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느림의 미학 994 숲 길은 어느 쪽으로 도는 게 좋을까.

김흥만 2026. 6. 25. 19:26

2026.  6.  25.  04;30

    풀 냄새 참 진하다.

며칠간 공공근로자들이 돌리는 예초기

소리가 새벽부터 요란했다.

 

풀숲에서 자라던 개망초, 애기똥풀이

밑에서부터 잘려 나가고 세력을 확장

시켜 나가던 현호색도 사라졌다.

 

사람들은 참 잔인하다.

산길과 숲 속이 꽉 찰 정도로 풀이

자라면 어떤가.

 

그걸 참지 못하고 관리자는 명을

내리고 근로자들은 지시에 의해

뭇 생명을 도외시하고 마구 잘라내다니

안타깝기만 하다.

 

잘려나간 풀들은 얼마나 아플까.

암튼 지금 내 코에 들어오는 풀냄새는

잡초로 설움 받는 꽃과 풀들의 냄새가

아닌가.

 

바람이 분다.

습기를 잔뜩 머금은 바람은 18도까지

기온을 떨어뜨려 제법 선선하게

만들었다.

 

뒤따라오는 사람들은 없고,

두 사람이 함께 걷기 힘든 좁은 데크

길에서 여러 사람들과 자주 마주친다.

 

조금 돌다 보니 왼쪽 발등에 또

과부하가 걸려 불편해지기 시작한다.

 

그러고 보니 다른 사람들은 왼쪽으로

돌고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늘 하던

대로 지구 자전방향인 시계방향으로

걸었던 모양이다.

 

최근 흥미로운 사실이 발표되었다.

사람들은 넓은 운동장이나 낯선

공간을 불문하고 아무 제약 없이 걸을

본능적으로 왼쪽 즉 시계 반대방향

으로 걷는다는 통계가 나왔다.

 

좌우측 통행 같은 사회적 규범이나

문화권, 나이, 오른손잡이 왼손잡이에

상관없이 지구 자전방향의 반대로

걸었다는 거다.

 

많은 사람이 움직일 때 80%가,

나 홀로 보행일 때도 75%가 반 시계

방향으로 먼저 움직였다고 하며,

 

일본에선 5살 미만의 어린이들이 성인

보다 훨씬 더 강력한 반 시계 방향성을

보였다.

 

육상경기나 스케이팅 등 트랙 운동

경기의 경우에도 왼쪽으로 달리며,

개미도 새 서식지를 탐색할 때 왼쪽

으로 돈다고 한다.

 

나는 늘 오른쪽으로 먼저 도는 걸 선호

했는데 대다수의 사람들과 반대였던

모양이다.

 

사람들은 인구 통계학적 특성, 문화,

생활환경과 관계없이 시계반대 방향

으로 움직이는데 그 원인을 찾아낼

수가 없었고,

 

지구 자전력에 의해 생기는 코리올리

(coriolis) 힘이나 지구 자기장 같은

거시적인 현상으로도 설명할 수가

없다는 거다.

 

출발 자체가 왼쪽 방향을 선호하며

걷다가 벽을 마주치는 경우에도

대부분은 왼쪽으로 돌면서 피한다.

 

조선과 중국은 대체로 상좌원칙을 따라

삼정승(三政丞) 중 좌의정이 우의정

보다 서열이 높았고,

 

대한민국에선 서구와 같이 상우원칙을

따라 법원의 배석판사는 우배석판사가

좌배석판사보다 서열이 높다.

 

나와 아들은 오른손잡이다.

아내와 며느리는 왼손잡이다.

 

운동을 좋아하는 손주들 두 녀석 공통

으로

공부와 식사를 할 때는 오른손으로,

야구와 농구를 할 때는 왼손으로,

공을 찰 때도 왼발로 차는 걸 좋아하고,

양손과 양발을 다 사용한다.

 

등나무는 왼쪽으로 칡은 오른쪽으로

감아 돌기에 갈등(葛藤)이라는 말도

생겼다.

 

숲길을 한 바퀴 다 돌고 나서 이번엔

시계가 움직이는 반대방향으로 도는데

왼발이 훨씬 더 편해졌다.

 

평소와 달리 반대로 돌았더니 그동안

보지 못했던 잘려나간 거대한 나무의

밑둥치도 발견했다.

 

암튼 이쪽으로 걸으나 저쪽 방향으로

걸으나 운동량은 같겠지만 때로는

평소의 습관과 반대로 걷는 것도

괜찮겠다.

 

              2026.  6.  25.

                  석천  흥만  졸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