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느림의 미학 739 산불

김흥만 2023. 3. 4. 19:43

2023.  3.  4.

극심한 가뭄에 의해 건조주의보가 매일 내려진다.

지난 1~2월 중 전국의 산에서 149번이나 산불이 났고, 60%

이상이 남부지역에서 발생하였다는 뉴스가 나온다.

 

며칠 전에는 내가 2010. 9. 17일 올랐고, 퇴계 이황선생이 호를

'청량산인'으로 쓸 정도로 사랑했던 봉화 청량산이 화재로

불탔으며,

 

어제도 전국의 여기저기 20여 군데에서 산불이 발생하였고, 

오늘도 아침부터 산불소식이 뉴스를 장식한다.

 

양양과 강릉사이에 나는 양강지풍(襄江之風),

양양과 간성사이에 나는 양간지풍(襄杆之風) 등 영동지방의

독특한 기후현상에 의해 큰 산불이 나기도 하지만 통계상

사람들의 실수로 인한 화재가 더 많다는 거다.

 

도시에서 불이 나면 해당 건물의 물적피해와 인적피해가 발생

하지만 산에서 불이 나면 여린 수많은 생명체가 사라진다.

 

통계에 의하면 매년 지구의 땅 위에 떨어진 수백만 개의 씨앗 중 

5%도 안 되는 개체수가 싹을 틔우는데, 또 그중에서도 5%만이

1년을 버틴다는 거다.

 

그렇다면 1%도 안 되는 0.25%가 싹을 틔우고 살아남는다는 건데

그마저도 산불이 쓸어간다면 자연에 희망이 사라지는 게 아닌가.

 

자연에서 싹을 틔운다는 경이로움을 무시한 채 어제도 오늘도

산불이 나면서 산은 신음한다.

식물도 식물이지만 그 산을 의지하면서 사는 작은 동물과 새들의

처지는 어떻게 될까 걱정이 된다.

 

방화관리자 수첩을 어디에 두었더라.

수첩을 찾다가 지점장 시절 썼던 다이어리를 열어본다.

 

2005년 KB 국민은행 철산지점장으로 부임하고 2층에 올라가니

넓은 영업장에 달랑 세 명만 대부계에 근무하고 있다.

 

새로운 지점에 부임하면 내 스타일로 공사를 하는 게 체질화

되었기에 4개월을 공사기간으로 정하고 2층 영업장을 1층으로

통합시키는 공사를 진행한다.

 

하필이면 한창 공사 중인데 광명소방서에서 건물 방화(防火)

관리자에게 소방교육을 받으라는 공문이 왔다.

 

은행 지점 건물을 임차로 사용할 때는 방화관리자 정(正)이

건물주요, 부(副)가 지점장이지만, 

은행 소유건물일 경우 정(正)은 지점장이요, 부(副)는 관리담당

직원이다.

 

어차피 누군가 한 명은 의무적으로 방화교육을 받아야 하고,

건물관리 직원은 공사를 감독하기에 자리를 비울 수가 없다.

 

이참에 교육을 받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어 지점장인 

내가 이틀간 소방교육에 참석한다.

 

첫날 교육내용은 소화기 사용방법 등 방화관리에 필요한

제반사항이다.

 

소화기(消火機)에 대한 교육은 육군 현역으로 복무할 당시

부대에서 받았다.

당시 군부대에 배치된 소화기는 분말소화기, 포말소화기,

Co2소화기, 할론소화기 등 4종류였다.

 

'분말소화기'는 A, B, C급 즉 일반화재, 유류화재, 전기화재에

쓰는데 분말가루에 의해 불을 끈다.

 

'포말소화기'는 약제가 화합하여 생긴 거품을 사용해 불을 끄는

소화기로 유류나 화학약품의 화재에 적당하며 전기화재에

써서는 안된다.

 

'Co2소화기'는 이산화탄소를 용기에서 방출하면 '드라이

아이스'로 변하여 마이너스 78.5도까지 냉각을 시켜주기에

웬만한 병에 대고 쏘면 병이 순식간에 얼어터질 정도로 위력이

강하다.

 

이밖에도 장갑차, 탱크 등 군사용 장비와 항공기, 컴퓨터 등에

쓰이는 '할론소화기'가 있는데 오존층을 파괴하는 물질로 입증

되면서 생산과 판매가 금지되었다.

 

내가 언제 소화기를 사용해 봤을까,

소화기를 실제 사용한 것은 1978년 주택은행 중곡동지점에서

민방공 시범훈련 때였고,

 

두 번째는 잠실 주공아파트 3단지 내에 있던 주택은행 잠실지점

2층에서 벌집난로가 과열되어 사용하였던 기억이 난다.

 

소화기의 사용방법은 바람을 등지는 방향에 서서 안전핀을

제거하고 불의 가장자리부터 원을 그리며 서서히 안쪽으로

분사하면 되니 비교적 안전하고 간단하다.

 

메모장에 무엇을 썼을까,

다이어리를 들추니 뜻밖에 수관화(樹冠火) 및 지표화, 수간화,

지중화 등이 메모가 되었다.

 

지표화(地表火)는 산림 내에 쌓인 낙엽과 마른풀, 나뭇가지 등이

연소함을 말하며,

수간화(樹幹火)는 나무의 줄기가 연소하는 것,

지중화(地中火)는 지표의 탄소를 함유한 석탄질이나 낙엽 등

유기물질이 연소하는 것을 말한다.

 

이중에서도 지표화나 수간화로부터 수관부 즉, 잎이나 가지에

불이 닿고 불길이 세어지면 수관화로 발전하는데, 수관화가

한번 일어나면 화세도 강하고 진행속도가 빨라서 불을 끄기가 

어렵다고 메모가 되어 있기에 복습 겸 읽어본다.

 

작년 3월 울진삼척에 발생하였던 산불이나 요즘같이 건조한

시기에 발생하는 산불은 대부분 수관화(樹冠火)로 판단된다.

 

봄의 시작은 기다림이다.

서서히 물이 오르는 나무와 파란 새싹으로 색깔의 변화를 주는

작은 풀잎들은 매섭던 혹한(酷寒)의 겨울에도 기다림을 포기하지

않은 인내의 씨앗이었기에 이제 막 피기 시작하는 '앉은 부처'를

바라보며 산불에 대해 숙고(熟考)를 해본다.

 

                                2023.  3.  4.                                   

                                    석천  흥만  졸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