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523

느림의 미학 834 가죽나무는 피를 흘리고

2024.  9.  10.  04;30가로등불 아래 산길이 휑하다.좁았던 산길이 넓어지고 풀냄새가 진동을 한다. 둘레길로 합류하는 들머리 좁은 길도 넓어졌고,어제까지 활짝 웃던 '삼잎국화'가 싹둑 잘려나갔다. 산길가에 무성하게 자라고 있던 바랭이, 까막사리, 사데풀, 기름새, 붉은서나물과 지칭개도 사라지고,이슬 맞아 윤슬을 반짝이던 '털별꽃아재비'도 다 사라졌다. 털이 많은 잎과 별꽃을 닮은 꽃의 생김새 때문에 '털별꽃아재비'라는 독특한 이름을 얻은 6~7mm에 불과한 작은 꽃이지만 왕성한 번식력을 싫어하는 농부들은 이 꽃을 '쓰레기풀'이라고도 불렀다.  지독한 여름더위 속에서도 최선을 다해 꽃을 피우고 또 피웠던 작은 기적을 인정하지 않고,작업인부들은 산길을 정리하며 거추장스럽다고 생각되는 풀과 나무들..

나의 이야기 2024.09.10

느림의 미학 833 삼잎국화와 시절인연(時節因緣)

2024.  9.  8.  04;00온몸이 선뜻하다.새벽기온이 제법 내려갔나 보다.나도 모르게 홑이불을 덮고 잤으니 말이다. 창문틀에 앉은 귀뚜라미가 처연하게 운다.한동안 주인행세를 하며 자지러지게 울던 매미는 어디로 사라졌을까. 잠결에 들리던 소리는 분명 소쩍새 소리였다.앞산에서 밤새도록 오음절(五音節)로 울어대던솔부엉이 소리가 그치자 갑자기 고요가 찾아왔다. 지금 기온 섭씨 21.7도,어제 낮엔 무학봉~매봉~남산으로 이어지는 숲길에서땀깨나 흘렸는데, 제법 시원한 바람이 창문을 타고 들어온다. 무더위로 사람을 무한대로 괴롭혔던 여름,엄청 지루하기만 했던 여름,열대야 신기록을 경신하며 도저히 사라지지 않을 것만같았던 여름도 이젠 지쳐가는가 보다. 05;00숲 속으로 들어서자 노란색 '삼잎국화'가 어둠 속..

나의 이야기 2024.09.08

느림의 미학 832 아! 꿈은 사라지고~~

2024.  9  1.  11시 30분응원과 함성으로 가득 찬 목동 야구장으로 들어서며 흥분된 가슴이 마구 띈다.사랑하는 내 모교가 제52회 봉황대기 야구대회 결승에오르다니 모든 게 꿈만 같다. 1루쪽 의자에 앉으며 나는 50여년 전 청년으로 변신하는데 성공했다. 12시 정각 애국가 제창이 끝나고 결승이 시작되었다. 우리가 선공이고 초구는 볼인데 갑자기 마음이 조마조마해진다. 야구팀 창단역사가 짧은 신생팀인 우리가 103개 팀이참여한 메이저 대회에서 청룡기 준우승팀인 강릉고와강팀인 대전고를 꺾고 결승에 오르다니 감개무량(感慨無量)하다. 2023년에는 청룡기 4강에 올랐고,언더독(underdog)으로 이번에는 결승에 오르며 돌풍의 주인공이 되었다. 수천 명의 고함소리, 응원소리, 박수소리에 나는젊은이가 되..

나의 이야기 2024.09.03

느림의 미학 831 소나기가 그리운 날

2024.  8.  25.  05;00뜨락으로 나오자 맑고 청량한 공기가 온몸을 감싼다.얼마만인가,그동안 바깥에서 안으로 들어와야 시원했는데,오늘 새벽엔 실내보다 바깥이 더 시원하니 쉽게 믿기지 않는다. 이 시간 온도는 섭씨 23.7도,밤새도록 울다 지친 매미가 침묵을 지키고,솔부엉이 울음소리가 매미의 빈 자리를 차지했다. 왕성하게 윙윙거리며 몸에 대들던 산모기 소리도사라졌다.처서(處暑)가 지나자마자 모기입이 진짜로 돌아간 모양이다. 폭염으로 달궈진 사위(四圍)가 계속 열을 뿜어대고,잠 못 드는 밤이 수십 일째 이어지자, 무더운 여름이 떠나지 않고 계속 머무르는 줄만 알았다. 귀뚜라미와 여치 등 풀벌레들도 더위에 지쳐 한참이나 노래를 멈췄었는데, 오늘따라 가을을 재촉하는 듯한껏 목청을 높이며 숲 속의 적..

나의 이야기 2024.08.25

느림의 미학 830 악, 깡, 땀의 MZ 충신과 간신

2024.  8.  11.  05;20높이뛰기 결승전을 시청하다 잠을 설치고 평소보다조금 늦게 숲길에 들어섰다. 그러고 보니 7월 26일 개막했던 파리 올림픽이 오늘 폐막일이구나. 악과 깡으로 뭉쳐진 태극전사들이 좋은 성적으로 메달을 딸 때마다 기쁨의 환호성이 나왔고,메달 획득에 실패해도 선수들의 흘린 땀방울과 노고에 대해 경의를 표했다. 예전 내 주치의는 머리 진단 후 스포츠 경기는 이기는 것만 보라 했다.수술 후에는 이기는 과정에 있는 경기도 보지 말고,완전히 이긴 경기만 보라고 하며 실질적으로 스포츠 관람을 금한 거다. 심장 기능은 지금도 청년급 기능이라 하면서도 스포츠를 관람하며 스트레스를 받거나 흥분하지 말라고 주의를 준다. 그래도 오랜만에 보는 올림픽 경기인데 안 볼 수 없어 가급적 이길 수 ..

나의 이야기 2024.08.11

느림의 미학 829 어둠 속에서 만난 '무릇'

2024.  8.  8.  04;40먼동이 트려면 아직도 한 시간이나 남았다.오늘은 숲 속에서 무엇을 만나려나 두리번거리며산길을 오른다. 고양이 한 마리가 숲 속으로 뛰어 들어가고,희미한 불빛 아래 활짝 핀 연분홍색 '무릇'꽃을 만났다. 어느 시인은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을 내려갈 때보았네"라고 했다. 그러나 때로는 어둠 속에서도 보이는 법,산길가 여기저기에 무리지어 핀 '무릇'이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마침 카메라에 플래시를 끼우고 나왔기에 '무릇'에앵글을 맞춘다. 렌즈는 상처가 났고, 배터리 끼우는 부분이 고장 났어도 부품이 단종되어 고칠 수 없는 카메라,15년 가까이 내손에서 떠나지 않은 삼성 카메라가이젠 낡을 대로 낡았다. 응급조치가 필요해 스카치 테이프로 여기저기 붙이며 이 카메라와 작별..

나의 이야기 2024.08.08

느림의 미학 828 임시현과 샐리의 법칙(Sally's Law)

2024.  8.  4.  05;30아침운동 중 '패랭이'를 보며 어젯밤 양궁 3관왕에 오른 임시현 선수를 생각한다. 올림픽 양궁 여자 개인전까지 금메달을 딴 임시현,세계 제1의 양궁 실력은 물론 174cm의 늘씬한 키와 수려한 미모를 보면 괜스레 기분이 좋아진다. 2022년 항저우 아시안 게임에 혜성같이 나타나이우석 선수와 함께 혼성전에서 우승하고,2020년 일본 도쿄 올림픽 3관왕을 자랑하는 '안산'을꺾고 금메달 3관왕을 달성하더니 이번 올림픽에서도유감없이 실력을 발휘한다. 전훈영, 남수현 선수 등 미인 양궁 삼총사가 출전한 단체전에서 임시현이 실수를 하면 전훈영, 남수현이 10점을 쏴서 안정적으로 게임을 운용했고 마침내 금메달을 땄다. 남녀 혼성전에서도 8점으로 실수를 하면 김우진 선수가 연속 10..

나의 이야기 2024.08.04

느림의 미학 827 무리

2024.  8.  2.지난봄 황산 숲길에 무리 지어 탄생한 관중(貫衆)이 어느새 많이 자랐다. 여러해살이풀 양치식물로 키는 1m가량 자라는데,식물 이름에 특이하게 꿸 관(貫), 무리 중(衆) 자를 썼다. 인제 방태산(1,444m)을 오를 때 2단 폭포를 지나면삼거리가 나온다. 좌측으로는 매봉령(1,213m)과 구룡덕봉(1,389m)을 거쳐 정상인 주억봉(1,444m)에 오르고,오른쪽으로는 바로 주억봉으로 오르는 지당골이나오는데 지당골은 관중(貫衆)이 숲을 이룬다. 지당골은 관중과 공작고사리, 미역고사리, 일색고사리, 검정개관중이 정글을 이루고 있어 영화 '아바타'의 배경보다 더 멋졌던 풍경이 생각난다. 무리를 지어 핀다는 뜻을 가진 분홍색 '무릇'을 작년에는 이 근처에서 찍었는데 요즘엔 통 보이지 않는..

나의 이야기 2024.08.02

느림의 미학 826 하늘빛

2024.  7.  30.  05;30예봉산 하늘 여명(黎明)빛이 붉게 물들어간다.여명빛보다는 아침노을이라 하는 게 맞겠다. 먹구름 사이로 하늘이 살짝 나오고 예봉산, 적갑산,예빈산 산자락도 이내 붉은빛과 보랏빛으로 물들기 시작한다. 장엄하게 보이는 붉은빛은 금세 사라지지 않고 한참 동안 내 눈길을 사로잡는다. 05;35모처럼 출근하지 않아도 되는 날 새벽,시간이 되자 태양이 예봉산 뒤에서 훌쩍 튀어나와 하늘가에 등장하더니 다시 먹구름 속으로 숨었고, 태양이 사라진 하늘가에는 맑은 고요만 흐른다.  아침노을과 저녁노을 중 어느 게 더 멋있고 좋을까?엄마 아빠 중 누가 더 좋으냐고 묻는 바보같은 질문을 스스로 하고 답을 구한다. 나는 남들보다 일찍 일어나 새벽부터 부산을 떠는새벽형 인간이다.  모처럼 양궁..

나의 이야기 2024.07.30

느림의 미학 825 빗소리

2024.  7.  24.  05;00요즘 제일 애매한 건 일기예보의 신뢰문제다.불과 30분 전인 4시 30분에 발표한 일기예보에 의하면 비는 그치고 맑음으로 나온다. 창문으로 보는 하늘에도 하현달이 떠있다.기상청 예보를 믿어야 할까,혹시라도 비가 쏟아지면 낭패를 당할까 의심이 강하게들어 우산을 챙긴다. 황산 숲으로 들어서자 매미들이 일제히 울어댄다.매미들이 울기 시작하면 더위가 본격적으로 시작한다는 건데 지금 울어대는 매미는 무슨 종류일까 귀를 기울인다. 해방감과 자유로움을 만끽하던 참매미, 말매미, 쓰름매미, 기름매미들 울음이 갑자기 뚝 그쳤다.  쏴아! 하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리더니 나무 잎사귀들이 파도를 만난 듯 일제히 갈라진다. '작달비'가 쏟아진다.하늘이 뻥 뚫린 듯 세차게 퍼붓는 작달비는 나..

나의 이야기 2024.07.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