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

느림의 미학 109 동두천 마차산<588.4m>의 마고할미

김흥만 2017. 3. 24. 22:07


2010.  6.  25

경기도 양주에 내려오는 설화 중에 노고산에 있는 '노고할미'는 몸집이 매우 커 

노고산과 불국산에 다리를 걸치고 오줌을 누었는데, 문학재 고개에 있는 큰 바위가

오줌발에 깨져 나갔다 한다.


하지만 노고할미는 순한 할머니여서 사람들한테 해를 끼치지는 않았다고 하며,

노고산성은 노고할미가 쌓았다고 전해지는데,

이곳 마차산에는 노고할미가 아닌 풍요와 다산을 기원하는 '마고할미'의 전설이 

있으니 마고할미는 누구였을까.

 

09;30

평일 아침 소요산역은 조용하다.

등산객은 우리뿐 휴일의 소란스러움은 간데없다.

 

오늘 올라갈 마차산을 바라보며 수입천을 건넌다.

 

등산 안내판에서 오늘의 등산 코스를 점검하고 결정한다.


신성교회를 들머리로 하고, 미디안 기도원으로 하산하는 종주산행으로 동두천역에서

서울행 전철을 탑승하기로 한다.

거리는 약 7km에 4시간 정도 소요될 것 같다.

 

전설속의 새인 봉(鳳)과 관련된 '봉동'이라는 특이한 지명을 가진 동네를 지나

신성교회 농구장의 등산로 입구로 들어선다.

 

초입부터 완전 깔딱이다.

고도 90~ 230m, 250~ 340m까지 된비알이니, 거의 250여 m를 높이는데 온 힘을

다 쓴다.

숨은 막히고 얼굴에 땀은 별로 나지 않는 체질인데도 오늘은 땀이 흘러 눈을 쓰리게 한다.

 

때론 급하고 유연한 완급(緩急)의 능선을 걷다보면 정상에 닿는데, 처음부터 급경사이니

오늘 산행은 땀 좀 뺄 것 같다. 

산이란 모름지기 완만하거나 급경사 어느 한가지만으로 만들어질 수는 없지만,

그래도 흙산 특유의 폭신한 감촉이 있어 걷기에 다소 편하다.

 

송충이 등 벌레가 끔직스럽게 많다 

한 걸음 한 걸음 숨이 턱에 닿을 만큼 거친 숨결을 내뿜으며 힘들게 발걸음을 떼어 놓는다.

이 산엔 오로지 우리뿐 적막만 흐른다. 


여기가 북망산인가,

월의 무상함 속에 자손이 돌보지 않아 망가진 무덤이 외롭다.


 

무덤 위에 망초가 몇 송이 피어 긴 세월을 기다리고,

차디찬 무덤가를  뱀무가 한 송이 덩그러니 지키고 있다.

 

수양매(水楊梅)라고도 하는데, 풀 전체가 식용, 약용으로 위궤양, 해소, 고혈압 등에 쓰인다.

이름이 희한하다 아무리 봐도 뱀눈보다는 아름다운데 오히려 수양매가 더 아름답다.

어느 학자는 수매양(水梅楊)이라고도 하는데, 어느 것이 맞는지 우매한 나로선 알 길이 없다.

 

수십 년 된 벙커가 나온다.

 

이곳도 격전지였겠지.

여기 동두천만 해도 전방지역에 들어가니, 유비무환의 자세로 만든 전투준비태세일까.


소요산 밑에는 주한미군  2사단이 긴 호리병처럼 늘어서 있어 천혜의 요새를 이루고 있는데,

역시 이 지역도 군사요충지인 모양이다. 

군데군데 마차산성의 흔적이 남아있다.

 

뒤늦게 핀 조팝나무의 꽃이 쌀로 뻥튀기 한 것처럼 다닥다닥 붙어 아름답다.

 

<"소상강 기러기는 가노라고 하직하고

강남서 나오는 제비는 왔노라고 현신하고

조팝나무에 비쭉새 울고 함박꽃에 뒤웅벌이요">

고전소설 <토끼전>에 나오는 한 대목으로 토끼를 꾀러 온 별주부기 육지에 올라와서

처음 보는 경치와 조팝나무를 들러보는 장면이다.

 

한창 꽃이 피었을 때 좁쌀로 지은 조밥을 흩뜨려 놓은 것 같다하여 조팝나무가 되었다.

쌀, 보리, 기장, 콩과 함께 <조>는 오곡에 들어 우리생활과 밀접한 곡식이다.

크기가 작기 때문에 통이 작으면 '좁쌀영감'이라고도 하고, 째째하다 싶으면 '좁쌀을 썰어

먹을 녀석'이라고 손가락질도 하였다.

 

이 나무는 약용으로 진가를 발휘하는데, 잎에 조팝나무산이라는 해열과 진통제 성분이 있어,
버드나무의 아세틸리산과 함께 대표적인 진통제의 원료이다.

즉 진통제의 대명사인 아스피린의 원료가 된다.

 

진한 분홍빛의 꼬리조팝나무, 작은 쟁반에 흰쌀밥을 담은 것 같은 산조팝나무,

연분홍색의 참조팝나무 등이 있는데, 멀리서 보면 이팝나무꽃과 비슷하다.

 

산자락 구비마다 꽃을 품었다.

시간은 조심스레 멈춘 듯 흐르니 어느새 시장기를 느낀다.



요염한 자태로 핀 중나리가 시간을 가두었다.

 

황홀한 빛깔에 취해 시간이 머무는 곳에서 잠시 멈춰 선다.

대개 7~8월에 피는 나리의 종류인데 일찍 피었다.


5~6월에 피는 조팝나무는 이제야 피었고, 한여름에 피는 중나리는 벌써 피었으니,

이 우매한 중생은 대자연의 깊은 뜻을 알리가 없다.

 

잠이 덜 깬 숲속의 엷은 안개 속에서 청아한 새소리가 적막을 깬다.

산에 오르며 삶의 의미는 무엇일까?

스쳐가는 바람이 땀을 식혀준다 .

 

11;10

이미 팬티까지 젖었고,

땀을 많이 흘리니 목이 마르다. 

직벽에 가까웠던 된비알이 끝나고 편안한 능선 길이 이어진다.

 

여느 산과 다름없이 졸참나무, 신갈나무, 오리나무, 물푸레나무 사이로 등산로가 굽이치며

흐른다.

숲길에 은은한 더덕향이 나는데 길게 자란 잡초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선두의 발걸음은 느려지지 않고, 난 뒤에서 여유를 찾으며 쉬엄쉬엄 걸으며 대자연을 본다.

졸참나무 밑 둥의 신비한 구멍에 물이 고여 있다.

원효대사의 심정으로 한 모금 마셔볼까.

 

자연의 신비와 강인한 생명력에 경탄을 한다.

 

          [   산  길

 

            산길 굽이굽이 돌아 주능선에 오르니,

            눈이 시리도록

            파란 쪽빛 하늘은 내려앉았다.

 

            신선이 사는 푸른 빛깔에

            초여름의 이곳은 초록이 지천으로 난무하고

            난 느릿느릿 초록의 시간을

            가슴과 눈에 품는다.                       석천   흥만 ]

 


된비알에 이어 편안한 길을 지나 다시 매우 힘든 길이 나온다.

밧줄을 잡아야 안전하게 오를 수 있는 길이다.


길게 이어지는 등산로의 험한 길은 굴곡진 우리네 인생 길과 같다.

 

숨이 깔딱깔딱 넘어 갈듯이 힘들다.

한 걸음 한 걸음씩 오르다 보니 어느새 9부 능선이다.

다들 정상에 가 있는데 정상에 먼저 갔음이 부러울까?

나는 까마득히 떨어져 정상을 향해 올라간다.

 

땀을 식혀주는 시원한 하늬바람이 온 몸을 감싼다.

초록의 향연 속을 느릿느릿 걸으니, 바삐 움직이는 도시에선 볼 수 없는 즐거움이다.

젊은 날엔 자연의 아름다움을 모르고 지났는데,

이제야 서서히 보이니 어느 덧 나이란 세월이 많이 흘렀나 보다.

 

급경사 된비알을 올라서니 갑자기 날카로운 바위들이 앞을 가로막는다.

돌을 별로 밟지 않고 여기까지 올라와 완벽한 육산이라 생각해

무릎보호대도 차지 않고 올라 왔는데 암릉을 오르려니 많이 힘들다.

뻰질 거리지 말고 유격훈련 시 제대로 배웠으면 이 정도는 쉬울 텐데 지난 세월이 아쉽다. 

 

정상 바로 밑 마지막 된비알의 흔적은 어떤 전설을 가진 성터일까.

 

작은 돌로 허리높이 정도로 쌓은 축대가 규모는 작지만 옛날 이곳이 봉화대로

이용되었다고 한다.

축대를 넘어서니 널따란 분지가 나온다.

 

12;30

정상(588.4m)이다. 

날카롭게 서있는 절벽 그 위에 정상표지석이 서있다.

정상은 절벽 위에 꽤나 푸짐하게  넓다.

공작산이나 황매산은 몇 명 서있기 힘들 정도로 좁았는데 이곳은 족히 100여 평은 넘겠다.

 

시간을 가두니 시간이 머문다.

 

거대한 바위가 벼랑을 이룬 정상에는 정상표지석이 있고, 표지석 뒷면에는 마고할미의 전설이

적혀있다.

 <다산과 풍요를 베푸는 마고할미가 세상만사를 어우르면서 이곳 수리바위에 앉아 옥비녀와

 구슬을 갈고 옷매무새를 고쳤다 >

그래서 갈마(磨)자와 비녀차(Ꟃ)를 붙여 磨Ꟃ山이라고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그러나 내가 가진 지도에는 馬車山으로 적혀있는데~

 

여기 정상석에는 갈마磨와  차자는 무슨 자인지 옥편을 찾아도 없으니 모르겠다.

이를 만들고 쓴 사람은 누구일까?

지방자치단체에서 조금만 성의를 보이면 바로 잡을 수 있을 텐데

아슬아슬한 벼랑에 올라서니 사방으로 막힘없이 조망이 터진다.

 

쪽빛 하늘엔 어느새 연무가 끼었고 연무 사이로 북쪽엔 한탄강 건너 멀리 고대산이 희미하게

보이고, 동으로는 소요산과 동두천 시가지,

남쪽엔 불곡산과 도봉산, 서쪽으로는 이름 모를 계곡 건너로 감악산이 뿌연 연무 속에

희미한 하늘 금을 만들어 내고 있다.

 

연두빛은 사라지고 위로만 차 올라가던 초록이 전부를 물들였다.

무심한 뭉게구름 아래 초록의 능선이 물결친다.

몇달 후에는 단풍의 물결이 아래로 하강하겠지.

뭉게구름이 뭉게뭉게 흐르지 않고 멈춰 마차산의 고즈넉한 분위기와 딱 어울린다.

 

서울이 34도까지 올랐다는데 여기는 몇 도나 될까.

시원한 산바람에 더위는 식혀지나 달궈진 얼굴은 계속 뜨겁다.

경호가 건네준 아이스 팩 한 장으로 열기를 식힌다.

 

막걸리 한잔 술에 인생을 노래하고, 이 얘기 저 얘기에 신선이 됨을 즐긴다.

 

주변의 나무들은 참나무, 서어나무에서 어느 덧 소나무들로 변해있고,

소나무들이 보내주는 피톤치드를 받으니  산행의 피로가 말끔히 사라져 버린다.

 

바람에 흔들리는 초록이 지천이다.

서두를 필요가 없으니 풍경을 보며 천천히 걷는다.

부드러운 바람이 온몸을 스친다.

 

하늘은 산을 품고 산은 사람을 품었다.

가파른 암릉에 수백 년 노송이 마차산을 품는다.

바위틈에서 인고의 세월을 지나 하늘로 승천하려는가,

하늘로 향한 꿈 틀임이 예사롭지 않다.

 

 

아마도 정상의 수리바위에서 옷매무새를 고치고 있는 마고할미를 지키는 수문장이 아닐까.

여유롭게 많은 상상을 해본다.

 

수천수만 년이 흐른 이 바위들은 어떤 전설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하다.

큼지막한 바위들로 병풍을 두른 듯 기묘한 모습이다.  

 

이곳 사람들은 <기차바위>라고 한다.

가로 세로 2m가 넘으며 앞쪽 바위가 기관차, 뒤의 두개가 객차라고 하는데

난 거대한 도마뱀으로 보인다.

<호명산>의 기차바위보다 규모가 장대하고 멋있다.

나는 이 바위에서 대자연의 신비를 다시 맛본다.

 

된비알을 내려 오다 바위틈에 세게 부딪쳐 무릎이 까진다.

통증이 심해 산행의 즐거움을 잠시 잊는다.

 

588 동네에 와서 재미는 못보고 힘만 쓰다 무릎만 까진다고 문성이 놀린다.

이산의 높이가 588고지라서 청량리 사창가인 '588'과 빗대어 놀리는 모양이다.


경호도 미끄러져 반바지에 구멍이 뚫려 긴바지로 갈아 입었고,

아무튼 잠시도 방심할 수 없는 미끄러운 된 비알이다.

 

댕댕이 고개와 간파리의 이정표도 보이고,

<간파리에는 옛날 마차산에서 딴 복숭아로 남편 목숨을 구했다는 아내에 관한 전설이

 전해진다 시부모에 대한 공경도 대단했다는 이 아내는 중병에 걸려 죽음에 임박한 남편

 목숨을 살리기 위해 약재를 구하려고 엄동설한에 마차산을 며칠 동안 헤매다가 산신령의

 현몽으로 복숭아 세 개를 구해 남편에게 달여 먹여 중병이 완쾌되었다>

라는 정성어린 이야기가 조정에 알려져 나라에서 정문(旌門)을 내린 '열녀청풍김씨지문

(烈女淸風金氏之門)'이 간파리 송산골 마을에 지금도 있다고 하는데,

오늘 하산은 반대쪽이라 다음 기회로 미루자.

 

15;00

때묻지 않은 마차산,

오늘 산행은 오로지 우리뿐 오래도록 훼손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험하지 않은 등산로와 작년에 떨어진 낙엽이 아직도 제법 남아 있어 흙길이 호젓하다.


여인네들의 분 냄새와 귀신 마스크도 보이지 않고, 체신 머리 없이 깔깔대는 웃음소리도

들리지 않으니 우린 전정 신선이 된다.


기도원을 지나 동두천역까지 약 4km 정도 되는 시멘트 포장길의 복사열에 얼굴이

화끈거리며 더위를 먹었는지 머리가 아파온다.

동두천역 대기 의자에 잠시 누워 하늘을 보니 마차산 위로 무심한 구름이 지나간다.



      [           생

   

         뭉게구름이 두둥실

         저 구름 처럼 살까.

         인생은 저 구름과 바람과 같을진대,

        

         산처럼 쌓인 짐 벗고

         세상 무거운 짐 훌훌 벗고 

         한세상 이렇게 살다 가는거지.      석천  흥만    ]

 


욕심으로 무거운 짐을 지고 가는 나그네 신세가 되지 말자.

그 날이 오면 훌훌 털어 버리고 다 벗고 갈텐데,

물질도 명예도 젊음도 육신도 버리고 어차피 다들 빈 손으로 길 떠날 나그네지.

 

생이란 한조각 뜬 구름이 일어남이요.

죽음이란 한조각 뜬 구름이 스러짐이라,

죽고 살고 오고 감이 모두 그와 같은데~죽음도 삶의 일부분이라고 전직 대통령은

이야기한다.

인생은 초로(草露>)니 풀잎에 맺힌 이슬이다.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 가며 하나 둘씩 소멸해 간다.

누군가는 떠나고 누군가는 탄생하고 지금까지 살아 온 길 너무나 많이 달려온 건 아닌지,

 

가까운 친구가 대장암 말기 선고를 받았다.

떨리고 놀란 가슴이 진정되지 않는다.

평소에도 몸 관리를 잘했고 민간요법의 전문가인데,

오로지 수술과 항암치료밖에 기대 할 수 없으니 답답하기만 하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했으니,

마차산의 산신령이신 마고할미여!

세상만사를 아우르는 마고할미여!

내 친구 창우에게 힘을 주소서!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 감사하고,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도 사랑하게 하소서!

                             

                                     2010.  6.  25

                                     동두천 마차산에서  석천  흥만 졸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