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느림의 미학 997 나는 억세게 운 좋은 사람

김흥만 2026. 7. 2. 21:21

2026.  7.  2.  05;30

      빗방울이 살짝 뿌려진 새벽

숲길엔 나뭇잎이 여기저기 떨어졌다.

 

늘 다니는 산책길 안쪽에 '초롱꽃'이

부끄러운 듯 새색시처럼 고개를 숙이고

피었다.

 

요즘은 한여름이라 꽃이 많지 않다.

뜻밖에 바위틈에 핀 초롱꽃을 발견하고

사진을 찍는 소소한 순간들이 나를 행복

하게 만든다.

                  <   초롱꽃   >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것은 비싼 돈이

아니다.

 

수십 년 산에 오르내리며 이렇게 작은

야생화 한송이를 만나도 변함없이

짜릿한 행복느끼니 말이다.

 

숨소리가 약간 거칠어진다.

조금 전 내린 부슬비의 빗방울이 나무

에서 굴러 떨어지며 몸을 적셔나간다.

 

빗방울과 바람이 살갗에 닿는 감각이

또렷해지고 이번에는 또 무엇을 만날

수 있을까 생각이 점점 단순해진다.

 

산에서 땀을 흘리면서 걷다 보면

온몸의 세포들이 움직이는 게 느껴

지기도 하고 세상사가 우스워지는데,

이번엔 '분홍말발도리꽃'을 만났다.

                 <   분홍말발도리꽃   >

                     

이 진 뒤 달리는 열매가 말발굽에

끼는 편자처럼 생겼다 해서 붙여진

이름인데 꽃이 참 아름답다.

 

오늘 '초롱꽃'에 이어 '분홍말발도리꽃'

을 만났으니 운이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내 삶엔 운이 많이 따랐다.

6.25 전쟁통에 태어나 살아남았고,

보릿고개, 입시고개, 군대고개를 거쳐

은행에 근무하게 되었고 돈걱정과 

집걱정별로 하지 않고 살았다.

 

IMF 외환위기 시 구조조정으로 많은

사람들이 직업을 잃고 신음을 할 때

오히려 지점장으로 승진하였고,

 

방배서 지점장 때는 전국 최우수

지점장받을 수 있는 '국은인상'을

받았고, 나이가 되어 정년퇴직을 하였

으니 얼마나 운이 좋은가.

 

1982년 오른팔 마비,

2006년 뇌종양 발견 6개월 이내 사망,

table death 70% 확률에도 불구

하고 살아남았으며,

 

보기만 해도 배가 부를 정도의 듬직한

손주가 둘이나 생겼다.

 

초등학교 시절 소풍을 가서 한 번도

보물을 못 찾았고, 뽑기 한 번 당첨된

적이 없었는데 로또복권 1109회에선

6자리 숫자 중 1개만 틀린 3등에도

당첨 봤으며,

 

현역시절에 만난 좋은 사람들과 수십

이상 인연이 이어지고, 많은 친구

들과 교류와 교감을 한다.

 

4년 전엔 위에서 '악성신생물질'을

조기 발견하여 '위점막하박리술'로

암세포를 도려내는데 성공하였고,

 

18년째 황반변성으로 고생을 하지만

뒤늦게나마 의료보험이 적용되는 바람

1회 눈주사 비용이 300만 원에서

30만 원으로 줄었으니 이만하면 정말

운이 좋지 않은가.

 

그 밖에도 길거리에 붙은 현수막을

보고 알바근무를 지원하여 오전 근무를

한 지 6년 차,

 

집에서 빈둥대지 않고 아침밥 먹고

나갈 곳이 있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지

모르겠다.

 

또한 근무 끝난 후 당구장에서 매일 

10~20여 명의 마음 편한 친구를 만나

점심식사와 당구를 즐길 수 있으니

너무 행복하다.

 

사실 그동안 살면서 나는 운과 기적을

믿지 않았다.

삶의 질을 올리는 건 오직 열정과 실력

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하나하나 따지고 보면 나한테

엄청난 행운이 따랐었고 때로는

죽음을 피하고 살아나는 기적도

있었던 걸 그동안 몰랐던 거다.

 

완벽하지 않은 몸으로,

완벽하지 않은 하루를 살아가는 우리

네의 삶이 늘 불확실한 건 사실이다.

 

따라서 인생이 지루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세상엔 의외로 많다.

 

금년도 6개월이 훌쩍 지났고, 

하반기로 접어들었다.

 

신선놀음에 도끼 자루 썩는지 모를

정도로 나에겐 세월이 빨리 흐르니

이만하면 운 좋고 복 받은 인생이

아닌가.

 

산에서는 자연의 보물인 야생화가

반겨주고, 그 야생화를 보며 미소를

짓는 시간이 이어진다.

 

오늘 내가 염화미소(拈花微笑)를 짓는

마음초롱꽃도 이심전심(以心傳心)

으로 알아주겠지.

 

             2026.  7.  2.               

                   석천  흥만  졸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