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6. 27. 08;20
중요할수록 오히려 소홀한 것이 인생이다.
용화산을 갈까 도명산을 갈까 망설이다 도명산(道明山)을 택한다.
허영이가 자리를 잡고 있어 '용화산'은 언제든지 갈 수 있다는 교만인가?
보병 제37사단의 뒷산인 '두타산(頭陀山)'을 지난다.
1973년 21살 내 젊은 청춘이 바닥을 기며 피땀을 흘리던 곳.
구보 중 목이 말라 논바닥의 물을 마시던 곳.
사격에 불합격이 되어 먹은 것을 토하며 눈물고지를 기어올랐던 곳.
정상에 있는 기지의 월동용 기름통을 메고 올랐던 두타산이 차창 밖으로 스친다.
두타(頭陀)란 깨달음이다.
속세의 번뇌를 끊고 청정하게 불도를 닦는 두타산 아래는 불도(佛道)만 닦는 곳은 아니다.
어린 몸과 마음을 한 단계 성숙시켜주는 신병훈련소는 나의 날카로운 젊음을 닦아 주며,
내 어리석은 품성이 충(忠), 인(仁), 인(忍), 효(孝), 용(勇), 의(義)로 바뀌게 되는
인생의 변곡점이 된다.
증평시내를 지난 후 도로는 한가롭지만 세상은 목이 탄다.
초록이 찬란하게 빛나야 하는 숲이 누렇다.
모질게 생명을 이어가는 나무의 이파리는 녹색이 아닌 연두색이다.
길가의 풀도 누렇게 타들어가고, 스치는 바람에 흙먼지가 풀풀 날린다.
먹구름이 오락가락하니 소나기가 한줄기 쏟아지려나.
목마른 가뭄이다.
104년 만의 가뭄이라는데, 옥수수잎은 말라 비틀어지기 시작하고, 옥수수의 하얀수염은
목마른 표정이 되어 뒤틀린다.
썩은 물인지 거품이 되어 흐르는 시냇가에 붕어 몇 마리가 흰 배를 내놓고 죽어있다.
한 농부가 타들어가는 고구마밭을 보며 수심에 젖었다.
비를 기다리는 것은 아픔인가?
얼마나 아플까,
나는 하늘을 바라보며 하늘을 가르는 천둥, 번개를 기다린다.
단 한 번이라도, 조금이라도 한줄기 뿌려주면 초록이 찬란하게 빛나는 또 다른 세상이
될 텐데 마음속으로 비 오기를 빈다.
10;00
지저귀는 산새소리와 졸졸거리며 흐르는 물소리가 나를 반긴다.
속리산 국립공원의 울창한 송림 속에 우뚝 솟은 기암,
바닥에 드러누운 갖가지 모양의 기암괴석이 어우러진 천하절승 화양구곡(華陽九曲)을
걷는다.
이곳에 반한 조선 후기의 유학자 우암 송시열은 화양동주(洞主)로 은거하며,
이곳이 중국의 무이구곡을 닮았다 하여 9곡의 이름을 짓고 경천벽, 금사담, 첨성대 등의
바위에 글씨를 새긴다.
청산리 벽계수(靑山里 碧溪水)가 부럽지 않은 푸른 산을 보며, 녹색 빛깔이 스며들어
맑고 투명한 계곡물을 보니 몸과 마음이 씻겨 내려간다.
화양구곡(華陽九曲), 쌍계구곡(雙溪九曲), 갈은구곡(葛隱九曲), 고산구곡(呱山九曲),
선유구곡(仙遊九曲), 연하구곡(煙霞九曲), 풍계구곡(豊溪九曲) 등
괴산엔 빼어난 경치를 지닌 구곡(九曲)이 여러 곳이다.
그 중에서도 우암 송시열이 정치적 풍파를 겪을 때마다 한걸음 뒤로 물러나 마음의 때를 씻고
학문에 정진하던 화양구곡(華陽九曲)을 걸으며, 나 또한 송시열이 되어본다
흙 한 점 없는 계곡의 암반 위로 맑은 물이 흐르고, 아름드리 느티나무가 곳곳에
세월의 흔적을 간직한 채 서 있다.
성황신을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성황당(城隍堂)은 아득한 시간의 여행 속으로 빠지게 한다.
아주 좋은 날의 여름풍경에 반해 시간을 잠시 내려 놓으니,
자연이 빚어놓은 기암괴석과 맑은 물이 있는 생명의 땅이 나를 반긴다.
화양동계곡은 벚나무의 신록이 그득하고 푸름이 절정이다.
느티나무와 어우러진 벚나무에 한창 익어가는 빨간 버찌가 주렁주렁 달리고,
성질 급한 까만 버찌는 땅바닥을 시커멓게 물들인다.
제1곡인 경천벽(擎天璧)을 볼 사이도 없이 400여m를 올라오니,
제2곡인 운영담이 나온다.
기암괴석 위 소나무들이 멋진 자태를 자랑하고,
구름의 그림자가 맑게 비치는 운영담(雲影潭)의 깊은 물이 고요하다.
운영담 남쪽에 희고 둥글넓적한 바위가 있으니 화양 제3곡인 읍궁암(泣弓巖)이다.
우암 송시열이 제자였던 임금 효종이 죽자 매일 새벽마다 이 바위에 올라 엎드려
통곡하였다 하여 후일 사람들이 읍궁암(泣弓巖)이라 부른다.
읍궁암 옆에는 친명반청주의자(親明反淸主義者)였던 송시열이 임진왜란 때 조선에 파병을
해준 명나라 신종과 의종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냈던 만동묘가 있다.
전국 어느 곳이든 원효대사와 마의태자의 전설이 가득한데 이곳 화양구곡은
조선 성리학을 계승하고 완성시킨 우암(尤唵) 송시열의 유적과 흔적이 곳곳이다.
청나라의 무력에 굴하지 않은 송시열은 은거했던 이곳에 화양서원(華陽書院)을 세우고,
조선학자들의 모임장소가 된다.
중국 명나라 황제 신종과 의종의 위패를 모신 사당의 옛터인 '만동묘'와 송시열의 묘소,
신도비, 암서재, 읍궁암 등이 있다.
중국의 학문으로 대개는 훈고학(訓誥學), 성리학(性理學), 양명학(陽明學),
고증학(考證學)을 꼽는데,
훈고학(訓誥學)은 중국 한나라 시대 때 공자나 맹자 등 제자백가들의 어려운 철학적
관념을 담은 유교의 경서에 이해하기 쉽게 해석을 다는 것을 주 내용으로 하는
학문이요,
성리학(性理學)은 중국 송나라 때 주자가 제창하여 발달한 학문으로 동아시아에 엄청난
영향을 끼친다.
양명학(陽明學)은 명나라 때 양명 왕수인이 주창한 학문으로 성리학과는 근본적으로
유교 경서의 해석을 달리하는 학문으로 관념론에 빠지는 성리학과 달리
심즉리(心卽理)설과 지행합일, 치양지설을 주 내용으로 한다.
심즉리설(心卽理說)은 심(心)은 곧 천리(天理)라 즉 인간의 순연(純然)이 진리이고,
지행합일(知行合一)은 지식과 행동이 일치하여야 하며.
치양지설(致良知說)은 배우지 않아도 능하고, 헤아리지 않아도 알 수 있다 라는 뜻으로
즉 앉아서 책만 읽어서는 안된다며 실천을 강조한다.
고증학(考證學)은 청나라 시대에 유행하던 학문으로 사상보다는 단순히 과거의 문헌들을
고증하는데 초점을 두는 학문으로 실증주의로 보면 된다.
이러한 학문들을 바탕으로 조선 성리학이 발달하는데,
외교관계는 명분론이 강조된 성리학의 '존화양이'사상으로 평화추구의 친선정책을,
사상정책으로는 불교, 도교, 토속신앙 등 종교적 생활까지도 유교사상으로 흡수한다.
사회정책으로는 양반중심의 지배질서와 종법사상을 기본으로 양반과 상놈의 신분을
엄격히 구분하는 직역의 법제화가 이루어졌으며,
경제면에서는 지배층이 농업경영에 참여하여 주인과 종의 관계를 군신관계처럼
종적질서로 편제한다.
얼마전 인기를 끌었던 SBS TV드라마 '뿌리깊은 나무'에서'정도전의 성리학'을 관심있게
보게 된다.
주자학(朱子學)이라고도 하며, 고려시대 '안향'에 의해 들어와 조선의 주요 통치이념이
되면서 퇴계 이황(남인), 율곡 이이(서인) 등 이념적 기반이 다르게 형성되어 붕당정치를
이루게 된다.
1666년 송시열이 바위 위에 암서재(巖棲霽)를 지어 학문을 연마하고 후진을 양성했다는
제3곡인 암서재 주변의 암벽에 충효절의(忠孝絶義), '예가 아니면 움직이지 않는다.'라는
비례부동(非禮不動)의 글이 새겨져 있다.
반청(反淸)애국사상의 단면을 보여주나, 명나라 임금의 위패를 모실 정도로 지극한
친명사대주의(親明事大主義)를 대하니 오히려 불쾌감이 앞선다.
조선 말기까지 조선 성리학의 중심지였던 이 유적은 경술국치(庚戌國恥) 후 일본에 의해
철저히 왜곡되고 파괴당하는 수난을 겪는다.
맑은 물 속에 보이는 모래가 금싸라기 같다는 제4곡인 금사담(金沙潭)이 적막하다.
화양구곡의 중심이며, 민초들의 삶이 서린 금사담 앞에서 먹는 아이스크림의 맛이
일품이다.
여름이 한창인 화양구곡은 여름의 향기가 듬뿍나고 푸른 기운이 온산을 덮었다.
[ 자연의 축복
물도 흐르고
바람도 흐르고
구름도 흐르니
나도 세월 속에 흐른다.
꽃이 피고 지어도
생명의 푸름은 이어지고,
꽃들의 향연이 지나도
초록의 향연이 이어짐은
자연의 축복이구나. 석천 ]
도명산 기슭에 층암이 얽혀 대를 이룬 제5곡 첨성대(瞻星臺)가 나온다.
우뚝 솟은 높이가 수십m이고, 그 아래 '비례부동(非禮不動)이란 의종의 어필이 새겨져
있다.
평평한 큰 바위가 첩첩이 겹쳐 있고, 그 위에서 성진을 관측할 수 있다 하여 첨성대라 한다.
물소리는 적적하고, 지나는 바람이 고요한 산 속의 적요(寂寥)를 깨더니
지금도 시간이 흐른다고 이야기 한다.
사람들은 여기서 무엇을 남길까,
송시열은 조선 성리학을 남겼지만 나는 무엇을 남길까?
산고수장(山高水長)이라
산이 높으면 물도 긴 법 화양계곡은 제법 많은 물을 길게 토해낸다.
내 삶의 원천이 되는 산.
도명산의 향기는 많은 이야기를 한다.
첨성대에서 1km정도 올라오니 큰 바위가 시냇가에 우뚝 솟아 그 높이가 구름을
찌를 듯 하다는 제6곡인 능운대(凌雲臺)가 나오고, 길게 누운 용(龍)이 꿈틀거린다는
제7곡 와룡암(臥龍巖)을 지난다.
흐르는 물에 시선을 준다.
시간이 굽이치고 세월이 굽이치며 바위를 다듬더니 이렇게 매끄러워진 모양이다.
백학(白鶴), 청학(靑鶴)이 집을 짓고 새끼를 길렀다는 제8곡 학소대(鶴巢臺)의
낙낙장송과 바위절벽이 천하일품이다.
그 어떤 잡음도 섞이지 않은 자연의 소리.
울창한 숲 사이로 맑은 구곡물이 요란하게 흐른다.
골 깊은 계곡의 청정수는 자연의 맛이다.
2.5km를 올라와 흰 바위가 티 없는 옥반과 같다는 제9곡 '파천'은 보지 못하고,
철다리를 건너 산행 들머리로 들어선다.
정상까지 2.8km라는 이정표가 나온다.
[ 물소리
흐르는 물소리는 세상의 소음을 덮고
재잘거리는 새소리가 천상의 소리를 전하더니
흐르는 구름소리는 세상살이의 덧없음을 말한다.
첩첩계곡 사이를 돌고 돌아온 물은
겹겹 산봉우리를 울리더니
내 마음의 소리마저 삼키는구나.
세상을 시비하는 내 목소리마저 삼키며
흐르는 물은 온 산을 두른다. 석천 ]
10;40
여기는 어디일까?
아침의 산새들이 반긴다.
겹겹이 세월이 내려앉은 풍경들은 환상적이다.
산 아래도 이러한데 산의 정상도 천 개 백 개의 얼굴을 가졌을까.
흐르는 계류의 물소리로 세속에 찌들었던 귀를 씻으며 휘적휘적 다리를 건넌다.
참나무 등 활엽수와 피톤치드를 많이 뿜어내는 편백나무, 전나무, 소나무가 혼재된
건강한 숲이다.
나는 산 속에 들어오면 나무를 안고 나무에게 내 마음속을 이야기 한다.
테르핀이 많이 나와 간밤의 숙취를 말끔히 없애주려나
가슴을 열고 심호흡을 하며 출장식 호흡을 연습한다.
심신(心身)이 쾌적해지며, 피로를 풀어주고 뇌활동이 왕성해지니 오늘 메모할 사항이
머릿 속에 계속 떠오르며 축적이 된다.
사실 산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도 아름다운 숲을 보는 것만으로도 심신이 안정된다고
학자들은 말한다.
녹시율(綠視率)이 높을수록 정서적 안정감이 증가하며,
바람소리, 나뭇잎소리, 계곡물소리 등 자연의 원음은 쾌적감과 편안함을 제공한다.
숲속을 15분만 산책해도 스트레스, 심장박동, 혈압 등이 낮아지고, 2일 정도 체류하면
면역세포인 NK세포의 활성도가 높아지며, 한 달이 지나도 숲에 가기 전보다 상당히
높은 수준을 유지한다고 충남대 '박범진 교수'는 일본의 연구결과를 인용하여 말한다.
숲 속 산길은 부드럽다.
어수리넝쿨 우거진 곳 햇빛이 곱다.
어디선가 꿩꿩대며 꿩 우는 소리 들린다.
숲 사이로 햇살이 파고든다.
힘든 고비를 넘기니 멋진 풍경이 선물을 준다.
기암절벽이 병풍처럼 두르고 소나무들이 멋과 기개를 더한다.
[ 쉬
쉬 소리 요란하다
숲 속에 시원하게 쉬를 쏟아 붇는다.
쉬는 남자들의 특권이다.
개도 영역표시를 하지만
남자들도 영역표시를 한다.
세상을 부술 만큼 요란하게 쏟아 보자
단 한 방울이라도 목마른 대지 위에 쏟아 붇자. 석천 ]
우뚝 솟은 바위가 한 폭의 그림을 선사한다.
여기는 어떤 전설이 있을까, 오르다 보니 내가 전설 속의 주인공이 된다.
[ 간단(間斷)의 시간
나는 왜 여기에 서 있지.
간단(間斷)의 시간과 마주하며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는 걸까.
시간이 멈춘 걸까.
계속되던 시간이 잠시 그치면
끝이 나는 걸까.
내 삶의 목적은 무엇이지.
나는 어디서 오고 어디로 가는 걸까.
지금 살아 있다는 거는 분명 아름다운 일인데. 석천 ]
산으로 상징되는 신비스런 아름다움 앞에 나는 시간을 가지고 싶다.
자연의 오묘한 질서를 바라보며 심호흡을 한다
나는 소리내어 내 이름을 불러보며 대자연의 일부라는 걸 실감한다.
아내의 야생화 개인전에 직함이 없는 화환이 하나 서 있다.
'박 XX' 순수한 자연의 이름~부모님이 지어주신 그 이름 하나가 전시장을 환하게
해준다.
나도 이름만 새긴 명함이 어딘가 부족하여 '석천'이라는 호를 하나 더 붙이고
다니지만 어딘지 모르게 어색하다.
대슬랩 구간이 나온다.
미끄럽지도 않고 위험하지도 않다.
문성이와 "말은 적게"로 시작되는 대화를 한다.
과언무환(寡言無患) 말이 적으면 근심이 없고,
신언무우(愼言無尤) 세상 구설이 다 말 때문에 생긴다.
어이 삼가지 않겠는가.
다산(茶山) 정약용은 전남 강진에 유배되자 처음 4년을 동문 밖 주막집 단칸방에서
머무르며 단칸방을 사의재(四宜齋)라 이름 짓고 '생각은 맑게, 용모는 단정하게,
말은 과묵하게, 행동은 중후하게" 라는 네 가지 원칙을 정한다.
가끔 산에서 문성이는 '밥은 적게, 말은 적게, 머리는 많게, 가슴은 넓게'라고 한다.
좋은 이야기를 함축시킨 말이다.
난 '술도 적게, 마음은 넓게'를 추가하고 싶다.
억겁의 세월 속에 다듬어진 기암 사이로 흘러 내리는 솔바람은 상쾌하기 그지없다.
등허리까지 흐른 땀은 이내 팬티까지 젖게 한다.
산에서 무엇을 얻을까?
참회나무가 앞을 가리며 싱싱한 자연의 보물을 선물로 준다.
마음으로 담을까?
숲 속으로 눈길을 주니 숲의 어두운 공간에 땅나리꽃이 환하게 피어
된비알을 오르며 한계에 다 다른 나를 위안해준다.
통나무 계단이 이어지고, 철 계단 옆에도 여기저기 기암이 자리를 잡고 있다.
억겁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씻기고 깎인 자연이다.
통나무계단과 잡목사이를 지나고 가파른 비탈길을 오르자 암벽에 새겨진 마애불상이
나온다.
정교하고 세련된 기법으로 ㄱ자로 꺾어진 암벽에 선각으로 조각한 '삼존마애불상'은
왜 이곳 산중턱에 있을까?
옛날 이 산중에서 어느 도사가 깨달음을 얻어 도명산(道明山)이라 이름 지었다는데
이 마애불과 관계가 있을까?
오른쪽 불상은 9.1m의 규모에 안면의 길이가 2m에 이르며 세 불상 중 가장 세련된
솜씨라는데 양 어깨까지 뚜렷한 선이 그어져 있다.
가운데의 불상은 15m에 이르는 정면상으로 하반신까지 선각(線刻)으로 조성되었다.
조금 떨어진 암벽에 5.4m로 새겨진 불상은 '돋을새김 기법'으로 곡선미의 세련된 면을
보여 주는데,
이 마애불상은 고려 초기에 유행하던 선각마애불상과 같은 경향을 보인다고 안내판에서
설명한다.
마애삼존불 아래 산수국이 가던 걸음 멈추게 하고 눈길을 사로잡는다.
우리나라 산속에서 거의 사라져 한라산이나 지리산에서나 볼 수 있다는 '산수국'을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더 예쁘다.
꽃이 너무 작아 나비나 곤충들의 눈에 잘 띄지 않을까봐 헛꽃이란 무성화를 만들어
곤충을 유혹하는데,
뿌리, 잎, 꽃 모두 약재료로 쓰이며 심장을 강하게 하고 해열제로도 쓰인다.
산수국은 색상이 여러 차례 변한다.
처음엔 연한 베이지색~새하얀 백색~붉은색~자주색 등으로 변하는데 화초가 아니라
나무 즉 관목이다.
바윗길을 돌아 봉우리로 올라서니 낙영산이 솟았다
어느 사람들은 도명산을 통틀어 낙영산으로 친다고 한다.
옛날 중국의 천자가 세수를 하려는데 물 속에 아름다운 경치가 보여 그림으로 찾게 하였다는
전설을 가진 낙영산은 큰 대(大)자가 들어가지 않고, 떨어질 낙(落)자에 그림자 영(影)을
써 '그림자가 떨어지는 산'이라는 아름다운 이름을 갖게 된다.
2년 전 2010. 5. 20일 올랐던 대구 비슬산의 대견사지도 비슷한 전설이 전해진다.
중국 당나라 문종이 좋은 절터를 찾던 어느 날 세숫물에 한 폭의 아름다운 산수가 비치기에
찾은 곳이 비슬산 대견사였다고 한다.
즉 대국(大國)에서 본(見) 절(寺)이라는 것이다.
이미 땀으로 온몸은 젖었고, 휴대한 식수도 하나는 비웠다.
어려움이 클수록 기쁨도 커지지.
힘든 길을 오르니 억겁의 세월이 흘러 시간을 가늠할 수 없는 풍경들이 환희를 준다.
지나는 새들이 한가롭다.
산 아래에서 보이던 정상이 가까워진다.
쪽빛 하늘이 봉우리 위로 흘러 내리고 철계단을 거쳐 도명산 정상(643m)에 오른다.
그림으로 그린 것 보다 아름다운 소나무 사이로
묘봉(874m)과 학이 많이 모여든다는 상학봉(862m), 산세가 새의 부리를 닮았다는
조봉산(687m)이 보인다.
저 기막힌 풍경을 누가 만들었을까?
마음까지 시원해지는 기막한 절경이 이어진다.
[ 나무가 등을 떠밀다
나무가 다 남으로 누웠다.
겨우내 모진 된바람이 불었나 보다.
아니 나무가 남으로 가는 된바람 따라
같이 가자고 조른 걸까.
새파람 놓치더니 하뉘바람 따라
같이 못가 몸부림치는 걸까.
솔바람 불어 등 다독이니
떠나가는 솔바람 더러 어서 가라고
나무가 등을 떠밀었던 게지. 석천 ]
가장 높은 곳에서 산 아래를 내려다 보니 가슴이 확 트이며 눈으로 다 담기가 벅차다.
정상은 적요(寂寥) 속에 빠진 듯 적적하고 고요하다.
5개의 바위가 엉긴 산 정상을 뒤로 하고,
북은 화양동 계곡, 군자산(948m), 칠보산(778m)이 보이고, 동은 대야산(931m), 남은
낙영산(746m), 주봉산(643m,) 속리산 연봉과 문장대(1054m)가 보인다.
12;30
내 몸은 정상 등정(登頂)의 쾌감으로 짜릿해진다.
사방으로 산 물결이 일렁이며 파노라마를 연출한다.
잠시나마 세속의 지저분한 욕망, 더러운 찌꺼기가 멀어진다.
청산(靑山)에 한번 들면 다시는 세속에 나가고 싶은 생각이 없으니 어이할까.
[ 삶
삶이란 저기 흐르는 흰 구름과 같은가.
쪽빛 하늘로 뭉게구름 한 조각 떠간다.
바람에 밀리는 지
시간에 밀리는 지 속절없이 흐른다.
오늘이 옛날이고 내일은 곧 오늘이 되기 위해
시간은 속절없이 흐른다 . 석천 ]
정상에는 비슷한 크기의 바위 다섯 개가 하나를 이루고 있다.
문장대 등 속리산 연봉들이 잘 다듬어진 톱날처럼 늘어서 펼쳐지는 파노라마를 보며
나는 신선(神仙)이 된다.
소나무뿌리가 바위를 뚫고 튀어나와 몸을 비틀고 묵묵히 세상을 굽어본다.
무슨 바람이 있을까?
소반 위에 올려 진 분재처럼 아름다운 반송(盤松)들은 무심한 세월 속에
하늘을 향해 뻗친다.
간직한 이야기가 제각각이라 시간이 멈춘 곳에서 소나무는 하늘을 향해 소리를 친다.
먹구름이 하늘을 가린다.
메마른 땅을 적셔주는 소낙비가 오려나.
하늘을 가르는 번개가 치려나.
온몸을 오싹하게 만들 천둥소리를 기다려 보 건만 하늘은 무심하다.
[ 효자비(孝子雨)야
비야 쏟아져라.
마음껏 쏟아져라.
나무들도 목이 말라 숨이 차고
숨이 찬 나무들을 보는 나도 숨이 차다.
나무들은 구름이 그리워
비가 그리워
연방 손을 흔드는데
먹구름은 숲과 나무를 외면하고
저만치 물러난다.
사랑하는 하늘아.
비를 내려주렴.
이 몸이 다 젖도록 비를 내려주렴.
나는 너를 향해 숨을 몰아 쉬며
비를 기다리는 내 마음을 전한다.
내 앞을 말끔히 씻어주는 소낙비야 내려라.
이젠 먹구름의 점잖은 외면이 .싫다.
옷자락만 나부끼는 바람도 싫다 석천 ]
절정을 이루는 신록 속에 능선줄기가 겹겹이 펼쳐진다.
이곳을 통과해 올라왔으면 하늘로 올라가는 통천문(通天門)일 텐데,
지금은 인간세계로 내려가는 통지문(通地門)이 되는구나.
소녀의 수줍음을 타며 털중나리가 여름꽃의 아름다움을 전한다.
말을 적게 하고 자기를 보라고 털중나리꽃이 말 하길래,
나는 수다를 떨다 갑자기 말이 없어진다.
나리꽃이 나를 위해 은은한 나리 향을 뿜으며 유혹한다.
가까이 다가가 향을 맡으니 술을 한잔 한 것처럼 흠뻑 취한다.
이제 산을 내려간다.
정상에서 날머리까지 3,2km라는 이정표가 나온다.
급한 비탈길이 한없이 이어져 발길이 조심스럽다 .
19;30
서산 너머로 뉘엿뉘엿 해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여름의 한낮은 썰물처럼 빠져 나간다.
어디선가 들리는 소들의 길고 느릿한 울음소리가 귓전에 맴돈다.
적요(寂寥) 속의 산동네에 개 짖는 소리가 동네를 흔든다.
일상을 잠시 접은 초여름의 하루.
여름날도 이렇게 지나가고 어느새 가로등이 켜지고 어둠이 내린다.
취기가 살짝 돌아 밤하늘을 쳐다보니 구름에 살짝 가린 반달이 애처롭다.
햇빛보다 달빛이 더 좋아지고, 맑은 날보다 비오는 날이 더 좋으니
나이가 먹는다는 증거인가?
소음이 들리지 않는 주인의 서재에 들어와 잠을 청하며,
한구석에 덩그러니 세워져 있는 가야금을 바라본다.
며칠 후면 보름인데,
이 고요한 산속에서 하늘의 보름달을 보며 가야금 연주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험한 세상에서 죽을병을 걸리고도 죽지 않고 살아있음이 축복이라는 생각이 들겠지.
2012. 6. 28 10;00
가뭄에 제 빛을 찾지 못하는 '호도나무'를 스쳐 지나간다.
알맹이가 두꺼운 껍질 속에 있는 호도나무(호두나무)를 보며 문득 난득호도(難得糊塗)라는
말이 생각난다.
바보처럼 굴기가 어렵다는 말인데, 지거나 물러서기도 싫고, 손해 보기도 싫고,
더 갖고 더 가지려다가 한꺼번에 모든 것을 잃고 패가망신을 한다.
지혜를 감추고, 권력과 힘을 과시하지 말고, 예기(銳氣)를 죽여야 한다.
입으로 일어난 자는 입으로 망하고, 권력과 칼로 흥한 자는 권력과 칼로 망한다.
모든 것을 버리면 이고득락(離苦得樂),
즉 고통을 떠나 영원한 즐거움을 얻을 수 있음이 평범한 진리며
그 경지가 열반이고, 그 모양이 해탈이다.
금생(今生)의 행복, 내생(來生)의 행복, 구경(究竟)의 행복 등 3대 행복은커녕
금생의 불행으로 떨어진다.
솔로몬저축은행 로비로 대통령 형인 이상득 전의원과 민주당 박지원 원내대표, 정두언
의원 등이 거론되며 세상이 시끄럽다.
얻고 잃음에 무심해야 하는데, 쥐꼬리만큼 가진 권력으로 얽매이니 지옥과 다름없이
자유롭지 못하다.
똑똑한 사람은 똑똑함을 버리지 못해 똑똑한 티를 내고,
조금 알면 아는 체를 해야 직성이 풀리고,
권력과 칼을 가지면 휘둘러야만 직성이 풀리는 모양이다.
옛날 어느 서화가는 말한다.
청나라 때 '정섭'이던가?
"총명하기도 어렵지만 멍청하기는 더 어렵다.
총명함을 거쳐 멍청하게 되기에는 더 더욱 어렵다.
집착을 놓아두고, 한걸음 물러서서 마음을 내려놓는 것이 어찌 뒤에 올 복의 보답을
도모함이 아니겠는가."라고 말한다.
멍청하기가 총명하기보다 어렵다?
가장 어려운 것은 총명한 사람이 멍청하게 보이는 것이라는데,
욕심에서 벗어나 이런 심산유곡에 들어와 몸과 마음을 씻고 유유자적하며
말년을 보내면 몸과 마음의 평화를 얻을 텐데 말이다.
2012. 6. 28 화양구곡 도명산에서
석천 흥만 졸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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