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8. 25. 05;00
뜨락으로 나오자 맑고 청량한 공기가 온몸을 감싼다.
얼마만인가,
그동안 바깥에서 안으로 들어와야 시원했는데,
오늘 새벽엔 실내보다 바깥이 더 시원하니 쉽게
믿기지 않는다.
이 시간 온도는 섭씨 23.7도,
밤새도록 울다 지친 매미가 침묵을 지키고,
솔부엉이 울음소리가 매미의 빈 자리를 차지했다.
왕성하게 윙윙거리며 몸에 대들던 산모기 소리도
사라졌다.
처서(處暑)가 지나자마자 모기입이 진짜로 돌아간
모양이다.
폭염으로 달궈진 사위(四圍)가 계속 열을 뿜어대고,
잠 못 드는 밤이 수십 일째 이어지자, 무더운 여름이
떠나지 않고 계속 머무르는 줄만 알았다.
귀뚜라미와 여치 등 풀벌레들도 더위에 지쳐 한참이나
노래를 멈췄었는데, 오늘따라 가을을 재촉하는 듯
한껏 목청을 높이며 숲 속의 적요(寂寥)를 깬다.
풀숲으로 들아가자 신발이 금세 젖는다.
백로(白露)가 아직도 보름이나 남았는데 그새를 참지
못하고 밤새 이슬을 뿌려댔나 보다.
바랭이 잎 위에 또르르 굴러다니는 이슬방울이 가로등
불빛 받아 반짝거리는 윤슬이 되어 발을 적시는 새벽,
산들바람을 살살 맞는 나뭇잎도 사락사락 소리를 낸다.
발걸음 소리도 조심스런 숲길,
더위가 잠시나마 물러난 숲 속의 침정(沈靜)에 빠졌는데,
맞은편에서 통화를 하며 올라오는 어느 할망구(望九)에
의해 숲 속의 평화는 깨졌다.
폐부(肺腑) 깊숙이 새벽공기를 들이마신다.
바람이 그치고, 새벽하늘의 구름도 그 자리에 멈췄다.
바람이 잠잠해지자 나뭇잎도 침묵을 지키고,
솔부엉이도 소리를 잠시 멈췄다.
< 나도 샤프란 >
숲에서 벗어났다.
망월천 개여울에 놓인 징검다리 사이로 급하게 흐르는
물소리가 오늘따라 시원하게 들린다.
그렇게도 혹독하게 무더위를 뿌려대던 여름이 이젠
미련을 남기지 않고 물러나려는 모양이다.
06;30
운동 후 집에 들어오면 제일 먼저 냉장고를 열어
꿀꺽꿀꺽 냉수를 마시고, 땀으로 흥건히 젖은 옷가지를
벗어던진 다음 찬물로 샤워를 하고 대자로 드러누워서
에어컨 바람으로 몸에 남은 열기를 식혔는데,
오늘은 빙글빙글 돌아가는 선풍기의 부드러운 바람만
가지고도 내 몸이 식어 평화가 찾아왔다.
시인 '랜터 윌슨 스미스'는 그의 시(詩)에서
"큰 강물이 거센 강물처럼 네 삶에 밀려와 마음의
평화를 산산 조각내고,
가장 소중한 것들을 네 눈에서 영원히 앗아갈 때면
네 가슴에 대고 말하라, 이 또한 지나가리라!" 했다.
때가 되면 여름도 이렇게 지나가는 것을 내가 왜 그리
조바심을 냈던가.
사람의 힘을 더하지 않은 그대로의 무위자연
(無爲自然)에서 제행무상(諸行無常)은 수천수만 년
내려온 자연의 법칙인데 그것도 모르고 야속한
무더위에 짜증을 부렸던 내가 참 바보였다.
어제도 소나기가 한바탕 대지 위에 뿌려댔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말로 위로를 삼았던
이 여름도 서서히 끝이 보이기 시작한다.
이젠 지나가는 여름을 안타까워할 일도 없겠지만
검단산 위로 흐르는 먹구름에 대고 오늘도 한줄기
소나기를 뿌려달라는 염치없는 부탁을 하며 창문을
활짝 연다.
2024. 8. 25.
석천 흥만 졸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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