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6. 27. 05;00
인근 스터디 카페에서 밤샘 공부를
했다는 중학생 세 명이 황산숲길로
올라온다.
윤슬?
한홀, 미사, 덕풍 등 어느 중학교냐고
물었더니 "메~롱!"하고 장난치며
빠르게 산길을 달려간다.
"메롱!"은 주로 어린아이들이 혀를 쏙
내밀며 상대방을 놀릴 때 하는 말인데,
전 세계 공통적으로 사용하는 제스처
(gesture) 중 하나로 어린이들이 즐겨
보는 애니메이션(animation)에도 많이
나온다.
제일 뒤에 쳐진 학생이 옆으로 오더니
혼잣말로 "자연은 참 좋아요"라는 말을
한다.
학생들이 참 재미있고 싱그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 주 기말고사 대비 시험공부를
했다며 잠시 책을 접고 숲에 들어와
가슴을 열고 심호흡을 하는 거다.
이 나이 되도록 나에게 제일 재미없었던
시간은 언제였을까.
아마도 시험공부를 했던 시간으로 생각
난다.
나이를 먹을 만큼 먹은 나와 아이들의
시간과 생각의 속도는 같을까 아님
어떻게 다를까.
아이들은 지금을 내일로 미루며 살고
있지는 않을까.
지금의 소중한 시간을 어떻게 보내고
있는지 궁금해져 대화가 시작되었다.
장난꾸러기 두 명은 뛰어서 저 앞으로
달아났고, 뒤처진 녀석은 개활지(開豁
地)에서 새벽하늘을 쳐다보며 "하늘이
참 멋져요"라고 말을 한다.

파란 새벽하늘은 맑고 검단산엔
운해가 산허리를 두르기 시작한다.
학생은 나한테 "저 산 뒤에 뭐가 있어요,
저 구름은 뭐예요?" 라며 묻는다.
검단산 뒤에는 팔당호가 있고 낮과 밤의
일교차가 심할 때 생기는 운해를 설명해
주자 학생은 "운해가 마치 양털처럼
곱다"라는 문학적 표현을 한다.
같은 새벽하늘을 보면서 서로 다른
풍경을 그리는 일이 신기하다.
산길에서 짧았지만 세속의 때가 묻지
않은 싱그러운 아이와 걷는 시간은 그
무엇보다 풍성하다고 느껴졌다.
아이가 사라지고,
난 새벽풍경 속에 한참을 서있었다.
언제부터였을까.
백수신분으로 몸은 한가해도 마음이
바빴는지 늘 바쁘다고, 바쁜 것처럼
살아왔다.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할 숙제는 늘 밀려
있었고 지금처럼 온전히 하늘을 올려다
볼 여유를 잊고 있었다.

< 메꽃 >
숲길에 핀 '메꽃'을 보며 "메롱"하고
뛰어가던 아이의 얼굴이 오버랩(over
lap)되는데,
때마침 메롱했던 아이도, 나와 대화를
나눴던 아이도 둘레길을 한 바퀴 돌고
함께 나에게로 온다.
우리나라의 고유종인 '메꽃',
나팔꽃과 닮았지만 메꽃은 나팔꽃이
아니고 뿌리를 '메'라 했다.
인도가 원산지로 수백 년 전 귀화했던
한해살이 나팔꽃과 달리 메꽃은 여러
해살이풀로 서로 다르다.
탄수화물인 전분(澱粉)이 풍부해 흉년
이 들어 곡식이 부족할 때 먹었던 구황
식품이기도 했던 메뿌리,
생으로 먹으면 단맛이 돌고, 쪄서 먹으
면 군밤과 비슷한 맛이 난다고 했는데
난 직접 먹어보지는 못했다.
해바라기처럼 하루 종일 꽃이 태양을
향해 회전하는 향일성(向日性) 식물인
메꽃에 대해 간략한 설명을 해주자
아이들은 고개를 끄덕인다.
처음 보는 아이들과 함께 걸었다.
하늘을 같이 올려다보고 메꽃도 바라
보며 새벽의 정적이 이렇게 촉촉하게
마음에 스며들 것이라는 생각도 하지
못하고 살아왔다.
나는 아직도 < 나뭇잎배, 섬집아기,
여우야 여우야 뭐 하니, 두꺼비 집짓기>
등 많은 동요를 기억하는데,
그중에서 메와 관련된 '햇볕은 짱짱'
<호미 들고 괭이 메고 뻗어가는 '메'를
캐어 엄마 아빠 모셔다가 맛있게도 냠냠
~♬>이라는 우리나라의 전래동요가
생각난다.
전쟁, 흉년과 기근, 보릿고개 시절,
메뿌리, 산딸기, 찔레순, 칡뿌리, 싱아,
밤, 도토리, 닭의 장풀, 질경이, 쇠비름
등은 우리의 군것질거리이자 단골 구황
식물이었다.
메꽃을 보며 새소리, 바람소리, 작은
개골창에 흐르는 물소리와 함께 아이들
의 목소리가 오랫동안 메말라 있던 내
마음을 적셔준다.
어쩌면 바로 이런 순간들이 지금까지
나의 삶을 지탱해 주는 원동력이 되지
않았을까.
삶의 여유란 이렇게 동심의 시간을
가슴에 품는 것이라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행복은 이 숲 속과 저 하늘에 있었다.
그런데도 나는 너무 먼 곳에서만
행복을 찾아 헤맸던 모양이다.
밤새도록 공부에 시달린 아이들,
들꽃처럼 순수하고 예쁜 아이들은 지금
아무런 가르침이 없어도 자연을 통해
자연스럽게 세상을 배우며 어른을 향해
서서히 성장해 나간다.
물리학적으로 시간은 누구나 똑같이
공평하고 속도도 같다.
그러나 나와 아이들의 시간과 속도는
분명 다르다는 평범한 이치를 알게
되었다.
2026. 6. 27.
석천 흥만 졸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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