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엽지추(一葉知秋)라,
서재 앞뜰에 마지막 남았던 목련 잎이 나풀거리며 힘없이 떨어지고, 달력도 덩그러니
한 장만 남았다.
조용히 눈을 감고 힘들기도 했지만 행복했던 삶의 추억을 머릿속에서 꺼낸다.
2005년 5월 철산 지점장으로 근무하던 어느 날,
"당신 뇌종양 이래!" 전화상으로 들려오는 아내의 울음소리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나에게도? 그럴 리가? 내가 무엇을 잘못했기에? 설마 오진이 아닐까? 에이 아니겠지.
이미 마비가 상당히 진행되었음을 느끼던 중 점포장 회의가 있어 검진결과를 보러
나 대신 병원에 간 아내의 목소리에 영화나 드라마의 주인공도 아닌 내 인생은
중대한 터닝 포인트(Turning point)를 만나게 된다.
1982년부터 23년간 이어진 아픔의 고통,
쑤시고, 결리고, 저리고, 찌르고, 깨지는 고통 속에 남자라는 이유로, 가장이라는 이유로,
직장에 누를 끼칠까 말 못하는 혼자만의 고통을 견디며 잠자리에 들 때는 차라리 이대로
눈이 떠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수시로 했지.
고통을 이겨내려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천둥번개만 치지 않으면 배낭을 둘러메고
산을 오르내린지 23년 만에 정확한 병명이 나오고 주치의는 뇌종양과 매우 희귀병인
척수공동증으로 척수액이 말라가니 곧 전신마비에 이어 사망이라고 하며 수술을 서두른다.
서랍에서 빛바랜 사진, 예금증서, 보험증서 찾아놓고 장기 및 시신 기증서를 작성한다.
아들에게 남기는 메모를 끝내고 창밖을 보니 그날따라 하늘도 내 마음을 알았는지 지점장실
창가의 담쟁이 위로 많은 비가 쏟아진다.
20년 넘는 세월 통증을 안고 살았는데 이제는 아프지 않고 편해질까.
이대로 삶을 포기해야만 하는지 갑자기 내 신세가 가여워진다.
내 인생이 소중함을 언제 깨달았더라?
뇌종양을 선고 받고 지점장실 창밖을 하염없이 바라볼 때던가.
어디론가 바삐 걸어가는 사람들 머리 위로 떨어지는 빗방울을 며칠 후 나도 맞을 수 있을까.
만약에 "너는 네 인생, 네가 한평생 살았던 세상에서 무엇을 느끼며 살았느냐?"라고
저승문 앞에서 신(神)이 나에게 묻는다면 나는 무엇이라 답을 할까.
인생은 코미디가 아닌데 뜬금없이 허망해진 인생에 회한(悔恨)을 느낀다.
치사율 70%엔 들지 않겠지라며 차디찬 수술대에 눕자 비로소 나 자신이 보이고
이승의 끈을 놓칠까, 깨어나지 못할까 만감이 교차하니 참으로 서럽고 서럽다.
나는 나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했을까, 슬그머니 눈물 한 방울 흘리며 마취세계로 들어갔지.
임금피크제를 피해 2008년 퇴직 후 진행되는 교육 프로그램에서 20년 후 꺼내볼 타임캡슐용
자기 계획서를 쓴 내용 중 글쓰기에 도전한다.
카메라를 둘러메고 산에서 나무, 야생화와 친구가 되며 포털사이트 다음에 '느림의 미학
흥만'이라는 블로그를 만들어 산에 대한 에세이를 쓰고 생각날 때마다 나의 이야기를
쓰다 보니 어느새 335편이나 썼으며 원고물량은 6천 페이지가 넘고 방문자도 4만 명에
가까워진다.
산림청에서 선정한 100대 명산은 물론 9년간 백두, 한라, 지리, 설악, 태백, 덕유산은 수차례
올랐고, 알려지지 않은 산 265곳 등 500회 이상 산행을 하였으며, 느림의 미학 1,000회 및
1,000회 등산을 목표로 지금도 백두대간과 섬 산행을 즐기고 틈틈이 당구도 배운다.
산, 산, 산(山)이라,
새로운 산을 만난다는 건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기에 전국 지도를 위에서 아래로 좌에서
우로 훑는데, 지도가 좋은 건 펼치는 순간 낯선 세상과 더불어 낯익은 세상도 내 눈을 통해
가슴으로 들어오는 거다.
어느 산이 나를 설레게 할까, 낯설지만 어느 산이 나를 향해 손짓을 할까.
지도를 볼 때 내 가슴이 뛰고, 새로운 산을 올라갈 궁리를 할 때는 신이 나서 궁둥이가
들썩거리고 행복하기에 지도는 내 후반기 인생의 축소판이기도 하다.
따라서 내 인생의 절반은 산이고 은퇴는 신의 은총이니 이게 바로 백수가 제대로 산다는
의미 아닌가.
빈 마음으로 산을 찾으면 이른 봄의 복수초와 노루귀는 설렘을 주고, 봄의 바람꽃과
제비꽃은 환희를, 여름의 초롱꽃은 청초함을, 가을의 구절초는 처연함을, 겨울의 눈꽃(雪花),
상화(霜花), 빙화(氷花)는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준다.
무위(無爲)의 자연은 이렇게 생(生), 육(育), 성(盛)과 멸(滅)을 나에게 가르쳐 주고, 행복이란
다른 사람이나 신(神)이 만들어주는 게 아니니 나 자신 스스로 만들어 가라고 한다.
태백산 비단봉에서 동행한 친구가 오늘이 무슨 날인줄 아느냐고 묻더니 "오늘은 내 생애에서
가장 젊은 날"이라고 한다.
순간 머리가 멍하며 깨달음이 오고, 그 깨달음은 나에게 해탈과 열반이라는 의문을 단숨에
해결해주는 거다.
심폐소생술 교육장에서 친구가 어떻게 살아갈지를 묻지 않고 왜 사느냐고 묻는다.
삶이라는 의미는 무엇일까, 사는 게 별거인가라고 반문을 하면서도 인생이란 정말 살만한
가치가 있다고 답을 한다.
인생은 의미를 갖고 사는 게 아니기에 살아있으면 그냥 되는 게 아닌가,
삶에 너무 많이 의미를 부여하면 또 하나의 굴레만 늘어나는데 이럴 때는 대답이 참 궁하다.
누군가는 산다는 것은 견디는 것이라 했다.
견딤은 살아있는 모든 생명체의 의무요, 존재의 조건이다.
어느 스님이 말했다.
번뇌가 없는 무념(無念)은 평화로움을 만들어내고, 고정된 생각이 없는 무상(無想)은 행복함을
만들어내며, 머무름이 없는 무주(無住)는 자유로움을 만들어내는 지름길이라고 말이다.
이 글을 쓰면서 문득 노스님의 3무(三無)에 대한 가르침이 생각난다.
내 인생에서 남은 시간은 얼마나 될까?
세상에는 영원한 게 없고 무상(無常)할 뿐이다.
따라서 사람도 무상이지만 자연도 무상이기에 사람들은 허무하거나 덧없다고 느낄 때 인생무상
(人生無常)이라고 한다.
무상이라 함은 본래 세상의 만물은 변하지 않는 것이 없다는 뜻인데, 지나고 보면 세월도 찰나와
같이 사라졌으니 제행무상(諸行無常)이 아닌가.
이젠 늙어간다는 생각도 버렸고, 아이들같이 서로 부닥치며 때로는 성질도 부려보고 아프면
아프다고 이야기도 한다.
살아있는 지금 이 순간은 내 생애에서 가장 소중한 시간이고 가장 젊기 때문이다.
춘천의 삼악산을 가기 위해 카메라와 배낭을 챙길 시간이다.
프로사진작가 겸 사진협회 하남지부장으로 활동하는 아내는 운해를 찍기 위해 양수리로
향하며 서로의 행복한 시간을 즐기려 출발을 한다.
동우회원 여러분!
바로 지금 이순간이 여러분의 생애에서 가장 젊은 날이니 행복을 누리시길 바랍니다.
오늘도 활기차게 파이팅!!!
석천 흥만 졸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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