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7. 2. 05;30
빗방울이 살짝 뿌려진 새벽
숲길엔 나뭇잎이 여기저기 떨어졌다.
늘 다니는 산책길 안쪽에 '초롱꽃'이
부끄러운 듯 새색시처럼 고개를 숙이고
피었다.
요즘은 한여름이라 꽃이 많지 않다.
뜻밖에 바위틈에 핀 초롱꽃을 발견하고
사진을 찍는 소소한 순간들이 나를 행복
하게 만든다.

< 초롱꽃 >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것은 비싼 돈이
아니다.
수십 년 산에 오르내리며 이렇게 작은
야생화 한송이를 만나도 변함없이
짜릿한 행복을 느끼니 말이다.
숨소리가 약간 거칠어진다.
조금 전 내린 부슬비의 빗방울이 나무
에서 굴러 떨어지며 몸을 적셔나간다.
빗방울과 바람이 살갗에 닿는 감각이
또렷해지고 이번에는 또 무엇을 만날
수 있을까 생각이 점점 단순해진다.
산에서 땀을 흘리면서 걷다 보면
온몸의 세포들이 움직이는 게 느껴
지기도 하고 세상사가 우스워지는데,
이번엔 '분홍말발도리꽃'을 만났다.

< 분홍말발도리꽃 >
꽃이 진 뒤 달리는 열매가 말발굽에
끼는 편자처럼 생겼다 해서 붙여진
이름인데 꽃이 참 아름답다.
오늘 '초롱꽃'에 이어 '분홍말발도리꽃'
을 만났으니 운이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내 삶엔 운이 많이 따랐다.
6.25 전쟁통에 태어나 살아남았고,
보릿고개, 입시고개, 군대고개를 거쳐
은행에 근무하게 되었고 돈걱정과
집걱정은 별로 하지 않고 살았다.
IMF 외환위기 시 구조조정으로 많은
사람들이 직업을 잃고 신음을 할 때
오히려 지점장으로 승진하였고,
방배서 지점장 때는 전국 최우수
지점장만 받을 수 있는 '국은인상'을
받았고, 나이가 되어 정년퇴직을 하였
으니 얼마나 운이 좋은가.
1982년 오른팔 마비,
2006년 뇌종양 발견 6개월 이내 사망,
table death 70% 확률에도 불구
하고 살아남았으며,
보기만 해도 배가 부를 정도의 듬직한
손주가 둘이나 생겼다.
초등학교 시절 소풍을 가서 한 번도
보물을 못 찾았고, 뽑기 한 번 당첨된
적이 없었는데 로또복권 1109회에선
6자리 숫자 중 1개만 틀린 3등에도
당첨 돼봤으며,
현역시절에 만난 좋은 사람들과 수십
년 이상 인연이 이어지고, 많은 친구
들과 교류와 교감을 한다.
4년 전엔 위에서 '악성신생물질'을
조기 발견하여 '위점막하박리술'로
암세포를 도려내는데 성공하였고,
18년째 황반변성으로 고생을 하지만
뒤늦게나마 의료보험이 적용되는 바람
에 1회 눈주사 비용이 300만 원에서
30만 원으로 줄었으니 이만하면 정말
운이 좋지 않은가.
그 밖에도 길거리에 붙은 현수막을
보고 알바근무를 지원하여 오전 근무를
한 지 6년 차,
집에서 빈둥대지 않고 아침밥 먹고
나갈 곳이 있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지
모르겠다.
또한 근무 끝난 후 당구장에서 매일
10~20여 명의 마음 편한 친구를 만나
점심식사와 당구를 즐길 수 있으니
너무 행복하다.
사실 그동안 살면서 나는 운과 기적을
믿지 않았다.
삶의 질을 올리는 건 오직 열정과 실력
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하나하나 따지고 보면 나한테
는 엄청난 행운이 따랐었고 때로는
죽음을 피하고 살아나는 기적도
있었던 걸 그동안 몰랐던 거다.
완벽하지 않은 몸으로,
완벽하지 않은 하루를 살아가는 우리
네의 삶이 늘 불확실한 건 사실이다.
따라서 인생이 지루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세상엔 의외로 많다.
금년도 6개월이 훌쩍 지났고,
하반기로 접어들었다.
신선놀음에 도끼 자루 썩는지 모를
정도로 나에겐 세월이 빨리 흐르니
이만하면 운 좋고 복 받은 인생이
아닌가.
산에서는 자연의 보물인 야생화가
반겨주고, 그 야생화를 보며 미소를
짓는 시간이 이어진다.
오늘 내가 염화미소(拈花微笑)를 짓는
마음을 초롱꽃도 이심전심(以心傳心)
으로 알아주겠지.
2026. 7. 2.
석천 흥만 졸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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