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11. 19.
계절이 빠르게 겨울로 바뀌어간다.
무더위에 허덕이다 겨우 만난 가을은 어디론지 사라지고,
때 아닌 추위가 몸과 마음을 썰렁하게 한다.
집 앞에까지 매일 찾아오던 동박새와 직박구리도 며칠째 보이지 않고,
뻐꾸기도 잠잠(潛潛)하니 새들도 월동준비에 매우 바쁜 모양이다.
07;00
더위에 지친 몸이 가을을 만나 겨우 원기를 회복하나싶더니
박 대통령과 청와대 발 대형 악재로 짜증이 나 몸과 마음이 피곤하기만 하다.
이럴 때일수록 여행은 보약을 열 첩 이상 먹은 거보다 효과가 크겠지.
하늘은 먹구름으로 가득 찼다.
초록으로 가득 찼던 들판은 텅 비어가고 그 틈을 서리가 채웠다.
꼬리를 물고 어디론지 향하는 차량행렬들로 사뭇 부산한 고속도로 풍경을 멍하니
바라본다.
벼이삭이 익으면 고개를 숙이듯이 세월이 쌓일수록 사람들도 더 겸손해지고 양보하며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충만하여야 하는데, 이상하게도 나이가 들면 들수록 사람들 가슴은
점점 편협해진다.
처음에는 사소한 말다툼이, 또는 사소한 오해로 인해 언성이 높아지며 서로 미워하는
마음이 생겨 큰 상처를 입는다.
젊었을 때는 쉽게 가라앉고 금세 잊어지는데, 숙년(熟年)이 될수록 상처를 치유하기가
점점 힘들어진다.
사이좋은 친구가 사소한 일 때문에 우정에 금이 가고 상처를 받아 서로 미워하는
어리석음을 자초하는 게 우리들의 일상생활이다.
물론 서로가 좋은 말과 마음에 드는 행동만 한다면 문제될 게 없겠지만 인간관계에서는
늘 그렇게 훈풍이 불지는 않는다.
사랑을 주장하는 예수나, 자비를 베풀라는 부처도 배신을 당하고 상처받은 일이 있었지.
용서라는 단어, 화해라는 말이 말과 같이 쉽지 않다는 이풍원 박사의 특강은 이어진다.
이제는 무엇이 중요한가를 먼저 생각하며 서로 용서를 하고, 화해를 하며
흔들리지 않는 마음으로 우정에 신뢰를 쌓고 한층 더 성숙해 갈 수 있어야 한다.
따지고 보면, 지나 놓고 보면 별것도 아닌 것을 가지고 격하게 싸우고 얼마나 많은
시간낭비를 하고 있었는가.
이제는 자신의 마음을 조절하며 현명하게 자아(自我)를 찾고, 보람 있는 황혼의 삶이
되고자 함께 감성여행(感性旅行)을 한다.
12;00
5시간을 달려 도착한 우포늪,
2014년 11월 21일 찾고 두 번째 이곳을 찾으니 2년이란 세월이 꿈결에 흘렀다.
산 위에서부터 내려오던 오색(五色)단풍이 순식간에 온 산에 퍼지더니 슬그머니 사라졌다.
요즘 매스컴과 패널들의 소리는 공해(公害)라 오늘만큼은 자연의 소리로 귀를 채워야겠다.
무엇이 자연의 소리일까.
바람소리와 구름소리, 물과 새소리인가?
이렇게 묻는 나를 멍청하다고 뒤에 서있는 소나무가 잔소리를 해댄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하듯이 나 역시 호불호(好不好)가 분명한 성격이다.
그러다 보면 본의 아니게 다른 사람과 충돌도 생기고 오해를 받기도 한다.
오늘 우포늪 여행은 인간관계에서 범위를 좁혀 우리 동창들 간에 그동안 있었던
서로간의 갈등을 치유하고 화해하는 목적을 가지고 준비를 했다.
말(言)이란 사람들이 의사 표현을 하는 수단이며,
자기 자신의 기분과 성향, 그리고 자신의 뜻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는 매개체다.
좋은 말을 하면 좋은 관계가 되고, 촌철살인(寸鐵殺人)이라는 말도 있듯이
나쁜 말 한 마디로 사람을 죽일 수도 있다.
상대를 우습게보거나 비하 하는 말로 자신의 입장만 생각하면 서로 간 갈등이 생기고
불신이 가중된다.
언젠가 '탈무드'에서 본 글귀가 생각난다.
'세상에서 가장 현명한 사람은 모든 사람들로부터 배울 수 있는 사람이요,
가장 사랑받는 사람은 모든 사람을 칭찬하는 사람이요,
가장 강한 사람은 자신의 감정을 조절할 줄 아는 사람이다.'라고 하는데
동양 사상에서 말하는 '든 사람, 된 사람, 난 사람'의 개념과는 어떻게 다를까.
살다보면 옳지 못한 방법으로 남을 누르고 그 위에 서려는 치졸한 생각을 누구나 잠시라도
갖게 마련이다.
남을 업신여기는 마음은 위험하고 언젠가는 그 대가를 자신이 짊어져야 한다.
남보다 낫고자 한다면 진정한 실력을 기르고 언행에 신중을 기하여 인격(人格)을 갖춘
사람이 되어야 존경을 받는다.
대체적으로 상대를 깎아 내리려는 사람들은 상대에 대해 비웃는 투로 말을 하며
상대방의 약점을 잡고 얕잡아 본다.
상대는 우습고 자신은 괜찮다고 생각하는 버릇이야말로 늘 우리가 경계하고 조심하여야
할 사항이다.
우리의 실상은 어떤가.
어제를 추억하고 오늘을 의미 없이 지내고 내일을 걱정하는 나이가 아닌가.
어느새 내일이 어떻게 될지 한 치 앞도 모르는 황혼이 되었다.
수없이 반복되는 삶,
누군가 쉬고 싶다면, 어제는 놀고 오늘은 쉬고 내일은 휴무한다고 농담을 한다.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도 그렇게 살기에 황혼의 삶이 힘들고 외로워도 세월은
기다려주지 않으니 우리 스스로 서로가 사랑해야겠지.
언젠가는 죽음이라는 삶의 끝이 오고 이 끝은 누구든지 피할 수 없다.
언젠가 우리는 그렇게 떠나야 한다.
애절하게 삶에 애착을 가져도 다 부질없는 일이지.
아무리 미련을 가져도 그렇게 떠나야하는 게 우리네의 인생이다.
삶이란 그런 것이다.
가질 수도 버릴 수도 없기에 더 마음의 문을 열고 받아들여야겠지.
어느 고승(高僧)은 가을나무가 떨켜 층을 만들어 제 몸뚱이만 남겨두고 스스로 나뭇잎을
버리듯이 삶의 정답이란 '채움이 아니고 비움'이라고 한다.
"그 비움은 자신의 내면을 채워 줄 거고,
용서와 이해, 자비를 통해 자기 자신을 새롭게 일깨운다면 절반은 성공한 인생이 된다."고
말 한다.
계절의 변화처럼 빠르게 스쳐가는 것이 무엇일까.
사람과 사람이 만나 관계를 맺는 인연(因緣)인가.
우리는 살아가는 동안 수많은 사람들과 인연을 맺는다.
부자간의 인연, 부부와의 인연, 형제자매와의 인연, 학생으로서의 인연,
군대라는 조직에서의 인연, 직장 동료와의 인연 등 여러 인연을 맺으며 살아가기에
혈연(血緣), 지연(地緣), 학연(學緣)은 우리들의 대표적인 인연이다.
내가 불교라는 종교에 귀의하지는 않았지만 불교의 법망경에선
'옷깃 한 번 스치는 것도 500겁의 인연'이라 했다.
이렇게 사람과 사람의 인연은 매우 소중한데, 그중에서도 학연(學緣)은 서로 다른 지방과
다른 환경에서 자란 사람들이 만나 인연을 만들었기에 매우 소중하다.
이렇게 귀한 인연을 말 한 마디에 차갑게 외면을 하며 등을 돌리고,
나 자신의 잘못보다는 상대방의 잘못과 부족한 점을 비난하며 그 연(緣)을 끊으려 한다.
마음가짐에 따라서 만남이 달라지고 서로가 즐거워지기에
서로가 화해하고 반성하며 손을 꼭 잡아주면 참 좋은 인연이 될 텐데 말이다.
이제는 함께 기뻐하며 편견과 차별을 버리고, 모두를 사심 없이 대하며,
시기와 질투, 미움과 분노를 없애고 착한 벗과 가까이하며 좋은 인연을 이어가면
자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행복한 시간들이 되겠지.
12;10
박무(薄霧)가 내려앉은 호수에서 큰고니와 원앙새들이 괴성을 지르며 적막을 깬다.
늦가을의 고요를 즐기려 했던 나의 욕심을 새들이 눈치 챈 모양이다.
사방이 텅 비워지며 대자연의 세월도 지워져 간다.
논도 밭도 텅 비고, 새들이 와글거리던 늪지도 이곳을 빼고는 고요하다.
1998년 3월 국제 람사르협약(Ramsar Convention)에 우리나라 1호로 등록 된
우포늪은 1999년 2월엔 환경부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되었으며, 2011년 1월에는
천연보호구역으로 지정되었다.
우리나라 대표적인 고산습지로 이탄층인 대암산 용늪과 성격은 조금 다르지만
규모면에서도 용늪은 우포늪에 비해 어림도 없다.
토평천 상류의 퇴적물이 자연제방의 형태로 쌓이고, 낙동강의 하상이 높아져
토평천의 물이 제대로 빠져 나가지 못하여 거대한 늪지가 형성된 우포늪.
창녕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늪이 있으며, 그 중 우포늪은 한국 최대의 늪지로
옆에 있는 목포(나무벌 木浦)까지 합쳐 약 55만 평에 이른다고 하며,
홍수 때는 토평천 일대의 물과 낙동강물이 역류하여 수위가 무려 5~6m가 높아지면서
거대한 호수로 변한다고 설명을 한다.
우포, 목포, 사지포, 쪽지벌을 총칭하여 습지보호지역으로 약 8.547㎢(약 261만 평)이고,
천연보호구역으로 약 3,438㎢(약 104만 평), 우포늪이 물을 담고 있는 습지면적은
약 2,313㎢(70만 평)이라고 한다.
박무에 잠긴 우포늪,
수많은 동, 식물에게 생존과 휴식처를 제공하는 우포늪이 더욱 신비스럽게 보인다.
새들이 격렬한 몸짓을 하며 소리를 지르고, 물 안에는 또 다른 시공간(時空間)이 펼쳐진다.
12;30
진부한 백수의 삶에서 잠시라도 탈출하려고 먼 길을 달려 도착한 곳.
엷은 안개 속에 우포늪이 침묵을 지킨다.
메마른 일상에서 오늘만큼은 이곳에 나의 발자국을 남기고 싶다.
비 그친 하늘엔 구름이 가득 찼고, 큰고니 떼들 울음소리가 귓가에 맴돈다.
제방을 계속 걸어가야 할지, 제방 아래로 내려가야 할지 잠시 머뭇댄다.
여행의 참맛은 길을 잃어야 느낀다는데 다른 길로 가볼까.
가을하늘은 참 맑아야 제격이지.
가을비에 씻긴 가을하늘은 더 맑고 깨끗하다.
그래서 자꾸 하늘을 쳐다봐야 하는데 오늘의 하늘은 우울하다.
하늘엔 구름으로 얼룩이 졌다.
새들이 날며 파란하늘에 낙서를 하는 풍경이 보고 싶었는데,
맑고 깨끗한 하늘의 마음으로 살아가고 싶었기에 자꾸만 흐린 하늘을 바라본다.
12;37
부근의 지세가 소의 형상을 하고 있다는 소벌(牛浦늪)을 지나 배를 타고 장재마을
토평마을로 건너가 땔감으로 쓸 나무를 가져오던 나무벌(木浦늪)의 경계선인 탐방로
3길로 접어든다.
소의 목 부분에 해당하는 위치이기에 얻은 명칭인 우항산(牛項山)을 오른다.
< 낙엽의 이야기
낙엽 떨어진 길을 걸으면
숱하게 쌓였던
삶의 찌꺼기가 벗겨지려나.
낙엽 길을 밟으면 맑고 깨끗해져
순수한 마음을 찾으려나.
꽃 피고 꽃 지고,
열매 맺고 열매 떨어지고,
이파리 떨어지는 자연에서
마음의 평화를 찾는다. 석천 >
스치는 바람에 억새가 운다.
흰 머리칼을 휘날리며 억새풀로 스며든다.
잿빛하늘은 이 조그만 야산에 금방이라도 비를 뿌리려나.
늪의 갈대가 사각대고 메마른 풀 사이로 '쑥부쟁이' 얼굴을 내민다.
이 가을에 마지막으로 보는 꽃인가.
물이 길을 내고 산이 화답하는 길에서 순수하게 술 한 잔을 나눠 마시는 풍경,
더할 것도 덜어낼 것도 없는 풍경은 자연과 사람이 만든 액자다.
지음(知音)의 경지를 아는가.
'백아'는 거문고의 명인(名人)이었다.
백아가 산(山)을 생각하고 거문고를 타면 친구인 '종자기'는 금방 산을 느끼고,
강(江)을 생각하고 연주하면 금세 강을 알아차렸다.
백아의 음을 종자기만이 금세 알아들었기에 지음과 지기지우(知己之友)라는 고사성어가
생겼다.
이 나이가 되도록 어려서부터 같이 커온 죽마고우,
학교의 동기동창, 선후배, 군대전우, 직장의 동료, 취미가 같은 동호회원, 영업을 하며
맺은 고객과의 인연 등 수많은 인연이 있지만 지음의 경지에 이른 인연이 나에게 있을까?
예전에 어떤 친구는 나에게 항의를 한다.
저는 내 얼굴만 봐도 내 뜻을 알 수 있는데, 정작 나는 저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푸념을 한다.
사실 황혼의 나이에 접어들어서는 누구나 많은 친구들이 많겠지만 갈수록 지기지우의
관계는 멀어진다.
친구(親舊)라는 이름으로 오랫동안 희로애락(喜怒哀樂)을 함께해 온 친구들을 바라본다.
세상이 각박해지면서 격식을 따지고 체면치례를 해야 하는 관계로 변하지는 않았는가,
허물없이 만나 차 한 잔, 술 한 잔을 나눌 수 있는 친구인가.
설사 말을 하지 않아도 알아듣는 지란지교(芝蘭之交)의 친구들인가 곰곰이 생각을 한다.
'쑥부쟁이'에 밤 새워 이슬이 내렸고, 이슬 젖은 꽃잎이 파르르 떨린다.
박무 속에
피안(彼岸)의 세계와 차안(此岸)의 세계가 공존하는 정토(淨土)가 슬며시 모습을 나타낸다.
어느 책에선가 본 구절이 문득 생각난다.
인디언의 격언 중에 '친구란 내 슬픔을 등에 지고 가는 사람'이다라는 글을 읽으며
깊은 감명을 받은 적이 있었지.
기쁨을 함께 누리는 것은 누구나 다 할 수 있다.
그러나 슬픔과 아픔을 함께하기란 어렵다.
기쁨, 슬픔과 아픔을 함께할 수 있어야 비로소 친구라 부를 수 있을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든다.
13;10
주인 잃은 빈 배가 물결에 흔들린다.
늪은 침묵을 지키고 나그네는 무심코 빈 배를 스친다.
'털진득찰'의 노란 꽃이 발걸음을 잡는다.
며칠 후면 사라질 꽃,
겨울을 쉬며 힘을 얻으면 사라졌다가 동토(凍土)를 뚫고 부활하겠지.
시작도 끝도 없는 순수한 마음을 가질 수 있을까.
희망사항이겠지만 사람도 앞뒤도 유불리(有不利)도 따지지않는 순수한 마음만
유지한다면 인간세상이 더 아름답겠지.
어제를 추억하고 오늘을 걱정하고 내일은 어떻게 될지 한치 앞도 모르는 게 우리의
삶이다.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도 그렇게 살며, 가질 수도 버릴 수도 없는 황혼의 삶,
아무리 황혼의 삶이 힘들고 외로워도 세월이 위로해주지 않아도 서로가 사랑하면 되겠지.
삶의 아름다운 마무리는 무엇일까.
내려놓음인가, 비움인가?
살다보면 버리지 못한 욕심과 스스로 만든 갈등에 몸부림치기도 하지.
스스로 만든 갈등에 허우적대다가 어느 날 달력을 보니 또 한 해가 저물어간다.
화해, 용서, 반성 등 참 좋은 이야기지만 막상 실천하기란 매우 어렵다.
그냥 용서하고 이해하고 자비를 베풀면 되는 건데 말대로 쉽지가 않다.
우리가 처음 15세 소년으로 만났을 때,
순수하고 순진했던 처음의 마음으로 돌아가면 되는데 이 또한 쉽지가 않다.
13;30
산봉우리들이 박무(薄霧)속으로 슬며시 숨는다.
숱한 세월이 흐르고 쌓였기에 잊었던, 잃어 버렸던 초심(初心)을 회복하려면
진제 스님께서는 "참 나는 무엇인가, 나는 누구인가"를 스스로 묻고 또 물으면 답이
나온다고 하는데,
도(道)를 깨우친 고승(高僧)들이야 가능하겠지만, 평범한 사람들은 힘들다.
산길을 걸을 때 가끔은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내가 도착하는 종착역은 어디고 어떤 모습일까 궁금해 하기도 한다.
내려놓는다?
무엇을 내려놓을까.
내안에 무엇이 들었고 무엇을 비우고 무엇을 어떻게 내려놓을까.
무엇이 들었는지도 모르는데 결코 쉽지 않은 화두(話頭)이다.
이년 만에 다시 찾은 우포늪,
눈에 비치는 풍경에 가을의 추억을 담는다.
단풍에 내리던 햇살이 물속에 녹아들고, 아름답고 애잔한 풍경이 이어진다.
물길을 따라 이리저리 굽어진 길을 걷는 나를 누가 기억을 할까.
먼저 만났던 강아지는 어디로 숨었는지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이야기를 따라 걷는 길에서 얼굴을 들어 하늘을 바라본다.
숨었던 가을의 햇살이 잠시 나오며 눈부신 풍경에 가슴이 뛴다.
스스로 태어나 스스로 지키고 긴 세월을 이어오는 곳.
내가 떠나도 영원하겠지.
우포늪 전체를 돌려면 약 22km가 되기에 징검다리를 건너 8.4km로 단축을 한다.
늪(습지)이란 무엇일까?
물이 주변의 자연환경과 더불어 살아가는 동,식물의 생태를 조절하는 역할을 하는 곳으로
'물'도 아니고 뭍(땅)도 아닌 지역을 학자들은 늪(습지)이라고 한다.
람사르(Ramsar)협약의 습지조건은 자연적이든 일시적이든, 물이 고여 있던지
흘러가든지, 민물과 짠물을 가리지 않고 물이 완전히 빠졌을 때 물의 깊이가 6m이하인
지역인데 우리나라 대표습지인 대암산 용늪도 여기에 해당된다.
생성된 지 1억 4천만 년이나 된 우포늪 속으로 들어가니 왕버들이 괴기스런 모습으로
나타난다.
내가 다가가자 철새들의 푸드득 거리는 소리로 늪의 고요가 깨진다.
낙엽 깔린 호젓한 늪,
수양버들과 왕버들 잎은 부스러져 차가운 물속으로 가라앉았다.
< 그리움
발밑으로 떨어지는 이파리 한 잎
주름진 얼굴에 그리움도 사라진 줄 알았다.
쫓기듯 살아온 세월
낙엽처럼 스러질 것만 같은 삶은
평생의 짐이었지.
허연 머리칼을 손가락으로 쓸어 넘기며
나이가 들면
설레는 그리움도 사라진 줄 알았지.
오늘같이 좋은 날
술 한 잔 나누고 싶은 사람이 그리워지고,
오늘같이 가을바람 부는 날
차 한 잔 나누고 싶은 사람이 생각나는
그리움에 목이 멘다.
가을 낙엽 떨어지는 소리에
휑한 가슴속 그리움만 쌓이는구나. 석천 >
13;50
온도가 영상 15도까지 올라가니 등 뒤에 짊어진 배낭이 거추장스럽다.
모든 삶의 짐을 던져버리고 알몸이 되어 억새풀 사이를 걷고싶다.
왜가리 한 마리가 물속을 응시하고 있다.
잠시 상념에 젖은 걸까, 아님 물속에서 유영(流泳)을 하는 물고기를 노리는 걸까.
고고한 모습을 바라보며 도하청장(淘河靑莊)이라는 고사성어와 함께 선택과 집중이라는
단어가 생각난다.
14;20
두 시간 여 트래킹을 하며 마음속에 남았던 앙금이 힐링(Healing)되었을까.
내내 인생의 숙제로 남겠지.
15;00
음식점 마당에서 만난 '마가목'의 빨간 열매가 늦가을 여행의 대미(大尾)를 장식한다.
옛사람들은 친구들도 유형이 있다는데,
자기 좋을 때만 찾는 꽃(花)과 같은 친구,
이익이 큰 쪽으로만 움직이는 저울(錘)같은 친구,
생각만 해도 편안하고 마음 든든한 산(山)과 같은 친구,
한결같은 마음으로 아낌없이 주는 땅(地)과 같은 친구가 있다고 한다.
마음 깊이 와 닿는 말이다.
서로 마음 든든한 사람이 되고,
힘겨운 황혼인생에서 속마음을 털어놓지 못할 때 서로 위안이 되는 친구가
되자고 약속을 하며 한잔 술에 우정을 타서 마신다.
2016. 11. 19. 우포늪에서
석천 흥만 졸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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