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7. 6. 04;00
새벽 네 시만 되면 자동적으로 눈이 떠진다.
조금 더 자려해도 평생 습관이니 고쳐지질 않는다.
주섬주섬 옷을 입고 휴대폰과 선글라스를 챙기고 문밖으로 나선다.
가끔은 내가 좋아하는 클래식을 들으며 산책을 하고 싶지만 주변 사람이나 자는
사람들에게 방해가 될까 참는다.
산에서 음악을 크게 틀고 다니는 사람들의 행태가 너무 보기 싫었기에 나만이라도
자제를 하고 사색을 하며 산책을 즐긴다.
오랜 옛날부터 새벽을 좋아했다.
안개 낀 날이면 안개를 사랑했고, 청명한 하늘에 달과 별이 흐르면 달과 별을 사랑했고,
풀벌레, 새소리 들리면 그 소리를 사랑했지.
비가 오면 빗속을 걸으며 내 영혼은 자유를 찾았지.
새벽 산책이 언제부터 내 일상 속에 자리를 잡았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수십 년 된 습관이다.
지난겨울 나이가 들었다는 이유로 주변에서 만류해 새벽 산책을 하지 않고,
저녁 식사 후 밤 산책으로 바꿨더니 잦은 저녁 약속과 모임으로 자주 빼 먹게 된다.
여름이 된 후 체중계에 올라보니 무려 4kg이나 체중이 늘었기에 비상이 걸려 다시 새벽
산책으로 습관을 바꾼다.
겹겹이 세월이 쌓인 골목길을 벗어나 한강 뚝 길로 올라서면 내 몸과 마음은 또
자유로워지고 가로수 우거진 길을 마냥 걷는다.
아는 얼굴도 지나가고, 뇌졸증으로 발을 끌고 다니며 땀범벅이 되었던 아저씨는
이 년이 지나가며 발을 제법 올린다.
십 년 전 심은 느티나무가 제법 자랐고 무성한 잎은 긴 터널을 만든다.
가던 길 잠시 멈추고 의자에 앉아 겹겹이 쌓인 사람들의 흔적과 나무의 깊은 그림자를 본다.
새벽 한강 뚝 길을 걷다 보면 삶에 대해 많은 사색을 하게 된다.
2016. 7. 6. 07;00
장대비가 차창 문을 두드린다.
경부고속도로를 지나는 차들은 하얀 물보라를 일으키며 어디론가 하염없이 질주를 한다.
나는 지금 무엇을 위해 어디로 정처 없이 가는 걸까.
직접 핸들을 잡지 않았으니 스쳐 지나가는 차들을 보며 음악에 끌린다.
폰을 열어 슈만의 ‘트로이메라이’를 듣는다.
'꿈의 꿈'이라는 트로이메라이는 오늘같이 비 오는 날 흐르는 노래로 적격이다.
잔잔하면서도 슬픈 멜로디는 빗물의 강도에 따라 같이 높아지기도 하고, 끊어질듯
하기도 하고 계속 반복되는 멜로디로 내 가슴을 울린다.
가뭄 끝에 찾아온 장맛비는 하늘의 눈물이지.
애잔하게 들리는 이 음악은 슬픔의 강도가 비례하는지, 창밖의 차가운 물줄기와 함께
서러운 감정을 만든다.
엊그제 사무실에서 하모니카로 반복 연습했지만 악보를 볼 줄 몰라 어디가 맞는지
틀리는지도 모르겠다.
그냥 귀로 듣고 입으로 흥얼대다가 하모니카를 분다.
"프라타나스 우거진 가지 위에 하나 둘씩 별이 빛나고
노을이 타는 산 넘어 남국의 향기 품고~~~"
비 오는 날의 감정은 조금 묘해진다.
난 비가 오면 온몸에 내리는 비를 맞으며 미친놈이 되어 산을 오르고도 싶고,
처마에서 떨어지는 낙수(落水)소리를 들으며 막걸릿잔을 기울이고도 싶다.
창가에 그냥 앉아 빗줄기를 보고 있으면 애잔한 감정과 과거의 미련이 뒤엉켜
쓸쓸해지기도 하고, 옛일을 추억하고 그리워하며 슬퍼하기도 한다.
남자들이란 묘한 동물이라 슬퍼도 울지 못하고 내색을 하지 못한다.
항상 강한 모습만을 보여야하기 때문에 늘 자기감정을 억누르고 산다.
오늘 같은 날 트로이메라이 음악을 들으면 더 슬퍼지지만,
주룩주룩 쏟아지는 비와 귓가에 맴도는 멜로디는 마음속에 쌓였던 먼지들을 씻어주며
실컷 울고 싶은 마음을 후련하게 대변해준다.
< 장대비
장대비는 화살이 되어
하늘에서 내려 꽂이고
차들은 하얀 물보라를 일으키며
무심히 질주를 한다.
귓가에는 토로이메라이 선율이
스멀스멀 들어오고
우산도 없이 비를 맞으며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
길 잃은 나그네가 되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곳으로
떠나고 싶다. 석천 >
장마철인데 어느 산을 선택할까.
전국 지도를 펴고 자료를 찾다보니 보령 성주산(聖住山)이 눈에 띈다.
10;45
세 시간을 달려 주춧돌과 한(恨)만 남은 사적 제307호 성주사지(聖住寺止)를 지나
백운교에 도착한다.
예로부터 성인(聖人)과 선인(仙人)이 많이 살아서 성주산이라는 이름이 붙은 산,
바다를 낀 고즈넉한 산으로만 알고 찾은 성주산(677m)은 발길을 내려놓자마자
심심산골이 펼쳐진다.
거센 장맛비에 수초(水草)들이 쓸려가고, 급히 흘러가는 계곡물은 비명을 지른다.
개구리는 "개골개골♪"대고 맹꽁이가 "맹맹맹 꽁꽁꽁♬" 하다가 일제히 "맹꽁맹꽁♪♬"하며
울어댄다.
오늘 같이 비 오는 날이면 개구리와 맹꽁이는 더 울어댄다.
비가 오면 울음소리를 내는데 힘이 덜 들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짝짓기 할 암컷 개구리를 유혹하기 위해 수컷 개구리들이 멋진 합창으로 리듬을 맞춘다.
맹꽁이들은 한 번에 '맹'이나 '꽁' 두 소리 중 하나만 낼 수 있는데,
주변에서 나는 소리에 따라 금방 울음소리를 바꾸기도 한다.
어떻게든 짝짓기의 대상인 암컷의 눈에 들려하는 생존전략이 귀엽기만 하다.
10;47
인적은 사라졌고 강아지 세 마리가 꼬리를 흔들며 앞장을 선다.
한 마리는 집으로 들어가고 두 마리는 연실 뒤를 돌아보며 따라오라고 한다.
문득 철원의 복주산 입구에서 만나 정상까지 동행한 진순이와 칠보산 정상에서 만나
하산을 같이한 검둥이 뭉치가 생각난다.
만난 지 여러 해가 지났는데 그 강아지들은 잘 지내고 있을까,
지금도 산객(山客)을 안내하며 귀여움을 받고 있을까 그리워진다.
때죽나무 열매를 찍다보니 앞서가던 강아지가 빨리 오라고 보챈다.
10;53
갈림길에서 좌측 백운사 방향으로 향하니 강아지들이 자기네들을 따라 오라고 마구 짖는다.
내 머리 속에 든 등산지도는 왼쪽 백운사를 지나야 본격적인 등산로인데 강아지를
따라갈까 망설이다 백운사 방향으로 오른다.
한참 짖어대던 강아지 소리는 숲 속에 묻히고 매미소리가 그 자리를 메꿨다.
구름 사이로 성주산이 삼각형 모습으로 우뚝 솟았으니 오름길이 꽤나 급하겠다.
백운사 안내판을 뒤로 하고 외딴 농가 앞으로 이어지는 좁은 산길을 오른다.
딱따구리가 나무에 기관총 소리를 내며 열심히 구멍을 파고, 천천히 10분을 오르니
백운사가 나온다.
현재 고도가 얼마나 될까,
손목에 찬 고도계는 360m를 표시한다.
앞으로 300m만 고도를 높히면 정상인데 매우 습도가 높아 숨을 쉬기가 어렵다.
백운사는 통일신라시대 무주무염(801~888년) 스님이 창건했다니 무려 1,100년이
넘은 고찰(古刹)이다.
창건 당시에는 성주산의 옛 이름인 숭암사로 했다가 훗날 높은 산에 위치한 흰 구름 속의
절이라 하여 백운사로 고쳐 부른다고 한다.
비가 언제 내리려나, 비구름 잔뜩 머금은 하늘을 바라본다.
일기예보에는 6~24mm가 온다고 했는데, 우의 우산 등 우장(雨裝)을 갖췄지만 비가
많이 내릴까 내심 걱정을 한다.
11;08
천년고찰 백운사가 산속에 조용히 자리 잡았다.
강풍에 마구 부러졌던 나뭇가지들은 말끔히 정리되었고, 절간 추녀에서 풍경소리
그윽이 울려 나온다.
밤이 되어 달이 산 위로 솟아오르고 스치는 바람에 놀란 풍경이 슬그머니 울리는
풍경(風景)은 어떨까 백운사를 바라보며 잠시 생각에 잠기다가 들리지 않고
그냥 숲 속으로 스며든다.
길을 삼킨 잡초를 헤쳐 나가자 폐광 터 옆으로 난 등산로가 뚜렷하다.
며칠간 쏟아진 장맛비에 폐광 터를 지나며 위험하지 않을까 미리 걱정을 하였지만
기우(杞憂)로 끝난다.
단풍나무가 잎을 떨어뜨린다.
매미가 껍질을 벗어던지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가던 길 잠시 멈추고 나 자신을 살펴본다.
늘 비우려고만 했던 나,
비우면 채워진다는 그 말 한 마디에 현혹되어 꽤나 몸부림을 쳤지.
한동안은 남에게 상처 주는 말, 화나게 하는 말, 오해를 하게 하는 말을 쉽게
하기도 했지.
이제는 그게 싫어 마음을 고요하게 하기 위해 말(言)을 멈추고 침묵(沈默)을 즐기기도
하는데 바로 산이라는 대자연이 나에게 준 지혜다.
산의 기운 그리고 달, 별, 나무, 새소리, 바람소리가 나를 건강한 몸으로 만들어 주고
마음을 다스리게 해줬으니 산으로 스며드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고, 갇혀 있던
독선적인 마음에서 떠나게 한다.
초록이 뚝뚝 떨어지는 산,
장엄함과 바람을 타고 흘러드는 맑은 공기는 썩은 내 폐부를 말끔히 씻어주고
편안하게 해준다.
산길을 오르며 오롯이 나를 만나는 수행의 시간은 성주산이 내게 주는 최고의 선물이다.
풀숲을 헤치고 나타난 산길엔 느티나무, 졸참, 굴참, 신갈나무, 단풍나무, 고로쇠나무가
빼곡히 숲을 채워 컴컴한 숲을 이뤘다.
오늘은 서두르지 않고 굼뜬 행동으로 작고 여린 생명까지 보며 오르려 마음을 먹고
숲 속에 핀 '등골나물'의 흰 꽃을 찍는다.
살다보면 우연(遇緣)이든 필연(必緣)이든 사람과 사람은 인연을 맺는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좋은 인연은 나를 행복하게 해준다.
그러나 인연을 맺는다는 주체가 꼭 사람만은 아니다.
어려서부터 책을 좋아하던 나에게는 책도 좋은 인연이요,
여행과 산행을 다니며 새롭게 만나는 지역의 다양한 문화와 역사, 음식,
그리고 숲 속에 숨은 야생화 한 포기도 좋은 인연이다.
요즘엔 변화하는 자연의 환경, 계절의 변화도 재미있다.
고개를 숙인 채 걷다가 내가 마치 수행자(修行者)가 된 듯한 착각에 빠져드니
수행(修行)도 나에게는 좋은 인연이 되는가 보다.
숲 속에 핀 등골나물 한 송이도 무심코 지나쳐버리지 않으려는 건 욕심일까?
법정 스님은 함부로 인연을 맺지 말고 진정한 인연이라면 최선을 다해서 좋은 인연을
맺도록 하고 스쳐가는 인연이라면 그냥 지나쳐버리라고 했다.
도를 깨우친 고승(高僧)은 인생에서 잡을 인연과 흘려보내야 할 인연을 구분하라
했는데 나는 이런 작은 미물(微物)에도 인연을 느낀다.
백수의 삶에서 아직도 욕심이 많은지 이런 꽃을 보면서도 행복을 느끼니 고승과 나는
서로의 방향이 다른가 보다.
사람과 꽃, 환경 등에서 늘 좋아함과 싫음, 깨끗함과 더러움, 아름답고 미움을 저울질
하던 나의 이분법적 모습은 늘 상대적 모순에 빠진 모습이었지.
이제는 상대적 행복과 상대적 불행을 생각해야 할 모양이다.
11;40
처음부터 된비알인 등산로는 능선에 올라설 때까지 급경사라 숨이 막힌다.
정상으로 갈라지는 길엔 산악회의 리본이 어지럽게 붙었고, 머리에서 흘러내린 땀이
눈에 들어가 쓰리다.
12;00
누군가 흰 페인트로 무촌봉이라 쓴 무명봉(無名峰)에 오른다.
이곳은 태초에 무엇이었을까?
이 봉우리 땅속에는 지금도 석탄덩어리가 있을까.
성주산도 가슴속에 꿈으로 품었던 산이었나.
산과 사람에 대해, 흘러가버린 과거에 대해 그리움을 찾다보면 내 자신을 찾게 되지.
백수의 삶이지만 이젠 숨 가쁜 삶과 박제된 삶에서 탈피하자.
살다보면 갈등과 욕심, 부질없는 일이 많이 생긴다.
버리고 비운다는 게 결코 쉽지는 않다.
가끔은 지혜롭게 살고 싶지만 성격이 급하니 그럴 수도 없다.
백수의 삶에서 문득 문득 떠오르는 상념들,
쉽게 버리기 힘든 상념들이 가끔 나를 괴롭히지만,
숲에서 미련 없이 나뭇잎을 버렸다가 풍성해진 나무를 보며 찌들고 지쳤던 삶에서
잠시나마 자유를 찾는다.
내면의 욕망은 무엇인가.
내 자아(自我)를 지배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황혼의 나이가 되면서 점점 초조해짐인가.
사람들은 이 나이가 되면 흔들림이 없어야 한다는데 가끔은 흔들려주는 것도
괜찮다.
천상과 지상을 이어주는 소중한 풍경은 한없이 먼곳에도 있겠지만 가깝게도 있지.
한참을 오르니 바다가 펼쳐지고 만수산, 오서산이 잠시 모습을 보이다가 슬며시
비구름 속으로 사라진다.
보령시내와 서해 고속도로가 아스라이 보이고 이마에 흐르는 땀을 훔치며 냉수
한 모금을 마신다.
12;20
20분을 더 오르니 610m봉 정상에 쓴 청주한씨 무덤이 외롭고 매미 한 마리가 운다.
비석을 세운지 얼마되지 않은 것 같은데 무덤은 벌써 황폐해지기 시작한다.
너무 높은 곳에 묘지를 써 관리하기가 만만치 않겠다.
살다보면,
세상의 이념과 제도, 허접스런 욕망, 부(富)와 명예라는 고정관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사후(死後)의 세계에서는 목에 매였던 모든 줄이 끊어질까,
이 무덤가에도 내년에는 새 매미가 울어대겠지.
< 흔적
여름의 나무들은 힘찬데
작년에 울던 매미들은 다 죽고
새 매미가 우는구나.
나고 죽는 생사(生死)는 흔적이 없고
매미소리는 같은데
흔적을 남긴 비석 혼자
산중에서 외로워하는구나.
어떤 삶을 살다가
저세상으로 돌아갔는지,
황폐해지는 무덤에
시선을 들이대기 민망할 따름이다. 석천>
'일월비비추'가 숲 속 여기저기에 피었다.
성주산 정상과 문봉산이 내 카메라 렌즈에 잡힌다.
오른쪽 아래는 사면(斜面)이 심하게 훼손된 폐광터 급경사 절벽이라 가급적 왼쪽으로
붙어 절벽지대를 지난다.
초록으로 물들여진 세상,
그 속에서 노랑으로 숲을 환하게 하는 '각시원추리'는 초록이라는 숲 속에서
색(色)의 반란을 일으켰다.
폐광으로 망가진 산을 복원 시키는 거대한 공사가 진행 중이고,
그 사이를 건너 성주산 정상으로 향한다.
위험한 절벽구간을 지나 소나무 숲으로 부드럽게 빨려든다.
폐광지역을 지나 양옆으로 빼곡히 들어선 소나무들,
곧추선 소나무 한 그루마다 줄기를 곱게 하늘로 올렸다.
13;34
20분을 오르니 오랜만에 나타나는 안부에 안내판이 서있고
장군봉 정상까지 500m 가 남았다고 안내를 한다.
삼거리를 지나 마지막 급경사 구간을 오르며 숨을 몰아쉰다.
이 가파른 길을 따라 30여 분을 오르면 성주산 정상이 나오겠지.
구름이 몰려오더니 삽시간에 산을 삼켜버린다.
조금 전 지나온 무촌봉은 구름 속으로 들어가며 실루엣으로 보인다.
사실 조망은 애당초부터 기대하지 않았다.
장맛비가 새들을 쫓아냈는지 그 흔한 까마귀 한 마리 보이지 않는다.
14;05
성주산 정상(677m)에 오른다.
사방 거칠 것이 없는 일망무제의 조망을 감탄할 사이도 없이 몰려오는 비구름에서
벗어나고자 하산을 서두른다.
까마귀가 사는 산이라는 오서산(烏棲山)과 매월당 김시습의 애절한 사연을 품은
만수산(萬壽山)이 하늘 금을 이룬다.
저 산을 언제 올랐지.
기억을 더듬으니 오서산은 2012. 4. 18일 올랐고, 만수산은 2013. 11.19일 올랐으니
4년이란 세월이 순식간에 흘렀구나.
비구름이 산을 덮더니 빗방울을 뿌린다.
우의를 꺼내려다 배낭에 다시 넣고 하산을 서두른다.
다행히 몇 방울 뿌리던 비는 금세 멈췄다.
이젠 여유롭게 하산을 즐겨야겠지.
먹구름이 하늘에서 드잡이질을 하는 모습은 기막힌 풍경이지.
한여름에나 볼 수 있는 풍경과 경쾌한 자연의 멜로디를 들려주는 비바람소리는
가슴속에 묻었던 묵은 체증이 확 사라지게 한다.
자연이 주는 신비로운 쾌감을 나도 모르게 느끼며 그 풍경 앞에 다가선다.
분명 나는 이 풍경에 홀린 게 틀림없다.
정말 아름다운 풍경을 만나면 머릿속이 하얗게 된다.
점점 다가갈수록 풍경에선 기를 뿜어내고 오서산 만수산이 구름 속으로 숨는다.
15;30
임도를 거꾸로 올라가다가 퍼뜩 정신을 차려 되돌아 내려간다.
되돌아가기엔 꽤 많은 길을 올랐지만 지루하게 이어지는 임도를 걷는다.
몇 km를 걸었을까.
숙소인 휴양림까지는 6km라고 하던데, 심연동 방향으로 무작정 하산을 한다.
저 산은 아미산인지 옥마산인지 다시 지도를 확인해야겠다.
몇 그루의 소나무가 경사면을 오르는 거북이 모습과 닮았다.
지루한 임도를 내려오자 물탕골의 물소리가 계곡을 울린다.
빗방울이 다시 떨어지고 심연동 마을길을 빠른 걸음으로 걷는다.
하늘엔 먹구름이 다시 요동을 치며 멀리서 천둥소리가 으르렁 댄다.
안내도에는
백운교~백운사~남서릉~610m봉~정상~물탕골~임도~성주리 8km 거리에
약 3시간으로 안내를 한다.
임도로 내려와 거꾸로 올라가다가 잘못된 것을 알고,
한 시간을 허비하면서 다시 내려온 시간을 감안해도 세 시간은 무리다.
산에서 8km를 세 시간에 주파를 한다고?
평지도 8km를 걸으려면 두 시간이 걸리는데 누가 작업을 했는지 축지법을
쓰는 모양이다.
16;00
빗방울이 떨어진다.
내가 마지막으로 출근을 한지 얼마나 되었을까.
간밤의 꿈에 정장차림으로 지점장 차량에 올라탄다.
백수의 삶을 즐기면서도 일을 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은행 지점장은 영업실적이 최우선이고 그 다음은 관리와 경영능력이다.
나이 32살에 구미 출장을 다녀와 과로로 쓰러지기도 했지만,
일과 영업에 대한 욕심만큼은 남보다 더 악착같았지.
먼 훗날 뇌종양 판정을 받아 차디찬 수술실에 누워 생사의 기로에 놓이기도 했지만
일에 대한 열정만큼은 대단했다고 스스로 자부를 한다.
그러나 몸이 크게 아파 생사의 기로에 섰다가 벗어나면 삶이나 일에 대한 관점(觀點)이
크게 달라진다.
삶의 우선순위가 일보다 건강이 우선이고, 야망과 출세보다는 작은 일상의 행복을
추구하게 된다.
과로로 쓰러진 후부터 죽기 살기로 산(山)에 매달리면서도 자유롭게 노는 것보다는
열심히 일하는 것이 더 즐겁고 신바람이 나기도 했다.
강제라도 쉬어야 할 시기에 무리를 한 탓인지 결국은 다운이 되어 뇌수술을 받고,
일이 주는 충족감에서 해방이 되고자 임금피크제도 피해 정년퇴직을 택한다.
출근하는 꿈이라,
버스정류장에 붙은 '스타필드 하남 STAFF'사원 모집광고를 보고 나도 모르게
내 뇌리 속에 박힌 모양이다.
건강이 회복되었다고 '워커홀릭'이 되는 게 아닌가?
예전에는 은행이나 회사 사무실엔 '노력 성실 근면'이라고 쓴 액자가 근엄하게
사람들을 내려다보며 무언(無言)의 압박을 가하기도 했지.
그 표어를 생각하니 참 촌스럽다는 생각이 들어 슬그머니 웃음이 나온다.
지금 내 나이에 일과 삶의 균형이라는 점을 생각하여야 하나?
그냥 내가 좋아하는 일이나 하고 산이나 다니면 삶의 균형을 맞출 필요가 없는데,
왜 출근하는 꿈을 꾸었을까.
숙소에 도착한지 5분도 지나지 않아 굵은 장대비가 쏟아진다.
조금만 늦었더라면 비를 속절없이 맞아 생쥐 꼴이 되었을 텐데,
비가 그치면 무지개가 서려나 난 엉뚱한 생각을 하며 술잔을 기울인다.
구름이 해 그림자를 삼킨 시간이라서 덥지는 않다.
땅의 열기가 사라지고 마음엔 여유가 흘러넘친다.
언제 이렇게 여유를 가졌었나 오랜만에 편한 여유를 갖는다.
여름밤은 제 영역을 허물어서 저녁을 받아들인다.
이래서 여름밤이 짧은가 보다.
산속의 밤은 깊어가고
가져온 술병들은 빈 병이 되어 방구석으로 밀려난다.
7. 7. 07;30
열린 창문으로 밤새 들리던 빗소리와 물탕골 계곡물소리는 내 마음을 깨끗하게 씻었다.
새만금 방조제를 지나 7월 5일 연육교가 개통된 무녀도를 향한다.
군산시청에서는 개통이 되면 많이 혼잡할 것 같다고 했지만 도로는 한가하다.
해무(海霧)가 심해 가시거리가 100m도 되질 않는다.
신비의 섬 무녀도에 들어가면 안개가 걷혀 제대로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안개가 너무 심해 무녀도 다리를 건너가 섬 입구에서 섬 트래킹을 포기하고 돌아나온다.
바닷가로 내려가며 만난 강아지풀에는 유리알 같은 물방울이 알알이 열렸다.
섬의 햇살이 슬그머니 꼬리를 내린다.
파도처럼 세월이 오고 세월이 가더니 섬은 육지와 다리로 이어졌다.
바닷가로 내려가 발걸음을 옮긴다.
해무 속에 부드러운 바닷바람을 맞으며 해안을 걷는다.
여기엔 무슨 애절한 사연이 있어 무녀도(舞女島)일까.
나는 그냥 해무(海霧)속의 그림이 되어간다.
10;00
안개 속 바닷가에는 아무도 오지 않고 우리 일행뿐이다.
갈매기도 별 볼일 없는 것을 눈치 챘는지 사라지고 바닷물도 빠르게 사라졌다.
썰물인지 밀물인지 바다에 대해 전혀 모르는 내가 판단을 할 수 있을까.
바다를 정면으로 바라보며 고함을 지른다.
인간 세상에 찌든 숨을 내쉬며 또 한 번 함성을 지르니 비로소 마음이 편해진다.
14;00
모세의 기적을 연출하던 무창포 바다는 갈라지지 않고 바다는 밀물이 되어 금세 밀려든다.
2016. 7. 6~7. 보령 성주산을 다녀와서
석천 흥만 졸필
'여행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느림의 미학 314 제천 천등산(807m)의 범아일여(梵我一如) (0) | 2017.03.27 |
---|---|
느림의 미학 313 노인지반 <설악산 토왕성폭포 890m> (0) | 2017.03.27 |
느림의 마학 311 잡초의 미학 <옹진군 덕적도 비조봉 292m> (0) | 2017.03.27 |
느림의 미학 310 지~~똥!! 속리산 문장대(1,054m) (0) | 2017.03.27 |
느림의 미학 309 포천 비둘기낭 폭포와 주상절리 (0) | 2017.03.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