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7. 30. 07;00
창밖이 시끄럽다.
창문을 여니 배롱나무에 붉은 꽃이 피었고 꽃 사이사이에 '콩새' '동박새'
'참새'들이 뒤엉켜 영역다툼을 하느라 꽤나 소란스럽다.
벚꽃이 피면 벚꽃의 꿀을 유난히 좋아하는 '직박구리'가 벚나무에 눌러앉아
다른 새들이 접근을 못하게 했는데,
오늘 배롱나무에선 여러 종류의 새들이 모여 꼭두새벽부터 난리를 친다.
우리 조상들은 아들을 낳으면 선산에다 소나무와 잣나무를 심었고,
딸을 낳으면 오동나무를 심었다.
딸이 성장해 시집을 갈 때가 되면 딸 몫으로 기른 오동나무를 잘라 농짝이나
반닫이를 만들어 주었고,
아들 몫인 소나무는 아들이 죽으면 관(棺)을 짜는 데 사용하였으며,
신작로의 이정표로 5리마다 '오리나무'를 20리마다 '스무나무(시무나무)'를
심었다.
나무이름을 가지고 오랫동안 전래되어 내려온
"청명 한식에 나무 심으러 가자,
무슨 나무 심을래 십리 절반 오리나무, 열의 갑절 스무나무, 대낮에도
밤나무, 방귀 뀌어 뽕나무, 오자마자 가래나무, 깔고 앉아 구기자나무,
거짓 없어 참나무, 그렇다고 치자나무, 칼로 베어 피나무, 네편 내편
양편나무, 입 맞추어 쪽나무, 너하고 나하고 살구나무♬♪♩~~"라는
동요가 생각난다.
잠 귀신인 '자귀나무'꽃이 지자마자 핀 배롱나무의 붉은 꽃이 언제까지 피어
있으려나.
꽃이 백일동안 핀다 해서 '백일홍'이라는 별병이 붙은 배롱나무를 보며
그동안 내가 만났던 나무들을 기억해낸다.
남쪽 지방 해안가에서 '돈나무'를 보았고,
소리를 내는 나무로는 불에 탈 때 자작자작 소리가 난다 해서 '자작나무',
꽝꽝 소리가 난다 해서 '꽝꽝나무',
딱총 소리가 난다는 '딱총나무'와 검양옻나무, 족제비싸리나무를 만났다.
특이한 이름으로 '뭔나무'가 있는가 하면 울릉도에선 '너도밤나무',
'나도밤나무'를, 하늘과 인간을 연결해주는 신단수(神檀樹)인 박달나무와
거제수나무는 지금도 수시로 만난다.
경북 안동 길안면의 수령 700년이 넘는 '용계 할아버지 은행나무'를
아직 만나지는 못했지만,
청도 운문사에서는 막걸리를 좋아하는 '처진 소나무'를 보았고,
예천에 가서는 재산세를 내는 부자 소나무인 '석송령'의 거대한 덩치를
보며 위압감을 느꼈다.
봉화 옥돌봉에서 천연기념물로 550년이 넘은 거대한 철쭉나무를 보며
감탄하기도 하였고,
구례 산동 산수유마을에서 1,000살이 넘는 산수유 '시조목(始祖木)을
만나 절을 했으며, 속리산 정이품 소나무 아래에서 폼(form)을 잡기도 했다.
정선 두위봉에서 만난 우리나라 최고령인 1400살짜리 주목나무,
태백산에서 만난 천살이 넘은 주목나무와 울릉도에서 2,500~3,000년의
수령으로 추정된다는 향나무를 보며 자연의 신비에 대해 생각을 하였으며,
경주 남산의 간드러진 소나무와 금곡 홍유능의 거대한 독일가문비나무가
너무 높이 자라 나무 꼭데기까지 다 보지 못한 기억도 난다.
아차산에서 품위있게 자란 '반송(盤松)'을 누군가 뽑아가 매스컴을 요란하게
장식했는데 그 소나무 사진을 핸드폰 사진으로 지금도 간직하고 있으며,
이밖에도 내가 만난 나무로 제주 비자림의 비자나무, 울진 응봉산의 미인송,
안면도의 '안면송', 용문산 은행나무, 소광리의 '금강송', 오대산 월정사
선재길의 전나무, 소사모종(蘇寺慕鐘)으로 유명한 내소사의 전나무, 홍천
가칠봉의 '황벽나무', 선암사 선암매, 백양사 고불매와 갈참나무, 연화사의
고매, 경복궁의 고매등이 생각난다.
풀에도 소리를 잘낸다해서 '소리쟁이'라는 이름을 얻은 '소루쟁이'가
있으며 용문사 은행나무는 나라에 변고가 있을 때마다 울었다고 전해진다.
자기 몸 안의 열을 식히기 위해 바람 한 점 불지 않는 뙤약볕 속에서도
스스로 이파리를 흔들어 대는 포플러,
생장(生長)이 빠른 사시나무는 많은 양의 물을 먹고, 그 토양수를 빨리
공기 중에 방사하기 위해 바람이 없어도 이파리를 마구 떨어대기에
'사시나무 떨 듯 한다.'라는 말을 만들었는데 이는 바람에 의한 게 아니라
스스로 내는 소리라고 한다.
따라서 나는 흔하게 보는 나무는 물론 노거수(老巨樹)를 만날 때마다
마음을 가다듬고 본다.
짧게는 수백 년 길게는 수천 년을 살아온 거목들을 보면 경외심(敬畏心)이
생기기 때문이다.
이 나무는 신라시대에 벌어졌던 역사의 현장을 다 보았을까,
저 나무는 고려왕조와 조선왕조를 이어 살았고 계속 살아남아 6.25사변을
겪으며 동족상잔의 비극을 다 보았을까,
또 저 나무는 인간세상을 바라보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를 끊임없이 생각을
하고,
땅속 · 땅위 · 공중에 뻗어있는 유일한 생명체인 나무도 사람과 마찬가지로
감정과 영혼을 가지고 있을까를 유추(類推)해본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나무들은 여러 자료에 의해 감정과 영혼을 가지고
있다는 게 정설이다.
2년 전 1990년 300살 먹은 통의동 백송(白松)이 폭풍으로 쓰러진 현장에
들려 사진을 찍은 적이 있다.
백송을 살리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했지만 제초제를 뿌린 사람들로 인해
수포로 돌아갔고, 백송의 하얀 주검을 살피던 전문가들은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였다고 한다.
나이테를 살펴보니 1910년 조선이 망할 때 전후로 성장을 멈췄고,
해방 후 즉 1940년대 후반에 가서야 다시 성장을 했다는데,
그 기간이 일제강점기와 일치하였으니 나무도 나라 잃은 슬픔을 백성과
같이 하였던 거다.
1966년 미국의 거짓말 탐지기 전문가인 '클리브 백스터'가 검류계를
이용하여 식물의 자극과 반응에 대한 실험을 했다.
식물들도 극단적인 상황에 직면하면 인간처럼 기절하거나 실신함으로써
그 상황을 모면하려는 일종의 자기방어를 한다는 내용을 읽은 후
'운길산' 정상에서 소나무에게 죽여 버린다고 욕을 하는 사람에게 설명을
하여 이해를 시켜준 일도 있다.
식물에 고통을 가하기 위해 잎사귀를 딴다거나 담배연기를 뿜으면 생체전기
그래프가 아주 날카로운 파형(波形 waveform)을 그려내는데 그것은 나무가
당혹감과 분노를 느끼는 거라며, 사람이 나무와 교감을 하기 위해 좋은 말을
하던지 물을 정성껏 주는 등 편안하게 해주면 평온한 파형을 그려낸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는 거다.
나무는 착한사람, 나쁜 사람, 여성, 남성도 구별하여 반응을 한다하니 참
오묘한 자연의 신비를 알게 된다.
소강상태였던 장맛비가 다시 주룩주룩 내린다.
옛사람들은 이렇게 달구로 짓누르듯 거세게 내리는 비를 '달구비'라 했다.
달구비가 내리자 배롱나무에 붙었던 새들이 일제히 베란다 철제 난간으로
대피를 했다.
재잘거리던 새들은 입을 닫은 채 몸을 움츠리고 창밖에선 빗소리만 들어온다.
2020. 7. 30.
석천 흥만 졸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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