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

느림의 미학 802 청주 상당산성의 각시붓꽃

김흥만 2024. 4. 28. 13:12

2024.  4. 25.  06;00

상당산성 국립휴양림 숙소 창문을 연다.

 

솔향기가 콧속으로 솔솔 들어오고 계곡 물소리에서 발생한

알파波(alpha wave's)와 함께 들이마시니 정기신(精氣神)이

맑아진다.

 

08;20

상당산성으로 들어서며 폐부를 활짝 열어 청량한 산소를

무제한 들이마신다.

 

솔바람 소리, 솔향기와 함께 느끼는 숲의 냄새는 나를

선인의 경지에 오르게 해 줬다.

무협소설에서 하늘을 날아다니는 주인공이 바로 이런

기분일까.

 

산성(山城)은 적의 침입에 대비해 전투에 유리한 산을

이용하여 쌓은 성을 말하는데,

 

내가 다녀본 금정산성, 남한산성, 강화산성 등이 포곡식

산성이고,

청주시 동쪽 상당산을 감싸는 상당산성 또한 포곡식(包谷式)

산성이다.

 

포곡식이라 함은 옥수수 알갱이처럼 돌로 성벽을 쌓아

계곡을 감싸며 산지의 능선을 따라 축조하는 방식을

말하며,

 

또 다른 형식의 '테뫼식 산성'은 산정상부를 중심으로

성벽을 두른 것으로 시루성, 머리띠식 산성이라고도

하는데, 부여의 증산성, 청마산성, 함안의 성산산성 등이

이에 해당한다.

 

상당산성의 둘레는 4.2km에 달한다.

동문, 서문, 남문의 3개 문과 2개의 암문, 치성 3개소, 수구

4개소가 남았다고 안내판에 쓰여있는데,

 

김유신의 아들 김원정이 쌓았다는 설과,

선조 29년 임진왜란 당시 원균이 급히 산성을 고쳐 쌓았다는 

설이 있다.

 

상당산성 휴양림 여직원은 4.2km를 종주하는데 1시간이면

된다고 안내했다.

평지도 아닌 산능선을 오르내리는 4.2km를 한 시간이면

종주가 가능하다는 설명은 진실일까, 허풍일까.

 

암튼 허풍에 가깝지만 산성 분위기와 공기가 너무 좋아

진천 농다리와 초평호 미르 출렁다리를 포기하고 산성을

종주하기로 한다.

 

남문으로 불리는 '공남문 지붕'이 금세라도 하늘로

치솟을 듯 날개를 활짝 벌렸다.

 

지붕의 끝이 하늘로 올라갔으니 '골칫거리 형태'이다.

기와지붕은 대개 '소청지붕', '오지지붕', '다포지붕'

'맞배지붕' 형태인데,

여기 공남문의 형태는 전형적인 팔작지붕으로 보인다.

 

대개는 팔작지붕과 맞배지붕 형태를 따르는데, 광화문

월대는 특이하게 '우진각 지붕' 형식이 사용되어 여기와는

격이 다르다.

 

주심포식, 다포식, 익공식 건물의 형식에서 산성을 방비

하고자 좀 더 강력한 형식을 따른 거로 보이는데

남한산성의 서문(西門) 보다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참고로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의 기둥은 배흘림기둥이요,

건물은 고려시대 건축 양식인 '주심포 양식'이다.

 

즉 기둥과 지붕을 체결하고 지탱시켜주는 연결고리인

'공포'를 기둥 위에만 배열하는 주심포 양식은 우리나라에서

부석사 무량수전과, 예산 수덕사 대웅전, 안동 봉정사 

극락전으로 단 3채만 남았다고 한다.

 

이에 반해 조선시대 건축물의 트렌드였던 '다포양식'은

기둥이 없는 곳에도 공포를 배열한 경복궁 근정전과 성불사

응진전이 해당한다.

 

 

기둥은 반듯하고 기둥뿌리는 굵고 위로 가면서 직선 모양의

'민흘림'을 썼다.

 

개심사의 중간 정도의 직경이 크고 위아래로 갈수록 직경을

점차 늘려 만든 '배흘림'형식의 기둥과 구례 화엄사의 '도량주'

기둥과 대비가 된다.

 

낙가산편에서는 사람의 품격 즉 성현영준호걸(聖賢英俊

豪傑)에 대해 논했다.

건물에도 격(格)이 있는데 요약하면 '전당합각재헌루정

(殿堂閤閣齋軒樓亭)'이다.

 

전(殿)은 대궐이나 사찰, 성균관, 향교에서 많이 쓰는데,

임금이 정무를 보는 공간인 근정전, 인정전,

사찰에서 부처님을 모신 대웅전,

성균관 및 향교에서 공자의 위패를 모신 대성전이 해당한다.

 

당(堂)은 사람을 모시는 건물로 성균관의 명륜당, 사찰의

조사당(祖師堂) 등이 해당되며,

 

합(閤)은 정승들이 정사를 보는 다락방 문 아래라는

뜻으로 운현궁 흥선 대원군이 합하(閤下)라는 호칭을

썼으며, 고려시대에도 고위관직에 오른 자를 합하로 불렀다.

 

각(閣)은 특정한 고급관료에 대한 존칭으로 지금은 쓰지

않지만 예전엔 대통령과 장관, 장군들에게 각하라는

존칭을 쓰기도 했다.

 

재(齋)는 보통 일상생활이나 공부를 하는 공간으로 낙선재,

헌(軒)은 대청마루가 있는 동헌(東軒), 오죽헌(烏竹軒),

루(樓)는 바닥이 땅에 떨어진 마루를 말하는데 광한루, 죽서루,

 

정(亭)은 말 그대로 자연경관을 감상하면서 한가로이 놀거나

휴식을 취하는 압구정 등 정자(亭子)를 말한다.

 

건물의 격에 따라 전하(殿下), 저하(邸下), 합하, 각하로 부르며,

중국에서는 한 단계 더 높여 황제 앞에서는 섬돌 폐(陛) 자를

폐하(陛下)로 쓰기도 했다.

 

 

 

조금 가파른 성벽길이 나온다.

두 번씩 끊어서 코로 들이마시고, 두 번씩 입으로 내쉬며

복식호흡을 한다.

 

사람의 몸은 생명체요 즉 생령(生靈)이다.

정(精)은 몸뚱이요, 신(神)은 마음이며 여기에 기(氣)가

들어가면 바로 살아있는 생명체가 되기에 동의보감에서도

이를 삼보(三寶)라 했다.

 

 

기(氣)라,

기는 호흡이고 숨을 쉬는 거다.

호흡은 들숨과 날숨이 조화를 이루어야 좋은 호흡이 된다.

 

기가 막히면 병이 되고, 기가 나가버리면 몸뚱이는

시체가 되며 정신은 귀신 즉 사령(死靈)이 되는 거다.

 

나는 요즘 투병 중인 친구들과 자주 대화를 한다.

특히 숨을 잘 쉬는가, 밥을 잘 먹는가, 마음이 편안한가를

잘 묻는다.

 

의사가 아니라도 이 나이쯤 되면 목소리만 들어도 경험에

의해 대충 어떤 상황인지 감을 잡기 때문이다.

 

나 스스로도 가끔 쾌식(快食)과 쾌변(快便), 쾌면(快眠)이

잘되고 있는가,

즉 잘 먹고, 잘 싸고, 잘 자고, 자주 긴장하는가,

스트레스 관리는 잘하고 있는가 체크 해본다.

 

이리저리 구부러진 성벽길을 걸으며 동적명상(動的冥想)

으로 긴장을 푼다.

 

긴장을 풀어야 마음이 이완이 되고 여유가 생기는 법,

어느 현인(賢人)은 비우면 채워지고, 채우면 비워진다고

했다.

 

채우기만 하면 병이 생긴다.

위장에 음식물이 차 있으면 식체가 되고 담적병이 온다.

대장에 똥이 차고 빠지지 않으면 변비가 되고,

담낭에 찌꺼기가 머무르면 담석증이 된다.

                        <    뜰 보리수   >

 

그래서 간, 심장, 폐, 비장, 신장 등 오장이 채워질 때,

담낭, 소장, 위장, 대장, 방광, 삼초 등 육부가 비워져야

몸이 편안해진다는 거다.

 

일행 중 한 친구가 고관절이 아프다고 하는데,

몸이 일부 막혔는지도 모르겠다.

 

통증이 온다면 기혈이 통하지 않는다는 뜻이고

통즉불통(通卽不痛)이라 기혈이 통하면 아프지 않다고 했다.

 

막히면 통증이 오고 안 풀리면 마비가 오는 법,

예전 나도 뇌종양으로 마비가 왔을 때 밤을 홀딱 지새울

정도로 엄청 아팠다.

 

09;00

오랜만에 '조개나물'과 '병꽃나무'를 만났다.

                             <   조개나물   >

                                   <   병꽃나무   >

 

09;00

친구들과 2일째 등산과 여행을 한다.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친구는 제2의 자산이라

했다.

 

그러나 이 나이가 될 때까지 곁을 지켜주는 친구는

제2의 자산(資産)보다도 더 소중한 보물(寶物)이 아닌가.

 

 

서로 다른 환경에서 세월을 보냈지만 기쁨과 슬픔의 시간을

함께 겪었던 친구들과의 16년째 이어오는 산행과 여행은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경험이 될 뿐만 아니라 이런

순간들이 쌓여 황혼의 값진 삶을 만들어준다.

 

우정은 오래 겪어봐야 단단해지고 성숙해진다.

유용성이나 쾌락, 계산상으로 만나는 우정은 금세 깨진다.

 

산성길을 종주하며 장난과 농담으로 한 달 치 웃음을 

웃었다.

 

09;20

산성안쪽에선 소나무가 송홧가루와 솔향기를 뿌리고 성벽

아래에는 복숭아나무가 지천이다.

 

때를 놓쳤지만 제때 왔더라면 무릉도원의 맛을 제대로

봤겠다.

 

'각시붓꽃'을 만났다.

 

이번 봄엔 금붓꽃, 각시붓꽃, 붓꽃을 만났으니 마비된 팔이

많이 풀려 수십 년 잡지 못했던 붓을 잡을 수 있으려나.

 

물론 망상(妄想)에 그치겠지만 붓꽃을 보고 희망을 가질

정도로 절박한 나의 심정을 그 누가 알리오. 

                           <   각시붓꽃   >

                     <   황산숲길에서 만난 금붓꽃   >

                        <  4.27 황산숲길에서 05;00에 만난 붓꽃   >

 

이리저리 꾸불꾸불 이어진 산성길,

직선보다 곡선이 아름다운 길, 

 

소실점이 보이지 않는 이 성벽을 쌓으며,

숱한 희생과 고생을 한 민초들의 노고를 생각한다.

 

산성 안에 호수가 있다니,

내가 걸어온 산성자락을 반영(反影)으로 물속에 담았다.

시간이 정지한 호수는 가히 명경지수(明鏡止水)로다.

 

09;50

출발지인 공남문으로 오르는 고갯길에서 노란

'미나리아재비'를 만났다.

 

봄꽃으로 보라색 개불알꽃과 벚꽃, 봄맞이꽃 등 하얀 꽃이

많이 있지만 노란색꽃이 유난히 많아 보인다.

 

강혜순 교수의 '꽃의 제국' 저서에서는 우리나라에서 피는

3,600여 종의 꽃 중 하얀색 꽃이 약 32%, 빨간색이 약 24%요,

노란색이 21%라고 했다.

 

개나리 등 노란 꽃들은 대개 잎이 나오기 전에 꽃이 피는데,

남은 양분으로 꽃을 피우고, 새 잎도 만들어야 하기에

비교적 에너지가 덜 드는 노란색을 선택한다고 한다.

 

기온이 낮은 초봄에 활동하는 '등에' 등 파리류가 좋아하는

색은 노란색으로,

꽃들은 생존전략으로 노란 꽃을 피운다고 하니 우매한 내가

자연의 오묘한 철학을 어찌 다 알까.

                           <   미나리아재비   >

 

또한 초여름에는 쥐똥나무, 때죽나무,  산딸나무 등 흰꽃이

많이 피고,

 

가을에는 투구꽃, 벌개미취, 쑥부쟁이, 배초향 등 보라색 꽃이

많이 피는 건 개미, 나비와 벌을 유혹하기 위한 자연의

지혜라는 거다.

 

 

 

10;00

오를 때 보지 못한 '겨우살이'인가,

나뭇가지에 뿌리를 내린 기생목(寄生木)을 발견한다.

 

겨우살이로 보이지만 겨우살이와 일반적인 형태가 달라

무엇이라고 말을 못 하겠다.

 

숙주에게 침공당한 나무의 건강상태가 좋지 않아 보인다.

어쩌면 수많은 범죄자가 국회에 입성하여 나라와 국민에게

빨대를 꽂고 피를 빨아먹는 거와 무엇이 다르랴.

 

짧은 일정의 낙가산 산행과 상단산성의 종주를 끝내고

일상으로 돌아간다.

  

                        2024.  4.  25.

                            석천  흥만  졸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