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7. 18 06;00
새벽노을이 동녘 하늘을 빨갛게 물들인다.
먹구름 사이로 한줄기 햇빛이 보이더니, 추적추적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제7호 태풍 '카눈'이 제주도를 지나 지금 어디쯤 왔을까.
태풍이 다가오는데 웬 산행이냐며 주변의 시선이 곱지 않다.
춘천고속도로에 들어서니 빗줄기가 제법 굵어진다.
주변의 산과 나무가 운해 속으로 숨고, 산안개 물안개가 시야를 가린다.
옛날 호랑이와 산적이 우글거렸을만한 분위기를 간직한 배후령의 험한 고갯길을
이리저리 돌고 돌아 마중을 나온 초보 농사꾼 '허영'일 만난다.
새벽잠 설치며 많이 기다렸겠다.
[ 기다림
세상을 살다 보면 기다려야 할 때가 많다.
다가오지 않는 시간.
기다리는 거 말고는 다른 걸 할 수가 없다.
나는 기다림을 안다.
기다림이란 지루함이 아니고 그리움이다.
어느 순간이 지나면 그리움은 축복이 된다.
하지만 기다림은 외롭다.
그러나 기다림이 있어 희망과 사랑, 그리움이 있다.
나에게 기다림은 삶이고, 기다림은 축복이다. 석천]
09;45
어느 산을 가더라도 어느 코스를 선택하여야 할지 늘 갈등을 느낀다.
용화산은 3시간에서 6시간 등 대략 6개의 산행코스가 있지만,
오늘은 태풍을 의식해 짧은 거리와 짧은 시간, 암릉미가 가장 뛰어나다는
큰 고개~정상~큰 고개를 택한다.
태풍소식에 까마귀들이 많이 놀랐나 보다.
수십 수백 마리가 동시에 까악 거리며 날아오르더니 숲의 정적을 깬다.
어렸을 때부터 흉조(凶鳥)로 알려진 까마귀 떼가 울어대니 기분이 묘해진다.
사실 까마귀는 부모가 죽을 때까지 부모 곁을 떠나지 않는 효자새인 반효조(伴孝鳥)인데~
며칠 전 이금회에서 치매에 이어 '죽음'으로 자연스럽게 대화가 흐른다.
대체적으로 '연명치료를 거부하자', '유언장을 남기자', '흔적을 남기지 말자',
'장기 및 시신기증을 하자', '묘지나 납골당을 쓰지 말고 자연장이나 바람에 날리자'
등으로 의견이 모아진다.
벌써 죽음에 대해 토론할 나이가 되었는가?
암릉미가 뛰어나다는 용화산을 오르며 까마귀랑 대화를 해볼까?
죽음과 불길을 연상케 하는 까마귀 떼를 보며 오늘도 '죽음'이 자연스럽게 화제가 된다.
척추가 많이 아파 오늘 진찰을 받으러 간 아내의 '척추 전방전위증'이 더 심하게 진행이
되었을까?
암튼 까마귀의 울음소리는 불길한 조짐을 준다.
예상대로 처음부터 된비알이 연속이고, 안전로프가 설치된 구간이 잇달아 나온다.
굵었던 빗줄기는 가늘어졌다가 다시 굵어진다.
나도 우비를 입어야 할까?
땀에 젖던 비에 젖던 온몸은 다 젖을 텐데 입기가 망서려진다.
[ 외로운 산길
비바람 몰아치는 외로운 산에
새들의 자취가 끊어지니
사람들의 발길마저 사라졌구나.
외로운 산길
모자 푹 눌러쓰고
비바람 속에 산을 오르니
이 또한 내 팔자 아니겠는가. 석천 ]
숲 속에 들어서니 냉하고 축축한 바람이 밀려든다.
삽시간에 먹구름이 하늘을 뒤덮으며 잠시 나왔던 태양을 감춰버린다.
망설이지 않고 소나기를 퍼 불 모양이다.
나뭇잎냄새, 풀냄새, 흙냄새를 머금은 공기가 숲을 휘젓고 지나간다.
세찬바람이 산을 흔들고, 숲의 나뭇잎들이 배를 뒤집는다.
쏴아! 하는 나뭇잎들의 합창이 들리더니 빗방울이 또 떨어지기 시작한다.
녹음이 우거진 암릉 길은 적막하기만 하다.
간간이 나오는 아름드리 소나무와 참나무가 마음을 붙드는 풍경을 연출하며,
묵묵히 걷는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잠잠하다가 다시 바람이 부니 숲이 한차례 부르르 떤다.
톡! 톡! 후드득!
나뭇잎 위로 빗방울이 떨어진다.
이 산에 산객은 우리뿐이라는 걸 아는지 잠시 그쳤던 빗소리가 사람소리 대신 산길을 메꾼다.
모자를 썼지만 얼굴에도 빗방울인지 땀방울인지 몇 방울이 흘러내린다.
은퇴한지 4년이 넘어가며 세상 속에서 나란 존재가 점점 희미해져 가는데 스스로 내 자신을
끄집어내어 나를 되찾고 받아들이라는 우중산행이 된다.
로프에 매달려 8부 능선에 간신히 오르니 천상(天上)의 비경이 펼쳐진다.
숨이 막힌다.
여기가 선계(仙界)로구나.
이런 절경을 볼 줄이야!
구름이 몰려오더니 봉우리 사이에 구름다리(雲橋)를 놓고,
구름바다에 묻힌 산들은 섬이 되었다.
절벽에 핀 한 송이 돌양지꽃이 스치는 비바람에 몸을 부르르 떤다.
절벽 사이로 솔개 한 마리 날아 오른다.
[ 솔개
절벽 사이로 솔개 한 마리 유유히 나르고
아래에 서 있는 나는 솔개를 부럽게 쳐다본다.
숲 속의 나무들이 일제히 흔들리더니
숲 속에 숨어있던 수 천의 새들이
젖은 날갯쭉지를 털며 일제히 허공을 나른다. 석천 ]
분재로 키운 듯 반송(盤松)이 거대한 몸부림을 치며 벼랑 가에 서있고,
회색빛 절벽을 드러낸 기암봉들이 하늘 울타리처럼 늘어서 있다.
투박하고 원초적인 대자연이 정성들여 키운 '명품소나무'가 천상의 세계를 지킨다.
소나무의 진한 향이 내 코를 간 지른다.
거대한 구름폭포가 지상의 세계로 쏟아져 내린다.
지상의 추접함과 더러움을 감싸주려는가, 아니 감춰주려는 걸까?
구름이 흘러내리니 바람도 흐르고 시간은 멈췄다.
대룡산, 삼악산, 북배산, 가덕산, 삿갓봉이 구름바다에 갇히더니 정상만 간신히 고개를 든다.
사방을 둘러싸고 있는 춘천호, 소양호, 파로호 등 북한강의 인공 호수들은 구름에
감춰져 보이지 않는다.
하늘을 찌르며 솟구쳐 있는 기암괴석들을 보며,
와! 하고 탄성을 지르니 탄성은 메아리치며 내 귀를 간 지른다.
머리를 돌리니 시선을 빼앗는 풍경이 보인다.
무엇이 저 바위를 깎았을까,
하나하나 보석과 같은 풍경들.
억겁의 시간이 내려앉은 바위에 잠시 기대어본다.
사람의 손길이 별로 닿지 않은 자연의 길에 거대한 소나무는 쓰려졌고,
사람이 다칠까봐 안전로프를 설치했다.
숲은 점점 깊어지고 태양빛이 들어오지 않는다.
만장봉의 거대한 벽이 나를 압도한다.
옛날에는 용화산을 '새남바우'라고도 불렀다는데,
바위가 하도 높아 새가 날아오르다가 떨어져 죽었다는 전설도 전해진다.
난이도가 제법인 암릉 길이 연속이고,
산악등반 교육을 제대로 받은 허영이의 지도를 받으며 제법 능숙한 폼으로 자일을
잡고 오른다.
이 산에선 어떤 즐거움이 기다리고 있을까.
바윗길을 오르며 잠시도 긴장을 늦추지 않는다.
신선들이 사는 천상(天上)의 세계는 항상 이런 풍경일까?
풍경에 반해 시선을 주다보니 속도가 나질 않는다.
산이 끝이 없다.
수평선, 지평선이 있으면 '산평선'도 있는 걸까?
그림 같은 풍경들이 세상을 끌어안더니 나도 끌어안는다.
여전히 구름은 흐르고 빗방울이 또 떨어진다.
마음에 어느새 잔잔한 너울이 일어난다.
자연 속에 교감을 하고 다시 나 자신을 돌아본다.
만장봉 등 거대한 암봉과 암릉은 설악산 '용아장성'에 버금가는 장관이라는데,
더 특색 있는 암봉이다.
암반사이로 간신히 뿌리를 박은 낙낙장송을 바라보는 나는 선인(仙人)이 된다.
일상에 찌든 번뇌에서 잠시 벗어나 볼까?
나는 하늘 높이 벼랑 끝에 서 있는 바위를 보며 용화산의 풍경이 된다.
깎아지른 암벽과 기암괴석, 거대한 봉우리들이 내 시야를 압도한다.
하늘 벽 촛대바위가 하늘을 찌르고, 층층바위, 선녀가 내려와 바둑을 두었다는 바둑판바위,
득남바위, 만장봉, 가뭄이 들면 마을사람들이 기우제인 '개적심'을 지냈다는 주전자바위,
효자 심마니가 꿈에서 백발의 노인을 보고 큰 산삼을 캤다는 심 바위 등 독특한 전설을 지닌
바위들이 사방에 널려져 있다.
삼국사기에서는 원시부족사회가 형성되던 때에 번성했던 고대 '맥국(貊國)'의
중심지였다고도 하는데, 맥국은 이곳에서 약 8km 거리의 소양댐 길목에 도읍을 정하고,
지금의 용화산과 삼악산에 산성지를 구축하여 양구, 인제, 화천, 홍천까지 영역을
뻗쳤다고 전해진다.
봉우리가 나를 포위하고 사방을 바라보아도 만만한 곳이 없다.
산을 그저 바라보면 그냥 산일뿐인데,
가슴을 활짝 열고 하늘 벽과 촛대바위를 바라보니 나 자신도 용화산의 일부가 된다.
잠시나마 답답했던 마음이 한가해지니 산이 제대로 보인다.
정상이 가까워지니 만봉들이 발아래에 조금씩 가라 앉는다.
내 나이 어느새 회갑.
세월은 참 빨라졌다, 그리고 점점 빨라진다.
사람들의 삶 또한 쏜살같이 흐른다.
사람은 정지할 수도 멈출 수도 없다.
삶과 세월은 계속 진행이 되니까.
그런데도 사람들은 과거나 미래와 단절된 한조각의 현재 시간에 매달린다.
시간의 연속에서 빠져나와 시간의 바깥에 서자.
아찔하고 짜릿한 길이 나온다.
자연이 만들어 준 길 긴 너럭바위로 형성된 만장봉 위를 걷는다.
얼마나 많은 발길이 머물렀을까,
얼마나 많은 산객이 거쳐 갔을까?
풍경 속에 담긴 나는 마냥 행복하기만 하다.
천 길 절벽 위에 묘한 모습으로 바위가 끾였다.
해석들이 다 다르다.
수억 겁 년 깎이고 또 깎였을 텐데 요강도 아니고 여성의 성기 모양이다.
수천 길 절벽의 바위사이로 분재로 기른 소나무보다 더 아름다운 소나무들이 억척스런
생명을 이어간다.
바위에 어떻게 뿌리를 박았을까.
바위사이로 오래 전부터 살아오는 소나무들은 세월과 늘 무관하게 멈춰 서 있는 듯하다.
몇 백 년을 살았어도 늘 변함없이 한결같은 모습으로 인간의 간섭을 받지 않는 절벽의
중간에 서 있다.
아찔한 산길이 매우 가파르다.
한발짝 한발짝 디디며 숨을 고르며 올라간다.
선두는 이미 정상에 올랐을 텐데 나 역시 빨리 가고 싶은 마음은 있으나 더위와 습도가
높으니 마음 먹은대로 몸이 허락하지 않는다.
허지만 천천히 느림으로 조금씩 오를수록 내 의지는 강해진다.
이제 꼭대기가 얼마 남지 않았다.
속도는 나에게 중요하지 않다.
산이 아무리 높고 험해도 못 오를 산이 없고, 오르고 나면 그렇게 큰 산도 내 발아래
작은 산이 된다.
나는 느림에서 행복을 찾는다.
걸음걸이도 느리고, 생각도 느리니 속도에 미쳐서 달려갈 때 보지 못했던 풍경이 보이고,
삶의 속도를 늦추니 나의 내면을 바라볼 수 있다.
돌 위를 걷다가 오랜만에 나오는 흙길을 밟는다.
아늑한 숲길은 발길 닿는 곳마다 푹신하다.
돌길을 걸어 뻑뻑해진 무릎에 스트레칭을 하라고 자연이 주는 선물이구나.
길은 숲을 이루고 시간이 내려 앉은 길이다.
아기자기한 길이 이어지고 난 가끔 무한대로 뻗어있는 긴 길을 꿈꾸지.
산삼이 많이 나 처서(處暑)가 지나면 전국의 심마니들이 몰려든다는데,
산삼이 있을까 기웃거리다 숲 속에 숨어 있는 보물 하늘말나리를 만난다.
삿갓나물, 우산나물, 오미자 등이 지천이다.
10;45
출발한지 한 시간여 만에 용화산 정상(878.4m)에 오른다.
[ 용화산의 행복
용화산 정상을 감싸는 구름의 품 속에서
막걸릿잔을 든
내가 세상에서 제일 행복하다.
산꼭대기에서 들숨과 날숨을 쉬며
시원한 얼음냉수를 마시는
내가 세상에서 제일 행복하다.
불평과 원망, 시끄러운 소음이 없는 곳
용화산 정상에 서 있는
내가 세상에서 제일 행복하다.
일렁이는 산능선을 바라보며
한 마리의 새가 되는 꿈을 꾸는
내가 세상에서 제일 행복하다.
바람이 보이고
자연의 소리가 보이는
내가 세상에서 제일 행복하다. 석천 ]
정상은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사방이 숲으로 가득 찼다.
화천주민들이 산신제를 지낸다는 곳이 이곳인가?
정상석이 납골당 모양으로 용화산의 산세에 어울리지 않는다.
큰 고개에서 까마귀의 까악 거리는 소리가 불길하게 들리더니 이내 현실이 된다.
병원에서 걸려온 전화는 수술이 급하고 꽤 오랜 기간 고생 좀 할 거라는 이야기다.
가슴이 덜컹 내려앉는다.
다음 주 화요일로 수술일정을 급하게 잡지만 마음이 무겁다.
살다 보면 가끔은 삶에 대한 회의와 의혹이 생긴다.
지금 내가 하고 있고, 내가 하고 있는 이 생활이 내가 원하는 방향일까,
방향이 맞는 걸까,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걸까?
산다는 건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이 다르지 않은 한결같음이다.
내가 세상을 살아가며 맑은 눈과 청정한 귀로 보고 들으며, 밝은 정신으로 살면 되는 거지.
12;00
태풍이 몰려오기 전에 하산을 서두른다.
만장봉과 정상의 조망이 뛰어난 바위능선이다.
지네와 뱀이 서로 싸우다 이긴 쪽이 용이 되어 하늘로 승천하였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용화산(龍華山).
지네라 지네도 용이 되는가.
30년 전 어깨가 마비되었을 때 민간요법으로 말린 지네를 캡슐에 담아 많이도
복용했다.
도명산, 인왕산에 이어 계속되는 바위산행(岳山)이다.
등산할 산을 고를 때,
나는 악산(岳山)을 싫다고 하기 보다는 겁이 나 가급적 외면을 했다.
머리 수술 후 균형 감각이 무너진 탓에 바위를 올려다 만 봐도 겁이 나고,
겁이 나기 시작하면 진행속도가 점점 느려진다.
마음속으로 후회도 하고,
그 많은 산 중 하필이면 이런 악산(岳山)을 택하였는가 하며 자책도 한다.
특히 '용화산' 산행은
균형 감각이 떨어지는 나는 위험하다는 문성이의 한마디에 벌써부터 겁을
먹고 차일피일 미뤘었지.
그러나 오늘은 다르다.
깎아지른 절벽을 내려다보며 현기증도 나지만,
황홀한 풍경에 정신을 빼앗기며 산악영화인 '클리프 행어'의 장면을 떠올리고,
잠시 영화 같은 삶, 영화 같은 장면도 상상해본다.
무슨 그리움이 그리 남았는지, 무슨 아쉬움이 남았는지
벼랑가의 고사목 줄기가 하늘을 단단히 움켜쥐고 한줌의 흙으로 돌아가길 거부한다.
하산 길에서도 풍경은 계속 변하고,
산이 그리울 때 또 다시 찾고 싶은 풍광이 펼쳐진다.
못된 사람들이 바위에 이름을 새기고 낙서를 해 인간의 흔적이 너무 많이 남았다.
여기에 이름을 남기고 싶은 건 또 하나의 욕심이겠지.
비가 많이 내려 온몸이 젖는 우중산행을 즐기고 싶었는데,
새파람이 불어오며 비는 멈추고, 내 눈길 머무는 곳에 구름이 따라 흐른다.
꿩의다리가 활짝 피었다.
13;00
세 시간여의 산행을 마치고 등산로를 벗어나 깊은 계곡의 청정수를 찾는다.
물소리가 온몸을 감싸고 귓가를 울린다.
계곡물은 이리저리 튀며 하얀 물보라를 이룬다.
계곡을 따라 조금 내려가니 그 많던 물줄기들이 소와 담에 몰려들어 잔잔해진다.
물속에 발을 담그니 발이 시려 오래 있을 수가 없다.
'마음을 비우고 공(空)으로 돌아가는 삶을 살라'고 깨우치게 하는 계곡이다.
15;00
'선농일체(禪農一體) 무아지경(無我之境)'의 경지에 들어가고 있다는 초보 농사꾼
'허영'이가 쓴 귀농일기를 보며 감탄을 한다.
하루도 빠짐없이 배우고, 실행하고, 느끼고, 생각하는 것을 일목요연하게 정리를 하였다.
말 그대로 평생 농사를 짓는 것이 목탁을 두드리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까?
가을에 밭과 집을 준비하고 검은 콩인 '서리태'를 집중적으로 심는다고 한다.
오늘이 초복(初伏)이지?
서둘러 벽돌을 쌓고 굴뚝을 세워 화천시장에서 사온 삼계(參鷄)를 삶는다.
23;00
태풍이 가까이 왔나 보다.
산 속의 요란한 비바람소리가 창문을 타고 들어온다.
빗소리를 들으며 조용히 눈을 감는다.
난 무슨 꿈을 꿀까?
2012. 7. 18. 용화산 산방에서
석천 흥만 졸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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