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6. 29. 08;00
장난기 많은 친구가 단톡방에 묘비
사진을 올렸다.
나와 동명이인(同名異人)인 '고 육군
일병 김흥만' 용사의 3초짜리 묘비
동영상이다.
내 이름이 그리 흔한 이름이 아닌데,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친 전사자의
묘비 이름이 나와 같다니.
우여곡절 끝에 베트남 전쟁에 참전하지
못했는데 만약에 참전을 하였고,
전사를 하였다면 내 묘비에도 '육군
병장 김흥만의 묘'로 되어 있겠다.
이름이 같은 용사의 묘비 사진을 보며
고개 숙여 마음속으로 명복을 빌었다.
가까운 친구가 은퇴 직전의 내 명함을
갖고 있다며 사진을 찍어 보냈다.

현역 시절에는 승진으로 직급이 달라
지거나 점포가 바뀔 때마다 명함이
바뀌었다.
은퇴 후 명함을 정리하며,
직함이 없고 이름만 있는 명함이라도
만들어야 하나 잠시 갈등을 느꼈다.
직함과 수식어가 없고 이름만 있는
명함은 허껍데기인데,
그거라도 만들어 지갑에 넣고 다니면
허전했던 마음이 조금이라도 채워질까
이 생각 저 생각이 들었던 거다.
그동안 은행에서 영업을 하고,
관리자로서, 관리책임자로서 다양한
역할을 하며 살아왔지만,
백수가 되면서 집에서는 호칭이 남편,
XX 아버지로,
바깥에서는 '전'자가 붙었고,
시일이 지나면서 고 xx 사진작가의
배우자로 불리었다.
이름이 같은 '고 김흥만 일병'의 사진을
보며 묘비야말로 사자(死者)의 명함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러 나라 여행을 하면서 많은 묘비를
보기도 했다.
오스트리아 빈의 중앙묘역에서 베토벤
과 슈베르트 묘비 등 여러 묘비를
봤지만 감동을 받은 묘비나 해학적인
글을 쓴 묘비는 보지 못했다.
국립묘지나 영락동산 공원묘지에서
묘비를 대할 때마다 가금 내 묘비명을
상상해 봤다.

< 수레국화 >
내가 죽으면 내 묘비에는 어떤 글이
써질까.
죽으면 장기 및 시신기증 후 화장과
산골(散骨)로 아무런 흔적을 남기지
않겠지만 그래도 묘비를 갖는다면
"이 세상에 태어나서 잘 마시고 한바탕
잘 놀다 갔노라"라는 글귀를 남기고
싶다.
매장에서 화장으로,
납골당에서 무빈소 산골(散骨)로 장례
문화가 빠르게 변해가며 묘비도 사치품
이 되어가는 세상이다.
자신이 누구인지,
살면서 소중한 가치를 지켰는지,
진짜 나 다움을 찾고 떠났는지,
묘비에 쓴 함축된 몇 글자는 그 사람의
삶과 가치를 말하며 감동을 줄 수 있다.
직함이 있는 산 자(者)의 명함과
죽은 자의 명함인 묘비(墓碑)가 묘한
울림을 주는 아침이다.
2026. 6. 29.
석천 흥만 졸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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