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느림의 미학 649 내 곁에서 사라진 소리

김흥만 2021. 9. 5. 07:39

2021.  9.  5.  05;00

영상 17도까지 떨어진 새벽 기온,

굵고 거칠게 세상을 불태우던 여름이 미련 없이 가고 있다.

 

코로나 19가 온갖 심술을 부리는 인간세상에 시간은 흘러간다.

처서(處暑)가 지나자마자 하늘에서는 아침저녁으로 가을바람을 보내는구나.

 

요즘엔 새벽 기온이 제법 차 창문을 닫고 잔다.

어디선가 아기 울음소리가 들린다.

잠결이라 담벼락 아래에서 들고양이가 우는 줄 알았다.

                                              <조밥 나물>

 

창문을 활짝 열고 아래층 쌍둥이가 우는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언제부터인가 주변에서 아기 울음소리가 사라지고,

어린이 놀이터에서 아기들 노는 소리가 실종된 세상으로 변해간다.

 

아래층에 지난달 쌍둥이가 이사를 왔다.

일란성인지 이란성인지는 모르겠지만 돌이 지나지 않은 두 아기의 울음소리가

수시로 우렁차게 들린다.

 

아기 울음소리가 사라진 세상에서 어쩌다 아기 울음소리가 들리면 세상

살 맛이 나고,

길거리에서 우연히 아기들을 만나면 나도 모르게 미소(微笑)가 나오며

손을 흔들어준다.

 

06;30

산책을 끝내고 마당에서 쌍둥이 중 사내아이를 만났다.

잠을 안 자고 보채기에 밖으로 데리고 나왔다는데 공갈젖꼭지를 물고

나를 보며 활짝 웃는다.

 

지금 빙그레 웃는 이 아기의 웃음은 무슨 웃음일까.

하나님의 심부름꾼이라는 천사(天使)의 미소가 저럴까.

 

세상의 웃음에는 종류가 많다.

네거티브(negative)를 일삼는 정치인만 보면 짜증이 생기며 흘리는 냉소(冷笑),

대통령에게 아부성 찬가를 읊는 사람을 보며 어처구니가 없어 흘리는 실소(失笑),

 

내로남불과 자화자찬을 일삼는 권력자를 볼 때마다 나오는 쓴웃음인 고소(苦笑),

남의 잘못엔 수만 번씩이나 욕을 해대고 자기와 자기 가족의 잘못은 정당화시키는 

전 법무장관을 보면서 나오는 조소(嘲笑)와 헛웃음이 있던가.

 

올림픽에서 최선을 다하는 양궁의 안산, 김제덕 선수를 보며 터져 나오던

'함박웃음'은 높이뛰기 우상혁 선수에게 절제된 거수경례를 받으며 '잔웃음'으로

변한다.

 

대한민국엔 언제부터인가 태극기도 실종되었다.

며칠 전 광복절 아침 태극기를 게양(揭揚)하며 주변을 보니 달랑 우리 집만 달았다.

 

나는 돌려서 말하는 우회화법인 담언미중(談言微中)을 잘 하지 못한다.

태극기와 애국가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정권을 잡고 권력을 휘두르기에 태극기를

게양하는 집마저 점점 사라지는 현실이 슬프다.

 

남들이 달지 않더라도 바람에 휘날리며 펄럭거리는 태극기 소리를 들을 때마다

마음이 경건해지며 기분이 좋아지기에 국경일엔 빼먹지 않고 태극기를 단다.

 

오늘은 국경일이 아니어도 태극기 펄럭거리는 소리와 함께 아래층 쌍둥이

울음소리, 깔깔거리는 웃음소리가 듣고 싶어 창문을 활짝 열고 태극기를

달아야겠다.

 

즐거웠던 시절을 추억하며 살짝 흘리는 미소(微笑)와

재미가 있어 파안대소(破顔大笑)와 폭소(爆笑)를 터뜨리며 살 세상은 언제

찾아오려나.

어이없어 고개를 젖히고 실소를 흘리는 앙천실소(仰天失笑)나 나오지 않으면

다행이겠지.

 

아기의 울음소리와 함께 산들바람이 더위와 코로나 19로 지친 마음을 위로하는

9월의 아침,

국경일이 아니어도 태극기를 게양하는 나에게 누가 돌을 던질 것인가.

 

                                         2021.  9.  5.

                                               석천  흥만  졸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