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느림의 미학 442 시끄러운 뜰

김흥만 2019. 4. 24. 22:49


2019.  4.  24.

소리 없이 봄비가 내렸으니 윤물무성(潤物無聲)이로다.

비 예보로 칠곡의 금오산(971m) 산행을 취소하였고,

번개산행으로 급히 잡았던 춘천의 금병산 산행도 취소하고 창밖을 바라보다

카메라를 들고 뜰로 나선다.


비 그친 뜰 안의 풀이 날로 무성해지고 을씨년스럽던 공터도 초록으로 사라졌다.

죽은 매화나무 아래 얼굴을 내민 초록 풀들이 각자 이름대로 자기의 영역을 채우고,

빈 공간에 살짝 핀 '흰젖제비꽃'의 하얀 꽃이 유별나다.


봄꽃은 노랑이나 분홍색이 대부분인데 흰젖제비꽃이 초록과 갈색의 공간에서

도드라진 아름다움을 과시한다.



얼마 후면 하고현상(夏枯現象)으로 사라질 '개불알꽃'과 한해살이 '봄맞이꽃'의 이름을

부르며 포커스를 맞춘다.


사람들은 쓸모가 덜하여 가꾸지 않는 이런 풀들을 싸잡아 잡초(雜草)라고 하지만

이들의 생명력은 가히 불가사의(不可思議) 수준이다.



밟지 않으려 조심해도 몇송이는 내가 밟았을 수도 있겠다.

그래도 이 아이들은 밟혀도 다시 일어나고 비바람에 쓰러져도 다시 일어나

하늘을 향해 꽃이 피고 잎사귀는 무성해지겠지.


화풍세우(和風細雨)를 맞은 '노란선씀바귀'도 한창이다.

이름 모를 꽃도 한창이고, 금년에도 내년에도 필 잡초라 불리는 '꽃마리'를 바라보며

포커스를 맞춰도 꽃이 너무 작아 렌즈의 초점이 맞지 않는다.



어제 기온이 28도, 오늘은 25도라,

짧고도 짧은 봄을 밀어내고 성급한 여름이 4월에 몰려왔기에 반팔 옷을 입었는데도

등판이 펑 젖는다.


웃자란 소루쟁이는 갈색으로 변해가고 연두색풀들이 초록으로 변해가는 아침,

나만의 사유(思惟) 공간인 뜰 안에서 잡초들의 시끄러운 소리를 들으며 서성인다. 


                                                           2019.  4.  24.

                                                                      석천  흥만  졸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