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7. 4. 09;20
서울 둘레길 북한산 5코스 중 도봉산 18~20구간을 돌면 정선 노추산(1, 322m)과
월정사를 다녀와 3일 연속 산행인데, 더위에 내 체력이 버틸 수 있을까?
안내판을 보니 20구간 우이령길~정의공주묘 1.6km, 19구간 정의공주묘~무수골
3.1km, 18구간 무수골~도봉산 입구 1.7km로 총 6.4km에 세 시간 반이 걸린다고 하는데,
오늘 이 구간을 마치면 13~17구간만 남으니 북한산 둘레길에 내 추억이 많이도 쌓이겠지.
둘레길 들머리에 해병대전우회 컨테이너 하우스가 요란하다.
해병대전우회는 고대동문회, 호남향우회와 더불어 우리나라 3대 패밀리에 들어가는
큰 조직으로 지역사회에 많은 봉사를 하는 조직이다.
나는 1970년 해병대에 두 번이나 자원했으나 탈락해 육군으로 입대를 하였지.
친구들 중 해병대에서 군복무를 한 친구가 몇 명인가 손가락으로 꼽아본다.
하늘에선 여름 태양빛이 작렬한다.
배낭에 얼린 생수가 두 병이 들었는데 세 시간이 넘는 산행에 부족하지는 않을까.
20번 구간인 왕실묘역 길에 잠시 선다.
스마트폰과 인터넷에 익숙한 인간세상,
햇살 가득 내리치는 둘레길 입구에 덩그러니 서있는 빨간 우체통이 세월의 뒤편에
쌓여있던 추억을 끄집어내게 한다.
내 서재의 묵은 함을 뒤져보면 그 옛날 보내고 받았던 편지가 있을까?
아차!
빨간통 안에 사연을 보내는 편지가 있을까 들여다보니 우체통이 아니고 둘레길에
다녀왔다는 인증 스탬프를 보관한 통이다.
수십 년간 빨간 우체통을 봐오며 살았으니 빨간통은 다 우체통으로 착각을 하는 우(愚)를
범한 거다.
장난이 심하셨던 어머니가 신혼 초 내가 총각시절 여자 친구들과 많은 편지를 주고
받았다며 아내에게 일러바친다.
며칠 후 까맣게 잊고 있었던 편지 뭉텅이가 나와 부부싸움을 한 후 마당에서 몽땅
불태웠는데, 아버지의 편지는 소중하기에 별도로 보관을 했지.
학창시절과 군대시절 내가 보낸 편지에 아버지는 맞춤법과 문맥이 틀리면 첨삭을
해놓으셨다가 돌려주셨지.
전세 집을 거쳐 10번 이상 이사를 하면서 아버지의 편지를 어디에 두었는지 모르겠다.
빨간통을 보며 잊었던 추억이 새록새록 튀어나온다.
참나무가 울울창창한 숲길에 햇살이 비껴들고, 산길은 잔돌과 큰 돌이 없는 부드러운
흙길이다.
09;40
연산군 묘소와 역사를 같이 한 거대한 은행나무가 하늘을 찌른다.
전국 어디든 동구 밖이나 마을 어귀에는 마을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된 고목이 서있다.
사연과 전설을 가진 당산목은 동네의 수호신으로 느티나무, 회화나무, 은행나무, 소나무,
팽나무 등 수종(樹種)이 다양한데, 진천엔 회화나무, 괴산엔 느티나무가 많고 하남
객산(客山) 입구 샘재에는 거대한 갈참나무도 있다.
고개를 들어 나무 꼭대기를 보려 하니 키가 너무 높아 지금 서 있는 자리에선 볼 수가 없다.
5~6명이 안아도 남을 만큼 거대한 덩치를 가진 은행나무를 심미적 측면에서 봐야 할까?
아님 교육적 측면에서 봐야 하는지는 모르지만 태풍이나 벼락, 폭설의 피해는 입지 않은
모습으로 죽은 연산군을 지척에서 지키고 있다.
서울시 지정 보호수 제 1호로 높이 24m, 둘레 9.6m, 수령 800~1,000년이 되며
서울시에서 가장 오래된 은행나무로 이 나무에 불이 날 때마다 나라에 큰 변이 생겼다는
은행나무를 바라보며 내 특유의 버릇이 나온다.
용문산 은행나무와 크기와 수령 등을 견줘야 하니, 어느 나무가 더 오래 되고 키가 클까.
산행이 끝날 때까지 궁금증이 풀리지 않으면 안되는데,
이동 중 인터넷을 검색할 수가 없으니 궁금증을 참고 연산군 묘소로 오른다.
천연기념물 제30호인 용문산 은행나무는 높이 42m 뿌리둘레 15.2m 수령은 1,100~
1,500년으로 추정된다고 하니, 여기 은행나무는 크기와 둘레가 그보다 못하지만 장엄하고
영험한 기상을 가지고 있다.
내 기억으로는 광해군은 매우 총명하고 영민하였으나 연산군이 총명했다는 기록을
본 적이 없다.
영화나 소설에서 연산군은 늘 폭정의 대명사요, 죽어서 먼 훗날에도 역사의 조롱감이 되었다.
연산군은 조선조 몇 대왕이었지?
태정태세문단세예성'연'중인명선광인효헌숙경영~~학창시절 외우던 기억을 살려 세어보니
10대 임금이었네.
연산군은 역사에서 이야기하듯이 '문제적 인간'이 맞는가?
누군가는 그를 '과거를 극복하는데 실패함으로서 미래로 나아가지 못한 인물'이라고
혹평을 한다.
'과거'라 어머니인 폐비 윤씨의 망령에 휘둘려 갑자사화와 무오사화를 일으켜서일까.
연산군은 집권 초기 종묘제도를 정비하고 상평창을 설치하여 물가를 안정시키고,
호적식년(戶籍式年)을 개정하여 백성의 불편을 해소하였으며, 비융사를 설치하여
갑옷과 무기를 생산하는 등 국방에도 힘을 쓰고 퇴폐풍조와 부패상을 없앤 영민한
임금이었다.
그러나 그는 생모 윤씨의 폐출 경위를 알게 되자 패륜적인 행위를 일삼고
무오사화, 갑자사화를 통하여 많은 선비를 죽였으며, 계속되는 사치와 향락으로
국가재정을 탕진하다가 1506년 9월 중종반정으로 폐위되어 강화 교동도에 위리안치
되었다가 1506년 11월 병으로 죽었다.
그의 머릿속에는 단군왕검 할아버지가 무당이고, 신라의 성골 진골도 무당이라는 생각만
박혔으니, 조선사를 선비인 유(儒)와 무당인 무(巫)의 투쟁으로 단순화하여 조선의 지도
이념인 유교사상과 유교의 옹호 세력인 선비(士)를 타도 대상으로 겨냥해 정쟁을 일삼다가
쫓겨난 게 아닌가.
장독대에는 칠성신이 주인공이고, 산골의 성황당에는 단군이 주인공이요, 불교의 탱화
한구석에는 무당이 늘 한자리를 차지해 무당은 우리의 토속신앙과 밀접했다.
그는 자신이 저지른 사화(士禍)를 합리화 시키며,
낡은 기둥과 썩은 세상의 서까래를 부수는 즉, 파괴를 통한 개혁을 서두르다가 탄핵을 받아
임금(王)에서 군(君)으로 강등되어 무덤까지 능(陵)이 아니라 묘(墓)로 격하되는 수모를
당한다.
어려서 부모세대의 갈등과 비극을 겪은 그는 권력을 쥔 뒤 독단적인 개혁에 나서지만
결국 권력자의 개인적 일탈이 세상의 재앙으로 번지는 것을 모르는 비극의 주인공이 되어
망자(亡者)의 한(恨)을 품고 이곳에 잠들었다.
09;50
세종의 둘째딸인 정의공주 묘를 지난다.
왕족의 묘는 능, 원, 묘로 구분하는데,
능(陵)은 왕과 왕후의 무덤을 말하고, 원은 세자와 세자빈, 왕을 낳은 친부모가 묻힌 곳을
말하며 그 외 왕족이 묻힌 무덤을 묘라 한다.
다시 산길을 오른다.
줄곧 동행하던 흰 구름은 멀어지고 산길은 고요하다.
간간이 산새가 울어 적막을 흔들고, 반대편에서 라디오를 켠 사람들이 소리공해를
주며 올라온다.
무수골이 1.3km 남았으니 반 이상 걸었구나.
10;50
한줄기 불어오는 바람소리와 친구들의 도란도란 거리는 소리가 하모니를 이룬다.
삼각산의 장쾌한 능선 위로 뭉게구름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엊그제 겨우 내린 비에
숲과 나무들이 싱그럽다.
영화 '연평해전'의 이야기가 잠시 화제가 된다.
꼭 봐야 할 영화, 보지 않으면 전사자에게 매우 미안한 생각이 들겠지.
초록이 한 가지인 줄만 알았는데 나무마다 다른 초록이 향연을 펼치니 잠시라도 눈을
뗄 수가 없다.
숨 막히는 백수의 일상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훌쩍 떠나 둘레길을 둘레둘레 걸은 지도
어느새 두 시간이 흘렀다.
이 구간을 지나면 어떤 풍경이 나를 기다릴까?
삼각산과 도봉산의 장쾌한 능선을 파노라마로 담으며 내 산행의 영원한 화두를 생각해본다.
언제 어디쯤에 서있으면 이제껏 살아온 내 삶의 궤적을 볼 수 있을까.
뭉게구름 피어나는 장쾌한 능선이 꿈틀거리며 이제껏 껴안고 있던 내 안의 근심을
지우라 한다.
11;20
마지막 18구간의 산뜻하지 않은 이정표의 화살을 잘못 보았는지, 다람쥐 체바퀴 돌듯
길게 한바퀴를 돌며 예정하지 않은 길을 걷는다.
만장봉을 배경으로 한 옥수수의 흰 수염이 하늘거리고, 개들이 짖기 시작한다.
엎드려 일을 하던 노인과 아낙이 허리를 펴고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는 눈초리가 이상하다.
이 무더운 여름날 비싼 밥 먹고 일 없이 왜 길을 걷느냐는 표정이다.
이 사람들도 스트레스 많은 도시에서 지친 삶을 힐링(Healing)하려 옴을 모르지는 않겠지.
그래도 밭에서 일하는 노인들 보기가 미안하긴 하다.
11;30
힘들고 애쓰지 않아도 되는 북한산 둘레길,
둘레둘레 걷다보니 어느새 1.3km만 더 걸으면 오늘 산행의 종착지가 된다.
파란 하늘엔 뭉게구름 피어오른다.
인생에서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이 있다는 제로섬의 법칙이 세상의 셈법이지.
내가 나 자신 앞에 부끄러운 것만은 참을 수 없다.
이젠 세상의 셈법에서 해방되어 일회일비하지 말고 내 자리에 뿌리박고 서서 묵묵히
황혼 길을 가자.
끝이 멀지 않다.
다시 발길을 재촉하는 도봉산의 모습이 하늘에 서린다.
11;50
연평해전 영화 이야기가 나오고 단체관람을 하자고 제의를 하며 산행을 마친다.
2015. 7. 4. 서울 둘레길 북한산 5코스를 마치고
석천 흥만 졸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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