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

느림의 미학 290 Slow moutain 횡성 태기산< 泰岐山 1,258.8m>

김흥만 2017. 3. 26. 16:23

2015.  8.  26. 

늘 부산스럽게 뛰어다니던 아기들이 집에 없으니 몸과 마음이 한가하다.

목표에 얽매이며 치열하게 직장생활을 하다가 모처럼 휴가를 얻어 보내는

기분인가.

 

그동안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미뤄놨던 일이 무엇일까?

서가(書架)가 부족해 대충 꽂은 책들을 정리할까,

아님 은퇴 후 수년간 입지 않았던 옷들을 솎아낼까,

고장 나 멀티 룸에 방치해둔 Tv랑 러닝머신을 버릴까 생각해보니 무더위 속에 

하나하나 성가신 일 뿐이다.

 

우선 퍼질러 누워서 빈둥빈둥 대다 낮잠을 즐긴다.

아기들이 누워서 Tv를 못 보게 하느라 항상 바른 자세로 Tv를 보고, 서재의

책상 앞 의자에 앉아 책을 보던 것을 모처럼 누워서 책도 보고 TV를 보다가

소스라치게 놀라서 바른 자세를 취한다.

 

 

아기들이 없다고 자세가 흐트러지다니, 곧 자책(自責)을 하지만 잠시라도

누워서 행복감을 느꼈으니 행복은 이중성을 갖는가 보다.

사람은 행복해지기 위해 사는 건지, 아님 살기 위해 행복감을 느끼는 건가?

물론 답이야 없겠지만 나는 산에만 들어서면 행복하다.

 

머릿속의 종양은 줄지도 커지지도 않으니, 어쩌면 행복의 강도(强到)보다는 

빈도(頻到)가 중요하기에 행복한 느낌을 받는 일을 하는 게 나의 생존에 가장

좋은 길이겠지.


로또복권에 당첨되는 엄청난 행운을 만나기보다는 구체적인 행복을 자주

느끼는 게 진정한 행복이 아닌가.

모여 함께 마시고 취하는 것도 좋지만 좋아하는 친구들과 하는 산행은

진정으로 행복한 삶이 되니 나는 참으로 복이 많은가보다.


2015.  8.  27.  09;30

폭염을 이겨낸 벼가 고개를 서서히 숙이고, 옥수수수염은 갈색으로 말라비틀어진다.

주렁주렁 달린 과일은 가을 풍경을 그리기 위해 빨갛게 익어가고, 나는 가슴에 슬그머니

손을 대고 풍년을 빈다.

 

사람들이 잠에서 덜 깼는지 나른한 시골 동네 앞으로 강물이 부드럽게 땅을 안고 흘러간다.

 

 

10;22

세 시간을 달려 횡성 태기산 산자락에 도착하니,

궁궁이, 천궁, 어수리, 갯기름나물이 사방에 피어 숲 속에 흰 눈을 뿌렸다. 

 

 

 

어제 내린 비로 맑은 계곡물이 졸졸거리며 흐른다.

산에서 물소리를 들으면 신기하게도 화기(火氣)로 그득했던 머리가 맑아지고

몸의 긴장을 풀어준다.


높이가 1,258.8m나 되는 거대하고 높은 산이니 멋진 계곡이 나올까 기대를 한다.

예전 송시열 대감 등 유학자(儒學者)들은 물과 바위가 좋은 계곡의 십리(十里) 정도를

구곡(九谷)으로 나눠 화양구곡 등 이름을 붙였는데, 오늘 태기산 계곡이 좋다면

석천구곡(石泉九谷)으로 이름을 짓고 싶다.

 

경치는 8개로 나눠 관동팔경, 단양팔경 등으로 지었는데 9개가 아닌 8개로 나누는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

 

이 세상은 부운(浮雲), 부초(浮草), 부세(浮世) 중 어느 것일까?

둥둥 떠다니는 황혼의 인생살이에 과욕을 부리는 건 아니겠지.

적막한 계곡에서 물소리를 들으며 귀를 씻어내면 몸과 마음이 청량해지려나.


계곡물에 손을 넣으니 손이 제법 시리고 파랗게 질렸던 숲의 나무도 여름의 생기를

서서히 잃어가고 물소리만 그득하다.

 

적막 때문일까.

풀벌레 소리와 산새 소리만 들릴 뿐 계곡은 고요한 진공(眞空)이다.

 

 

 

바쁜 백수의 일상 중 여행은 일종의 영양제 겸 약이 된다.

목적지에 도착해 장엄한 태기산의 파노라마가 눈앞에 펼쳐지는 순간 산자락에 대한 중압감이

들기는커녕 마음이 후련해진다.

 

먹구름이 하늘에서 한바탕 드잡이 질을 하더니 몇 방울의 빗물을 얼굴에 뿌리고,

철모르는 매미가 안간 힘을 쓰며 목청을 높이고 잠자리들이 낮게 떠 유영(遊泳)을 한다.


쓰름매미가 애절하게 울어대지만 그 애절함도 여름의 잔해 속에 묻혀 흙먼지로 돌아갈 날이

머지않았다.

 

 

10;30

산길은 태기산 휴양림 주차장에서 바로 시작된다.

지나치게 소박한 산길이라 자연미가 그대로 살아있고, 선명하지 않지만 자연스러운 등산로가

발길을 이끈다.

 

아무 생각 없이 가다가 족적(足跡)이 희미해지더니 무성한 잡초로 길이 끊겨 길을 재확인하고

다시 걷는다.

우리만 오르는 산길엔 적막(寂寞)만 가득하다.

 

바람이 살짝 분다.

반팔소매를 입은 몸을 썰렁한 한기(寒氣)가 감싼다.

 

계절은 잘도 돌고 돈다.

태풍 고니가 엊그제 지나가더니 가을이 성큼 다가왔는지 팔뚝에 소름이 돋는다.

태양열을 받아 지열(地熱)이 지글지글 끓던 여름도 차가워진 바람 앞에선 어쩔 수 없나보다.

 

 

가파른 계단 옆에서 진한 더덕냄새가 내 코를 자극한다.

본래 태기산은 더덕과 산삼이 많이 나는 산으로 유명하기에 숲 속에서 빨간 열매를 보면

"심봤다"라고 소리치기로 한다. 

 

 

10;45

된비알을 15분이나 걸려 주능선으로 올라서니 내 고도계는 순식간에 950m 가 표시된다.

830m에서 시작했으니 금세 120m 를 높인 거다.

 

 

오르막이 가팔라질수록 일행들의 말수가 줄어든다.

작은 바람이라도 지나치면 반가운 마음에 잠시 멈춰 서서 시원함을 만끽한다.

 

 

거대한 바위도 없는 부드러운 산길,

이곳을 올라서면 주변 능선의 흘러내림을 눈으로 볼 수 있을까.

쭉 뻗은 오솔길에 눈길이 가고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이마에 흐른 땀을 식혀준다.

 

 

고요하면서도 강렬한 생명력을 가진 숲 속,

벗들과 함께하는 소중한 이 시간, 매혹의 대자연 속으로 들어간다.

잠시 머물렀다가 흩어지는 먹구름이 소나기를 만들어 온몸을 젖게 할 모양이다.


계절은 더디게 와서 빠르게 도망치려고 한다.

가을은 산자락을 타고 내려오는 계절이지.

한발 한발 내디딜 때마다 남은 여름이 거친 숨결을 내쉰다.

 

앞서가는 친구가 산길을 오른다.

소실점(消失点)을 향해 오르며 어느 순간 한 점을 이룬다.

천천히 걷는 모습은 부드러운 능선과 합치며 자연 풍경의 일부가 된다.

 

가파른 계단을 오르자 헐떡거려야 할 오름길도 없어 여유 있게 숲으로 스며든다. 

 

 

 

시간은 서서히 흐르고 초록의 숲으로 스며든 나도 초록인간이 되었다.

매미 한 마리가 서글피 운다.

 

                        <          매미의 울음


                            매미 울음소리가 나무에 내려앉았다.

                            내 마음의 아픔을

                            매미도 아는지 목청 높여 울어댄다.


                            이번엔 나무도 매미 구슬픈 울음소리가 걸리는지

                            목이 메어 눈물을 감추다가

                            나에게 기대어 울고 싶은 모양이다.

 

                            나무도 크게 한번 울더니

                            매미보고 여름이 지나면 입을 다물었다가

                            내년에도 선탈(蟬脫)해 다시 찾아오라 당부한다.

 

                            매미는 이승과 내생을 오락가락하며

                            누군가를 찾다가

                            못내 슬픈 울음을 토해내고

                            여름의 잔해도 남기지 않은 채 흙부스러기가 되리라.      석천   > 

 

 

판타지 영화의 한 장면을 연상하게 해주는 관중(貫衆)과 조릿대가 실루엣을 이룬다.

숲 속의 시간은 사람의 시간이 아닌 자연만의 시간이다.

산아래에서 부드러운 바람이 올라온다.

바람을 품은 숲 속의 시간이 세상 어딘가로 걸어가는 몽환적인 풍경을 만들었나 보다.

 

11;15

언젠가 당구를 같이 치던 친구가 "너 답지 않다"라고 말한다.

나 답지 않은 나의 모습은 무엇일까,

나 답다는 것은 어떤 모습일까?

 

그동안 나는 겉으로는 세상의 모든 것을 다 포용할 수 있는 사람으로 과대포장이 되었나 보다.

나도 서운한 소리를 들으면 화도 내고, 무시를 당하면 나도 상대방을 무시할 수 있는 평범한

사람인데 말이다.

 

요즘 들어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는 경우도 있고,

아기들은 앉아서 Tv를 보게 하면서도 없을 때는 누워서 보는 이중성격도 가졌는데

어떤 모습이 나의 진짜 모습일까.

 

나도 나를 모르겠다.

모든 사람에게 가장 먼 존재는 자기 자신이라는 말이 있다.

오죽하면 "너자신을 알라"라고 소크라테스가 절규를 했을까.

'나 자신이 바라는 나', '남이 바라는 나'라는 존재의 간극을 어떻게 생각하고 메꿔야 할까?

 

요즘은 누가 봐도 나 다운 나를 찾으려 고민도 하는데,

과연 어느 것이 내 삶에 도움이 될지 나 스스로를 종잡을 수 없다.

 

우리는 행복을 찾기가 어렵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행복은 쉽게 오고 힘들지 않게 얻는다.

생각하고 계획을 세우고 편한 사람들과 같이 행동으로 옮기면 의외로 쉽게 기회가 오고

얻는 게 행복이다.

 

물론 귀중한 시간을 뺏긴다고 생각이 들면 안 된다.

행복은 늘 나의 주변에 있기에 멀리서 행복과 행운을 찾을 필요가 없다.

인생이라는 긴 항해를 하며 기쁨을 얻는다면 그 자체가 행복이니 시간을 낭비하지 말자.

 

 

서둘러 가지 않아도 되는 길.

일행과 잠시 떨어져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다.

고요 속에 침묵의 시간이 길어진다.

함께하지만 나 혼자만의 시간이 길어지기에 묵상(默想)을 하며 고요 속을 걷는다.

 

가슴까지 흘러내린 땀에 내 몸은 서서히 젖어간다.

햇살이 숲 속으로 곱게 비껴 들고 나 또한 숲 속으로 스며들었으니 내 몸도 자연의 일부가

되었다.

 

차가운 바람과 함께 찾아오는 가을,

슬그머니 찾아오는 봄과는 달리 가을은 요란스럽게 찾아오는 계절이지.

자연보다 더 완벽한 예술가가 있을까.

난 초록의 숲 속에서 시인이 되고 화가가 된다.

 

 

태풍 고니가 지나가자 여름의 기운이 쇠락해졌다.

투명해진 공기에 눈이 상쾌해지더니 심안(心眼)도 맑아진다.

 

 

조릿대가 왕성한 숲 속에 생기 잃은 매미소리가 그득하고,

초록으로 꽉 찬 능선에 숨은 '흰진범'이 처연한 고독으로 몸부림 친다.

 

사물은 눈에 보이지 않을 때가 멀게 느껴지는 법인데, 숨었다가 살짝 나타난 흰진범은 세상

근심으로부터 멀리 달아나라고 나에게 채근을 한다.

 

은은하고 묵직한 범종(梵鐘)소리가 없어도 근심을 산속에 묻을 수 있는 건가.

무엇을 깨달아야 하는지 언젠가는 답을 찾겠지.

 

바짓가랑이는 조릿대에 묻은 이슬에 흠뻑 젖고 꿈틀거리는 산길을 따라 오른다.

숲 속의 시간은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게 흘러가고, 나에게 가까이 다가와

상처를 치유해주는 곳이니 이곳이야말로 Slow city가 아닌 Slow moutain이다.


새를 닮은 꽃인 '흰진범'이 하늘을 날면 새가 될 텐데,

아니 새가 죽어 이 꽃이 되었는지 초록빛 사이로 청초한 흰 빛으로 나를 유혹하기에

손으로 슬쩍 만졌다가 눈으로 만진다.

 

우윳빛인지 흰색의 색채감은 마음을 부드럽게 해줘 성질 고약한 사람도 이 꽃을 보면

사악한 마음이 금세 사라지겠지.

중풍에도 좋은 약이 되는 진범은 신선함을 가득 안고 자연의 신비와 경외감을 느끼게 한다. 

 

 

 

'선밀나물'의 완벽한 6각형 구조물은 요즘 한참 개발해 날아다니는 '드론'과

우주 정거장을 연상하게 하니 과학자들이 이 선밀나물에서 영감(靈感)을 얻었나보다.

 

 

맹독을 가진 '각시투구꽃'을 보며 이상향(理想鄕)에 대해 생각을 한다.

나에게 무릉도원(武陵桃源), 유토피아, 상그릴라(Shangrila)로 표현되는 이상향은 어디일까?

 

병화(兵火)를 피하고 역병(疫病)도 없는 축복의 땅을 찾아낼 능력은 없지만,

지금 이 순간 행복을 느끼는 이곳이 나의 이상향이 아닌가. 

 

내가 지금 서있는 이상향을 떠나 속세로 돌아가면 세상은 바뀌어 있을까?

서운하게도 모든 것은 제자리겠지만 그래도 괜찮다.

여행과 산행을 꿈꾸고 실행을 하고 다시 돌아가 일상생활로 복귀해도 세상을 바라보는 

나 자신이 조금이라도 변했을 테니까.


까마귀 부리처럼 생겼다고 해서 오훼(烏喙)라는 별명을 가진 투구꽃을 바라보니

묘한 두려움이 생긴다.

맹독을 가지고 저승사자처럼 노려보는 투구꽃을 찍다가 한참 쳐다볼 자신도 없고

시간도 없기에 바로 고개를 돌린다.


진액을 사약(死藥)이나 화살촉에 발라 썼다는 투구꽃을 지나쳐 다시 오르기 시작한다.

 

 

11;30

지금 나는 나와 산에게 온전히 집중을 한다.

나에게 집중을 하지 못하면 나에게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에 산행과 여행을

일상으로 끌어들여 스치는 매 순간을 기억을 하며 메모를 한다.

 

가끔은 내가 진정으로 여행자의 삶을 사는 건가, 아님 내 마음대로 사는 건지

무턱대고 여행이라는 핑계로 내달리고만 있기에 미안할 때도 있다.

 

 

나무 그늘에 들어가 잠시 땀을 훔친다.

누군지 자세히 기억이 나진 않지만 어느 어부가 공자(孔子)에게 "그늘에 들어가야

그림자가 쉬고(처음이휴영 處陰以休影), 고요한 데 머물러야 발자국이 쉰다(처정이식적 

處靜以息迹)."라고 충고를 했다고 장자(莊子)가 말했던가?

 

숨을 헐떡거리며 바삐 정상에 올라야 할 이유도 없으니 잠시라도 그늘 아래 쉬면서

나의 내면을 들여다보자.

 

초록이 떨어지는 산길에 빨간 산딸기가 농염하다.

이 산딸기는 우리 몸 어느 곳에 좋을까라고 생각하다가 내가 문득 잡인(雜人)이 된 거 같은

치사한 생각이 든다.

 

세상의 사물 대부분은 잠시 머물다 흔적 없이 사라지는 게 태반이라 나도 그중에 하나겠지만 

이제는 지식이 아닌 지혜를 품고 싶다.

고개를 들어 등성이를 바라봐도 울창한 삼림으로 가득 차 비와 바람이 만든 풍경을 보여주지

않고 정상까지는 700m 를 더 올라야 한다.

 

 

한번쯤 길을 잃어도 좋은 곳,

가까운 친구가 이 더위에 또 역마살이 끼었느냐고 놀린다.

 


여행은 시간을 들이는 일이기도 하고, 돈도 드는 게 사실이지만 나에게 산행과 여행은

시간을 벌어주고 건강을 저축하는 일이다.


때로는 백 년의 세월도, 천 년의 세월도 시간을 벌어주기에 나에게 여행은 사치한 게 아니다.

오늘도 배낭을 싸고 카메라 배터리를 충전시키며 내가 이 나이에 사치하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다가 강하게 부정을 한다.

 

 

 

이 나이에 여행이라는 사치를 부리면 또 어떤가.

배낭을 등 뒤에 메는 순간 난 새로운 일정에 대한 설렘으로 가슴에 생기가 돈다.

남들은 여행이 사치라고 하지만 나는 인생의 시간을 벌고 삶을 더 풍요롭게하는 값진

사치라 생각한다.

 

익숙했던 곳에서 벗어나 머무르고 싶은 곳.

조릿대가 무성한 산길은 깨달음의 산길이다.

 

도시에서 묻어온 한여름의 더위 속에 정상에 서는 행복을 찾기 위해 오르는 산.

풍경에 따라 달라지는 바람의 냄새를 맡는다.

 

 

12;00

시간은 느리게도 빠르게도 흐른다.

산길을 한 걸음 한 걸음 오르다 보면 정상이 나오겠지.

힘들 때에는 신체의 나이가 아닌 정신의 나이가 중요하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지는데 유독 나에게만 빠르게 느껴지는 건가.


이력서나 프로필을 쓸 때는 취미를 쓰는 칸이 필수로 있다.

사람들 대부분은 등산 낚시 독서를 쓰는데 나 또한 이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했지.

요즘은 살생(殺牲)을 일부러 피하니 이젠 낚시를 빼고 무엇을 넣어야 할까.

 

 

아침저녁엔 열린 창문으로 찬바람이 들어오고 가을을 이미 담은 계곡물은 찬 기운을 뿜는데

가을빛은 언제 내려오려나.

아직은 초록빛이 난무하는 숲길을 걸으며 나는 가을을 마중 나온 거다.


천변만화하는 자연의 산자락에서 초록의 자연과 생명을 가까이 하는 삶은 내가 늘 추구하던

삶이었지.

구름도 바람도 쉬어가는 고갯마루에서 배낭을 벗고 숨을 몰아쉬며 고도계를 보니 1,200m 를

가리킨다.

 

 

정상이 가까워질수록 비행기 소리가 요란하다.

근처에 군용비행장이 있는지 오르면 오를수록 전투기의 굉음이 귓가를 때린다. 

 

꼴딱꼴딱 넘어가는 숨을 달래며 양손에 쥔 스틱에 체중을 싣는다.

정상에 오르면 큰 대(大)자로 누워 하늘을 보고 싶다.

세속을 멀리 벗어난 산의 정점에 올라 그동안 속세에서 잔뜩 찌든 내 몸을 씻어야겠지.

 

정상까지 350m 가 남았다는 이정표를 뒤로 하고 발길을 재촉하지만 거친 산길은 없고

계속 부드러운 오솔길이다.

1,258.8m나 되는 고산의 산길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유순한 산길이 이어진다.

 

 

12;20

휴!

시원하다.

 

성격 급한 여름이 물러나는 걸까.

산에서 산으로 이어지는 산릉이 꿈틀거리고 통신안테나 철망에 기대선 '흰여로'가 애처롭다.

 

 

풀 속에 숨은 '이질풀'을 보며 정상을 밟는다.

울창한 원시림에서 고개를 숙이고 오르다 정상에 오르니 세상이 환해졌다.

 

내가 궁극(窮極)의 세계로 들어섰는가?

슬쩍 산에다 물어보니 산은 묵묵부답(默默否答)이다.

겹겹이 드리워진 능선과 산봉우리는 서로 겹치고 나는 산 너머 산을 본다.

 

늘 침묵으로 흔들리지 않고 제자리를 지킨 능선은 침잠(沈潛)했던 나를 반기고,

잠시 산이 들려주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니 세상이 보이고 내가 보인다.

 

 

땀에 흠뻑 젖어 오른 태기산.

사람들은 힘들 때마다 "자기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라고 말한다.

자기랑 싸운다? 자기랑 왜 싸울까?

자기와 싸워 이겨내야 한다는 말이 제일 웃긴다.

 

더 이상 오를 데가 없으니 눈을 지긋이 감고 자연의 소리를 듣자.

어느새 8월 말, 반년이 훌쩍 지나가더니 여름도 막바지구나.

입추(入秋), 처서도 지났고 며칠 후면 이슬이 내린다는 백로이다.

 

한숨 자니 시간이 이렇게도 많이 흘러갔구나.

눈을 뜨고 시간을 잡았어도 이리 흘렀을까?

아쉬움 속에 초로(初老)의 친구들이 시야에 들어오고 죽어 말라비틀어진 나목(裸木)이 

가슴을 아프게 한다.

 

이젠 기억조차 흐릿해진 흘러간 세월 속에 청춘은 훌쩍 떠나버렸지.

돌이킬 수 없는 세월 속에 반백이 된 머리카락을 보니 가슴이 에려온다.

 

저곳은 바람의 언덕이지.

차안(此岸)의 언덕에 도착한 바람은 팔랑개비를 돌린다.

 

                         <            팔랑개비

 

                                자유로운 팔랑개비가 빙글빙글 돌고

                          하늘의 그물에 걸린 팔랑개비는 돌지 않는다.

 

                          도는 팔랑개비는 바람을 잡으려 하고,

                          쉬는 팔랑개비는 바람을 잡지 못해 슬프고 외롭다.

 

                          허공에 걸린 아련한 능선에 바람이 불고

                          풀숲에 숨은 풀벌레가 살짝 고개를 내민

                          이질풀과 공명(共鳴)한다.

 

                          팔랑개비가 보내주는 바람을 길게 들여 마시고

                          내가 서있는 곳에서 저곳을 향해 기화(氣化)되면

                          내 영혼은 멀리멀리 날아가려나.                           석천   >

 

 

한국방송공사 송신소의 거대한 탑이 앞을 막는다.

철망으로 막혀 더 이상 오를 수 없는 정상에 햇살이 느리게 내려서고,

긴 정적(靜寂)이 가득하더니 까마귀 소리가 유난히 크게 허공을 가르며 파공이 되어 울린다.

 

시원하게 터지는 파노라마 경치는 한동한 답답했던 내 눈과 마음을 뻥 뚫어 놓는다.

눈앞에 펼쳐지는 능선과 광활한 풍경은 묵은 체증까지 씻어주며 나를 신선으로 만들어준다.


태기산의 옛 이름은 덕고산이라 했는데 진한(辰韓)의 마지막 왕인 태기왕이 이곳에 성을 쌓고

신라에 대항하던 곳이라 하여 태기산으로 고쳐 부르게 되었다는 전설을 남겼다.

 

 

 

               <               태기산 바람

 

                    바람이 멈추지 않네.

                    내 마음은 고요한데 스치는 바람이

                    내 몸을 마구 흔들어대는구나.

 

                    구름이 멈추고자 뱅글뱅글 돌아도

                    바람이 사정없이 밀어낸 자리엔

                    내 면도자국같이 파래진 하늘가만 남았구나.

 

                    시간이 멈추고자 해도 바람이 시간의 등을 밀어내고

                    내가 세월을 멈추고자 휘파람을 불어대도

                    바람이 얼굴에 주름을 만들어주더니

                    숨소리마저도 거칠게 해주는구나.                             석천   >

 

 

태기왕이 신라에 대항하던 태기산성과 태기산성비가 있다는데 철조망으로 막혀 찾을 수가

없다.

숭덕사에서 오르면 그곳을 찾을 수가 있다는데 산꾼들이 다니지 않는 코스를 택했기에

많은 아쉬움이 남는다.


삼한(三韓) 중 진한(辰韓)에 얽힌 전설이라,

신라 고구려 백제의 삼국시대 이전 한반도 중남부 지역에 자리 잡았던 삼한(三韓)은

마한(馬韓), 변한(弁韓), 진한(辰韓)이었는데,

이후 마한의 백제국(伯濟國)이 '백제'로, 변한의 구야국(狗耶國)이 '가야'로, 진한의

사로국(斯盧國)이 '신라'가 되었다는 설이 일반적이다.

 

여기에서 한나라 한(韓)은 대한제국과 대한민국이라는 국호(國號)의 어원이 되었다고 한다.

 

 

구름 사이로 빛 내림이 심하고 풍경은 짙어진다.

여름이 머문 지 얼마나 되었다고, 본래 여름은 질긴 계절이라 가는 게 아쉽지는 않다.

 

 

'흰골무꽃'을 찍으며 땀으로 더워진 몸을 잠시 서늘하게 식힌다.

 

내가 너무 멀리 온 걸까?

사람 사는 세상이 지옥이 아닐 텐데,

언제부터인가 산에 올랐다 하산하는 것이 두려울 때가 있다.

 

숲 속에 슬그머니 핀 '골무꽃' 한 송이가 얼굴을 환하게 해준다.

산과 야생화를 알 게 된다는 것은 평생의 벗을 사귀는 것이다.

 

 

하늘을 올려다본다.

동쪽 하늘 서쪽 하늘 남쪽 하늘 북쪽 하늘이 구름 사이로 똑같이 푸르고,

선(線)이 없어 방향의 구분과 경계를 지을 수 없다.

구분과 경계가 없어 하늘을 보고 가물가물하다고 하는 걸까.

 

화살같이 쏘아대는 강한 햇볕을 피해 자리에 앉자마자 시원한 맥주 한잔을 숨도 쉬지 않고

꿀컥꿀컥 마신다.

 

1분도 지나지 않아 내 몸은 세속을 초월하여 기분이 상승하니 산행으로 열반에 오른 걸까.

아니 맥주 한잔에 해탈이 되니 열반에 오르는 법이 어렵지는 않다.

 

유장한 능선이 이어지고 멀리 보이는 저 산은 어느 산일까?살다 보면 저곳에 오를 날이 올까.가보지 못한 산을 그리워하며 한잔 술을 마시는 이곳이 나에게 바로 이상향이다.

 

살짝 오는 취기로 내 마음엔 날개가 돋아 하늘로 오르니 우화등선(羽化登仙)이 되어 세상일을 잊고 마음이 평온해진다.

 

온갖 모양의 기암은 자연이 만들어낸 기막힌 작품인데, 그냥 순한 길로 올라와 태기산성 등을

보지 못해 아쉽다.

 

표현이 아리송하지만 태기산은 찾아가는 산인가, 찾아오는 산인가?

산허리에서 박무(薄霧)가 피어오르고 억겁의 세월을 품은 능선을 묵묵히 바라본다.

 

 

 

세상 만물과 만사는 돌고 돌아 결국 처음으로 귀결되는 게 세상의 이치다.

세상의 모든 물이 돌고 돌아 바다에서 만난다는 만류귀종(萬流歸宗)과 같은 뜻인가.

천하의 흐름은 끝까지 가면 하나가 되니 근원이 같다.

 

자연의 삼라만상은 성쇠(盛衰)의 흐름을 거쳐 처음으로 돌아가고,사람도 자연에서 왔다가 자연으로 되돌아가는 게 자연의 법칙이지.

 

 

봄이 지나면 여름이 오고, 여름이 오면 가을이 여름을 밀어내고, 겨울은 가을을 밀어내며

돌고 돈다.

흰구름과 먹구름이 뒤엉키는 하늘을 보며 세상만사에 대해 생각을 해본다.

 

멀리서 보면 크고 작음, 아름다움과 추함, 옳고 그른 것 사이의 차이가 별게 아니다.

시간이 지나고 세월이 흐르면 결국은 소멸되는 게 자연의 이치니 크게 보면

삶과 죽음도 하나로 연결되는 게 자연의 섭리겠지.

 

꿀풀과의 '꽃향유'가 하늘을 향해 그윽한 향기를 내뿜지만,

벌과 나비가 한바탕 꿀의 잔치를 벌리고 갔는지 생기를 잃어간다.


가을을 장식하는 '꽃향유'는 산자락 입구에서 지치고 힘든 사람의 마음을 위로해 주는

꽃인데, 오늘은 웬일인지 정상에 피어 여기까지 오느라 지친 몸과 마음을 받아주니

힘들었던 여독이 슬그머니 사라지고 머릿속이 맑아진다.


꽃향유가 피었으니 이젠 가을이라 선언하고 가슴속에 꽃향기를 넉넉히 담아야겠다.

 


장성 축령산 아랫자락에서 만났던 '이삭역귀'를 오늘은 태기산 정상에서 만난다. 

이삭역귀는 수목한계선이 얼마나 될까. 

 


13;16

먹구름이 몰려가고 햇살이 나무 사이로 비껴든다.

하산을 하며 나는 엉뚱하게도 산안개로 한치 앞도 보이지 않던 평창 두타산을 생각한다.

분위기가 비슷한 그 산에서는 내 몸이 안개 속으로 숨어버리며 투명 인간이 되었는데

오늘도 투명 인간이 되고 싶다.


시끄러운 인간세상은 날마다 암흑천지이지.

비람과 산을 울리는 매미소리는 차라리 행복한 고독이다.

초록이 묻어나는 숲 속에서 침묵을 지키던 매미들이 일제히 목청을 높인다.

 

 

인생길과 같이 구비 구비 도는 부드러운 산길에서 잠시 숨을 고른다.

산길도 삶과 같이 크고 작은 풍파를 맞아가며 변하는 게 자연의 이치지.

찬란한 햇빛과 바람을 맞아 곱게 물들며 변해가는 대자연은 잠시도 지루할 틈이 없다.

 

 

 

바람소리도 매미소리도 들리지 않는 침묵의 숲에 선다.

이 숲은 굳이 침묵하는 연습을 하지 않아도 입이 다물어지고 저절로 묵상(默想)이

되는 숲이다.

 

여기에서 말이 많으면 안 될 거 같은 분위기는 황혼의 공허(空虛)겠지.

산에 취해 표정은 밝지만 내면은 외롭고 텅 비었는데 이 마음을 숲은 알아줄까.

 

 

가끔은 아기들같이 응석도 부리고 싶은데 연륜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침묵으로

나 자신을 얼버무릴 때도 많지.

묵상을 하며 본래의 나는 무엇일까 정신없이 생각하다가 본래의 나로 돌아와 정신이 퍼뜩 든다.

 

침묵이 무엇인지 나는 오늘 알았다.

슬픔이건 기쁨이건 가슴에 담고 사는 것도 삶의 방법이라고 말이다.

 

 

14;00

설악산 서북주릉에서 만났고 서대문 안산에서도 만났던 금마타리가 황금색을 뽐낸다.

금마타리를 보며 정치인 생각이 난다.

 


 

아름다운 황금색의 꽃과 달리 뿌리에서는 똥냄새가 나는 꽃,

오죽하면 똥꽃이라 했을까.

이 꽃에서는 지독한 구린내가 난다.

일명 패장초라 하여 간장이 썪는 냄새가 나는데 가까이 다가가서 맡으면 구린내가 진동을

하며 비위가 약한 사람들은 구역질을 하기도 한다.


아래와 위가 다른 꽃, 이미지와 냄새가 다른 금마타리를 보며 참으로 어수선했던 8월이

생각난다. 


북한의 목함 지뢰로 두 명의 부사관이 발목과 무릎이 잘리는 중상을 입고, 포격도발에 이어

준전시상태까지 이르렀던 8월,

전 국민이 긴장하며 단합을 해야 하는 중요한 시점에 총리를 지냈던 한명숙이 불법 정치자금

수수협의로 대법원 확정을 받아 2년을 살러 형무소로 들어가는 현장을 생중계하는 방송을

보며 쓴웃음을 참을 수가 없다.

 

국민 앞에 석고대죄를 해도 용서를 받을 수 없는 사람이 상복(喪服)차림으로 성경과 백합을

들고 기자회견을 하며 이 나라 전 국민을 광대로 만든다.

 

 

전역을 앞둔 병사들은 앞 다퉈 제대 연기신청을 하고 예비군들은 불러만 달라고 하며 힘을

모으는데,

정작 돈 처먹은 전직총리는 결백을 주장하며 독립투사인양 야당 원내대표 등 야당 소속 

국회의원들과 지지 세력에 둘러싸여 정치탄압을 받는 희생양으로 "사법정의는 죽었다"라고

외치며 결백과 억울함을 주장하는 걸 보며 등줄기가 오싹해진다.


대법관 전원이 유죄판결을 할 정도로 명명백백한 증거 앞에서 총리와 야당대표를 지낸 사람이

정치 탄압을 주장하는 나라의 국민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그의 양심과 정의감은 어디로 사라졌나, 국민과 하늘이 무섭지도 않은지 모르겠다.

 

애써 백합꽃을 길렀던 화훼농부의 심정은 어땠을까,

또한 성경책을 들었으니 그 성경책을 본 신부 목사 등 성직자(聖職者)와 진솔한 신앙인들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한손엔 코란 다른 한손에는 칼을 든다는 무슬림을 모방했으니,

만약에 하나님과 신(神)이 정말로 있다면 신(神)은 이 사람을 어떻게 심판할 것인가?

정말로 신이 있는 걸까.

남의 잘못은 엄격히 꾸짖으며 자신의 잘못엔 관대한 사람을 여성총리로 잠시나마 존경했던

나 자신이 부끄럽다.

 

배고프면 붙고 배부르면 날아가는 기부포비(飢咐飽飛)라,

형세가 여의치 못하면 숙이고 들어와 혜택을 구걸하고, 만만하다 싶으면 등을 돌려 해코지를

하는 북한 당국자들과 무엇이 다른가.

 

 

 

참으로 못난 사람이다.

가정폭력방지법, 성매매특별법, 호주제 폐지라는 여성들 숙원을 해결하는 당당함으로

존경을 받던 그는 살아가며 한줌의 흠도 보여서는 안되는 사람이기에 성경책과 백합꽃을 

들고 구치소로 들어가는 뒷모습을 보며 측은함과 연민의 정을 느낀다. 

 

14;10

동자 스님의 슬픈 전설을 지닌 '동자꽃'이 무사히 마친 종주산행을 축하한다.


강원도 산골 암자에서 월동준비를 하러 내려간 노스님이 폭설로 이듬해 초봄까지

올라오지 못하자, 그리움과 배고픔에 지쳐 죽은 동자 스님의 무덤가에 핀 꽃을

사람들은 동자 스님의 영혼이 피어난 꽃이라 하여 동자꽃이라 이름을 붙였지.  

                   

                 <           동자꽃

 

                     동자꽃이 피면 가을이 온 거라는데

                     숲엔 가을 기운이 벌써 내려앉았구나.

 

                     나는 사람을 사랑했을까.

                     내 인생을 사랑했을까.

                     나 자신을 사랑했을까.

                     열심히 살아 왔을까.

 

                     내 인생에도 가을이 왔다.

                     인생의 열매를 맺는 가을이 왔으니

                     어떤 열매를 맺어야 할까.

 

                     남은 생을 어떻게 살까.

                     저승사지가 맞으러 오면

                     생의 회환(悔恨)을 떨치고 분연히 일어설까.            석천   >

 

 

동자꽃 앞에서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할까 시상(詩想)이

떠오르며 괜히 가슴이 찡해진다.

 

 

14;14

더덕냄새와 구름과 바람,

조릿대 이슬에 젖은 지 세 시간 반 만에 산행을 마치고 주문진항으로 이동을 한다. 

 


시간이란 놈은 거침이 없다.

멈추지도 않고 봄여름이 순서대로 오간다.

해와 달이 수없이 반복해 뜨고 지고하면서도 돌려지지 않는다.


새벽 해를 보며 떠나와 산에 올랐다가 내려오고 한잔 술에 해탈이 되고 있는데도

시간은 어김없이 흘러 저녁의 어둠이 몰려오고, 열린 창가에서 귀뚜라미 울어댄다.

 


            <           귀뚜라미

 

                 저 기다린 줄 알았나,

                 귀뚜라미가 용케도 찾아와

                 창가에서 마구 울어댄다.

 

                 올 것은 그냥 둬도 오기에

                 매미 소리에 취해 깜빡 잊고 있었더니

                 지난 해 못다 울었는지

                 목청을 높혀 마구 울어댄다.

 

                 정신 줄 놓은 형광등 하나가 꺼지고

                 모기들이 쌩하고 날아와

                 내 몸을 물어뜯으며 포식을 하는구나.                     석천>


빗방울이 창문을 두드린다.

눈을 떠도 눈을 감아도 시간은 흐르고, 창문을 열고 밤하늘을 손으로 휘저어 잡으려 해도

시간은 냉정하게 흐른다.

돌아갈 수도 잡을 수도 없는 시간에 그만 손을 들어버리고 잠든다.

 

                                              2015.  8.  27. 태기산을 오르고

                                                                 석천  흥만  졸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