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12. 2. 09;00
어느새 12월,
금년의 마지막 달이다.
탁상용 달력에서 11월을 넘기고 마지막장을 보며 세월
참 빠르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요즘은 달력 트렌드(trend)가 많이 달라졌다.
벽에 거는 달력은 식당 등 요식업소에서나 볼 수 있고,
매일 한 장씩 뜯어내는 일력은 사라졌는지 잘 보이지 않는다.
12월은 비움의 달이다.
오늘은 무엇을 해야 할까.
개불알꽃이나 봄맞이꽃은 하고현상(夏枯現象)으로 가을꽃은
낙엽과 함께 일제히 사라졌다.
그 꽃처럼 사라질 수 없는 게 사람이기에 서울숲으로 가는
전철에 오른다.
10;10 서울숲
성수동 옛 경마장 터에 '서울숲'이라는 공원이 생긴 지 13년이
되었다는데 처음 왔으니 기대감에 은근히 가슴 설렌다.
이 땅에 경마장이 있었다.
그리고 골프장과 정수장, 레미콘 공장이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멋진 공원이 들어서다니,
세상이 바뀐 것을 상전벽해(桑田碧海)라 했던가?
나는 원적(原籍)이 충북 진천이지만 본적(本籍)이 성동구
성수동 2가로 이곳에서 불과 10여분 거리이다.
젊은 시절 성수동에서 살았고,
성수동은 염색공장과 철공소 등 규모가 작은 공장이
많았었는데, 이렇게 동네가 변하다니 나에게는 경천동지
(驚天動地)가 맞겠다.
바람이 차다.
금세라도 눈이 쏟아질 듯 하늘엔 눈구름이 오간다.
얼마 전 서울숲 트래킹을 제의했고 오늘 무려 19명이나 모였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금년 53년이 되었다.
이젠 반세기가 넘는 세월동안 꾸준히 우정을 나누는 친구들
얼굴만 봐도 행복하다.
인간사회에서 50년 넘게 이어지는 인연은 매우 드물다.
물론 학연(學緣)으로 맺어진 인연이라 그럴 수가 있다고
하지만 동기동창이라도 다 같은 친구는 아니다.
친구라면 늘 만나고 치열하게 서로를 검증해야 인생말년까지
함께 할 수 있다.
1968년 수업시간 정재탁 선생님의 '헤겔의 변증법'에 대한
열강을 들었고 그 내용을 지금도 기억한다.
정반합(正反合)이라,
사전적인 의미는 판단과 그것에 모순되는 판단, 그리고
그 두 개의 판단을 종합해 보다 높은 판단에 이르는 변증법적
논리의 세 단계를 말한다.
독일의 철학자 '헤겔'은 '변증법'에서
기본적인 구도는 정(正 These)이 그것과 상반되는 반(反
Antithese)과의 치열한 갈등을 통해 정(正)과 반(反)이 모두
배제되고 합(合 Synthese)으로 초월(超越)한다고 설명했다.
쉽게 풀어 설명을 하자면
기존부터 유지되어 오던 정(正)에 대해 이 정(正)을 부정하며
새로운 상태를 제시하는 것을 반(反)이라 한다.
반(反)은 모순을 극복하였다고 하나, 이 세상 모든 물체는
모순적인 면모를 지닐 수밖에 없으므로 버릴 것은 버리고
취할 것은 취하며 합(合)으로 나아간다.
그러나 합(合) 또한 모순적인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어 다시
정(正)이 되는데 이런 식으로 반복하다 보면 진리에 가까워질 수
있다는 것이 정반합(正反合) 이론이다.
'카를 마르크스'는 여기에서 정과 반의 화합에 초점을 둔
변증법적 유물론과 유물사관의 이론적 배경으로 활용을 했다.
친구들과 우정의 관계를 거창하게 정반합이라는 변증법에
대입할 필요는 없으나,
지난 50년 넘는 세월, 옆에서 치열하게 싸우고 논쟁하고
합(合)을 이뤄 우정을 유지하고 있으니 이 우정이야말로 진짜
검증된 변증법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살아가면서 동창이라는 학연을 지울 수는 없다.
그러나 동창은 바로 친구라는 개념에 대해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자주는 아니지만 수십 년 동안 관계가 단절되었다가 느닷없이
청첩장이나 부음(訃音)을 보내 난감할 때가 종종 있다.
나는 그런 경조사에 매우 냉정한 편이다.
따라서 아무리 동창이라도 살아서 나타나지 않았으면
죽어서도 나타나지 말라고 공식적으로 말한다.
물론 나의 의견에 반대(anti)하는 친구도 많다.
오죽하면 살아서 나타나지 못하고 죽어서나 나타나느냐고
동정론을 펼치는데 그런 말은 허세에 가까운 괜한 말이 아닌가.
11;20
봄, 여름, 가을이 좋다는 서울숲공원에 하필이면 가장 황량한
겨울에 왔을까.
얼마 전 한 친구가 서울숲이 너무 좋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가까운 곳에 있어도 가보지 못했으니 궁금할
수밖에 없다.
오래전 임금의 사냥터였고, 1908년 서울 최초의 상수원
수원지였으며 경마장, 골프장이 있었던 서울숲을 걸었다.
서울숲은 영국 하이드 파크(Hyde park)와 뉴욕 센트럴 파크
(Centarl park)에 버금가는 서울의 웰빙공간으로 5,000여
시민의 기금과 봉사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면적이 480,994㎡, 약 145,500평 정도로 꽤 큰 공원이다.
2005. 6.18 개장된 후 오늘 처음 왔으니 내가 늦어도 한참 늦게
왔다.
찬바람에 지쳤는지 눈구름은 사라지고 점점 맑아진다.
메타쉐콰이어와 은행나무에 새싹이 돋고 화사하게 벚꽃이
필 때 다시 찾으리라는 생각을 하며 트래킹을 끝낸다.
12;00
인생이란 잠시 머물다 가는 삶이라 하는데 삶에 정답이
있겠는가.
2시간의 트래킹을 술 한잔으로 마무리하는 게 정답이겠지.
굳이 지란지교(芝蘭之交)라는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친구가
가까이 있고 오래된 친구가 많으면 많을수록 행복한 건
사실이다.
또한 친구는 많이 있을수록 좋겠지만 참다운 벗은 그렇게
흔하지 않다.
자기의 이익만 탐하고 계산에 밝은 친구보다 사람 냄새나는
친구가 좋으니 나도 나이가 먹긴 먹었나 보다.
좋은 친구와의 인연은 서로 함께 노력해야 유지가 되는 법,
이 친구 저 친구의 말을 들으며 즐겁고 건강하게 산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만은 아니다는 생각이 든다.
2023. 12. 2. 서울숲에서
석천 흥만 졸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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