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3. 21 07;00
밤새 머리맡을 지키던 별들이 서서히 사라지며 '백운산'의 여명이 밝아온다.
내가 가는 산길.
양옆으로 하늘을 찌를 듯 소나무들이 서있다.
장대한 소나무들이 지나는 나를 위엄 있게 사열한다.
곧게 수직으로 뻗은 나무들의 위압감에 그만 압도당한다.
수직의 미학인가?
수평의 세계에 익숙한 나는 대자연의 신비스런 모습에 경외감을 느낀다.
우람한 나뭇가지에 여린 잎이 나올 채비를 하고 일렁이는 숲은 연둣빛을 감아 돈다.
3. 21 07;30
고요한 '백계산'의 산자락, 산속의 아침,
산비둘기와 꿩이 세상의 고요를 깬다.
선각국사 '도선'이 머물다 입적한 '옥룡사'
8세기 초 통일 산라시대에 창건되었다가 1878년 화재로 소실되었다는 절터로 올라간다.
풍수학의 선구자인 도선국사가 옥룡사 주변의 땅 기운을 북돋으기 위하여 동백나무숲을
조성하고, 차밭을 일구어 보급하였다 하는데, 땅의 기운을 너무 세게 돋았는지 화재로
소실되었으니 참으로 모를 일이로다.
어쨌든 옥룡사의 땅 기운을 보강하기 위하여 심은 동백나무가 천 년의 세월을 거치면서
뿌리를 내려 아름다운 풍경을 그리며 우리 후손들에게 보여주지만,
정작 땅 기운을 받은 옥룡사는 불에 타 주춧돌인지 흔적만 남아 역사의 이야기를 조용히
들려준다.
천관산의 동백숲(15만 평)과 비견되는
천년고찰 터의 동백숲(천연기념물 489호, 7ha 약 21,000평)은 풍수의 허구를 이야기하지만,
동백숲을 거닐며 천 년 세월에 녹아든 사람들의 노력이야말로 이 숲의 진정한 가치라는 생각이 든다.
7천 그루의 동백나무가 국내 최대의 군락지를 이루며 3월부터 4월까지 꽃이 핀다.
남쪽 하늘에 기러기인지 새들이 V자 대형을 이루며 북쪽으로 날아간다.
계절이 서서히 바뀜을 보여주니 신비롭다 .
돌처럼 딱딱하게 얼어붙었던 땅도 때가 되니 사르르 녹고, 파란생명이 언 땅을 뚫고 올라온다.
지난겨울 제대로 보이지 않던 자연의 아름다운 풍광이 이제야 눈에 들어온다.
불에 탄 옥룡사의 역사(歷史),
땅 기운을 돋는다는 풍수지리는 잘 모르지만 동백숲을 걷는 나는 무한히 행복하다.
이 새벽에 찬이슬을 머금으며 걸을 수 있는 동백 숲의 한가운데에서 난 하늘을 올려다본다.
융성했던 절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보리지나무'와 돌무덤이 쓸쓸하게 남아 절터를 지킨다.
2012. 3. 21 09;00
연화산 옥천사(玉泉寺)
일주문을 들어서니 빼어나게 울창한 숲이 우리를 반긴다.
거대한 금강소나무, 키 큰 굴참나무들 아래에서 소곤소곤 속삭이는 수풀들,
산비둘기가 갑자기 숲속의 정적을 깨더니,이름 모를 산새들이 알 수 없는 노랫소리로 재잘거린다.
옥천사(玉泉寺)는 의상대사가 당나라에서 화엄학을 공부하고 돌아와 서기 670년(신라 문무왕
10년)에 창건하였으니, 무려 1,342년이 지난 우리나라 화엄 10대 사찰 중의 하나로
지금은 쌍계사의 말사이지만 임진, 정유왜란 때 승병의 군영역할을 하던 호국사찰이다.
고려 말 편조스님 '신돈'이 승려가 되기 전 노비로 살았던 사찰이며,
현재는 쌍계사의 말사이지만 경내에 불교 유물전시관인 '보장각(寶藏閣)'을 보유할 만큼 유서가
깊은 산중 사찰인데 보장각은 '수리 안내문'을 건채 깊은 잠에 빠져있다.
'사자견'이 아는 척을 하며 애교를 떤다.
티베트가 원산인 '티베탄 마스티프'종은 최고가가 17억 원이나 하는 개도 있다고 한다.
얼마 전 황우석 박사가 복제한 사자견 '야당'이가 선원사 '야순'이와 교접해 8마리의
강아지를 출산하여 화제에 오른 적이 있다.
일수사견(一水四見)이라는 말이 불교에 있다.
같은 물이라도 천인(天人)이 보면 보석으로 장식된 연못이고,인간은 물로 보이며 아귀는 피로
보이지만, 물고기는 제가 사는 주처(住處)로 여긴다.
모든 사물은 보는 시각에 따라 다르게 보인다.
강아지같은 동물이라도 사랑받기를 좋아하니~
살다보면 우연이든 필연이든 끊임없이 인연을 맺고 산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애완동물이 예사롭지 않은 인연을 이어간다.
인생에선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소중한 인생의 변곡점이 된다.
따라서 수 없이 만나는 사람과 사람들의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인연이 소중하다.
잠깐의 인연이라도 소홀함이나 가볍게 대할 수 없는 게 인연이라,
살아 숨 쉬는 날까지 인연을 아름답고 소중하게 가꾸어야 하겠지.
사자견 '반야'와 '지혜'가 노스님에게 배를 내주며 애교를 떨다가 방문객을 의식하였는지
이내 위엄을 찾는다.
이 견종은 평생 한 사람의 주인에게만 충성을 다하고 늑대와 싸워 이길 수 있는 희귀종이다.
옥천(玉泉)의 물이 흘러 떨어져 부숴지며, 옥같은 구슬이 흐르다 사라진다.
회춘(回春)을 꿈꾸는 옥천사 뜨락에 맹위를 떨치던 혹한도 지나 봄은 어김없이 돌아왔다.
나이가 얼마인지 모르는 고매(古梅) 세 그루에 꽃망울이 부풀어 오르기 시작한다.
해마다 수천수만의 꽃을 늙은 몸으로 피어 올리며 자신의 일생을 반추하며 숨을 끊지 않고
살아있음은 무슨 연유일까,
부처님의 법력 덕분일까?
고매가지에 꽃이 피고, 고매의 암향(暗香)을 맛보지 못하는 아쉬움을 남기며 발길을 옮긴다.
대웅전 뒤로 돌아가니 사시사철 마르지 않고 항상 수온과 수량이 일정하며 위장병, 피부병에
효험이 있다는 우리나라 10대 명수(名水) 중 하나인 '옥천샘(玉泉)을 만난다.
한 모금 마셔보니 물맛은 약간 무거운 느낌이 든다.
10대 명수(名水)라!
10대 명수 중 태백산 망경사 용정(龍井)의 샘물을 으뜸으로 친다.
태백산에서 천제(天祭)를 지낼 때 사용되는 용정의 물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해발 1,470m에
위치한 샘으로 동해에서 아침 햇살을 가장 먼저 받아 100대 명수 중의 으뜸이라고 큰소리친다.
도봉산 '거북샘',
구례 쌍산재의 '천년고리 감로영천(千年古里 甘露靈泉)'이라는 '당물샘',
청송 주왕산 기슭의 탄산이 많이 들어가 약수가 뱉어내는 "꾸르르"소리가 닭이 "고,고,고"
하는 소리와 닮았다 해 '닭이 약수'라 불리다 '달기약수'로 된 명수가 있고,
고창읍성의 '길령천(吉靈泉)', 양양의 '갈천약수', 청원의 '초정약수', 제주도의 '오래물'이
있다.
또한
하동의 '화개약수'. 청송의 '신촌약수', 인제의 '남전약수', '방동약수',
평창의 '방아다리약수', '신약수', 홍천의 '삼봉약수', 양구의 '후곡약수'가 있다.
이중 7군데의 약수 맛을 보았지만 전문가가 아니라서 품평을 할 수가 없다.
이곳 '옥천'의 물맛은 탄산수가 아니라서 약간 무거운 맛이 나는지 한 모금 마시니 뱃속이
시리도록 맑아진다.
서류동천(西流東泉)이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물은 평지에서는 동(東)에서 서(西)로 흐르는 것이 자연의 이치인데,
이 샘은 서쪽에서 동쪽으로 흐르는 샘이다.
3. 21. 09;40
오랜만에 질서없이 마구 태어 난 풀들을 보는 순간 반가운 마음이 몸보다 앞서 마중을 나가고
산길은 편안하다.
[ 움트는 소리
징~ 하며 얼음이 깨지며 운다.
얼음이 풀리니 겨울도 풀리는구나.
북풍한설에 무슨 설움이 북받쳤는지
도랑물도 봄의 기쁨을 노래한다.
계곡물은 생명의 기쁨을 노래하고,
바다 물결은 나를 일렁이게 한다.
훈훈한 햇볕은 생명의 기쁨을 주고,
흩날리는 꽃가루는 봄의 향기를 날린다.
기다리고 기다려도 오지 않던 봄이
기다림마저 잃으니 잘도 찾아오는구나.
바람에 떨어지는 꽃송이가 서러워
삶의 덧없음을 한탄하랴.
나는 봄이 오는 길목에서
꽃 한 송이 움트는 소리를 듣는다. 석천 흥만 ]
대지를 적시는 비가 내린 뒤 한결 부드러워진 대지의 향기는 봄이 바로 눈앞에 가까이 다가온
모습을 보여준다.
이번 봄에 처음 만나는 '현호색'을 보니 종달새를 만난 듯 반갑고 설렌다.
구름을 헤치고 나온 햇살은 숲속 수풀들의 바램을 채워주며, 나무들에게 꽃망울을 주문한다.
경칩이 지난 지 보름이 되고 오늘이 춘분(春分)이구나.
새들의 날갯짓도 한층 가벼워졌는지 움직이는 품새가 날렵하다.
미리 봄을 당겨볼 틈도 없이 계절을 가르는 춘분이니 햇살마져 온산에 퍼진다.
산길 여기저기 서 있는 조릿대는 아침이슬을 머금어 생기가 돋고겨우내 숨을 죽였던 나무들도
생기가 돌면서 봄의 기지개를 켠다.
오늘은 옥천사~선유봉~옥녀봉~황새고개~남산~연화산~느재~연화1봉~옥천사로 원점회귀를
하는 약 네 시간의 산행으로 목표를 정한다.
'쭈비~쭈비~쭈르르' 동박새가 우니, '쭈이~쭈이~쭈쭈쭈' 하며 동고비가 답을 한다.
혹독했던 추위 속에 지난겨울을 무사히 지내고, 봄을 맞아 반가운 모양이다.
새들의 노랫소리가 숲속에 퍼지니, 온 숲 사이로 봄 햇살의 온기가 퍼진다.
대지를 촉촉이 적신 봄비에 겨울의 침묵 속에 있던 나무들이 대지의 온기를 끌어 올리며
연한 연두색을 비친다.
며칠 전 한강산책 중 '구~웅, 끼~ 구웅'하며 얼음 깨지는 소리가 들렸는데,
어느새 여기 남녁은 봄이 내려앉았다.
박새와 동고비는 어디론가 날아가고, 종달새, 뻐꾸기 노랫소리 들린다.
세상의 공기가 가벼워진 모양이다.
한 발 한 발 제대로 딛자.
선등자의 발걸음을 따라 걸으니 잘생긴 소나무들이 나오고,
덩치 큰 노송(老松)들이 서어나무, 참나무와 근사하게 어울린다.
생을 다한 거대한 노송이 갈 길을 내어주니 잠시 쉬며 나무의 혼을 달래줄까?
가지에 인 세월이 얼마나 무거웠으면, 머리에 인 삶이 얼마나 고달프고 힘들었으면
허물어져 쓰러져 자연의 흙으로 돌아가는가.
주검은 동물뿐만 아니라 나무들의 주검도 아름다워 보이지를 않지만,
이 나무는 썩어 인근의 다른 생명들에게 큰 도움을 주고,
언젠가는 이 자리에 새로운 생명으로 태어날 것이다.
얼마 전 개신교에 심취한 친구와 천주교회에서 선교사 교육을 받는 친구 둘이서 심한 논쟁을
벌인다.
결론도 없는 논쟁, 영양가 없는 논쟁에,
난 '살아있음이 천국인데 쓸데없이 죽어서 까지 미리 걱정을 한다"라며 내 나름 대로의
해법을 제시한다.
[ 까마귀
내 머리 위를 맴돌며 구슬피 운다.
왜 저리도 슬피 우는가?
짝을 부르느라 우는 걸까?
죽음을 예감해서
못다 한 한 때문에 우는가.
이 골짜기에 죽음이 온 생명이 있는가 보다.
모든 죽음은 슬픈 거라지만
넋을 부르는 소리가 서글프다. 석천 흥만 ]
눈앞에 펼쳐지는 풍경, 자연이 빚어 놓은 거대한 풍경들,
바위마다 책을 쌓은 것 같이 기묘한 풍상들이다.
떨어져 바라보니 춥다고 북풍한설에 떨며 아우성치던 나무들이 겨울을 끌어안고,
침묵에서 벗어나 서서히 제빛을 찾는다.
인자요산(仁者樂山)이라!
산길은 사람을 포근하게 품어주어 어질게 만들어 준다.
기운이 충만해지니 화를 안 내게 되고, 고갈된 원기를 보충해주며 양기를 충만하게 해준다.
왜 '황새고개'일까?
황새고개를 넘어 '선유봉'으로 올라선다.
그리 높지도 않은 능선의 유혹에 끌려 평소의 속도보다 빨리 올라서지만,
숨 가쁨에 비해 평범한 남산(427m)이 나온다.
바람은 아직 늦잠에서 깨어나지 않아 주위는 고요하다.
시간은 빠르고도 더디다.
산길 위의 시간은 더 더디다.
힘들게 한구비를 넘어서니 능선들이 담백한 수묵화를 그리는데 갑자기 난 입을 다문다.
산에만 오면 겸손해지니, 자연에 대해 혼자만이 생각할 시간이 많아진다.
오르면서 느끼는 생각들~숨소리가 거칠어진다.
[ 이 자리에 서서
이 자리에 서서
바람을 잡아 시간을 멈추게 할까.
그래 시간을 잊자.
세월을 잊자.
바닷바람 산바람에 시름을 잊자.
그림같은 풍경을 보며 잡다함을 잊자.
노을이 더 붉게 물들기 전에 머리 아픔을 잊자.
보이는 굵은 능선들이 파도치는데
내 자신이 저 능선에 다가설 수 있을까.
헤쳐나갈 수 있을까.
바닷바람이 불어와
그리 싫지않은 비릿한 바다냄새를
나에게 주고 간다. 석천 흥만 ]
좋은 풍경은 마음을 내려놓게 한다.
곤줄박이, 동고비 나르고, 어디선가 딱따구리 소리 들린다.
남산에 올라서니 당항포 바다의 비릿한 냄새가 바닷바람에 실려 온다.
400여 년 전 임진왜란 시 이순신 장군이 왜적선을 통쾌하게 쳐부수고,
침몰시킨 당항포의 바다냄새 속에 이순신 장군의 호령이 들리는 듯 아련하다.
소나무와 참나무가 함께하는 숲길로 들어선다.
휴!
두 다리와 어깨 그리고 심장이 함께 쉬어달라고 부탁한다.
내가 가야할 길을 말하는 모양이다.
경계와 경계를 넘어 산은 이어지고, 4개의 봉우리를 넘어 정상을 앞둔 발걸음은 점점 무거워진다.
정상으로 올라갈수록 산의 정상은 소나무에서 서어나무, 참나무로 바뀐다.
단풍나무, 철쭉, 산벚나무는 수시로 드나드는 어린아이처럼 참나무 사이에서 빠끔히
고개를 쳐든다.
자작나무, 거제수나무가 촛불을 밝히고 싶은지 숲 속을 밝힌다.
나는 봄바람에 일렁이는 나무들의 숲과 바닷바람에 슬그머니 스며들어 이 산의
일부가 된다.
3. 21. 11;00
남산에서 제법 한참을 내려오니 운암고개가 나오고, 연화산 정상으로 오르는 표지판이 나온다.
정상까지 350m라고 써 붙였는데, 30여 분이 넘게 걸려 정상에 도착한다.
1983년 9월 도립공원으로 지정된 '연화산'은 급경사와 완만한 경사로 이루어져
별로 특징이 없는 육산이지만, 수령 백 년이 넘는 노송과 대나무들이 서어나무들과 묘한 균형을
이루며 아름다움을 연출한다.
산세가 장엄하거나 장대한 능선을 자랑하는 건 아니지만 천년고찰 옥천사와 백련암,
청련암연대암 등이 자리한 유서 깊은 곳으로 수수하고 아기자기한 산이다.
연화산(蓮華山)은 선유(仙游), 옥녀(玉女), 탄금(彈琴, 장군봉)의 세 봉우리가 마치 선인이
거문고를 타고, 옥녀가 비파를 타고 있는 형국이라 일명 '비슬산'(비파 琵가 아닌 밝을 毘,
거문고 瑟)으로 불렸는데,
조선 인조 때 '학명대사'가 산의 형상이 연꽃을 닮아 연화산으로 고쳤다고 전해진다.
대구 '비슬산'은 정상의 바위가 비파와 거문고를 타는 형상이다.
연꽃을 닮았으면 꽃 화(花)자를 써야 맞는데 빛날 화(華)자를 씀은 무슨 연유일까?
고즈넉한 산길을 걸으며, 세상사를 보고 듣지 않으면 번뇌가 없어지려나.
마음만이라도 세속을 떠나고 싶다.난 잠시라도 속리(俗離)를 하며 발바닥을 땅에 딛고
'연화1봉'을 향하여 느린걸음을 한다.
걷는다는 걸음 보(步)자를 파자하면, 그칠 지(止)에다가 젊을 소(少)의 의미가 있다.
그치면 젊어진다는 뜻 아닌가?
걷는다는 것은 곧 그친다는 것이요, 젊어진다는 것이라 한다.
이제껏 열심히 살았으니 이젠 쉬고 싶고, 걷고 싶다.
더 배울 게 없는 것은 아니지만, 학업을 더 하라는 권유를 뿌리친다.
딱히 해야 할 일도 없는데, 쓸데없다고 버리지 않고, 필요하다고 구하지 않는 삶이 나의 로망이었던가?
하며 구차한 변병을 늘어 놓는다.
어쩌면 분주함 뒤에 찾아온 한가함에 길들여져 나의 정체성을 찾지 못하는 모양이다.
이제는 혼자라는 말이 더 익숙해지고 편한 말이 되어가고 있으니,
번잡함도 분주함도 잡다함도 다 싫어진다.
약간은 엉성해서 더 보기 좋은 돌탑사이로 전망이 트인다.
사방으로 감싸 안은 산봉우리들의 품속에 한 송이 연꽃인양 '옥천사'가 안겨있다.
멀리 바다를 낀 산이라 그런지 산이 겹겹이 더 멀어 보인다.
끝없는 급경사, 가파른 길, 수시로 변하는 엷은 산안개는 산수화를 그려대고.해무에 쌓인
몽환적인 풍경 속에 내 마음은 들뜨며 19세 소년이 된다.
속도를 늦추니 주변의 풍경들, 나무와 이름 모를 풀들이 가깝게 더 잘보인다.
속도를 늦춘 때문일까?
자연의 속도로 걷자.
바다에 가까운 산을 오르내리니 산의 기운과 물의 기운을 양쪽에 받아서 균형을 잡아주고,
음기와 양기를 같이 보해주니 생각의 균형까지 잡아주는 거 같다.
한참을 내려오니 임도 갈림길이 나오고 싸리재와 '소풀산(시루봉)'이라는 이상한 이름의
산 오름길이다.
적멸보궁이 250m 라는데 여기에도 적멸보궁이 있다고?
부처님의 진신사리와 치아, 정골, 가사를 모신 5대 적멸보궁은 설악산 봉정암, 오대산 상원사,
사자산 법흥사, 태백산 정암사, 영축산 통도사가 아닌가.
100여m를 내려와 느재의 연화1봉 오름길을 찾는다.
오른쪽으로 빠져 430m만 걸으면 백련암인데~700m 위쪽의 '연화1봉'을 오르기로 한다.
'느재'에서 연화1봉은 다시 오름길이다.
산길이 지그재그 곡선이다.
산, 나무, 계곡, 바위들이 다 굽어있다.
산이라는 대자연에서 직선과 사각은 죽은 선(線)이다.
여기 이 산은 곡선이다.
생명이 살아 있는 곡선이다.
물론 직선은 목적지에 빠르게 도달할 수 있다.
그러나 빠름을 고집한다면 균형이 떨어져 탈이 난다.
엷은 운무가 서서히 걷히며 산이 정상을 보여준다.
저 내어주는 정상을 얼마나 더 걸어야 오를 수 있을까.
나만의 정상을 향해 오른다.
느재에서 700m길이 무지 길게 느껴진다.
능선길이 아닌 된비알에 잠시 말랐던 등판은 젖어오고,
3. 21. 오후 12;30
한 시간여 만에 연화1봉 정상(489m)에 오른다.
3. 21. 13;30
하산 길은 비교적 통행이 뜸했던 모양이다.
발길에 밟히지 않은 낙엽이 제법 두텁게 쌓여 나무 등걸을 밟아 미끄러질까 조심을 한다.
어떻게 올랐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고 어떻게 내려왔는지가 중요하다.
이대로 미끄러지듯이 내려가면 되겠지.
숲속이 햇볕을 감쪽같이 삼켜버렸다.
바람도 감춰버리니 산엔 적막만 남았다.
어디선가 툭하며 나뭇가지가 떨어져 구르며 고요를 깬다.
위를 쳐다보니 청설모 한 마리가 빨간 눈을 굴리며 빤히 쳐다본다.
대개는 같은 나무들이 연리목, 연리지, 연리근을 이루는데,
서어나무가 제 몸줄기를 소나무에 감아서 기어오르며 연리목을 만들었다.
내 눈에 담기는 모습이 이상한 건가?
아니면 두 나무가 이상한 건가.
하산 길은 짧고 된비알이다.
한 시간여 만에 백련암을 거쳐 수억 년 전에 생성되었다는 '공룡 발자국'을 만난다.
약 7km의 산행거리를 네 시간에 끝내고 충무로 이동한다.
3. 21. 16;00
산을 만나러 온 길에 바다를 만난다.
세상의 잡다한 일을 잊으라고 파도는 말한다.
해무와 운무 그리고 아지랑이는 한 폭의 수채화를 그려낸다.
해무 속에 통영 앞바다의 섬들이 고래가 되어 점점이 떠오른다.
초록빛 바다는 어느 순간 검게 변하며 수묵화를 그린다.
어둠이 내린다.
세상에서 가장 외딴 곳처럼 칠흑같은 어둠이 사위를 가린다.
쉽사리 익숙해지지 않은 어둠과 고요에 묻힌다.
달은 어디론가 숨었고, 쌀쌀한 통영의 밤하늘의 별들이 유난히 선명하게도 빛난다.
꽃샘추위로 얼어붙은 봄의 밤을 밝히는 등불이 되려나 보다.
별똥별이 길게 꼬리를 끌며 서쪽으로 떨어진다.
나는 하늘의 별을 보며 동화 속 풍경으로 빠져들고, 파도소리에 묻혀 남해바다의 밤은
깊어만 간다.
2012. 3. 22 06;00
파도소리에 잠이 깨어 바닷가로 나오니,
갈매기는 아직도 자고 있는 모양이다.고기잡이배가 뱃고동을 울리며 힘차게 파도를 가른다.
잔잔한 바다를 가르는 저 배는 어디로 가는 걸까?
만선의 부푼 희망을 안고 어디론가 달려간다.
약초도 해풍을 맞아야 약이 되듯이 바닷가에 난 길을 걸으면, 염기가 함유된 해풍을 온몸에
맞으며 스트레스가 해소된다.
매스컴만 대하면 울화가 치미는데 여기의 바닷바람은 내 안에 뭉쳐있는 정신을 말끔하게 해준다.
3. 22. 08;00
오늘 산행의 목표지인 '미륵산'이 정겹게 보인다.
잠시 후 하늘이 검어지며 빗방울을 흩뿌린다.
오늘 오후부터 제법 많은 비가 예고되었는데 아침부터 내리기 시작한다.
고 '박경리' 선생의 묘소에 술 한 잔 올리지 못하는 서운함을 안고 발걸음을 되돌려 귀경을 서두른다.
덕유산자락을 지나며 빗방울은 눈으로 변하고,
산허리를 감은 산안개는 목가적인 풍경을 연출한다.
어차피 때가 되면 돌아오지 못할 길을 건너겠지만 지금은 아니다.
겨울이 가고 세월이 흐르고, 지금 이 순간도 시간은 흐른다.
지난 며칠 동안 지인들 몇 명이 세상을 떴다.
사람도 가버리면 다시 오지 않는다.
인연도 세월 따라 흘러가고 꿈과 청춘도 흘러간다.
테레샤 수녀의 말대로 '인생이란 낯선 여인숙에서의 하룻밤일까.'
그것도 알지 못하는 곳에서?스쳐지나가는 한줄기 바람처럼 세월은 가고, 사람도 가지만,
나도 사는 삶의 존재를 느끼고 갈까?
옛말에 현자(賢者)는 들어서 알고,
지자(智者)는 보아서 알며,
우자(愚者)는 당해봐야 안다고 했는데,
이제 모든 것이 세월따라 흔적도 없이 변하고, 세월따라 가고,
나 또한 언젠가는 세월따라 가겠지.
3월의 꽃향기가 가슴깊이 그리워지면 또 다시 찾아오겠지.
봄바람에 꽃잎이 떨어져 슬퍼도 울지말자.
다음엔~
다음엔 꼭 산속에 숨어있는 풀꽃의 유혹에 취해, 연한 연둣잎의 냄새에 취해,
떨어지는 꽃을 따라 돌아오려네.
2012. 3. 22. 고성 연화산에서
석천 흥만 졸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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