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느림의 미학 879 마지막 잎새

김흥만 2025. 3. 23. 18:24

2025.  3.  23.  05;00

지난주 3월 18일엔 폭설이 내렸다.

폭설이 겨울과 봄의 경계를 허물어뜨리더니

그 눈이 녹자마자 겨울은 소리도,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카메라를 메고 늘 다니던 곳에 올라

'미선나무'를 살짝 만져보았다.

 

미선나무 꽃눈은 여전히 잠자고, 꽃봉오리가

언제 열릴지 미동을 하지 않는다.

 

작년엔 3월 12일 만개를 했었다.

금년은 3월 23일인데도 혼돈의 인간세상이

싫은 건지 겨울잠에서 깰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뜰안의 산수유는 만개를 하였고,

청매화 가지에 딱 한송이 매화가 피었다.

 

해마다 이맘때쯤 되면 오후에 남서풍이

많이 부는데 오늘따라 새벽부터 바람이

많이 불어 카메라 초점을 맞출 수가 없다.

 

10;00

믹스 커피를 탄 머그잔을 들고 따뜻한

햇살이 들어오는 창가에 서서 커피 향을

음미한다.

 

LISZT의 'Hungarian Rhapsody'가

끝나고 손빈아가 부른 배호의 '마지막

잎새'가 흘러나온다.

 

배호가 현신한 듯 손빈아의 낮게 깔리는

중저음과 품격 높은 고음의 노래에 빠져

든다. 

 

  [   " 그 시절 부르던 잎 어느덧 낙엽

    지고, ~~ 사무친 상처길래 흐느끼며

    떨어지는 마지막 잎새~~

 

~참았던 눈물인가, 흐느끼며 길 떠나는

마지막 잎새~~♬  ]

 

많은 사람들이 1971년 11월 사망한 가수

배호를 사랑했고, 배호가 마지막 무대에서

부른 '마지막 잎새'라는 노래를 매우 의미

있는 곡으로 여긴다.

 

2002년 방배서지점 지점장으로 재직 시,

방송인 고 백남봉 형님과 함께 배호를

사랑하는 사람들 모임인 '배사모'에 여러 번

참여를 했고 많은 사람들을 알게 되었지.

 

2005년 2월 광명 철산지점장으로 부임을

하고, 지점장실 밖 화단에 심은 담쟁이

2 포기가 성장이 빨라 지점장실 유리창과

외벽을 완전히 감싸 고풍스러운 사무실이

되었다.

 

느닷없이 찾아온 뇌종양 선고,

그리고 그해 5월 뇌종양 수술을 받기 전날

유리창을 덮은 담쟁이를 바라보는 내 심정은

결코 무심하지 않았다.

 

저 담쟁이 잎은 내가 이승에서 바라보는

'배호의 마지막 잎새'가 될까,

아니면 '오헨리'의 마지막 잎새(The Last

Leaf)가 될 것인가를 생각하며 깊은 고뇌에

빠졌었지.

 

손빈아의 노래를 들으며 절망에 빠졌던

그 당시가 기억이 나고 엉엉 울고 싶은

생각이 든다.

 

이어서

손태진의 타인 '하필이면 당신과 나~',

양지은의 서글픈 '그 강을 건너지 마오',

 

전영랑의 '엄마손은 약손 아가배는 똥배',

임영웅의 '어느 60대 노부부의 이야기'를

듣고,

 

나훈아의 '♬붉은 산 노을 업고~여보게

쉬었다 가세♪'~~

'세월 베고 길게 누운 구름 한 조각'을

들으며 가슴이 뭉클해진다.

 

나이가 들어서 기억하는 추억은 감수성이

예민해졌는지 젊을 때와 다르게 느껴진다.

 

지금 듣는 노래의 가사는 하나하나

한 소절 매소절마다 한 편의 시(詩) 같은

깊이와 여운을 가졌다.

 

겨울이 지나고 만물이 소생하게 만드는

봄바람과 따사한 햇볕은 메마른 마음과

가슴을 열리게 한다.

 

다시 소리꾼 장사익의 애환이 서린

"♪연분홍 치마가~ 봄날은 간다♬"흘러

나온다.

 

이 노래들은 그냥 단순한 노래가 아니다.

봄바람과 함께 찾아온 아름다운 시(詩)를

들으며 머그잔에 남은 커피의 마지막

한 모금을 마신다.

 

                2025.  3.  23.

                   석천  흥만  졸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