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8. 8. 05;16
반딧불이 비슷하게 보이는 형광물체가 나풀거리며 풀숲으로 사라진다.
여긴 습지나 개울도 없는데 반딧불이가 있으려나.
나방이가 불빛에 반사되어 형광체로 보였던 게 아닐까.
서둘러 휴대폰 카메라 기능을 켜고 숲속을 주시한다.
05;17분이 되자 가로등이 꺼지고 산길은 어두워졌다.
잠시 정적(靜寂)이 흐른다.
사방이 어두워지자 소리가 멈췄다.
여치, 귀뚜라미 등 풀벌레소리, 매미소리, 새소리도 사라졌다.
미물(微物)들도 문명의 빛에 익숙해졌나보다.
하지가 지난지 두 달이 다돼가 5시 반이나 돼야 훤해지기에 폰을 열어
손전등을 켠다.
다시 풀벌레와 매미가 요란하게 울기 시작한다.
내 귀가 너무 예민한 걸까?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소리에 마음을 기대본다.
며칠 전만해도 매미소리가 풀벌레소리보다 월등히 높았는데 오늘은
비슷하게 들린다.
번뇌(煩惱)란 필요 없는 생각이 많으면 생기는 거다.
머리와 가슴속에 꼭 필요한 지혜만 들어있다면 그게 어디 사람인가.
어두운 산속에서 풀벌레소리를 들으며 문득 '대자연의 만물이 내는 온갖 소리'라는
멋진 이름을 가진 진천 만뢰산(萬賴山 611.7m)이 생각난다.
입추가 지나자마자 풀벌레들은 기세가 등등해지고 매미는 서서히 활력을
잃어가는 것처럼 들리니 나만의 착각인지 모르겠지만 이 또한 자연의
제행무상(諸行無常) 아니겠는가.
07;00
막걸리 100병의 에필로그(epilogue)
느림의 미학 638호 막걸리 100병에 대해 쓴 글을 보신 은행상사였던
큰형님으로부터 다음과 같은 댓글이 올라왔다.
"막걸리 100병이 바닥보기 전 그 친구가 또 백병을 채울 거다.
베풀면 베푼 만큼 채우는 자신이 더 즐거우니까"라고 말이다.
친구가 산 막걸리 100병이 한달 만에 동이 났는데,
엊그제 형님의 말씀대로 막걸리 100병이 또 채워졌다.
사리와 사물을 꿰뚫어보는 형님의 혜안(慧眼)과 복을 지으려는 친구의
정(情)이 멋지게 시현(示現)되는 대목이니 세상 살맛난다.
2021. 8. 8.
석천 흥만 졸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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