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5. 20. 03;30
소쩍! 소쩍!~소쩍궁! 소쩍궁!
창밖에서 소쩍새가 청아한 목소리로 밤새 노래하니 코를 골던 친구들도 잠시 코를
골지 않는다.
꿈속에서 새소리를 듣고 있는가 보다.
소쩍새의 몸길이는 약 20cm이다.
우리나라 전 지역에서 흔하게 번식하는 여름새로 낮에는 숲에서 휴식을 취하고,
주로 밤에 활동한다.
소쩍새는 드물지 않은 텃새이나 좀처럼 사람 눈에 띄지 않는 소형 부엉이다.
주로 야행성이며 뻐꾸기, 두견새와는 다르다.
한밤중 산속에서 "솥 적다! 솥 적다!"라고 우는데,
못된 시어머니가 적은 솥으로 밥을 하게 해 배고픈 며느리가 굶어 죽으면서 그 혼이
소쩍새가 되었다. 라는 슬픈 전설이 있다.
며느리밥풀꽃, 며느리밑씻개, 며느리배꼽 등은 시어머니의 못된 시집살이를 비유한
꽃들인데 새한테도 사연이 있으니, 옛날 시어머니들은 참으로 못된 사람들이었나 보다.
요즘은 며느리 시집살이라는데.
어제 황매산 등산 후 이틀 연속 해발 1,000m 이상의 고산 등반이다.
난 <비슬산>에 대해선 잘 모른다.
잘하던 예습도 안했고 단지 진달래로 이름을 떨치는 산 정도로만 기억할 뿐.
무릎보호대를 가져오질 않아 걱정도 되니 천천히 느림의 미학을 실천하자.
문성이와 세 명은 유가사~정상~대견사지터~휴양림 코스로,
우리 네 명은 휴양림~대견사지터~정상~유가사로 반대쪽 등산로로 올라 정상에서
만나기로 한다.
어느 코스로 올라도 정상까진 두 시간 반이 걸리고 전체 산행시간은 4~5시간 걸린다.
비파 비(琵 )거문고 슬(瑟)자를 쓰는 비슬산인데,
정상의 바위 모양이 신선이 앉아 비파 혹은 거문고를 타는 형상이라고 한다.
특출하게 솟은 정상부의 바위와 편안하게 흐르는 능선이 만들어 내는 조화로운 산세를
유추하여 이름을 지었으니 넉넉한 여유의 이름이다.
한편으론 높고 귀하다는 의미가 담긴 우리 말 '벼슬' '솟을'에서 유래되었다는 설도
있지만, 이 산은 불교와 인연이 깊어 고대 인도 힌두교의 신으로 불교에 수용된
'비슈노'를 한자로 음역한 비슬노(琵瑟怒)에서 온 말이라고도 한다.
10여 분 올라가니 '대견사지' 방향 등산로가 나온다.
거북이등과 같이 갈라진 기암괴석이 앞을 가리고 한 아름되는 굴참나무들이 원시림을
이루고 있다.
우리나라 산림의 60~70%를 차지하는 참나무라!
참나무는 굴참나무, 갈참나무, 졸참나무, 신갈나무, 떡갈나무, 상수리나무 등 6가지이다.
이중 대표선수는 상수리나무다.
임진왜란 때 의주로 피난한 선조 임금의 수라상에 상수리 열매로 만든 음식을 올렸다 해서
상수라나무라 불리다가 상수리나무로 되었다.
잎은 좁고 긴 타원형으로 가장자리에 침 같은 톱니가 있다.
사진의 굴참나무는 두꺼운 코르크가 잘 발달되어 세로로 깊은 골이 나있는데
예로부터 비가 새지 않고 보온성이 좋아 지붕을 이는 재료로 쓰였다.
굴피나무는 굴참나무와 달리 가래나무과에 속한다.
오래된 나무로는 서울 신림동에 강감찬장군이 지나다가 지팡이를 꽂아 놓은 것이
자랐다는데, 수령이 1천 년이 넘어 천연기념물 제271호로 지정되어 관리하고 있다.
졸참나무는 참나무 중 잎이 가장 작아 졸병참나무 즉 졸참나무로 불리는데, 잎은
작아도 굵게 크고 웅장하게 자라는데 도토리 중 가장 맛이 좋다고 한다.
산 정상에서 주로 만나는 참나무는 신갈나무다.
땅 좋고 습기 많은 계곡에는 졸참나무와 갈참나무가 버티고 있어 좋은 자리는 다 뺏기고
바람이 부는 메마른 능선과 산꼭대기에 주로 있다.
잎 모양이 떡갈나무와 비슷하고 크기가 어른 손바닥만 하며 옛날 나뭇꾼이나 여행자의
짚신 밑바닥에 깔아 넣었다 해서 신갈나무이다.
떡갈나무는 가장 잘 알려진 나무로 크고 두꺼운 잎을 가졌다.
특유의 방부제 성분이 있어 떡을 싸면 상하지 않는다 하며 독특한 향도 있기에
새로난 잎으로 떡을 싸서 쪄 먹기도 했다.
갈참나무는 잎이 가을 늦게까지 달려 있고, 단풍이 황갈색으로 눈에 잘 띄어서
가을 참나무로 불리던 것이 갈참나무로 되었다는데,
경북 영주에 천연기념물 제285호로 지정된 나무가 있다.
이어지는 급경사의 너덜지대이다.
철쭉이 군데군데 보이며 세계적인 명물 비슬산의 암괴류가 보이기 시작한다.
이틀 연속 산행을 하니 힘이 들고 이미 팬티까지 땀으로 다 젖었으니 잠시 쉬자.
천연기념물 제 435호인 '바위가 흐르는 강'인 암괴류이다.
암괴류 岩塊流)란?
큰 자갈내지 바위 크기의 둥글거나, 각진 암석 덩어리들이 집단적으로 산사면이나
골짜기에 아주 천천히 흘러 내리면서 쌓인 것을 말하는데,
비슬산 암괴류는 1만~10만 전 지구상의 마지막 빙하기 중 우리나라는 빙하기 후대
주변에 위치하여 이때 형성되었다 한다.
대견사지 부근과 건너편의 해발 1,000m 부근에서 시작해 지금 내가 오르고 있는
등산로를 중심으로 양쪽 사면에서 2개의 암괴류가 각각 다른 곳에서 시작하여
750m 부근에서 합류해 내려오다가 450m 지점에서 끝이 난다.
길이 2km, 최대 폭 80m, 두께 5m에 달하며 사면경사 15도에 암괴들의 크기는
직경 1~2m 정도로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한다.
천연기념물 435호로 지정되어 자연석 장사꾼들이 눈독을 드려봤자 헛일이다.
오른 지 40여분,
암괴류 사이에 때죽나무의 흰 꽃이 고개를 숙이고 있다.
때죽나무라 참 재미난 이름이다.
느낌이 예쁘고 귀엽지 않은가?
가을에 수백 수천 개씩 아래로 매달리는 열매 머리가 약간 회색으로 반질반질해서
마치 스님들이 떼로 몰려있는 것 같은 모습이다.
대부분의 꽃은 태양을 마주하며 피는데 이 때죽나무의 꽃은 옛 시골처녀의
수줍은 모습으로 다소곳이 땅을 향해 핀다.
열매에는 기름 성분이 많아 예전엔 등잔불이나 머릿기름으로 쓰이기도 했다.
잎사귀는 '에고사포닌'이라는 마취 성분이 있어 이것을 찧어서 물속에 풀면
물속에 있던 고기들이 순간적으로 기절한다.
그래서 우수개 소리로 떼로 죽어 때죽나무가 되었다고도 한다.
공해물질을 대규모로 배출하는 공장 가까이서도 잘 자라 최근에는 환경오염을
측정하는 기준으로 이용하기도 한다.
목재는 해맑고 깨끗해 나이테 무늬마저 잘 안 보이는 우윳빛 피부인데,
요즘 산지정리를 하며 무분별하게 때죽나무를 많이 베어 내는 바람에
벌들이 많이 감소해 환경파괴 및 양봉농가의 주름살을 만들어 준다.
공해에 강한 나무라 가로수에도 적당해 양버즘나무, 은단풍보다도 좋다.
벚나무 등도 좋지만 우리 고유의 때죽나무를 가로수로 심으면 어떨까?
요즘 하남에선 이팝나무의 꽃이 하얗게 피어 나무에 눈 쌓인 장면을 연출한다.
중부 이남지역에서 자라다가 하남에서 처음 가로수로 시도 하였다는데, 평균
수명이 500년 이상 간다니 주목할 만하다.
이팝나무는 효(孝)의 나무라서 예전의 평민들은 함부로 심지 못했다.
산행 시작한지 한 시간 만에 대견사지터로 들어선다.
드라마 추노의 촬영지라는 안내문도 보이고,
절벽 위 바위에 올라서니 거침없이 사방이 조망되며 일망무제이다.
앞쪽은 천 길 절벽이라 현기증이 난다.
성구 배낭 옆에 찬 서울장수 막걸리 병의 색깔이 파란 하늘과 조화를 이루고,
옆이 바로 조화봉이다.
정말로 '바위가 흐르는 거대한 강' <암괴류>이다.
국내의 여러 산을 다녀 봤어도 처음 보는 장관이다.
저렇게 돌이 흐를 수도 있다니 잠시 정신을 빼앗긴다.
대견사지의 기막힌 여러 가지 형상들의 바위이다.
'애추'라 하는데 처음 보고 듣는 용어이다.
애추(낭떠러지 崖, 송곳 錐 Talus)는 암괴류와 동일한 시기에 형성된 지형으로서
비슬산 일대에 분포한다.
길이는 암괴류에 비해 작지만 사면 경사 30도 내외로 비교적 급경사이다.
바위형태는 암괴류가 둥근맛을 보이는데 애추는 각이 진 바위돌이 대부분이라
두 지형간 구분이 쉽다.
특히 이곳 대견사지 부근에서 볼 수 있는 톱(칼)바위는 애추의 형성 과정을 매우 잘보여
주고 있어 중요한 지형자원이다.
중화된 암석 조각들이 급사면으로 떨어져 내려가 절벽밑에 부채꼴 모양으로 쌓인
각진 돌의 집단이다.
토르 (Tor)형태라 하는 '부처바위'가 근엄하게 산 아래의 중생들을 지켜 본다.
바위들의 모습이 기묘하며 신기하다.
대견사지 일대를 중심으로 각종 형상의 화강암 바위들이 많이 분포하는데 이를
Tor라 부른다.
형상에 따라 부처바위, 거북바위, 곰바위 등으로 불리며 암괴류, 애추와 더불어 빼어난
경관을 보여 주는데, 화강암 기반암이 지하에서 심층 중화로 남은 것이라 한다.
이곳 대견사지(大見寺址)는 중국 당나라 문종과 얽힌 전설이 전해지는 곳이다.
문종이 좋은 절터를 찾던 어느 날 세숫물에 한 폭의 아름다운 산수가 비치기에
찾은 곳이 이곳 대견사였다고 한다.
즉 대국(大國)에서 본(見) 절(寺)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유래와 유적이 남아 있는 대견사지는 터와 주변의 바위가 어우러져 기묘하면서도
웅장한 자연미를 보여준다.
조망이 특히 뛰어나 힘찬 산줄기와 함게 붉게 타오르던 해가 떨어지면서 낙동강을
바라보는 낙조가 일품이라는데,
서쪽으로 사행천인 낙동강이 꾸불꾸불 커다란 물굽이를 그리며 넓은 평야를 헤집는다.
낭떠러지 위에 외로이 서있는 유형문화재 42호 삼층석탑이 파란 하늘을 찌를 듯한
기세를 떨친다.
지나간 영욕의 세월 속에 묻히려는가.
돌 기단 위엔 4군데의 홈이 패어져 있어 천 년 세월의 흔적만 쓸쓸히 남기고 있다.
신라시대 포산(包山)이라 불린 이곳 비슬산 자락에서 삼국유사를 지은 일연스님이
수행을 했다고 한다.
삼국유사의 내용은 삼국과 가야의 왕대와 연대, 고조선 이하 여러 고대국가의 흥폐,
신화, 전설, 신앙및 역사, 불교에 관한 기록, 고승들에 대한 설화, 밀교(密敎)승려들에 대한
행적, 고승들의 행적, 효행을 남긴 사람들의 이야기 등을 수록 하였다.
신라 중심, 불교 중심으로 편찬되어 있으나, 고대사 연구에서 삼국사기와 더불어 쌍벽을
이루고 있다.
특히 단군 신화를 비롯하여 이두(吏讀)로 쓰인 향가 14수가 기록되어 있어 국어 국문학
연구에 좋은 자료가 되는데,
삼국사기가 본사라면 삼국유사는 야사에 해당된다.
대견사지에서 철계단을 올라서니 비슬산 정상인 대견봉으로 이어지는 날렵한 능선이
미끈하게 한눈에 들어온다.
산 아래에서 올려다 볼땐 급경사 절벽으로 보였는데, 올라와 보니 펑퍼짐한 평지와
분지로 양구 펀치볼과 비슷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긴 능선으로 이어진 산줄기는 조화봉, 관기봉이라고 안내도에서 설명한다.
주능선을 중심으로 왼쪽의 평원과 완경사면에 약 30여만 평의 광활한 진달래 군락지가
전개된다.
진달래가 만발하면 온 산이 불타는 듯 붉게 물든다 하는데,
만개했던 진달래는 다 지고 능선 길에서 철쭉 몇 그루만 만난다.
오늘 산행 중 가장 편안한 길이다.
뒤에 보이는 정상까지 4km에 한 시간 거리라는데 꽤나 멀어 보인다.
고등학교 때 내 별명이 땅꾼이라도 뱀조심 하라는 경고판이 여러 군데 있어 매우
조심스럽게 지정된 등산로만 걷는다.
조그만 진달래 사이로 호젓한 소나무숲이 있어 화려하진 않지만 싱싱한 나무와
야생화들이 나를 반긴다.
지도에는 1004.9m인 일명 '월광봉'이다.
왼쪽으로 돌아서 서서히 고도를 낮추며 마령재로 내려선다.
현재 고도 920m, 1,034m에서 거의 110m 정도를 낮추었다가 다시 184m를 올려야 한다.
이정표엔 정상까지 20분이 소요된다고 하는데 힘든 급경사의 연속이다.
유가사쪽으로 바로 내려가면 한 시간 걸린다는 이정표가 유혹하니 나도 많이 지쳤나
보다.
가파른 오르막길에 이어 내리막길이 나오고 다시 나오는 오르막길은 우리네
인생과도 같다.
마령재에서 정상을 보니 바위들이 정말 비파와 거문고를 닮았다.
쪽동백꽃도 수줍은 듯 미소를 머금고 피어 있다.
열매는 '옥령화'라는 약재로 쓰이는데, 요충제거및 종기의 염증을 가라앉힌다.
흰 꽃이 차분하며 소박해 보인다.
휴!
숨을 몰아쉬며 천천히 고도를 높힌다.
선두는 벌써 정상에 도착하였고, 유가사쪽에서 올라오는 문성이 팀이 야호하며
신호를 보낸다.
5분 후에는 정상에서 만날 거 같다.
두 시간 반 걸려 드디어 비슬산 대견봉(1,084m) 정상에 올라선다.
막힘 없는 조망에 감탄사가 저절로 나온다.
이럴수가!
쪽빛 하늘에 멀리 대구 시내가 조망되며 거칠 것이 없다.
북쪽으로 청룡산(794.1m)과 산성산(653m)이 보이고,
남쪽으로 밀양의 일왕산, 화왕산(756.6m)이 조망되며,
서쪽으론 어제 다녀왔던 합천 쪽 가야산도 보인다는데 내 짧은 실력으론 알 수가 없다.
아마도 여러 번 와봐야 알듯 겸손해지자.
한 시간 전 지나온 대견사지 쪽 능선과 조화봉 쪽 천문대의 능선이 하늘 금을 이룬다.
저렇게 먼 길을 걸어 오다니, 걸어온 길 아득하다.
정상의 시원한 나무 그늘 아래에서 막걸리 한잔 후 하산을 서두른다.
유가사 방향은 가파른 급경사고 일부 너덜지대를 지나니 좀 편안한 길이 나온다..
1,000m에서 형성되기 시작한 계곡의 물소리가 우렁차다.
애기나리가 군락을 이루며 고개 숙여 피어 있고 양지꽃도 노랗게 핀다.
흐르는 계곡 물에 발을 담그니 물이 너무 차 5초 이상 버틸 수가 없다.
너무나 시리고 대자연에 미안한 생각이 든다.
가재나 물고기가 있는지 열심히 물속을 응시해도 보이지 않는다.
두 시간을 하산해 유가사로 들어선다.
'유가사'는 한때 본사를 제외하고, 속암이 99개, 거주승려 3천여 명, 딸린 전답이 1천
마지기에 이를 정도로 대단하였다고 한다.
신라 흥덕왕(827년)때 도성국사가 창건하였다니 1,200여 년 세월이 지났으며, 문화재가
많은 유서 깊은 사찰이다.
비슬산의 바위 모양이 아름다운 구슬과 부처의 형상과 같다하여 옥유(瑜), 절가(伽)자를
따서 지었다고 하는데 지붕의 기와가 황금색으로 특이하다.
문화관광해설사는 기와를 도기로 만들었다고 설명한다.
누가 왜 무엇을 빌려고 돌탑을 이리도 많이 쌓았을까?
부처님 동네에서 부처님 말고, 돌탑에다 소원을 빌어도 효험이 있을지
내내 궁금하기만 하다.
2010. 5. 20 비슬산 종주를 마치고
석천 흥만 졸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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