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12. 28.
굼벵이처럼 느릿느릿했던 젊은 시절의 청춘은 소리없이 사라졌고,
12월은 신중년(新中年)이 되어 유수(流水)처럼 흐르는 세월의 막바지 정점이다.
노년의 나이에 턱걸이를 하면 화살보다 빠른 전광석화처럼 세월이 흘러갈까?
누군가는 말한다.
눈을 감기 직전에 바라보는 인생은 눈 깜짝 하는 사이라고 말이다.
한 해가 저문다.
잎사귀를 다 떨어뜨린 은행나무가 나목(裸木)이 되어 빈 몸을 떤다.
욕심을 툴툴 털어버린 나무들이 지키는 길가에서 올려다보는 하늘은 파랗다.
된바람이 불어도 오히려 이 낙목한천(落木寒天)이 포근함을 느끼는 건
무슨 이유일까.
마음을 비우고 텅 빈 가지를 하늘가에 내놓은 나무들이 제 삶을 견디는
모습이 대견스러워서라기보다는 나 자신도 서서히 나목을 닮아가기 때문이다.
나무는 나 스스로를 의지하고 나 자신을 사랑하며 살라고 말을 건넨다.
송년회 자리에서
위하여! 위하여! 등을 외치며 여기저기에서 건배사를 하고 술잔을 높이 든다.
나이가 들거나 조직에서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은 여유 있는 표정을 짓고
있지만 어떤 젊은이들은 고개를 숙이고 무엇인가 못마땅한 표정을 짓는다.
나 또한 건배사를 서너 번 외친 다음에 차가운 술이 목구멍으로 들어가야
뱃속이 짜릿해진다.
술잔을 비우면 잠시라도 기분이 좋아진다.
올해 힘들었던 순간도 잊을 수 있고 다가오는 신년에는 복권도 당첨되고
좋은 일만 생길 것 같은 기대감이 생긴다.
허접한 건배사를 외치다보면 외로움이 없어지는 걸까.
10여 년 전부터 한동안 멘토 붐이 일더니 지금은 힐링(Healing)시대로 바뀌었다.
앞으로는 어떤 주제가 유행할까.
나는 고독(孤獨)을 권하고 싶다.
요즘 같은 연말에 가끔은 혼자 있는 시간도 괜찮다.
혼자 있는 시간을 두려워하지 말고 혼자 있는 시간을 통해 나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것도 좋다.
나이가 들면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동창회 산악회 동문회 등을 통하여 공통의
관심사를 만들고 폭탄주를 곁들이며 외로움을 쫓아내고들 있지만, 가끔은 혼자
고독을 즐기는 거도 괜찮다.
외로움을 회피하지 말고 받아들이면 사회적 소통도 원할해지고 내 속의 나와
대화를 할 수 있다.
가끔 혼자 산을 오르내리면 자기 자신과의 깊은 대화를 할 수 있다.
홀로 산행은 결코 고독한 산행이 아니다.
묵묵히 산을 오르면 두서없이 생각이 나다가 어느 순간에는 하나의 주제로
모아진다.
나는 내 속의 나와 대화를 하는 시간이 즐겁다.
그 시간이 지나면 나는 또 하나의 성숙한 단계를 거치는 것이다.
누구나 혼자 세상일을 다 할 수 없고 또한 세상 모든 걸 다 가질 수 없는 게 인간이다.
내가 가질 수 있는 것만 가졌을 때와 내가 할 수 있는 것까지만 할 때 느끼는 것이
행복인가.
아마도 이것은 행복이라기보다는 만족이리라.
칼 면도를 할 때는 얼굴을 거울에 가까이 대고 들여다본다.
내 얼굴엔 아직도 집착과 욕심이 남았을까.
무엇을 비워야 할까.
무엇으로 비우고 무엇으로 채워 나갈까.
빠르게 사라지는 통장의 잔고를 바라보며,
비움을 아쉬워하는 것은 나 혼자만의 일인가.
이젠 비움과 채움을 걱정해야 하는 일도 사치인가보다.
요즘 들어 불면으로 가끔 밤도 새우고 우울해지기도 한다.
우울하지 않으려면 행복해지면 되는 거다.
행복의 반대말은 불행이다.
우울은 불행의 시초일까?
숱하게 이어지던 송년회도 거의 막바지에 도달했다.
송년회가 끝나면 불쑥 찾아오던 우울과 허무함이 오늘은 없다.
비록 전패(全敗)지만 운동과 당구시합이라는 성취감이 뇌의 피로를 없애준 모양이다.
더 세월이 흐르면 늙을 수밖에 없고, 언젠가는 세상과 이별을 해야 하는 게 우리의
숙명이다.
이젠 내가 가진 것과 내 곁에 머물러 있는 소중한 사람들에 감사드리고 만족해야겠다.
2015. 12. 28. 송년 당구대회가 끝나고
석천 흥만 졸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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