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7. 23. 04;00
밤새도록 쏟아지던 소나기가 그치자, 집 앞 연못에서 맹꽁이와 개구리가 일제히 울어대고,
그동안 부산을 떨며 새벽잠을 깨우던 새들이 침잠(沈潛)에 빠졌나 싶더니, 억~ 엑! 하며
솔부엉이가 소리를 지른다.
지난 5월 앞산에 날아온 솔부엉이가 터를 잡은 모양인지 매일 울어대며 내가 산속에
사는 분위기를 만들어준다.
10;30
금수산 산행을 목표로 수차례 기상상태를 점검하고 확인해도 12시부터 10~24mm
비소식이라 안전한 괴산 칠성호반의 등잔봉, 천장봉 등산과 '산막이옛길' 트래킹으로
계획을 변경한다.
덥다.
달력을 보니 오늘이 중복(中伏)과 대서(大暑)가 겹쳤구나.
산으로 가로막혀 더 이상 갈 곳이 없다는 괴산 산막이 옛길에 트래킹을 할 수 있는 길이 뚫려
그 길 위에 내가 선다.
길은 그리움이다.
길은 풍경을 완성하고, 산과 물은 사람들의 상처를 핥아 치유를 해주니 삶에서
상처를 받은 사람들이 걷는 산막이 옛길은 치유(Healing)의 길이다.
꼬리를 물며 나타나는 나지막한 고갯길에 펼쳐지는 오솔길은 내 아련한 고향길이다.
삭막한 풍경을 지운 길은 고향에 대한 그리움의 뿌리라 언젠가부터 걷고 싶었던 옛길 위에
내 추억을 쌓으며 발걸음을 옮긴다.
또각또각 대는 발자국 소리가 잔잔하게 들리더니 슬그머니 사라진다.
어느새 길은 나의 존재를 망각했는지 빠르게 나의 흔적을 지우며 다시 길이 되고 산이 되고
숲이 된다.
자연 속에 녹아든지 10분도 되지 않아서 고인돌을 만난다.
여름이 무르익었다.
바람끼 없는 숲은 눅눅하고 뱃속까지 땀으로 젖는다.
잔잔하던 숲에 솔바람이 슬쩍 부니 나뭇잎들은 경쾌하게 바람을 굴리고, 정적(靜寂)으로
쌓인 산길에 호수가 침묵(沈默)으로 나타난다.
전망대에 서니 비밀을 간직한 호수가 한눈에 들어온다.
아침잠에서 깬 호수는 특별한 무엇이 있는지 아름답기만 한데,
호수 한가운데를 배가 지나가며 깊고 푸른 물에 금이 그어지고, 잔잔한 물을 원했던
내 마음에도 금이 간다.
아카시 꽃향기, 밤나무 향기가 사라진 산속 그늘에 '외대으아리'가 피어 향기를 흘리고,
숲의 짙은 녹음은 다가올 장맛비를 숨죽이며 기다린다.
낮은 돌담길은 나를 사색에 잠기게 한다.
뿌리가 다른 나뭇가지가 서로 엉켜 한 나무처럼 자라는 연리지(連理枝)길을 우회해 허공에
낸 출렁다리를 건넌다.
앞선 이들이 발을 옮길 때마다 나무다리는 허공에서 출렁거리며 춤을 춘다.
출렁다리에 올라타자마자 내 시간은 거슬러 올라가 장난기 심한 동심의 세계로 들어섰다가
발아래 핀 '흰여로'를 발견한다.
지난번 노추산 정상에서는 '붉은여로'를 만났는데, 오늘 '흰여로'를 만났으니 나에게 행운이
올까.
느티나무의 고장인 괴산(槐山)의 길가에는 '대학옥수수'를 파는 곳이 수시로 나타난다.
브랜드가 없는 옥수수는 맛이 별로라는 '편견'이 붙었는가?
이젠 옥수수도 '대학'이라는 브랜드가 붙어야 잘 팔리는 모양이다.
19일 밤 MBC 프로그램 복면가왕에서 10주간 왕좌를 지킨 클레오파트라가 자기의 장르가
아닌 '한오백년'을 처연하게 부르고 통키에게 왕좌를 물려준다.
가면을 벗으니 인터넷에서 예상한대로 '김연우'였다.
그가 왕좌를 지키던 지난 10주간은 참 행복했고 일주일 내내 그 프로를 많이 기다렸지.
광우병 사태 때 MBC에 염증을 느껴 그쪽 방송은 수년간 보질 않았는데, 요즘은 내가 많이도
변했다.
사무실에 혼자 있을 때는 김연우가 부른 '오페라의 유령', '사랑할수록 가질 수 없는 너',
'사랑 그 놈', '만약에 말야'를 들으며 행복에 푹 빠지기도 한다.
복면가왕에서는 노래하는 가수의 얼굴을 가면으로 가렸기에 판정단은 누군지 모르는
상태로 듣고 판단하고 결정을 한다.
즉 편견이 없는 상태에서 오직 가수의 가창력만으로 승부를 하는 거다.
아주 오래전 인사부에 근무할 때,
은행원은 거의 대다수가 상고나 여상 출신인데, 인사부에 서울대 출신이 한 명 있었지.
은행에 큰 행사가 있으면 은행장의 연설문을 인사부에서 준비한다.
동료들은 내가 연설문을 더 잘 쓴 거 같다는데 막상 채택은 서울대 출신이 쓴 연설문이다.
서울대 출신이라 글도 잘 쓴다는 편견에 상사들은 사로잡힌 모양이다.
은행에서 서울대 출신은 리더십, 영업력, 기획력, 추진력이 떨어져도 웬만한 결격사유만
없으면 부장, 본부장을 거쳐 부행장까지 쉽게 오른다.
출렁다리를 건너며, 안전시설이 되어있는데도 위험할 것이라는 편견과 두려움에 떠는
사람들로 진행이 되질 않는다.
'편견'이라는 단어가 머릿속에서 맴도니 이 나이가 되었어도 편견이라는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한 나를 발견한다.
내륙지방의 산은 대개 참나무 층층나무 밤나무 아카시 단풍나무가 지배를 하는데
여기 등잔봉은 소나무가 장악을 했다.
하늘을 향해 꿈틀거리며 솔 향을 내뿜는 소나무들이 초록세상의 주인이다.
호수와 숲 사이를 걷는다는 건 산행 중에서도 매우 행복한 일이다.
비를 머금은 숲은 활기가 가득차고 그 기(氣)를 받으려는 나는 길게 심호흡을 한다.
물안개와 바람이 있었더라면 산속의 신비(神秘)가 더했을 텐데라고 중얼거리며 나는
어느새 욕심쟁이가 되었다.
11;00
초록이 지배하는 산길을 미끄러지듯 빠져 들어간다.
숲 속에 숨은 '둥근이질풀' 한 송이를 찾아낸다.
이 숲 속은 야생화의 보물창고인 모양이다.
촬영을 하며 또 어떤 모습의 야생화를 만날 수 있을까 가슴이 두근거린다.
삶의 기쁨을 누렸던 시간을 되돌아보면 그 기쁨의 뿌리는 무엇이었을까?
돈, 승진?
곰곰이 생각해보니 돈에서 비롯된 것은 거의 없었다.
은퇴 직전 인생 재설계 교육과정이 진행되던 어느 날 대모산에서 숲 해설시간을 갖는다.
해설사의 이야기를 집중해 듣다 보니 나의 뿌리는 촌놈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그해 봄, 산에서 만난 야생화 한 송이, 늘 보던 나무 한 그루가 색다르게 나에게 다가온다.
혹한을 이겨내고 자연에서 핀 야생화 한 송이에서 신비스런 생명력을 느끼며
난 비로소 황혼의 삶에 대해 깨달았지.
현역에서 옷을 벗자 사람들의 시선이 꽤나 부담스러워 서서히 우울증도 오기 시작했지.
목표가 없는 인생, 간절함이 없는 인생을 살다보면 우울증이 쉽게 오는데,
숲에서 배시시 웃는 한 송이 꽃이 내 후반기 인생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둥근이질풀에 반가운 인사를 하고 사진을 찍고 나니 곁에 있던 '흰패랭이'가 고개를 내민다.
이 꽃도 석죽과의 '패랭이꽃'인데 종류를 알 수가 없다.
자연에 서식하는 패랭이꽃이 약 300여 가지라는데 내가 아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겠지.
지금 내가 바라보는 패랭이꽃은 분명 숲의 요정이다.
숲은 순순히 나에게 길을 열어준다.
수십 년 나이를 먹은 다래넝쿨이 서로 엉켜 풀과 원시림을 이루지만 산을 오르기에는
불편하지 않다.
거친 길이 아니라서 즐거이 숲 속으로 몸을 내던진다.
새와 바람과 야생화가 머무는 곳에 숲의 요정도 신선도 머무르겠지.
나 역시 초록이 녹아든 초록인간이 되어 숲 속에 머무를까?
이 바위사이를 오르면 보이지 않던 숨은 풍경이 나타날까.
숨을 몰아쉬며 천천히 바위 사이를 오른다.
고도를 높여도 호수는 또 보이고 새로운 풍경이 나와 지루할 틈이 없다.
산길과 물길이 어우러진 풍경은 생동감을 주는데 산길에서 길(道)을 물을까.
호수를 내려다보며 내가 살아 나갈 삶의 길을 묻는다.
약해지지 않으리라 생각하면서도 불쑥 떠오르는 기억들을 애써 지운다.
지글거리는 태양빛이 없어도 무더위는 나를 질리게 하고, 얼음이 녹은 찬물 한 모금은
정신을 바짝차리게 한다.
숲 속에 노랗게 핀 '각시원추리'를 보며, 비슷한 색깔의 호박꽃이 생각난다.
담벼락에 기어오른 호박 넝쿨에 노란꽃이 피고 호박이 달리면 나무가지를 꺾어 호박에
똥침을 주는 장난을 하다가 어른들에게 걸리면 혼도 나고 했는데, 이젠 그런 추억도 만들 수
없는 황혼이 되었으니 세월의 덧없음을 한탄할까.
하늘의 먹구름이 말의 모양으로 바뀌더니 발굽소리 요란하게 달아나며 몇 방울의 빗방울을
뿌린다.
여기는 계절을 느끼지 못하는 곳이다.
서울 근교보다 꽃 핌이 한 달이나 늦으니 세월이 흐른 게 아니라 거꾸로 타임머신을 탔나 보다.
여기저기 고개를 삐쭉 내민 '각시원추리'가 금방이라도 소리를 지를 거 같다.
산길에서 만난 무덤가에 고려엉겅퀴와 각시원추리가 외로운 원혼을 달래준다.
누구 하나 돌봐주는 사람이 없는지 관중(貫衆)과 풀이 무성하고 잔디는 다 사라졌다.
한줌의 재가 되어 흩뿌려지면 간단할 텐데 인생길 어렵게 살다 갔어도 자손의 욕심으로
구석진데 외로이 누워 풀 무덤이 되었구나.
담쟁이 넝쿨이 소나무를 타고 자라는데 줄기를 따라 뿌리를 찾으니 행방이 묘연하다.
이 담쟁이는 땅에 뿌리를 박지 않고, 소나무에 뿌리를 박고 오르니 소나무의 기생
담쟁이로 당뇨에 좋다는 송담이구나.
산길을 따라 숲으로 스며든다.
< 산길
이 길 위에 내 발자국이 쌓이면
모두 추억이 될까.
언젠가 허리 꾸부러져 돌아오면
이 산길 이 색깔 이 소리
이 꽃의 향기가
산의 숨결처럼 느껴질까.
숨결처럼 느껴지면
이승의 남은 길 생각할까.
이승의 지나온 길 기억할까.
그러다 지나간 시간이 그리움 되어
미치도록 사무치면
눈물이 나 꺼이꺼이 울 텐데
그러면 나는 어떻게 하지? 석천 >
11;00
산모퉁이를 돌면 반가운 사람을 만날까, 아님 멋진 풍경을 만나겠지.
도시의 담벼락을 낀 길모퉁이를 돌 때면 늘 가졌던 감정을 산에서도 느낀다.
산모퉁이를 돌아 만난 바위는 하늘을 향해 무언가를 갈구한다.
바위에도 감정이 있는 모양이다.
정상까지 300m 가 남았지만 위험하지 않은 길이라는 안내판이 무색하게 가파르다.
섣부른 욕심이나 고집을 세울 곳이 아니기에 바짝 긴장을 하며 천천히 오른다.
12;00
한양으로 과거를 보러 간 아들의 장원급제를 위해 등잔불을 켜놓고 100일간 기도를 했다는
등잔봉(450m)에 오른다.
지금도 효험이 있어 자식들을 위해 정성을 드리는 사람들의 발길이 잦은 봉우리에 서서
얼굴에 흐르는 땀을 식힌다.
정상에서 한반도를 닮은 지형을 바라보며 나 또한 산속의 섬이 되었다.
일상에서 벗어난 내 삶의 여백을 메꿔주는 풍경에 잠시 넋을 잃는다.
다음 목적지인 천장봉을 향해 터덜터덜 걷는다.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아무 생각 없이 잠시 무아지경(無我之境)에 빠졌던 모양이다.
젊어서부터 지금까지 내 손엔 책이 항상 들려있다.
여행을 하면서도, 잠자리에서도 잠들기 전 몇 페이지라도 보려는 책이 침대 머리 옆에 놓였고,
화장실은 물론 심지어는 식사를 할 때도 식탁에서 책을 보는 버릇으로 부부싸움이 가끔 있었지.
세월이 흘러 노안(老眼)과 황반변성으로 왼쪽 눈은 시력이 거의 나오지 않아 겉으로는 멀쩡한
외눈박이 신세다.
그래도 책을 읽지 못하면 허전하기에 10여 분 읽다가 30여 분 눈을 감고 시력회복을 기다리며
묵상(默想)에 잠긴다.
처음엔 묵상하는 폼만 잡다가 슬그머니 잠이 들기도 해 쓴웃음이 나오기도 했지.
사무실이든 집의 서재든 의자에 머리를 대고 묵상(默想)에 잠길 때 나는 나의 내면을 기르고자
애를 쓴다.
백수생활을 한지 7년이 지나니 드물게 울리던 전화벨도 조용해졌다.
서서히 잊어지던 내가 이제는 잊어진 사람이 되었으니 현인(賢人)들 같이 '반일정좌 반일독서
(半日靜坐 半日讀書)'를 하려 한다.
도(道)를 닦는 도인(道人)이 아니니 부산스런 백수생활에서 정좌(靜坐)를 하기란 쉽지 않다.
따라서 나는 매일 새벽 6시 108배를 할 때, 산행을 할 때, 또는 소란스런 당구장에서도
식심(息心) 즉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려 노력한다.
그러다 보면 오늘같이 가끔은 멍하고 몽롱한 상태에 빠지게 된다.
고요한 산중(山中)이라서 깨달음 없이 멍한 걸까?
나는 무아지경을 나름대로 깨달음이라 생각했는데 지나보니 그낭 멍한 완공(頑空)
상태였구나.
그래도 분별을 잃어 독선에 빠진 광혜(狂慧)보다 나은 게 아닌가.
현자(賢者)들은 마음이 산란할 때는 고요함으로 다스리고, 멍할 때는 각성으로 추스른다고
한다.
나 비록 현자(賢者)는 아니지만 잠시 눈을 감으니 마음이 깨어나고, 그동안 잠잠했던,
마음 한구석에 담아 두었던 생각도 깨어난다.
비록 고요한 곳에서 정좌를 하지는 못하고 있어도 고요한 산길에서 마음이 가라앉으며
스스로 현자의 느낌이 드니 나의 얄팍한 건방짐과 이기심이 하늘을 찌르는 모양이다.
내 성격은 매우 급한 편이라 마음 한구석 깊숙히 가둬두었던 미움과 증오가 자주 튀어 나온다.
행위를 함에 있어 매사에 뜸을 들이지 않고 빠르게 처리하며, 충청도 사람 같지 않게 맺고
끊음이 확실하여 가끔은 상대방에게 불편을 줄 때가 많다.
인자요산(仁者樂山)이요 현자요수(賢者樂水)라 했다.
지혜란 바로 어리석음을 벗는 것이고 어리석음에서 벗어나는 건 바로 광명(光明)이다.
나는 오늘 물길과 산길을 다 밟으니 이곳에서 삶의 지혜(智慧)를 얻어야겠지.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부드러운 산길을 걸으며, 자아(自我)는 무엇일까,
삶과 죽음은 연속되는 윤회(輪廻)일까?
깨달음에 이르는 궁극의 상태인 열반(涅槃)에 도달하면 해탈하여 삶의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 건가,
끊임없이 나 자신에 묻고 답을 구하지만 어리석은 자(者)에 불과하니 답이 있을 리가 없다.
답이 없어도 지난 2주일간 나를 괴롭혔던 두통(頭痛)이 이 산에서 가셨으니 살만하다.
더불어 뻑뻑하던 눈도 시력을 제법 되찾았기에 오늘만큼은 열반에 도달한 모양이다.
산불이 났는지 왼쪽 소나무들은 불에 타 빨갛게 변했고 나무밑둥치는 시커멓게 타버렸다.
소나무는 불에 약해 불기만 스쳐도 죽는데, 거대한 산불이 이곳에서 기승을 부렸던 모양이다.
12;37
석양(夕陽)이 물들 무렵 이곳에 서고 싶다.
덧없이 스러져버린 것들이 얼마나 많을까.
은퇴를 앞두고는 석양이 싫었지.
떨어지는 태양과 은퇴가 결부되면서 석양이 싫고 힘들었지만 긴 백수생활에 지쳤는지
이젠 석양이 물들 무렵이 좋다.
아쉬움 속에 발길을 옮기다 절벽에 간신히 몸을 붙이고 바위에 뿌리를 박은 소나무를
바라본다.
시간의 자취를 제 공간에 두고 가려니 소나무가 애잔하게 보이고, 오늘따라 이 풍경이
외롭다는 생각이 드니 나도 많이 약해졌나 보다.
천장봉은 바람이 없으니 등잔봉보다 더 덥다.
중복(中伏)에 대서(大暑)까지 겹쳤으니 숨이 막힐 정도로 덥다.
추사 김정희 선생은 추운겨울에도 낙엽이 지거나 푸름을 잃지 않는 소나무 대나무 매화를
일컬어 세한삼우(歲寒三友)라고 했다.
오래전 다한증(多汗症) 수술을 받아 그 후유증인 '보상성다한증'으로 요즘같이 무더운
날씨에는 매우 고생을 하기에 나에게 무더위는 강적(强敵)이다.
나에게 혹서삼우(酷暑三友)는 무엇일까.
소나기 무더위 초록인가?
이 산속에서 나에게 혹서삼우는 등줄기를 써늘하게 식혀주는 솔바람, 얼굴에 가끔 떨어지는
빗방울과 친구들의 미소인가,
산행의 피로를 금세 풀어주는 술 한 잔도 해당되니 나에게는 혹서삼우가 아닌 혹서사우
(酷暑四友)가 되는구나.
13;00
등잔봉에서 1.3km 거리의 천장봉에 오른다.
웬만한 날씨라면 30분이면 가능한 거리를 무려 한 시간이나 걸려 천장봉에 도착한다.
하늘 아래 펼쳐진 자연경관이 울창한 노송(老松)과 더불어 수려한 풍경을 이루어 하늘도
감탄하여 숨겨 놓았다는 봉우리에 올라 고단했던 몸의 노고를 푼다.
13;30
진달래능선 길로 하산을 하는데, 거리가 800m에 불과하니 된비알이 이어진다.
웩!! 하며 고라니가 함성을 지른다.
자기 짝을 찾는 건지 나보고 잘 가라고 배웅을 하는 건지 메아리치며 들리는 소리가 애처롭다.
14;00
데크 길로 내려서기 직전 소나무에 붙어 경계를 하는 두꺼비를 만난다.
자기 집이 장맛비에 침수되었는지 소나무에 붙어 미동(微動)도 하지 않고 몸을 말리고 있다.
보호색으로 무장을 하여 얼핏 보면 분간하기가 힘든 두꺼비의 상징은 무엇일까.
"두껍아 두껍아 헌집 줄게 새집 다오,
두껍아 두껍아 물 길어오너라 너희 집 지어 줄게~~~" 하며 부르던 전래 동요가 떠오른다.
내련산을 오르며 만났던 두꺼비는 아직 살아 있을까,
그날 남봉 형님이 별세하였는데, 그래도 오늘은 불길한 생각이 들지 않는다.
내 속을 많이 비워내려 애썼으니 말이다.
관상(觀相)을 보는 방법 중에는 동물비유법(動物比喩法)이 있다.
그 중에서도 두꺼비상은 재물과 발복의 상징이라는데,
노무현은 스라소니상이라 동작이 빠르고 민첩해서 난타전에는 최고의 명수라고 하며,
대권도전을 쉽게 포기한 고건은 청아하고 고고한 기린(麒麟)의 상이라 한다.
삼성그룹의 이건희 회장은 전형적인 두꺼비 상 즉 섬상(蟾相)이라고 하며,
삼성은 선대의 묘를 금섬복지(金蟾伏地)의 명당에 썼다고 전해지니 한번 들려봐야겠다.
옛날 할머니들은 며느리에게 떡두꺼비 같은 아들 하나 낳으라고 덕담을 했는데,
두꺼비는 바로 재물과 발복의 상징이기 때문이며, 권력자들은 뇌물로 금 두꺼비를 잘 받았다.
두꺼비눈의 눈망울이 둥글게 튀어 나왔다.
이 두꺼비는 신중하게 때를 기다리며 정중동(靜中動)을 지킨다.
상류에서 흘러내려온 누런물은 어느새 초록으로 물들더니 소리 없이 산길을 구비 구비
돌아 흐른다.
호수길을 걷는다.
햇빛이나 보는 각도에 따라서 호수물의 색깔이 다를 텐데, 장마철의 물빛은 여느 물과
다르지 않다.
조용히 담겨 있다가 장마가 끝나면 찬란하게 빛나겠지.
흐르는 물에 시선을 둔다.
산 그림자가 물속으로 풍덩 빠져 한 폭의 그림을 보여주니 나른한 행복감을 느끼고
더위에 힘이 들지만 미소가 슬그머니 떠오른다.
뫼 산(山)자를 닮은 바위가 나온다.
전국의 산을 다니다 보면 뫼 산(山)자 지형이 많이 나오는데, 대표적인 곳이 주왕산
기암(旗巖)이 뫼산(山)자 형태를 이루고, 홍천 가리산도 가섭고개에서 보면 1,2,3봉이
뫼 산(山)자 형상이다.
14;27
산막이 옛길의 유일한 식수 처인 '앉은뱅이 약수터'에서 '진돌이'를 만난다.
앉은뱅이가 이곳의 물을 마시고 벌떡 일어났다는 약수를 한 모금 마시다가 진돌이와
눈이 마주친다.
옛길을 오르내리며 배가 고팠던지 던져준 빵 한 조각을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입으로 삼킨다.
예전에 같이 등산을 했던 복주산의 '진순'이, 괴산 칠보산의 '뭉치'가 생각난다.
스핑크스를 닮았다는 스핑크스바위와 매바위를 보며 종착점을 향해 걷는다.
더위에 탈진 하였는지 몸에 힘이 많이 빠졌다.
많은 사람들이 스쳐 지나간다.
호숫가 내 옆을 스쳐간 사람들은 다 제각각이지.
호수의 수심(水深)은 얼마나 될까, 제가 아무리 깊어도 인간의 내면(內面)보다 깊을까?
지금은 더위에 숨을 헐떡거리지만 내 인생에서 여름은 너무 짧다.
60번이 넘게 찾아온 여름의 한낮,
호숫가를 걸으며 인생의 유한(有限)함과 덧없음을 생각한다.
유한한 삶을 살며 내 생은 나의 삶이 껴안았던 뜨거움으로 끝내고 싶다.
하늘엔 먹구름이 잔뜩 몰려오고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듯이 기세가 등등하다.
산길에 핀 '참나리'에 빠져 한참을 바라보니 몸에 기(氣)가 들어와 금세 원기가 회복된다.
< 기린초
비록 지금 비가 쏟아진다 해도
시간에 억매이기 싫다.
기린초를 보며
시간과 비에 쫓긴다면 불행한 일이지.
어차피 땀에 다 젖었으니
비에 더 젖은들 어떠리. 석천 >
15;10
올랐던 등잔봉, 천장봉이 하늘 금을 이루며 나를 배웅한다.
등잔봉과 이별을 하려니 쇼팽의 '이별의 곡'이 떠올라 흥얼거린다.
'나의 기쁜 마음 그대에게 전하려 하는 이 내 마음을 들으소서~~~"
폭우가 차창을 때린다.
그래 실컷 두드려라, 그래야 내 마음도 풀린단다.
차창으로 내다보는 바깥세상은 물의 세상이고,
앞서가는 차량이 물보라를 일으키며 내 시야는 금세 깜깜해져 눈을 살짝 감는다.
2015. 7. 23. 괴산 산막이 옛길에서 등잔봉을 오르다.
석천 흥만 졸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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