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

느림의 미학 303 7번 길의 비밀 <제주 올레길 7코스>

김흥만 2017. 3. 26. 16:56


2016.  1.  28.  06;00

코 고는 소리와 창문을 두들기는 빗소리가 마음을 심란하게 만든다.

창밖은 깊은 어둠으로 여명은 멀었는데 경박한 빗소리가 사위의 침묵을 깬다.


비는 언제까지 올 것인가,

기상예보를 확인하니 오후에는 비가 더 올 모양이다.


산행을 포기하고 백팔배를 하면서도 산에 오르지 못하는 실망감은

여전히 내 머릿속을 지배한다.


                 <                 가랑비


                       어둠속에 봄을 재촉하는 가랑비인지

                       나그네의 발길을 잡는 세우(細雨)인지

                       추적추적 내리는 부슬비를

                       창밖으로 하릴없이 바라본다.


                       창가에서 들려오는 빗소리에

                       화들짝 놀라지도 않았지만

                       습관이 돼버린 하늘바라기는

                       오늘도 예외가 아닌 모양이다.


                       눈 터널을 오르지 못하는

                       아쉬움을 어디로 날려버릴까.                석천   >


09;50

태양이 올라오면 얼마나 좋을까.

유리창을 때리는 빗줄기를 바라보며 우장을 하고 올레길 7코스를 걷는다.


하루하루를 규칙적으로 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또한 여행이나 산행을 계획대로 진행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한라산 산행을 계획하고 항공편 숙박과 렌트카 등 모든 준비가 순조롭게 진행이 되었지만

날씨가 도와주질 않는다.

엊그제 항공 대란이 일어났지만 지금은 모든 게 평상대로 돌아와 마음만은 편하다


낯선 환경에 맞닥뜨리면 평소의 습관과 가치관이 흔들릴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이 꼭 나쁜 일만은 아니다.


우천으로 인해 계획대로 산행을 하지 못하기에 오히려 여유로운 여행이 되었다.

때로는 계획대로 살지 않는 삶이 더 재밌어진다.

평소 못 느낀 즐거움과 행복감을 알게 되면서 이곳 주상절리와 광주 '무등산 주상절리'를

비교 분석하는 내 못된 버릇이 또 나온다.


사물을 그냥 아름답게 자연 그대로 보며 즐기면 될 텐데,

무등산 주상절리대가 아름다울까 아님 이곳 제주 주상절리대가 더 아름다울까,

머릿속으로 그려본다.


육모꼴 기둥들이 절묘하게 주상절리대를 펼치며 자연의 신비로움을 보여준다.


제주도는 신생대 4세기에 형성된 화산도(火山島)로서 주로 현무암질 용암으로 구성되었다.

절리(Joint)는 암석에 발달된 갈라진 면으로 화산암에는 주상절리(columnar joint)와

판상절리(platy joint)가 있다.


주상절리(柱狀節理)는 주로 현무암질 용암류에 형성되는 기둥모양의 수직 평행한 절리다.


섭씨 1,100도의 두꺼운 용암이 화구로부터 흘러나와 급격히 냉각되는 과정에서

수축작용에 의해 생겨난 틈이라는데 위에서 보면 일정한 다각형으로 4~6각형을 취하고 있다.


주상절리대를 벗어나 제주 해군기지 반대 투쟁 현장을 지난다.


대한민국은 이상한 나라이다.

국방과 안보에 중점을 두고 거론을 하면 호전(好戰)주의자가 되고, 대화와 환경을

강조하면 평화주의자가 된다.

또한 안보를 이야기하면 보수 강경파요, 평화를 얘기하면 진보 온건파가 된다.


나 또한 쓸데없이 투쟁하는 사람들의 의견에 반대를 하니 수구꼴통이 되는 건가?

비가 쏟아지는데도 이들은 부산스럽게 오늘의 투쟁을 준비한다.


한 여자는 성경책 같은 두툼한 책을 펴 마이크에 대고 낭독을 하는데,

해군기지 반대와 평화라는 말을 앵무새 같이 반복해서 읽는다. 


이곳 강정마을에 해군 기지 하나 건설하는데 무려 10년이나 걸렸다.  

긴 세월 이들과 온갖 난투극을 벌이며 겨우 완공단계에 왔지만 이런 상황을 주변국에선

어떤 생각을 했을까.

아마도 일본 중국 등 주변 강국들이 우리를 한심하다고 생각하며 얕보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전쟁이나 전투가 일어나면 저들이 우리를 도와주고, 또한 도와줄 가치가 있을지

판단을 할까?

안보를 위한 군사기지 하나 건설하는데도 결사적으로 반대를 하는 세력이 있는데

미국 등이 나서서 대리전쟁을 해줄까?


이들로 인해 우리나라는 자신의 안보를 남에게 의존하고, 자신은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남이 지켜주기를 바라는 개념 없는 나라가 되었다.



북한은 4차 핵실험까지 이미 끝내고 우리의 안보를 위협한다.

일본은 독도를 호시탐탐 노리고, 중국은 이어도를 부정하며 우리를 우습게 본다.


안보는 국제질서에 줄 서고, 외교와 흥정을 잘해서 지켜지는 게 아니라 내부에서 힘을

기르고 단결해야만 얻어질 수 있는 게 우리의 안보다.


북한이 핵무기를 가진 상황에서

해군기지 하나 가지고 왈가왈부하기엔 국제 현실이 너무나 냉엄하기에

우리의 안보를 보강하고 의지력을 보여주기 위해 특단의 조치를 하여야 하지 않을까.


정몽준씨는 핵보유를 주장한다.

물론 핵개발에는 엄청난 국제사회의 압력과 불이익이 따른다는 건 전 국민이 다 안다.

그러나 이젠 일을 저지르고 보자.

과감하게 한반도 비핵화 선언 폐기와 핵확산금지조약(NPT)의 탈퇴도 각오하자.

그에 따른 어떤 불이익도 감수할 의지를 대내외에 천명하고 사드(THAAD)의 도입을

공식화하자.


북한의 어떠한 도발에도 일본이나 중국의 도발에도 몇 배의 보복 반격을 가할 수 있는

힘과 실력을 가져야 하는 건 우리의 숙명이자 생명줄이다.

스스로를 도우면 국제사회도 우리를 이해 해주고 도울 수 있다.


손자병법에도 나오지만 전쟁을 각오해야 평화를 얻을 수 있다.

비 내리는 반대 투쟁 현장에서 한심한 사람들을 보며 측은지심(心)을 버릴 수가

없다.


작년은 일 년 내내 메르스와 세월호 그리고 정치권의 짜증나는 일만 있었는데 우리나라의

안보를 위해 매우 기분 좋은 소식이 들려왔다.

즉 제주 해군기지 가동 개시 소식이다. 


자료에 의하면 한국경제의 80% 이상이 무역에서 나오고, 전체 무역량의 99.8%가 제주

남쪽 해역을 지난다고 한다.


1993년 김영삼 정권 때부터 시작된 제주 해군기지 건설 계획은 반미(反美)성향 좌익

진영의 총공세로 엄청난 경제적 군사적 손실을 내며 표류를 하다가 22년 만에 완공단계에

도달했다.


제주 해군기지 반대를 위해 이곳에 좌익이 총 단결하였다는데,

2011년 4월부터 참여연대 산하 '평화군축센터'와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이

본격적으로 나서 해군기지 부지에 텐트를 치고 현장의 차량 진출입을 방해하기

시작했다.


그해 7월 110개 단체로 구성된 시위대가 해군기지 건설부지 일대와 강정마을에

진을 치고 반대운동을 벌이다가 부산 한진중공업과 주변지역을 쑥대밭으로 만든

'희망 버스'와 '희망 크루즈'가 이곳에 등장했다.


8월 이후 참여하는 좌익 단체수가 늘어나며 천주교에서는 예수회 소속 신부들이

열성적으로 참여했는데 평택 대추리 미군기지 시위, 여중생 사망사건 등의 선봉에

섰던 문규현 신부와 제주교구 책임자인 강우일 주교 등이 대표적 인물로 심하게

반대를 했다.


반대운동은 이후 5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계속되며,

그 사이 좌익진영은 '범 도민대책위원회' 전국대책회의'등 여러 연대 단체를 결성했고

이들은 각종 농수산품을 팔아 활동자금을 마련하기도 하였으며 민노총은 현장에 방송

차량까지 지원하며 기지 건설에 반대했다.


2012년 대선이후 조용해지더니 요즘은 외국의 자칭 평화 운동가들이 몰려들기 시작했으며,

이중 평화재향군인회는 재미 종북 인사들과 연계되었으며 반미친중(反美親中) 국제

네트워크와 관련이 깊다고 한다.


이들은 중국 대신 나선 재미 종북 인사와 국제 공산주의자들이라 하는데, 북한의 3대

세습과 인권탄압에 대해서는 한결같이 침묵을 지킨다.


현재 한국 사회에서는 친중파가 득세하고,

이들이 종북 진영과 언론, 해외 공산주의자들까지 끌어들여 한국 사회의 여론을 호도하고

왜곡하며 우리의 주권 보호와 국익을 위한 사업을 계속 방해하고 있다.



해군기지의 완성이 목전인데 아직도 반대를 하는 사람들이 길을 점령하고 시끄럽게

방송을 해댄다.

북한은 4차 핵실험을 하고 국제사회가 공분을 느끼며 다 같이 제재를 하려 머리를 맞대고

있는 판에 아직도 해군기지 공사를 반대하고 방해를 하는 이 사람들은 어느 나라 사람들일까.


그런데 우스운 것은 반대 데모가 절정에 이르렀을 때,

매스컴을 독차지 하던 자칭 신부라던 사람, 환경운동가라던 사람들은 다 빠지고

학생으로 보이는 젊은이들만 있으니 그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광우병 시위 때 앞장서서 정부를 조롱하고 착한 백성을 유혹하던  원탁회의 멤버,

민변, 전교조, 민노총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대한민국은 워낙 좋은 나라이고 착한 판사들이 권력을 가지고 있으니 감옥에

들어갔을 리는 없고 아마도 선거판에 들어가 한목을 챙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저들은 보고 싶은 대로만 보고 듣고 싶은 대로만 듣는 이기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이다.

평소 보지 않던 풍경들이 보이기 시작하며 입에선 욕이 나오고, 보지 말아야 할 풍경을

본 눈(眼)이 아프기 시작한다.



마가목의 빨간 열매가 지저분한 현장을 조금이라도 밝게 해준다.

겨울을 견딘다는 것은 외로움을 마주하는 일이지.

시끄러운 투쟁 현장에서 빨간 열매를 맺은 나무에게 경외감(敬畏感)을 표한다. 


공자는 군군 신신 부부 자자(君君 臣臣 父父 子子), 즉 "임금은 임금답고, 신하는 신하답고,

아버지는 아버지답고, 자녀는 자녀다워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러한 공자의 정명(正名)사상은 사회 구성원 각자가 자기의 직책이나 명분에 맞는

덕을 갖추고 역할을 하여야 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자기의 본분을 지키지 못하고 엉뚱한 일을 하며 사회혼란을 야기하는 사람들을 보니

속이 부글부글 끓어오른다.


드라마 '육룡이 나르샤'에서 멋진 대사가 나온다.


이방지와 길태미의 대결에서 칼을 맞고 쓰러지는 길태미는 외친다.

"강자는 약자를 병탄(幷呑 빼앗아 삼킨다)하고, 또한 강자는 약자를 인탄(蹸呑 짓밟고

빼앗는다) 한다."라는 명대사가 나온다.

이것이야말로 우리에게 닥친 냉엄한 현실이며 역사의 진실이고, 영원히 변하지 않는

만고불변의 세상 진리다.


남북 분단과 대치 속에 있는 우리나라 국민은 호시탐탐 우리의 분열을 노리는 주변국들을

직시하고 직위나 직책에 걸맞은 윤리와 사명감으로 임하여야 하는데,

정명 대상들이 활개를 치는 현장을 바라보며 저들을 밀어내지 못하는 약한 공권력을

한없이 아쉬워한다.


10;20

구축함의 마스트가 빗물에 가렸어도 뚜렷이 보인다.

작년 12월 1일 창설된 제7 기동전단은 7600톤급 KDX 3 이지스함 DDG 3척,

4,500톤 급 KDX 2 이순신 급 3척, 호위함 및 209 장보고 급 잠수함 3척 등 제주 기지전대는

20여 척으로 이루어진다고 한다.


495,867㎡(약 15만 평)규모의 민군복합관광미항은 이밖에도 15만 톤급 크루즈 선박

2척이 동시에 계류할 수 있는 규모이다.



아마도 행복을 입에 달고 사는 사람일수록 행복과는 거리가 먼 모양이다.

가끔은 MBC가요 프로그램의 복면가왕처럼 가면을 쓰고 싶다.


복면을 쓰면 해방감이 세질까.

나는 어렸을 땐 투명 인간이 되고 싶었지.

누구든지 어릴 때 소원이 있었지만 소중한 건 어렵게 얻는 법이다.

늙어서도 인간은 성장하는 법이라 엄격한 세상의 법칙에 순응하며 살아야겠지.


10;20

침묵 속으로 깊이 빠져든 7번 올레길.

바람이 매섭지 않으니 곧 다가올 봄의 소곤거림이 시작될 모양이다.

바다는 고독 외로움 적막 허무 쓸쓸함을 다 포용한다.

 

최근 국회에서 웰 다잉(well dying)법이 통과 되었다.

그동안 어떻게 하면 더 오래 살까에 대한 욕심만 부렸던 인생을

이제는 어떻게 하면 잘 살고(well living), 어떻게 하면 잘 늙어가다가(well aging)

어떻게 삶을 마무리할지(well dying)에 관심을 가져야 할 때가 되었다.

 

생명은 어떠한 경우에도 소중하지만,

말년에 인공호흡기와 연명치료에 의해서 삶을 연장하는 것은 평생을 치열하고 성실하게

살아온 인생의 마무리로는 어울리지 않는다.

 

살아서 걷는다는 것은 인생에서 최고의 복이자 행운이다.

오늘은 한라산 산행 대신 거대한 바다와 호흡하고 열심히 걷는다. 

하루하루를 열심히 사는 것도 축복이라는 생각이 든다.

 

웰 다잉, 웰 리빙, 웰 에이징이라,

지갑 속에 든 장기기증 등록증을 생각하며 인생의 끝자락을 생각해본다.


10;30

배낭을 등에 메고 집을 나설 때에는 가끔 엉뚱한 생각이 든다.

은퇴를 하고 어느 시점이 되었으면 편안히 방랑기를 맞아야 하는 게 아닌가.


내가 가는 길이 어느 곳일까.

내 인생이란 끝끝내 닿을 수 없는 머나먼 길을 가는 건가?

나는 가출(家出)을 한 것인가 아니면 출가(出家)를 한 것인가.


가출은 무엇이고 출가는 무엇인가.

출은 집을 나오는 것 자체가 목적이고, 출가는 어떤 목적을 이루려고 나오는 것이라는

말에 동의를 할 수 없다.


최근 "은퇴 후에도 스님이 될 수 있는 길을 만들겠다."라는 조계종 총무원장 스님의

기사를 읽었다.

“전문분야에서 활동하다 퇴직한 분들을 맞기 위한 출가 제도를 만들겠다.“는데

그동안은 출가자 상한 연령이 쉰이어서 나이든 은퇴자는 출가하고 싶어도 할 수

없었기에 은근히 관심이 간다.

 

워낙 종교를 싫어하니 부처를 믿고 안 믿고를 떠나서 심오한 철학을 공부하고 싶은 거다.

번뇌가 많던 적든 수도(修道)를 하다보면 깨달음이 풍성해지지 않을까?

사회통념상 가출이란 가장이나 가족의 구성원에게 허락을 받지 않고 나온 것이고 출가는

허락받고 나온 것이다.

 


언제인가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을 오르며 답답했던 가슴이 뻥 뚫리는 걸 경험했지.

속세의 인연을 다 버리고 나의 성(城)을 넘어 집착과 속박에서 벗어나고 싶었지.

유성(踰城)을 해도 깨달음을 찾기야 하겠느냐만 시끄러운 속세로 다시 돌아가기가 싫었지.

 

해변을 걸으며 반대 투쟁현장을 걷던 내가 아니다.

빗속에서도 걸음걸이가 반듯해지며 진짜 자유롭다는 생각이 든다.

내 가슴속에는 알 수 없는 환희가 흘러넘치니 잠시나마 속세의 굴레를 벗어난 모양이다.


머물렀지만 머무르지 못하는 곳을 떠나며 뒤를 돌아본다.

언제 또 오르려나.


오랜 시간을 머금은 곳.

오래된 시간이 건네주는 추억을 그리며 춤추는 망망대해(茫茫大海)를 바라본다. 



바람이 만들어내는 눈보라와 심연의 회오리가 거대한 한라산을 삼켰다. 

줌으로 당겨도 희끗희끗한 잔설만 보일 뿐 거대한 화구벽은 어디에 있을까.


한라산의 역동적인 기운은 어디에서 만들어지는가.

백록담에서 올라오는 화기(火氣)와 수기(水氣)가 조화된 에너지를 분출하는데,

오르지 못하는 거대한 한라산에 아쉬움을 표하며 잠시 명상에 잠긴다.


낮게 깔린 비구름이 응집과 확산을 번갈아 하고,

수시로 모습이 바뀌는 한라산과 바다는 나를 더 왜소하게 만든다.

모든 것이 무상(無常)인가.


가마우찌 한 마리가 외롭게 물속에서 자맥질을 한다.


친구가 바쁘다고 하니 백수가 과로사 한다고 농담을 한다.

바쁘게 돌아다니며 사는 게 성공적인 삶인가.

시간을 쪼개고 여기저기 다니며 사람들을 만나면 체력적으로 힘들고,

또한 그 시간이 지나면 마음이 공허해진다.

 

맞다.

인간은 저 가마우찌와 같이 외로운 존재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외로움을 그냥 견뎌야 할 것인가.

 

가끔은 외로워야 자기 성찰이 가능하다.

나이가 들어 은퇴를 하게 되면 외로움과 고독에도 익숙해야 외롭지 않게 된다.

외로움의 역설일까?


가끔은 눈 쌓인 산길에서 벗은 몸으로 서있는 나를 상상했는데, 오늘은 바닷가에서

나신(裸身)으로 서고 싶다.


한참을 걷다 보니 한라산에 오르지 못한 아쉬움보다 편안함을 느낀다.

억지로 올랐으면 지금 내리는 비를 흠뻑 맞기도 하겠지만, 러셀이 되지 않은 160cm의

눈 쌓인 산길을 뚫기엔 우리의 나이가 너무 들었다.


바닷가를 걸으니 이렇게 편안한 것을,

망망대해를 바라보며 괜한 욕심을 버리니 참 홀가분하다.


한 겹 두 겹 쌓였던 책임을 벗으니 몸과 마음이 가벼워지는 느낌을 어떻게 표현할까.

작은 카페라도 나오면 커피 잔에 코를 박고 커피 냄새를 음미하고 싶다.


상선약수(上善若水)라!

가장 아름다운 인생은 물처럼 사는 것이라고 했다.

물처럼 살다가 물처럼 가는 것이 최고의 인생이라고 했다.


비바람 눈과 맞서지 않고 바닷가를 걷는 건 부쟁(不爭)의 삶이지.

날씨와 싸우지 않고 산을 오르려는 경쟁도 없이 묵묵히 걷는 바닷길에서 상선약수처럼

초연한 삶을 생각하며 상념에 젖는다.  


인생의 주인공은 스스로가 존재하고 있어야 된다.

카메라로 사물을 찍는 모습에서 애써 여유를 찾는다.

 


가마우찌의 작은 섬은 온 세상의 적막과 함께 시간이 쌓이고 또 쌓였다.


바람은 파도를 만들고,

바람이 만든 파도는 보이는데 바람은 보이지 않는다.

바람을 잡으려 손바닥을 펴서 하늘로 올린다.



11;30

바닷가를 벗어나며 내입에서는 탄성이 나온다.

바닷가인데도 동백나무 후박나무 같은 상록수들이 빽빽하게 들어 찬 숲은 홍도와는

또 다른 풍경이다.

돈나무도 고개를 슬쩍 들이민다.


우람한 자태를 뽐내는 나무들이 비바람에 마구 흔들린다.

해무(海霧)를 안은 연초록 잎들이 스치는 바람에 몸을 뒤척이며 빗방울과 함께

반짝거리고, 시간을 잊은 강태공 두 사람이 낚싯대를 드리우고 바다를 응시한다.


이 냄새는 무엇일까?

비릿한 바다냄새를 품은 숲의 향기는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바람에 흔들리며 누웠던 풀들이 일제히 일어나며 빗물을 퉁긴다.

육지와는 조금씩 다른 생김새의 풀이름을 모르는 나에게 반감은 없겠지.


청아한 새소리를 감춘 거대한 나무들,

그 아래 붉은 꽃들을 뚝뚝 내려놓았던 동백나무가 내가 너무 늦게 왔다고 질책을 한다.

 

              <            고요의 나라


                     비바람은 몸을 더 축축하게 만들고

                     강한 햇볕에 바랬던

                     나무들의 수피도 한껏 물을 먹었다.


                     경계를 무너뜨린 벼랑에서

                     조바심치던 내 마음이

                     하잘 것 없는 것임을 느끼며

                     내 몸은 떨어지는 솔잎과 같이 가벼워진다.


                     그래 여기는 내가 영원히 살 수 없는 신천지고

                     저편은 내가 끝끝내 닿을 수 없는 고요의 나라지.

                     솔가지가 부러지며 무거운 짐 내려놓으라 한다.              석천   >


세상의 바람이 다 모아져 내 몸을 흔들고 절벽이 내 앞으로 달려들며 건너편을 바라보는

여유도 주지 않는다.

내 몸은 거대한 절벽의 아가리 앞에 놓였구나.



벼랑 아래로 곤두박질치는 내 시선은 아찔함을 느끼며,

흔들리는 내 몸은 삶과 죽음의 경계에 아슬아슬하게 세워져 감히 나아갈 수도

물러설 수도 없다.

바람은 나를 시험이라도 하듯 내 몸을 사정없이 흔들어댄다.


수백 년 된 적송과 전나무 삼나무가 반갑게 인사를 하고, 울퉁불퉁하게 솟은 바위절벽이

곧추 서 있다가 잘 가라며 배웅인사를 한다.


11;40

찬바람이 분다.

비바람이 분다.

시간이 지나면 봄날의 햇살이 퍼지겠지.


그래도 나는 봄을 기다리지 않겠다.

바람이 불고 눈이 내리면 겨울이어서 좋다.

겨울은 겨울답게 추워서 좋다.


햇살이 없어도 감국 한 송이가 고개 숙여 인사를 한다.

이 겨울에 핀 감국 한 송이야말로 7번 길의 비밀이었다.

꽃의 요정이 풀숲에 깃들던 말든 나의 눈동자는 기쁨으로 충만해진다.

 

아름다운 한 송이 꽃에 카메라를 대며 기쁨과 감사가 저절로 나온다.

삼나무 전나무가 곧게 하늘로 뻗쳤다.

세상과 절연(切緣)하고 은둔하고 싶은 숲은 나를 계속 유혹한다.

 

굴거리나무의 잎사귀가 땅바닥을 향해 축 늘어졌다.

그리 춥지도 않았고 눈과 비가 수시로 내려 목이 마르지도 않았을 텐데

왜 저리 힘이 없는 걸까.



12;00

맑은 공기 속에 비를 쪼르르 맞았어도 행복하다.

내가 탈 버스도 세상의 풍경이 되니 세상의 모든 풍경과 함께 하는 이 순간이 행복하다.



한 해가 끝나고 새해가 시작된 지 한 달이 다돼간다.

설렘으로 맞은 새해는 새로운 감정과 또 한 살을 더 먹는다는 쓸쓸함이 교차한다.

은퇴 인생이 내게 준 선물이 있다면 그건 여행이다.

 

황혼의 인생에서 남는 건 돈일까 명예일까, 아무 것도 답이 되지 않는다.

허전한 가슴을 채워주는 것은 돈과 명예가 아니라 여행에 대한 기억과 추억뿐이다.


                                          2016.  1.  28.  제주 올레길 7코스에서

                                                                석천  흥만  졸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