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느림의 미학 741 미선(尾扇)이는 잠꾸러기

김흥만 2023. 3. 26. 10:07

2023.  3.  26.  05;00

오늘은 미선(尾扇)이가 긴 겨울잠에서 깨어났을까?

미세먼지가 심해 이틀간 미선이가 있는 곳에 오르지 않았는데,

그곳이 가까워질수록 가슴이 설렌다.

 

아!

며칠간 25도를 넘나드는 가온량(加溫量)에 만족했던지 어둠

속에 흰꽃봉오리가 열린 미선나무가 보인다.

 

작년엔 3월 14일 개화를 하였는데 금년은 3월 26일 피었으니

계산상으로는 무려 10일 이상 늦잠을 잔셈이다.

 

암튼 미선나무는 꽃샘추위가 지나가자 겨울잠에서 깨고 적당한

시기에 꽃을 피웠으니 온도와 일조시간을 인지하는 메커니즘

(mechanism)이 제대로 작동한 모양이다.

 

카메라 셔터를 누르기 시작한다.

적외선 모드에선 셔터 스피드가 느려지면서 초점이 맞지를 않아

플래시를 켠다.

 

한참 미선나무꽃에 집중하는데,

새벽운동을 나온 두 아주머니가 신기한 듯 나를 빤히 바라본다.

 

밝은 대낮 햇볕을 받는 꽃을 촬영하지 않고 어둠이 가시지 않은

꼭두새벽 플래시를 터뜨리며 부산을 떠는 내가 조금 이상해

보였던 모양이다.

                                <  미선나무꽃>

 

06;00

먼동이 트고 세상이 밝아오며 연둣빛으로 변해가는 숲이 보인다.

오늘따라 찌르레기, 동박새 지저귀는 소리가 청량하고, 늙은

까마귀의 능청스러운 목소리가 골짜기에 메아리친다.

 

매화와 산수유 노란 꽃에 이어 다른 봄꽃들이 기지개를 켜며

세상에 나오기 시작한다.

이 봄에 꽃들은 어떤 순서로 나에게 다가올까.

 

알바 근무를 하는 사무실이 이전을 하자 많은 화분이 들어왔다.

화분 중에 봄에 제일 먼저 피는 동백꽃이 있어 약간 비릿한 향

(香)을 맡았는데 요즘 피는 동백(冬柏)은 동백 중 춘백(春柏)이다.

 

동백과 매화에 이어 산수유를 만났고, 뜰안의 목련도 활짝

피었으니 다음엔 개나리와 진달래, 철쭉, 아카시아 순서인가?

 

벚꽃도 만개할 준비를 끝냈고 복숭아와 살구꽃도 수일 내로 

피겠다.

                            <  산수유  >

10;00

뜰안에 핀 많은 봄꽃을 보며 환희에 온몸을 떤다.

 

사람들은 많은 걸 밖에서 찾으려 한다.

그러나 내 집 뜰안이 꽃들의 천국이니 굳이 밖에서 찾지 않아도

되겠다.

 

노란 민들레와 '개불알꽃', 그리고 '봄맞이꽃'도 피었고,

개불알꽃 사이에서 움이 튼 '소루쟁이'는 어느새 키가 30cm 이상

훌쩍 자랐다.

                                      <  소루쟁이  >

                                         <  개불알꽃   >

 

오늘은 이 꽃들을 보며 신났고 내일은 어떤 꽃을 볼 수 있으려나, 

하루하루가 신명날일만 남은 건가.

 

정치인들로 인해 혼탁해진 인간세상과 달리 자연이라는 세상은

정해진 자기의 시간에 맞춰 흔들리지 않고 소박하게 변해가기

시작한다.

 

잠시 다양한 사람들의 삶과 마주치며 취했던 나의 행동을 반추

(反芻)해본다.

 

 한 송이에 설렘을 느끼고, 만나면 반갑고, 그 꽃이 지면 다시

내년을 기대하는 나의 삶은 무엇일까.

어쩌면 진정한 나를 찾아가는 길인지도 모르겠다.

 

삶이란 한 사람의 위대한 여정이다.

그 과정에서 아름다운 꽃을 만나 촬영을 하는 삶은  여유 있는 

삶이 되리라는 생각을 하며 컴퓨터 자판을 두드린다.

 

                               2023.  3.  26.

                                    석천  흥만  졸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