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8. 4.
코로나로 세상의 문이 닫혀 버렸다.
섭씨 35도를 넘나드는 더위는 몸과 마음을 닫아 버리게 하는데 이럴 때는
달콤한 아이스크림보다 이빨 시린 아이스께끼가 더 생각난다.
사무실에서 돌아와 찬물을 뒤집어쓰고 에어컨을 켜니 더위에 닫혔던 몸과
마음이 겨우 열린다.
터키와 8강전 여자 배구경기를 재방송으로 보다 깜빡 잠이 들었고 꿈을 꿨다,
꿈에서 내가 군복을 입었고 '석호'형을 만났다.
그리고 개구리복을 입고 제대를 했다.
오늘이 2021년 8월 4일이라,
부랴부랴 병역수첩을 꺼내보니 제대일이 1976년 8월 3일로 그새 45년하고도
1일이 지났구나.
그 45년 세월이 어디로 사라진 걸까,
꿈에서 깨어 잠시 눈을 감고 지난 세월을 회상해본다.
양구 21사단에서 제대 특명을 받고 태릉 71훈련단에서 인사명령 제115호에
의해 개인장구류와 개인피복을 반납 후 집으로 돌아오자 뜻밖의 소식이
나를 기다린다.
내가 제대하기 몇 달 전 '석호'형이 자살을 했다는 소식을 듣고 깜짝 놀란다.
초등학교, 중학교 3년 선배로서 나에게 낚시를 가르쳐주던 자상한 형이었는데
우울증으로 자진(自盡)을 했다는 거다.
진천에 아이스께끼 공장이 두군데 있었다.
하나는 '청신당'이요, 또 하나는 '진일당'이었는데 마켓쉐어(market share)는
약 7;3 정도로 기억이 난다.
아이스께끼 또는 아이스케키가 맞는지 정확한 용어를 지금도 모르는데
그 형 집에서 아이스께끼 공장을 했고,
여러 동창이 알바로 사각통을 둘러메고 아이스께끼를 팔았다.
현금이 별로 흔하지 않던 시절이니 고무신짝이나 쇠붙이는 엿장수들이 즐겨
받았고, 시원한 아이스께끼를 먹으려면 빈병을 줘야만 먹을 수 있었다.
지금은 물자가 풍부해 재활용이 가능한 쓰레기는 분리수거를 하고,
음식물은 별도로 배출을 하지만 그 당시에는 쓰레기 개념이 없었다.
플라스틱 제품은 거의 없었고,
헌책과 신문지가 나오면 화장실에서 사용했고,
음식물 찌꺼기는 두엄으로 향하는데, 특히 해거리가 심한 감나무나 대추나무
밑에 두엄을 만들어 숙성을 시켜 거름을 만들었기에 쓰레기가 생길 겨를이
없었다.
지금 바깥기온이 영상 35도에 습도는 70%로 매우 후덥지근한 날씨다.
매미소리와 함께 "아이스께끼~" 사라는 소년의 음성이 들리면 얼른 뛰쳐나가
빈병을 주고 달달한 아이스께끼를 사먹으련만 그런 세월이 다시 오려나.
잠시 즐긴 낮잠에서 석호 형을 만났고 아이스께끼가 생각나며 군침이 돈다.
여름 한낮에 꾼 꿈은 긴 여운과 함께 그리움이라는 울림을 주는구나.
2021. 8. 4.
석천 흥만 졸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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