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9. 27.
가을비가 촉촉이 내린다.
빗줄기가 사정없이 인간세상을 때리고,
비바람을 맞은 나뭇잎은 낙엽이 되어 우수수 떨어진다.
하룻밤 사이 소매 끝에 느껴지는 기운이 차고, 손이 뽀송뽀송해 핸드크림을
발라야 편해지는 계절이 되었으니 질기고 야무지던 여름이 힘없이 물러났구나.
9. 28. 02;00
머리가 깨지는 고통 속에 눈을 뜨니 새벽 두 시다.
찬 냉수를 한 잔 마셔도 두통은 여전하고, 입을 꼭 다물어도 잇몸 사이로 신음이
저절로 나온다.
한동안 잠잠했던 두통이 또 시작되는구나.
서재로 들어와 스탠드를 켜고 허공을 응시한다.
어렵고 힘들었던 순간들, 기쁘고 환희에 차 가슴이 벅찼던 순간들,
너무 아파 삶을 외면하고 포기하려 했던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떠오른다.
이젠 모든 일들이 추억의 한편에 자리를 잡았는데,
또 아프니 이 또한 지나가겠지 라며 낙관적인 생각을 가져도 마치 100kg짜리 바위가
머리를 때리는 듯한 고통으로 머리를 들 수가 없다.
04;00
전날부터 추적추적 내리던 비가 밤새 지붕을 두드린다.
지금 몇 시지?
창문을 열고 심호흡을 한다.
세차게 내리던 빗줄기는 가늘어졌고 하룻밤 사이에 가을이 무더위를 물리친
개선장군이 되어 내 곁으로 돌아왔구나.
108배 절 운동을 시작하고 50회가 지나면서 등판과 가슴은 땀으로 젖기 시작한다.
문득 전날 대장검사를 하며 작은 폴립을 떼 내고 담당 여교수랑 나눴던 대화가
생각난다.
2년에 한 번씩 대장검사를 할 때마다 용종을 3~5개씩 떼었는데 절 운동을 하면서
신기하게도 안 생긴다고 하니 그 여의사는 고개를 갸우뚱 거리며 운동으로 그럴 수 있다고
긍정을 한다.
05;00
식사를 하면 나아질까 식탁에 앉으니 그 잘 먹던 김치냄새가 역겨워 가슴속이 메스껍고
토할 듯이 울렁거려 식사를 포기한다.
문득 지나간 과거 속에 아팠던 기억들, 힘들고 참기 어려웠던 기억들이 떠오른다.
그 고통이 있었기에 이제껏 내 삶의 바탕이 되었는데,
그 고통이 없었더라면 삶의 시련을 어떻게 견뎌냈을까.
창밖의 어두운 풍경을 바라보는 내 얼굴이 유리창에 반영(反影)된다.
08;20
보령 행 버스는 출발하고 들고온 조간신문을 펼치자 춘천 102보충대가 폐쇄된다는
기사가 눈길을 끈다.
잠시 눈을 감는다.
내 청춘의 땀이 떨어져 스며든 102보충대.
37사단 훈련소에서 훈련을 마치고 102보충대에 이등병으로 입소했다가 21사단으로
전속되던 장면을 머릿속에서 끌어낸다.
1973년이니 43년이라는 세월이 어느새 흘렀구나.
달리는 차창 밖으로 스치는 풍경들,
하나하나가 나에겐 소중한 풍경이고 머릿속에서 끄집어내는 추억 하나하나가
내 소중했던 삶의 흔적이지.
11;00
황금빛 평야를 바라본다.
가을은 누가 부르지 않아도 순서가 되면 오는 계절이다.
잠자리 떼가 군무를 춘다.
멀리 하늘가에서는 돌아갈 채비를 하는지 철새들이 떼를 지어 나르고,
잠시 술렁이더니 옆에 앉아 삶은 밤을 건네주던 여인이 내포가 목적지라며 하차를 한다.
지난번 올랐던 가야산을 지나고 버스는 내포 들판을 질주한다.
1751년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홍주, 결성, 해미, 태안, 서산, 면천, 당진, 예산, 신창을
합쳐서 내포(內浦)라고 했다.
토정비결을 쓴 토정 이지함이 아산 현감으로 있었고,
임진왜란을 예견한 이인(異人) 김복선이 살았고,
은둔한 유학자 송익필이 살았던 곳.
교류하던 그들이 율곡 이이와 같이 만나 훗날 왜구와 벌어질 전쟁을 예견하고 걱정하던
내포.
김복선이 토정 이지함과 율곡 이이를 배웅했다는 망객산(64m)이 멀리 보이는 저곳인가,
요즘 나라 돌아가는 꼴과 이인(異人) 김복선을 생각하니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온다.
11;40
가을이 슬며시 스며들었다.
구비 구비 산 고갯길 넘어서 온 가을날.
사방으로 넘실대는 파도가 그리워 떠나기 좋은 날 보령에 왔지,
봉화산에 올라가면 밤과 도토리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겠지.
가을바람에 논두렁에 서있던 갈대가 술렁거린다.
가을이 영글어 가며 백수의 삶도 빼곡히 채워지려나.
사과는 빨갛게 익어가고, 은행나무 열매가 노랗게 익어가는 소리에 귀를 쫑긋해본다.
익어가는 소리에 귀가 즐겁고, 변해가는 빛깔로 눈이 더 즐거운 가을에 내가 가야할
외연도의 지도를 바라본다.
가을은 항상 그렇듯 익어가는 소리를 내고, 녹색에서 횡금 빛과 단풍으로 변해가는
빛깔을 보여주며 내 곁으로 성큼 찾아왔구나.
들판에 누렇게 익어가는 벼이삭을 바라보며 달린지 4시간 만에 대천항에 도착하니
해무(海霧)를 뚫고 바다가 보이기 시작한다.
짙게 가라앉았던 해무가 조금씩 걷히고 해양고등학교의 실습선과 크고 작은 배들이
바닷물에 일렁거린다.
갑자기 가을이 왔다.
며칠 전만 해도 한낮에 27~30도를 오르내리던 무더위가 계속 되었지.
숨 막힐 정도로 무더웠던 여름날,
에어컨 리모컨을 손에 들었다가 전기료 폭탄이 두려워 쓴웃음을 지며 슬며시 내려놓던
여름이 지나갔다.
도무지 끝날 것 같지 않던 폭염과 무더위도 때가 되니 여름은 가고 긴팔 옷을 입는
가을이 왔다.
여기 무성하게 올라간 등칡 넝쿨도 때가 되어 춥고 매서운 거울이 오면 낙엽이 되어
떨어지겠지.
14;00
뚜우~~♬~ 세 번 뱃고동을 울린 배는 두시 정각에 포구를 벗어난다.
일기예보에는 풍속이 0m로 나왔는데 해풍(海風)이 거세게 몰아치며 배는 일렁이고,
파도는 거침없이 여객선의 유리창을 때린다.
파도가 배의 밑바닥을 세차게 때리자 배가 깨지는 듯 쿵♪~ 소리를 낸다.
따라오던 갈매기는 어느새 사라지고 배안에는 섬에 들어가는 주민들과 나 같은
나그네만 남아 무심히 창밖을 내다본다.
중간 중간 배의 천장에 매달린 Tv에서는 김영란 법이 오늘부터 시행된다는 설명과 함께
식당 및 예식장의 풍경을 보여준다.
Tv에서 잔잔한 클래식이라도 나오면 좋으련만 요란하게 들리는 배의 엔진소리와 함께
뱃전을 때리는 파도소리는 귀를 거슬리게 한다.
일부로 힐링(Healing)을 하러 떠나는 길에 좋지 않은 뉴스와 함께 해설이 귓구멍을 타고
들어오니 조금 짜증이 난다.
이번 기회에 우리나라는 부정부패에서 벗어나 깨끗해지려나.
14;40
출항한지 40여 분,
집채만 한 파도가 덮쳐오고 배의 롤링이 점점 심해진다.
놀이공원에서 롤러코스터를 탄 기분이 이럴까.
몸이 공중에 붕 떴다가 가라앉기도 하고 승객들은 서서히 배 멀미 모드로 들어선다.
뱃머리가 들렸다 바닷물 속으로 가라앉기도 하는 진풍경은 나에게 특별한 볼거리다.
순간 몸이 붕 뜨며 의자 팔걸이에 옆구리를 세게 부딪친다.
여기저기서 탄성인지 비명 소리가 들리고,
나는 이상하게도 다른 사람들의 비명 소리에 오르가즘을 느끼듯 짜릿하니
나만이 느끼는 카타르시스(catharsis)일까.
창밖으로 보이던 섬들이 갑자기 사라진다.
바다 속으로 잠수했나 보다.
배 여행을 가끔 하지만 오늘같이 심한 롤링은 처음 겪는 경험이고, 알프스 산맥을
넘으며 난기류에 요동을 치던 비행기 롤링보다 심하다.
15;00
중간에 들리는 호도의 날카로운 바위가 날을 세운다.
육지로부터 버림받은 곳도 아닌데 바위를 보는 순간 가슴이 선뜻하다.
서해바다 한가운데 솟은 섬에 숨 고를 데가 있을까.
이 거친 섬엔 언제 내 발자국을 남길까.
거친 섬을 보며 이번 섬 여행에서는 섬사람들의 애환, 내가 겪지 못한 삶에 대해
생각을 하기로 한다.
우리나라의 섬 삼천여 개 중
육지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연기에 가린 듯 까마득하게 보인다고 해서 불리는
외연도(外煙島).
바다라는 울타리에 갇혀 숙명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섬.
대천항에서 시작해 53km 파도를 뚫고 꼬박 두 시간을 달려야 보이는 섬.
날씨가 허락하지 않으면 갈 수 없는 섬,
외연도가 바닷물 속에 숨었다가 연기(煙氣)처럼 나타난다.
16;10
거칠었던 바다를 헤친 배는 1분도 지체하지 않고 외연도에 정확히 도착한다.
외연도에서는 트럭이 교통수단인 모양이다.
숙소인 펜션에서 픽업을 나온 트럭에 짐을 싣는다.
17;00
섬의 골목길에는 오가는 사람이 없어 스산하다.
나는 외연도에 와서 섬사람들이 보고 싶었는데 간혹 보이는 사람은 검은 피부의 외국인이고,
섬사람 대부분은 사라져 인적이 끊겼다.
금년 덕적도에 이어 두 번째로 찾은 섬,
외연도에서 공식 활동은 고즈넉한 풍경 속에서 낚시로 시작한다.
엊그제 추적추적 내리던 비가 그치자 거짓말처럼 더위가 사라졌고,
바쁘게 흘러가는 백수의 시간에서 탈출을 해 더위로 지친 육신에 위로를 받고 싶었다.
크고 작은 고깃배 90여 척이 풍랑주의보로 출항을 하지 못하고 항구에 정박해있다.
130가구 200여 명의 주민이 산다는 외연도 망재봉(171m) 위로 힘 잃은 태양이 떨어진다.
기암괴석 너머 수평선으로 떨어지는 낙조가 보고 싶었는데 야속한 해무는 나의 청을
거절하는구나.
테라포트 주변의 포인트에서는 우럭, 놀래미, 광어, 붕장어가 잡힌다는데
첫 손맛으로 큰 붕장어가 잡혔다.
빨간 등대가 어울리는 방파제길,
일렁이는 파도와 함께 사색의 길을 걷는다.
섬 여행은 무위(無爲)의 삶에서 벗어나는 길이기도 하다.
왼쪽엔 망재봉(171m)이 오른쪽엔 봉화산(279m), 가운데엔 천연기념물 제136호로
지정된 상록수림이 조용히 마을의 평화를 지키고, 배가 정박한 포구는 고즈넉한 섬의
정취를 맛보게 한다.
무위(無爲)의 시간이 지나는 외연도에 어둠이 내리기 시작한다.
22;00
외연도에서의 첫날밤
< 몽상(夢想)
베개 베고 뒤척이다
밤중에 일어나 앉아
이런저런 생각에 잠긴다.
흔들리는 가로등불빛
창문으로 스며들고,
벗들의 코고는 소리
벽 타고 하늘가로 빠져 나간다.
거센 바닷바람 쉽게 지나가고
기러가 울어 에는 소리
하늘 높아 들리지 않는구나.
비가 오려는지
어깨는 마구 쑤시고
내일 아침엔 가을빛이
어디까지 내려왔을까 궁금해
선잠에서 일찍 깬
괭이갈매기 울어댄다.
숲을 물들일 가을빛이 내려올 때는
언제나 달이 자취를 감추고
별도 숨어 버리려나.
아무래도 오늘 밤은 잠자기 글렀으니
창문 열고 서늘함에 젖었다가
몽상(夢想)에서 깨어나면
시(詩)나 한편 쓰며 즐겨야겠다. 석천 >
9. 29. 06;00
바람이 잔잔한 새벽에 귀를 기울이면 중국 산동성에서 닭 우는 소리가 들린다 해서
창문을 열고 귀를 기울이니 닭은커녕 뉘 집 강아지 짖는 소리만 들린다.
07;40
200년 묵은 팽나무가 마을의 중심에서 주민을 지킨다.
이정도의 나무라면 신목(神木)이 아닌가.
섬이 품은 보물의 전설과 역사는 무엇일까.
낯선 풍경에 어리둥절 하는 이방인은 섬이 만든 예술품 앞에서 바로 떠나지 못하고
서성댄다.
산이 누웠다.
봉화산이라 해서 뾰족한 봉우리를 연상했는데 마을에서 보는 봉화산은 마치
부처님이 누운 와불(臥佛)형상이다.
09;05
펜션 여주인의 설명을 참고만 하고,
바닷가로 나있는 둘레길을 거쳐 봉화산에 오르기로 하고 바닷가로 난 둘레길로 향한다.
파도소리 요란하고 이름 모를 산새소리가 귀를 두드린다.
어선이 뚜우♪~하는 뱃고동소리를 내며 황급히 포구를 나선다.
오늘 강풍주위보가 내렸는데 저 배는 무사할까.
이제 섬 산을 오른다.
소로를 따라 숲을 헤친다.
해신(海神)과 산신(山神)이 같이 아우르는 신(神)들의 정원을 이방인이 허락도 없이
침범을 한다.
나 또한 그들만큼이나 산과 바다를 사랑하니 봉화산의 품을 허락하겠지.
이 땅에 조물주가 있다면 이렇게 멋진 풍광을 만든 그에게 무한한 감사를 드려야겠다.
서해바다의 지붕을 이룬 곳에서 바다산행의 여정은 아찔한 절벽을 뚫고 만들어진
길에서 시작한다.
절벽 사이로 만든 길을 조심스럽게 올라간다.
소나무, 동백나무, 돈나무, 단풍나무, 후박나무 등 침엽수와 활엽수가 적당히 섞인
혼효림(混淆林)이고 산길은 사뭇 가파르다.
산허리로 난길 오른쪽으로는 천길 벼랑이지만 쇠파이프를 박고 로프를 친 덕에
안심을 하고 오른다.
솔방울이 발밑으로 떨어진다.
솔방울 떨어지는 소리는 가을의 소리로구나.
싸늘한 기운이 하늘에서 내려와 지난여름 더위로 지쳤던 육신에 기(氣)를 듬뿍 넣어준다.
초록으로 무성하던 풀은 색깔이 서서히 변하며 힘을 잃고 산천이 적막해진다.
나무는 가을을 만나 단풍을 만들고 또한 때가 되면 잎이 지는 게 자연의 순리겠지.
사물도 절정의 때가 지나면 거둘 줄 안다.
눈부신 신록과 절정의 초록을 뽐내던 숲에도 서서히 낙엽의 시절이 오는구나.
가을은 자연과 사람에게 낙목한천(落木寒天)이 오니 서서히 흙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라 한다.
절정의 기운을 죽이고 침잠(沈潛)의 시간 속으로 들어가는 산속에서
나 또한 머리 위로 떨어지는 낙엽을 바라보며 긴 침잠의 시간을 준비한다.
경상도에서 문둥이 배추라고 하는 '곰보배추'가 산길에 널렸다.
겨울철에도 잎이 시들지 않는 곰보배추를 푹 달여서 먹으면 기침, 천식, 가래에
최고의 신약이라고 약초의 대가 최진규 선생은 말한다.
으름도 익어간다.
달콤한 맛을 보려고 따보니 아직 덜 익어 먹지 못하고 숲 속으로 던진다.
방태산 산행에서 맛보던 으름,
으름이 제대로 익으면 세로로 활짝 갈라지는데 솜사탕처럼 부드러운 하얀 육질을 입에
넣으면 살살 녹는다.
외연도 같이 육지에서 멀리 떨어진 섬에서는 과일이 귀하고 비싸다.
어제 들른 동네 슈퍼에는 과일을 단 한 종류도 팔지 않아 대천항에서 사온 포도와
바나나를 겨우 먹었는데,
바나나 맛에 가까운 자연의 과일 으름 맛을 보지 못하니 서운하다.
으름 줄기는 오줌을 잘나오게 한다.
급체, 몸살과 몸이 붓는 것을 낫게 한다는 으름덩굴을 만지며 산행을 계속한다.
새들이 와글거린다.
산에 들어오면 숲에서 노는 새들도 친구가 되고 가족이 된다.
오늘 내가 숲으로 들어오니 새들도 나의 존재를 알아챘는지 덩달아 소리가 높아지고,
나도 휘파람으로 응대를 한다.
잠시 앉아 참선하는 기분으로 숲을 바라본다.
지금 들려오는 새소리는 무슨 새일까.
오늘따라 새소리의 음색은 청아하고 고요하다가도 어딘지 모르게 슬픔이 밴 소리로 들린다.
나만 그렇게 느끼는 걸까.
다시 들리는 다른 새 종다리의 맑은 소리는 마음을 편안하고 행복하게 해준다.
< 보너스
파란 하늘만 봐도 행복한 날.
파란 바다까지 보너스로 받은 날.
내 얼굴은 가을빛으로 물든다.
출렁이는 바다 위로
해무(海霧)의 알갱이가 떨어져
찬란하게 빛나지 않는 바다에
심통이 난 나는
불어오는 바닷바람을 벗 삼아
갈매기와 희롱한다. 석천 >
섬이 산이고 산이 섬인 봉화산의 등산로는 외부에 알려졌을까.
파도소리가 다가왔다가 사라진다.
바다와 마주하고 산을 오르며 하늘가로 뻗쳐 나온 가지 아래를 허리 굽혀 오른다.
09;20
처서(處暑), 백로(白露)가 지났는데도 땀으로 온몸이 젖어들고 숲길은 계속 이어진다.
능선 길보다는 숲길이 좋고 숲길보다는 계곡이 좋은 법인데 물 흐르는 계곡은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경사가 점점 가팔라진다,
한 굽이 치고 오르니 쉬기 적당한 바위가 나와 잠시 걸터앉아 숨을 고른다.
스마트 폰에 익숙해져 편지를 쓸 일이 없지만 가을은 편지를 쓰는 계절이다.
하산을 하면 누구에게 편지를 쓸까.
이 조그만 섬에도 우체국이 있을까.
가을에 취해 산길에서 만난 '송장풀'을 바라보며 잠시 그리움에 젖는다.
나의 산행은 늘 그렇듯이 오늘도 산에 핀 야생화와 눈을 맞추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이름이 조금 징그러운 송장풀이 내민 붉은 혓바닥을 보며 며느리 밥풀꽃을 연상한다.
해변의 숨 막히는 풍치가 눈앞에 출렁거린다.
하늘보다 더 넓은 바다는 블루라는 색채로 춤추고,
해무(海霧)의 몽상에 빠진 크고 작은 섬들이 제각기 조용히 숨을 죽인다.
바람과 파도가 만든 일망무제의 풍경,
이리저리 휘어지고 틀어진 해안선은 진경산수화를 그린다.
기암절벽과 바다가 완벽하게 연출하는 파노라마가 아름다워 눈이 아플 지경이다.
살다보니 이런 호사(好事)도 맛보는 황혼의 인생이란 참 그럴싸한 나이인 모양이라,
때로는 나이가 든다는 게 장점도 있구나.
오늘은 육지에서 보지 못했던 앵초과의 '좀가지풀'을 만난다.
'송장풀꽃' '나도송이풀'도 만났으니 내 눈은 제법 호강을 한다.
사진을 찍느라 일행과 뒤떨어져 마음이 급했는지,
호흡을 조절하며 셔터를 눌러도 '좀가지풀'에 초점이 제대로 맞지 않는다.
내 NX카메라는 처음엔 많은 신경을 안 써도 제대로 초점이 맞았는데 3년을 쓰다 보니
디지털 기능이 떨어졌는지 아니면 나의 정성이 부족한 탓인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차라리 NX카메라를 무시하고 이번에 바꾼 스마트폰으로 찍을까?
아무리 폰 카메라가 잘 나와도 카메라를 따라올 수는 없기에 망설이다가 카메라 셔터를
다시 누른다.
사실 사진은 카메라가 찍는 게 아니다.
사람이 카메라로 피사체를 찍는 게 사진이다.
초점을 맞추기엔 폰 카메라가 쉽지만 배경이나 여러 가지를 생각할 때는 카메라가 낫다.
18~55mm인 내 렌즈를 보며 더 큰 구경의 렌즈로 바꿀까 생각하다가 이내 생각을 접는다.
사실 웬만한 사진은 50mm 표준렌즈 하나면 다 찍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사진은 잘 나오는 게 전부는 아니다.
남과 다르게 찍어야 사진이 재미있는데, 내 재주로는 그렇지 못하니 가끔은 스트레스를
받는다.
09;40
더위가 가실 줄 모르더니 백로, 추석과 추분이 지나자 아침저녁으로 상큼한
가을바람이 분다.
지금 이곳에서 들리는 파도소리, 바람소리, 새소리는 3가지 소리가 잘 어울리는
거대한 자연의 교향곡이다.
저 새들의 노래 소리는 나에게도 분명 상쾌한 선물이지만,
누군가 상처를 입은 사람이 듣는다면 상처 받은 마음을 치유하기도 하고 지혜를
얻기도 하겠지.
자연의 교향곡이 들리는 여기는 환희에 찬 천상(天上)의 세계다.
섬이기에 가능한 풍경 속으로 빠져볼까.
섬의 작은 산은 바다를 품는구나.
섬에 와서 산(山)에 오르지 않았더라면 이렇게 펼쳐지는 풍경을 볼 수가 있었을까.
푸르고 고요한 섬의 바다에는 해무의 알갱이가 쏟아진다.
파도가 해변을 무섭게 때린다.
풍랑주의보를 무시한 어선이 해무를 뚫고 힘차게 항해를 한다,
저 변덕스런 파도에 어선이 제대로 감당을 할까.
난 섬을 돌고 돌아 다시 가파른 길을 오른다.
걷다가 숨이 차면 쉬면되는 길은 섬 산의 매력이다.
잠시 멈춰 서서 다른 모습으로 펼쳐지는 풍경에 나는 말을 잃고 거친 길을 내려간다.
200고지를 올랐다가 내려와 다시 바닷가에서 오르려니 오늘은 가파른 길을 올라야 할
팔자인 모양이다.
바다를 멍하게 바라보며 잠시 쉼표를 찍는다.
파란색 한 가지 빛이었던 바다가 해무를 품더니 잿빛으로 변한다.
삼라만상을 품은 바다는 색깔이 변하며 나에게 인내를 요구한다.
난 눈부시게 빛나는 아름다운 빛깔도 싫다.
그냥 나를 조용히 삼키는 빛깔이 좋다.
영롱하게 빛나던 빛깔은 밀려온 파도에 부서지고 깨진다.
막막한 수평선 위의 외로운 점 하나를 멍하게 바라본다.
바다를 바라보며 잠시 멍 때리기를 했나 보다.
해식동굴도 보이고 바닷물 빠진 절벽 사이에서 한 송이 '해국(海菊)'을 만난다.
손톱보다 약간 큰 해국을 만나 이리저리 카메라 각도를 재다가 위에서 계란 프라이
방식으로 찍는다.
내가 본시 작품을 만들 수 있는 실력이 없기에 산행을 하며 찍는 사진은 대부분
증명사진 급이다.
내륙에서는 봄은 바다에서부터 오고 가을은 산에서부터 온다고 했는데 섬에서는 아니다.
바닷가에서 만난 해국(海菊)은 가을은 바닷가에서부터 온다고 항변(抗辯)을 한다.
바다가 그리워 바다를 바라보다 바다를 닮은 꽃이 해국이지.
은은한 보라색으로 바닷가 절벽에 붙어 바다를 바라보며 피었다.
태풍과 파도의 시련을 안고 세찬바람 한 줄기 막아주지 않는 척박한 곳에서 꽃을 피운
해국의 강인함에 오히려 측은한 마음이 든다.
지금은 선명하지 않은 연보랏빛이지만 차가운 바람이 점점 몰아치는 계절이 올수록
점점 짙은 보라색으로 바뀐다니 이 또한 자연의 신비다.
10;00
해변의 숨 막히는 풍치가 눈앞에 출렁인다.
빠르게 걷기보다는 천천히 느리게 걷는 게 섬 여행의 보법(步法)이다.
느림의 섬 외연도는 스마트 워치(Smart watch)를 팔목에 찬 나를 부끄럽게 만든다.
초가을의 광활한 하늘에서 눈부시게 빛나던 햇살의 알갱이들은 해무속으로 사라지고,
하늘보다 더 넓은 바다는 블루라는 색채로 춤을 춘다.
한낮의 향연을 생각하는지 몽상(夢想)에 빠진 크고 작은 섬들이 제각기 숨을 죽인다.
< 그리움
바람이 몰아친다.
해무에 숨은 빛을 찍을까.
아님 내 마음을 찍을까.
나는 바다의 노래를 듣는다.
바다의 신음을 듣는다.
바다는 지켜야할 아름다움이 많은지
그리움을 남기고
해무 속으로 숨는다. 석천 >
바다가 보이면 영락없이 파도소리 들리고,
나무가 짙게 우거진 원시림을 걸으면 새들 노래 소리가 귓가를 때리고,
겨우 하늘과 바다가 같이 보이면 어김없이 뱃고동소리가 들린다.
10시 10분이 되자 긴 항적을 남기며 여객선이 들어온다.
어제 나를 외연도에 내려놓았던 배는 오늘은 내가 아닌 또 다른 이방인을 이 섬에
토해내겠지.
노란 집신나물, 전등싸리, 미나리아제비가 피었고, 흰 미나리냉이가 궁궁이와 비슷한
산형(傘形)으로 피었지만 그중에서도 돋보이는 것은 '조밥나물'이다.
가파른 길 좌우엔 동백나무가 빼곡하고 그 사이에 핀 '나도송이풀'을 발견한다.
바다가 시야에서 사라지면서 숲의 적막(寂寞)도 깊어진다.
갈매기 울던 소리도 사라지고 바람소리만 들린다.
이렇다 할 인적도 끊긴 산길엔 오랫동안 이방인이 찾지 않았나 보다.
오르막이 줄기차게 이어진다.
고갯마루에서 땀을 씻은 뒤 냉수를 한 모금 마신다.
고갯마루를 지났어도 산의 어디든 나무들이 빼곡한 원시림을 이루고 있다.
사람 손에서 훼손되지 않은 처녀림이 바닷바람을 맞아 파도처럼 일렁이고,
나는 이 숲 속의 일부가 되어 세상을 노래한다.
울창한 원시림에서 쏟아내는 강렬한 기운이 가슴속 남았던 세속의 탁기를 씻어준다.
동백나무, 돈나무, 후박나무의 푸른 몸들이 빼곡하게 들어찬 숲 사이로
산길이 희미하게 뻗었고, 간혹 나타나는 비자나무에 열매가 익기 시작한다.
첨단의 유통기한은 갈수록 짧아지고, 기술의 범람은 가상과 현실을 뒤죽박죽으로 만들지만
나는 느림의 흐름 속에서 지나간 과거와 다가오는 미래의 흐름을 타고 거대한 숲 속에서
시간여행을 한다.
바닷가를 들렸다가 숲으로 돌아온 가을바람은 숲길을 걸을 때마다 웅웅하는 소리로
바뀌며 바다 소나타를 연주한다.
시간 속에 다듬어진 길에서 잠시 걸음을 멈추고 바람이 연주하는 피아노와 바이올린
3중주를 듣다가,
흰머리를 검은머리로 바꿔주는 마법의 풀 국화과의 '한련초(旱蓮草)'를 만난다.
논둑이나 물이 많은 곳에서 잘 자라는 한련초가 돌 틈에 피었다.
농부들이 논가와 밭두렁에 많이 핀다고 싫어하는 국화과의 한련초,
언뜻 보면 망초꽃과 비슷하지만 허리를 잘라 보면 검은 액체가 나온다.
애기똥풀이 노란액체가 나와 독성을 내뿜는다면 박주가리는 하얀액체가 나온다.
이에 반해 한련초에서 나오는 검은 액체는 나이가 들어 머리가 하얗게 되어가는 것을
막아준다고 한다.
박시영 박사는 그의 저서에서 흰 수염이나 흰 눈썹도 검게 해준다고 하는데
이 한련초야말로 명품풀이나 선약(仙藥)이 아닌가.
흑채, 묵초라고 불리는 한련초의 액을 흰 머리카락에 바르거나 복용하면
검은 머리카락으로 돌아가고 이 액체를 발라준 머리카락이 건강하게 잘 자란다고
하니 눈여겨볼만하다.
또한 남자의 양기 부족이나 조루, 발기부전에도 크게 한 몫을 하고, 다쳐 피기 날 때,
부스럼과 벌레에 물렸을 때 바로 아물게 해준다니 매우 흥미로운 풀이다.
밤송이가 툭하며 발밑으로 떨어져 벌어지더니 탱글탱글하고 반질거리는 알밤 하나가
튀어 나온다.
하나 까서 이빨로 깨물면 "뽀드득♬"하는 경쾌한 소리가 들린다.
지금은 생밤을 먹지만 10월이 되면 삶아서 숟가락으로 파먹기도 하는데,
난 이빨로 두 동강이 내서 껍질째 씹는 걸 즐긴다.
밤을 많이 먹으면 살이 찔까?
이 땅에서 자라는 토종밤은 작지만 달콤하다.
밥 대신 먹을 수 있는 밥나무에서 '밤나무'로 이름이 바뀌었다고 한다.
가뭄이 들어 배를 곪아야 했던 시절 구황(求荒)작물로 많은 사람을 연명하게
해주었던 밤나무 밑에 역시 구황식물인 '닭의장풀'도 나를 보고 배시시 웃는다.
11;00
소나무를 칭칭 감고 오르던 담쟁이도 빨간 단풍이 들었다.
동백나무 숲을 지나 삼거리가 나온다.
오른쪽으로는 둘레길이고 왼쪽으로 봉화산 정상이 710m 남았다는 이정표가 외롭다.
뾰족한 봉우리를 오르려니 많은 힘이 들 거 같아 일행들은 하산을 결정하고,
세 명만 정상에 오른다.
구절초, 쑥부쟁이, 벌개미취, 감국이 피었고 돌 틈으로 봄에 피는 양지꽃도 피었으니
이 섬엔 봄, 여름, 가을 세 계절이 동시에 혼재하는가 보다.
너덜을 오르면 오를수록 숨은 가쁘고 나는 주변을 둘러보며 천천히 오른다.
너덜의 오름길에서는 후련함을 느끼기 보다 침묵이 좋다.
이런 길은 침묵을 지키고 내 마음을 스스로 보면서 고요(孤窈)하게 걸을 수 있어 좋다.
11;15
봉화산 정상(279m)에 낙엽이 떨어진다.
가을은 생명을 보낼 준비를 하고, 매서운 겨울에 잠시 숨을 죽이면 다시 생명을 탄생 시키는
봄이 오겠지.
자연의 생명이 죽는다.
가을에 생명이 죽는다는 것은 새로운 시작이다.
바람이 분다.
그래 바람아 불어라.
나를 먼 허공(虛空)으로 날려 주거라.
정상의 여백(餘白)은 무너진 봉화대다.
나는 오래전부터 간직해온 특별한 소망이 있다.
은퇴하면 히말라야 트래킹을 하며 에베레스트의 장엄한 선경(仙景)을 바라보는 것,
직접 에베레스트의 정상에는 오르지 못해도 먼발치에서 설경을 바라보며 술 한 잔을
하는 것.
알래스카의 설원을 느리게 걷는 것이 내 버킷리스트에 들어있지만 아직도 실천을 하지
못하고 머뭇거린다.
어쩌면 이렇게 미적거리다 영영 못 가게 되는 게 아닌가.
아직 늙거나 병들어 아픈 거도 아닌데 선뜻 나서지 못하는 건 경제적인 이유도 있지만
그곳을 다녀오면 살아서 더 꿀 꿈이 사라지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늘 설렘의 대상이 하나씩 줄어들 때마다 나의 세계가 삭막해질까 두렵기도 하기에
이런 곳에서 바닷바람을 맞으며 내가 꿈꿨던 세상을 상상하며 마음을 다스린다.
어느새 시간의 흐름이 멈췄다.
나는 무의식의 세계를 통하여 잠시 상상의 세계를 넘나들었던 모양이다.
하늘아래 온 세상이 바다와 산이고 사방팔방이 블루와 그린으로 아우러진 풍경이어야
하는데 꼭꼭 숨었다.
푸른 물결이 먼 바다를 향해 아스라이 밀려나가는 몽환(夢幻)의 풍경도 숨었다.
한 시간 전 바닷가에서 보고 또 봐도 점점 멀어지던 수평선이 감당하기 어려운 삶의
지평처럼 아득하기만 했기에 정상에서 보이지 않는 수평선을 머릿속에서 꺼낸다.
봉화산 꼭대기에서 망망대해를 감춘 해무를 무심하게 바라보며 잠시 멍 때리기로
몰입했나 보다.
11;20
봉화대에 올라선다.
폭 7.8m, 둘레 24.5m의 원형으로 석축의 높이는 북쪽이 130~150cm, 남쪽이 130~150cm
정도의 이 봉화대는 조선전기 왜적을 감시하고 바다건너 중국을 경계하는 역할과 조선후기
자주 출몰했던 이양선에 대응하기 위한 충청수영의 권설 봉수대다.
구름, 비, 바람 등으로 인해 연기와 불빛이 보이지 않을 때에는 봉수군이 즉시 다음
봉수대에 달려가 보고를 하였다고 한다.
따라서 이곳 외연도는 지리적으로 매우 중요한 해상요지였고, 역사적으로 왜적과 중국,
이양선의 출몰 등에 대비하는 매우 중요한 기능을 수행하였던 섬이다.
어느 산이던 정상에 오르면 참으로 마음이 편해 메모할 궁리를 한다.
전국 곳곳에 있는 봉화산,
남산 다음으로 많은 봉화산,
내 고향집 툇마루에서도 보이던 봉화산,
외연도 봉화산에 오르니 내가 다녔던 상산 초등학교의 ~'봉화산 맑은 정기 가슴에
안고 ♪♬'~로 시작되는 교가가 생각나 흥얼거린다.
전기도 없고 기름도 없던 시절,
봉화는 땔감이나 섶 속에 쇠똥이나 말똥을 섞어 피우면 연기가 흐트러지지 않고
똑바로 올라가 다음 봉수대로 전달이 된다고 한다.
어청도에서 봉수가 오르면 서남방 51km 지점의 이곳 외연도 봉수대에 전해지고,
다시 동북방 16.25km 떨어진 녹도 봉수대로 전달되면,
녹도에서 동북방 16.9km 의 원산도로 전해지고 원산도에서는 오천면 수영 망해정으로
연락되어 충청수영에 보고가 되는 경로라고 설명을 한다,
< 돌아가리라
돌아가리라
마음이 육신의 노예인지
육신이 마음의 노예인지
아직 몰라도 돌아가리라.
지독하게도 흔들리던 배를 타고
이곳에 오르니
해무 섞인 바람에 몸이 흔들리고
마음도 따라 흔들린다.
지난 일
잊어버린 일
모두 버리고 이곳에 올랐는데,
봉화대 무너진 돌무더기 위
사방으로 기어대는 바랭이가 슬프게 한다.
한 잔 술이 있었으면 좋으련만
빈 배낭을 바라보다
먼 허공을 바라본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해무는 거침없이 피어오르고
날다 지친 새들은 숲 속으로 숨었다.
험한 길 돌고 돌아 올랐건만
야속한 벗은 하산을 재촉하니
삶의 끝냄도 재촉하려나.
어둑어둑한 저녁 빛이 멀었는데
모자 걸었던 소나무 어루만지고
하릴없이 발걸음을 돌리리라.
그래 돌아가리라.
험한 산길 돌고 돌아
사람 사는 곳으로 돌아가리라.
내 육신 가고 싶은 곳으로 가리라.
부귀영화 잊은 지 오래니
어딘들 내 한 몸 쉴곳 없으랴. 석천 >
뿌옇게 낀 해무는 언제나 걷힐까.
망재봉을 줌으로 당겨도 제대로 잡히질 않아 아쉽다.
그래도 안개 속에 희미하게 보이는 풍경을 바라보며 섬의 그윽한 정취를 몸에 담는다.
거칠었던 길이 슬그머니 부드러워진다.
어느새 510m 를 내려와 갈림길에 서서 방금 올랐던 정상을 뒤돌아본다.
옷은 땀으로 다 젖고 구멍가게에서 산 초코파이와 팥빵으로 요기를 한다.
명금마을 650m 를 남기고 산길에는 '여뀌' 세상이다.
6월부터 피는 이삭 모양 꽃대에 붉은 색 꽃이 좁쌀처럼 촘촘히 달려 있다.
내가 살던 동네 냇가에도 지천으로 널렸던 여뀌,
찧어서 시냇물에 풀면 붕어와 송사리가 배를 하얗게 내밀며 뒤집어서 떠오르게 하던 여뀌.
흔하면서도 잡초라는 인식으로 늘 그냥 지나쳤던 여뀌가 붉은 이삭을 달고 하늘거리기에
가던 길 멈춰 서서 꽃과 잎사귀를 따 혀에 대본다.
묘한 매운 맛이 혀끝을 찌른다.
이래서 영어 이름이 'Water pepper'인 모양이다.
이 매운 맛으로 인해 개울에 살던 수많은 송사리와 붕어, 꺽지가 희생 되었구나.
여뀌라는 이름은 꽃이 붉고 맛이 매워 귀신을 쫓는다는 뜻의 역귀(逆鬼)에서 나왔다는데
개여뀌, 이삭여뀌, 기생여뀌, 흰꽃여뀌, 가시여뀌 등 30여 가지가 넘는다.
지난번 해발 1,000m 가 넘는 횡성 태기산 정상(1,259m)에서 이삭여뀌를 찍었고,
장성 축령산 산길에서도 이삭여뀌를 찍은 기억이 난다.
고마리, 부레옥잠, 부들 등과 함께 수질을 정화하는 고마운 식물인데도 있는 듯 없는 듯
피고 지는 꽃으로 소도 먹지 않는 풀,
논두렁 밭두렁에 무성하게 자라 농사꾼이 귀찮아하는 여뀌가 초록의 생기를 잃어가는
초가을에 나를 반긴다.
12;00
길게 누운 봉화산을 보며 문득 풍수에 관한 생각이 난다.
인정승천(人定勝天)인가, 아님 천정승인(天定勝人)인가,
인간이 하늘 즉 운명을 이길 것인가.
아님 운명(天)은 인간의 노력으로 어찌할 수가 없는가.
세속의 욕심을 버리고 자연을 위대한 스승으로 삼아 끊임없이 체화하면 되는 게 아닌가.
마을이 보인다.
옷은 땀으로 다 젖고 물은 한 모금도 남지 않았다.
망재봉으로 종주하려면 두 병이 더 필요할 텐데 일단 숙소로 돌아와 식수를 보충한다.
12;26
천연기념물 제136호로 지정된 상록수림을 오른다.
이제부터는 나 혼자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숲에 오르는 거다.
우리나라 남서부 도서의 식물군(植物群)을 한눈에 살필 수 있다는 귀중한 곳,
3만 2천여 ㎡(약 1만여 평)의 숲 안에서
나는 팽나무, 상수리나무, 고로쇠나무, 질피나무, 동백나무, 후박나무, 돈나무, 식나무,
붉가시나무와 호흡을 같이하며 대화를 하리라.
새벽엔 이곳에서 새소리가 많이 들렸다.
귀가 아플 정도로 크게 들렸지.
나는 오랜 시간을 지킨 섬의 자연이자 섬의 예술품인 동백나무, 후박나무, 팽나무 숲으로
들어선다.
나혼 자만의 시간에서
후박나무, 팽나무, 동백나무를 보며 무위(無爲)의 시간을 즐겨야겠지.
거대한 동백나무를 보며 잠시 생각에 잠긴다.
수백 년 세월의 흔적이 쌓인 나무아래 나 같은 이방인은 잠시 스쳐 지나가는 나그네라
카메라 셔터를 누르면서도 경이로운 나무에 그저 감탄만할 뿐,
나무아래에 잠시 앉아 삶의 고집도 부릴 수 없는 나의 황혼을 생각해본다.
참으로 거대한 나무다
키가 20여m 가 넘는 이 나무는 당산목으로 존경을 받을까.
혼자 계단을 오르며 자유를 느낀다.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볼 필요도 없으니 좌우를 둘러보며 천천히 오른다.
일행들은 낚시로 방향을 틀고 혼자 오롯이 오르는 동백나무 숲,
숲에선 내 인기척을 느꼈는지 큰소리로 재잘거리던 새들이 일제히 동작을 멈추고
숲은 순식간에 적막강산으로 바뀐다.
지금 이곳에서는 내가 숨 쉬는 소리, 카메라 셔터 소리도 사치다.
숲의 적요(寂寥)를 깨고 싶지 않아 잠시 걸음을 멈추고 나무들을 바라본다.
아무 생각도 없다.
또 멍 때리기 수순에 들어간 모양이다.
이대로 숲의 일부가 될까.
여로의 까만 열매가 터지기 직전이다.
가을에 생명이 익는다는 것은 새로운 시작이다.
가을이 되니 제각각 종족의 번식을 위하여 나무와 풀들은 부지런히 열매를 익게 만든다.
여로의 새까만 열매를 하나 따 깨물어본다.
나의 등장으로 긴장했던 새들이 일제히 재잘거리니 숲은 순식간에 시장처럼 시끄럽다.
거대한 나무들이 반짝거리며 거만한 자세로 나를 맞는데,
수백 년의 연륜을 자랑하는 거목(巨木)들이 나를 왜소하게 만든다.
외연도의 당산(堂山)이자 천연기념물 제 136호인 상록수림에는
동백나무가 800여 그루, 후박나무가 200여 그루가 빼곡히 숲을 이뤘기에 숲에 든 나는
행복하다.
이 데크 저 데크를 옮겨 다니다 곧장 오르니 누구를 모신 사당인지 재실과 함께
숲 속에서 모습을 감췄다가 슬며시 나타난다.
사당 문 창호지에 구멍이 나있으니 여기도 장난꾸러기들의 놀이터가 된 모양이다.
헌액을 보니 중국 전국시대 제나라 전횡(田橫) 장군의 사당이다.
제나라가 망하고 한나라가 들어서자 그를 따르는 500명의 군사와 함께 이곳에 정착하였다며,
마을주민들은 이곳에서 해마다 음력 정월 보름이면 풍어를 기원하는 제례를 지낸다.
부녀회장이라는 숙박업소의 여주인은 옛날 중국에서 이곳으로 사람들을 귀양 보냈다는
전설을 이야기 한다.
길이 끊어져 우회하여 정상으로 오르니 빼곡한 대나무 숲 사이로 길이 나있다.
이 길은 망재봉으로 가는 길인가 보다.
어느새 물 한 병을 다 마셨고 식수가 떨어졌다.
13;00
망재봉에 다시 오를까 망설이다 숙소로 향한다.
한시가 가까워지며 심한 허기를 느낀다.
포구 뒤편으로 솟은 기암괴석은 매바위인지 상투바위인지 멀리 떨어져 알 수가 없다.
18;30
해무에 가렸던 해가 넘어간다.
내일 아침에 다시 솟아오를 태양이 힘을 잃었다.
꾸물거렸던 태양이 순식간에 바다로 곤두박질하고 어둠이 찾아온다.
음력으로 그믐이 다가오니 달은 없을 거고 은하수와 별을 보고 싶다.
밖으로 나가면 어린 시절 사랑방 툇마루에서 보던 은하수를 볼 수 있으려나.
빛 공해가 심한 도심에서 달과 별을 보기는 여간 힘든 게 아니다.
제대로 된 별을 구경하고자 밖으로 나온다.
사람의 시간은 잘도 흘러갔지만 하늘과 자연의 시간은 그대로 눌러 앉았을 텐데,
내가 태어난 지 수십 년이 흘렀어도 은하수는 제자리에 머물렀겠지.
구름이 잔뜩 끼어 나의 기대를 깬 외연도의 밤 시간은 흘러만 간다.
20;00
깜깜한 밤이라는 표현이 맞을까, 아님 껌껌한 밤이라는 표현이 맞을까.
달도 없는 칠흑 같은 바닷가의 밤,
별도 숨었고 멀리 보이는 등대불만 외롭다.
낚시는 몰두일까, 아님 멍 때리기일까.
현대를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나치게 바쁘고 긴장된 생활을 한다.
가끔은 머릿속에서 생각을 추방하고 평정심을 찾을 필요가 있다.
때로는 음악을 듣거나 Tv를 보며 멍하니 앉아 있기만 해도 되는데,
사실 멍 때리기에는 낚시만큼 좋은 것도 없다.
멍 때리기는 스트레스 해소 및 머릿속을 비울 수 있는 휴식시간이다.
잠시 정신이 나간 것처럼 한눈을 팔거나 넋을 잃기엔 낚시가 제격이다.
21;00
민물낚시와 바다낚시는 조금 차이가 있다.
민물낚시는 찌의 움직임에 민감해야 하지만 바다낚시는 손바닥에 오는 민감한
반응으로 고기를 낚는다.
먼 옛날 22년간 낚시를 꽤나 즐겼지만,
나에게 낚시를 가르쳤던 중학교 선배가 자살(自殺)을 했고,
내가 오염시킨 현장을 보고 낚싯대 줄을 다 끊어버린 뒤엔 하지 않았다.
몇 번 할 기회도 있었으나 머리 수술 후 미물(微物)이라도 살생을 하기 싫어 응하질 않았지.
민물낚시는 낚싯대를 받침대에 걸쳐 놓고 찌가 움직이면 빠른 동작으로 나꿔채야 하기에
긴장하다가도 어신(魚申)이 오질 않으면 졸기도 하고 멍 때리기도 한다.
바다낚시도 낚싯대를 잡은 손에 오는 반응을 파악하느라 긴장을 하지만 한참을 멍하게
앉아 있으면 자기 자신을 잊는다.
요즘은 잘 모르지만 예전엔 이력서나 자기 프로필을 쓸 때 취미란과 특기란은 항상 있었다.
사람들 대부분은 취미란에 등산, 낚시, 독서의 세 가지를 쓰는 게 공통이었다.
나 역시 그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했지만,
대신 남들과 순서를 달리해 독서, 낚시, 등산으로 써서 내는 경우가 많았다.
내용은 똑같지만 순서를 달리하는 치기 어린 어리석음으로 장난기가 발동해서였지.
이젠 낚시도 멀리하고, 눈이 쉽게 피로해 책도 오래보지 못한다.
다행히 아직은 무릎이 성성해 산이라도 다니지만, 이마저도 못한다면 내 후반기 인생은
어떻게 될까라는 주제를 놓고 골돌이 생각하다보니 두통이 또 시작된다.
9. 30. 08;00
창밖으로 빗방울이 떨어진다.
일기예보는 흐림이었는데 요즘 기상청에선 하루 뒤의 일기도 맞추지 못하는구나.
동네를 한 바퀴 돌다가 외연도 초등학교 교정으로 들어선다.
해맑은 표정의 학생들이 뛰어온다.
학생 수는 유치원 포함 12명이고, 1학년이 없어 조만간 분교로 격하될 예정이라고
교문 밖에서 서성대던 학부모가 설명을 한다.
이웃 섬 중에서 녹도는 분교마저 폐쇄되었고, 호도도 분교로 격하되었다며 얼굴엔 수심이
가득하다.
09;00
시멘트를 뚫고 담장 아래 핀 '맨드라미'의 빛깔이 원래부터 이토록 고왔던가.
섬 동네 골목길의 맨드라미 풍경은 여름과 가을의 풍경이다.
악동들의 낙서 한 점, 따뜻한 그림 한 점 그려지지 않은 담벼락의 맨드라미를 보며
처연한 생각이 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 맨드라미
담벼락 밑 시멘트 틈으로
맨드라미 빨갛게 피었다.
맨드라미 피고 지던
여름날이 다 갔는데
빨간 닭 벼슬 꽃을 피웠구나.
시멘트 바닥에서 살아야 하는
애절한 슬픔에 눈물 글썽이며
떠나는 이방인의 가슴에 못질을 하는구나. 석천 >
새소리 들어가며 선착장으로 향하다 녹슨 철골조 위에 앉은 괭이갈매기와 눈싸움이
시작된다.
카메라를 대니 갈매기는 포즈를 취하다가 고양이 울음소리와 비슷한 소리를 내며
나를 노려본다.
철새들이 무리를 지어 망재봉 하늘에 수를 놓는다.
외연도는 우리나라 서쪽으로 가장 끝에 있는 섬으로 철새들의 중간 기착지라고 한다.
일정한 규모를 유지한 채 무리를 지어 날라 가는 모습이 흥미롭다.
영국 옥스포드대 동물학과 교수 연구진은 최근 비둘기에 대해 흥미로운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비행 도중 무리를 잘못 이끄는 비둘기는 바로 무리 뒤로 밀려나고 다른 비둘기가 앞으로
나선다고 밝혔다.
비둘기는 몸 안에 있는 생체 시계와 태양 위치를 가늠해 길을 잡는다는데,
지도자의 생체 시계가 빨라졌던 느려졌던 무리 전체의 비행에는 이상이 없지만,
무리 전체의 생체 시계에 혼란이 오면 비행경로가 엉망이 되기에 지도자를 대체한다.
기러기 등도 무리를 지어 이동을 할 때 선두 리더의 자리를 수시로 바꾸며 체력안배를
하는데, 요즘 우리나라의 돌아가는 꼴을 보니 새들보다도 못해 한심하기만 하다.
국가의 존망(存亡)을 위협 받는 나라에서 사드 배치 문제로 연일 반대시위를 하고,
국회의장과 여당대표의 단식 싸움으로 국민들은 피곤과 짜증이 겹쳤다.
지도자를 잘못 뽑으면 다음번 선거까지 사회 전체, 국민 전체가 손해를 감수해야
하는데 비둘기만도 못한 지도자와 그들을 뽑은 국민들을 보면 한숨이 나온다.
잠시 망재봉 뒤로 사라졌던 수백 마리의 바닷새들이 다시 나타나 군무(群舞)를 추며
나를 전송한다.
10;10
시간이 되자 나를 육지에 데려다 줄 여객선이 어김없이 나타난다.
배가 도착하지 엊그제 그랬듯이 10여 명의 이방인을 토해내고, 외연도에서 나가는
100여 명을 뱃속으로 삼킨다.
이 섬에 인연이 되어 또 올 수 있을까.
오고 싶었던 섬,
다시 찾고 싶은 섬 외연도.
홀로 떠있고 바다가 품은 섬.
외연도는 다시 찾아 왔을 때도 이 자리를 지키며 섬의 품을 내줄까?
배를 타며 다시 한 번 섬을 뒤돌아본다.
한 시간 후 녹도에 도착하여 다시 30여 명을 삼킨 배는 잠시 술렁이더니 뱃머리를
대천항으로 돌린다.
친구는 얼마 전에 들렸던 녹도주민을 알아본다.
인연에는 우연(遇緣)과 필연(必緣)이 있고 만남에는 조우(遭遇)와 해후(邂逅)가 있지.
필연은 어떻게 됐던 만날 인연이다.
이런 만남은 조우일까 해후일까,
우연일까 필연일까를 생각하다 뱃머리로 고개를 돌린다.
엊그제와 달리 파도가 없는 탓인지 배의 롤링은 전혀 없다.
흔들림이 Ktx보다 적어 편안한지 뱃멀미를 심하게 하던 친구들도 잠이 들고,
나는 생각나는 대로 메모를 한다.
북한 핵과 경주지진, 무더위와 전기료폭탄으로 어수선했던 여름이 지났다.
배에 설치된 Tv에서는 성주의 사드배치와 치약의 Mit성분 가지고 시끄럽다.
또 얼마나 긴 시간 동안 이 나라가 시끄러울 것인가.
전자파 피해가 없다고 해도 제 땅에는 안보(安保)고 뭐고 필요 없다며 반대를 하는
지역 사람과 야당, 시민단체들.
수십 년 동안 이보다 더 심한 피해를 보면서도 묵묵히 참는 사람들에겐 일말의
미안함도 없는 사람들.
수십 년간 그 성분이 함유된 치약을 썼어도 한 사람도 치약으로 죽은 사람이 없는데도
난리치는 언론과 시민단체들에 의해 이 나라는 얼마나 더 시끄러울까.
아!~이 나라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를 생각하니 암울하다.
14;25
혼자 타는 시외버스가 여유롭다.
몇 명이 탔는지 앞에서부터 세보니 열 명이 넘지 않는다.
차내의 넓은 공간에서 창밖을 바라보며 무한 자유를 누리리다.
이박삼일간의 시간, 무위의 시간은 이렇게 흘러가고
잠시 속세를 떠났던 몸은 혼탁의 현세를 찾아 원점회귀를 하는 신세가 된다.
2016. 9. 28~30. 외연도 봉화산을 다녀와서
석천 흥만 졸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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