소

자유로워졌다.

 

아!

행복은 멀지 않은 곳, 바로 내 곁에 있었구나.

 

                2023.  5.  25. 대관령 국사성황당길에서

                                  석천  흥만  졸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