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느림의 미학 439 암(癌)과 두 개의 봄

김흥만 2019. 4. 16. 20:43


2019.  4.  15.  06;30

영상 3도까지 떨어진 새벽 기온은 온몸을 움츠리게 한다.

얼굴을 때리는 찬바람에 머릿속은 맑아지고, 폰의 메모를 보니 오늘 친구가 신우암

수술을 받는 날이다.


숲으로 들어서며 수술에 대한 격려메시지를 보내니 잘 받고 오겠다고 바로 회신이 오고,

기쁜 소식을 전해준다는 '금붓꽃'을 만났으니 수술이 잘되겠다. 



사람들은 봄이 오는 4월을 환희의 달이라 한다.

그러나 시인 'T.S 엘리엇'은 '황무지'라는 시에서 4월은 가장 잔인(殘忍)한 달이라 했다.

겨울은 따뜻했고 4월은 봄비가 메마른 뿌리를 흔든다며 4월은 잔인한 달이라고 하는 거다.


꽁꽁 언 겨울 땅속을 견딘 마른 뿌리가 땅위로 올라와 꽃을 피우고 역동적인 생명을

느끼는 시간이 과연 잔인한 시간일까.

그의 표현대로라면 숨죽이고 숨어있으면 생명은 부지되니 어쩌면 겨울은 망각의

늪인지도 모르겠다.


봄비가 내리고 메마른 뿌리에서 싹이 움트고 꽃이 피는 작은 생명들이 목숨을

부지하여야 하는 치열한 생존경쟁에 돌입하는 존재로만 보는 사람들이 있기에 같은

4월을 가지고 사람들은 두 개의 봄을 말한다.



나이가 종심(從心)이 가까워지고 친구들이 하나둘씩 병(病)으로 무너진다.

한 친구는 췌장암 투병생활 중 호스피스 병원으로 옮겼고, 또 한 친구는 지금 이 시간

수술을 받으며 생사(生死)의 갈림길에 선 경계인(境界人)이 되었다.


들과 산에는 새 생명들이 환호성을 지나며 연둣빛으로 변해가고, 누군가는 생사가

걸린 잔인한 달이 되니 이번 봄은 나에게도 두 개의 봄이라는 생각이 든다.


홍혜걸 박사는 산(山)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정의 한다.

등산(登山)은 땀 흘리고 운동하는 산(山)길이며, 입산(入山)은 궁지에 몰렸을 때

구원을 강구하는 길이라,

즉 통즉등산(通卽登山)이요, 궁즉입산(窮卽入山)이라는 거다.


암(癌)이란 글자를 파자(破字)하면 재미있는 조합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입이 세 개가 있어도 땀, 오줌, 변이 산처럼 쌓여서 빠져나오지 못하니,

거꾸로 산(山)에 기대어(疒) 3개의 입에서 땀과 오줌, 변의 독소를 빼내라는 뜻의

표의문자는 참 절묘하다.


누군가는 봄이 왔어도 봄이 아닌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요,

또 누군가는 환희에 떠는 새 생명을 아름답다고 노래하는 봄날의 아침,


래전 생과 사의 경계에서 벗어난 나는 오늘도 터덜터덜 산길을 오르내리고

늦게 핀 벚나무의 무심한 꽃잎이 발밑으로 우수수 떨어진다.


                                                                 2019.  4.  15.

                                                                       석천  흥만  졸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