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3. 3. 05;00
창밖에 눈이 내린다.
어쩌면 이번 겨울에 마지막 보는 눈일 수도
있어 아이젠과 스틱을 챙기고 밖으로
나선다.
탁탁! 사락사락!
우산에 부딪히는 눈 소리가 제법 커
사위(四圍)의 적막을 깬다.
하늘에서 나풀거리며 내리는 눈송이는
아주 가벼워 보이는데 이리 큰소리를 낼까.
아마도 습기를 잔뜩 머금은 습설(濕雪)
이라서 그런 모양이다.
망월천변으로 들어서자 눈송이는 바람과
함께 내 얼굴을 강하게 때린다.
방한모 귀가리개를 내리고 장갑에 핫팩을
넣으니 북풍한설(北風寒雪)을 견딜만하다.
눈은 진눈깨비로 바뀌고 망월천변을 걷는
사람은 나 혼자다.
특이한 소리가 들려 발걸음을 잠시 멈추고
망월천 작은 호수에 집중한다.
가로등불에 보이는 오리의 몸길이가 제법
크다.
흔히 보이는 '흰뺨검둥오리'가 아니고
뒷머리에 검은색의 댕기가 여러 가닥 있고
부리는 붉은색이다.
윤무부 선생이 쓰고 교학사에서 발간한
'새'라는 책에서 본 '호사비오리'다.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드문 겨울철새로
잠을 깬 '호사비오리' 한쌍이 눈보라 속
망월천에서 헤엄을 치며 내는 소리를
매우 민감한 내 귀가 포착한 거다.
소리가 특이하다.
애정을 표현하는 소리일까,
아니면 다른 곳에서 배회하는 동료들을
부르는 소리일까.
어쩌면 기러기 종류인 호사비오리가
아프다는 소리를 내는 건지도 모르겠다.
어제 들어온 몇 건의 소식으로 종일 마음이
아프고 답답했었는데,
호사비오리가 우는 소리마저 아파서 끙끙
대는 소리로 들리며 발걸음이 무거워진다.
27년 전 간암수술을 받고 관리를 잘하던
친구가 급작스런 간경변과 위정맥 출혈이
있었으며 간이식을 받아야 한다 말하고,
또 다른 친구는 위암이 의심되어 위 절제
수술이나 위점막하 박리술 여부를 고민
해야 한다는 말을 들으며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일 년 넘게 혼수상태로 있었던 동창의
별세로 하루동안 한 명의 부고(訃告)와
두 명의 건강이상 소식은 내 가슴속을
먹먹하게 만들었다.
이 나이에 몸에 이상이 왔다면 병원에
의지할 수밖에 없고 의사에게 한번
잡히면 죽어서야 풀려나는 법인데
당사자는 얼마나 긴장하고 난감할까.
체력이 떨어진다면,
면역력이 바닥으로 떨어진다면,
몸에서 사람냄새가 사라진다면 세상과
이별할 확률이 높다.
고등학교 동창이 420명 정도로 기억한다.
그동안 소천, 선종, 별세 등으로 부고를
내고 칠성신(七星神)에게 돌아간 동창이
확인된 인원만 현재 68명이다.
수십년간 연락이 두절된 동창까지 합친다면
상당한 인원이 되겠지.

06;00
휴대폰의 메모창을 연다.
암(癌) 등 각종 질병이 진행 중인 친구가
25명이고 암에서 해방된 친구가 6명이다.
암, 노쇠, 가난, 질병, 고독, 돌봄, 요양,
상실이라는 말은 노년이 가장 듣기 싫어
하는 부정적인 단어들이다.
많은 사람이 죽음이라는 인생의 종착역에
가까워질수록 우울해지기도 하는데,
인생후반전은 짐이 아니라 인생의 선물이
아닌가.
나이가 들면 들수록 비판이나 부정적인
말 한마디에 상처를 입으면 오래간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부정성 편향(negative
bias)라고 부르는데,
가급적 긍정적인 것을 선호하고 중시하는
긍정성 효과(positivite effect)가 필요
하다.
또한 필요하다면 지팡이, 보청기, 기저귀
등을 거부할 이유가 없다.
자신의 능력과 생각을 노화에 적응시키고
자신의 노화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남은 인생을 의미 있게 보내리라.
속절없이 시간은 간다.
시간이 가고 세월이 흐르면 흐를수록
삶과 죽음의 경계에 바짝 다가선다는 건
살아 움직이는 모든 생명의 자연스러운
섭리(攝理)이다.
세상의 시작과 끝,
인계(人界)와 천계(天界),
지상(地上)과 천상(天上)을 오락가락하던
나의 사유(思惟)는 집에 가까워질수록
점점 사라진다.
2025. 3. 3.
석천 흥만 졸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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