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느림의 미학 648 바람 났슈!

김흥만 2021. 8. 28. 11:10

2021.  8.  28.  05;00

산길에서 매일 마주치는 아주머니가 "바람 났슈"라고 아침인사를 한다. 

말투로 봐서는 충청도 출신으로 보이는데,

"웬 바람?"이냐고 물으니 비로소 "찬바람'이 난 거 아니냐"고 되묻는다.

 

약간 어눌한 말투라 첫음절인 '찬'을 듣지 못하고 나보고 '바람 났슈~'라고

하는 말투로 들렸으니 슬그머니 웃음이 나온다. 

 

처서(處暑)가 지나자 기다리던 찬바람이 났다.

아침저녁으론 시원한 바람이 불어 선풍기나 에어컨의 도움을 받지 않아도

숙면(熟眠)을 취할 수 있어 좋다.

 

지금 숲속의 기온은 어제보다 4도가 떨어진 18도, 바람이 스치는 팔뚝에

소름이 살짝 돋는다.

간간히 들리는 매미소리는 시답지 않고 풀벌레만 애잔하게 흐느낀다.

 

드디어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문턱이다.

왕성하고 풍성했던 나무들이 점점 기운을 잃어가는 모습을 보이니 세월

무상함을 새삼 느낀다.

 

건들바람이 분다.

바람이라, 산 모퉁이를 돌며

바람이 났다, 바람이 들다, 바람맞다, 바람피우다,  바람 잡다, 바람 넣다 등

바람에 관해 생각을 해본다.

 

'바람'이란 말은 사람의 태도나 행동을 묘사하는 의태어(擬態語)일 경우는

다소 부정적인 뜻이지만,

바람의 형태와 소리, 세기 등을 표현하는 의성어(擬聲語)는 다른 특성을

가진다.

즉 자립명사냐 의존명사냐에 따라 말의 뜻과 어감이 달라지는 거다.

 

며칠 전 어느 친구가 충청도 말의 특성을 요약해 쓴 글을 읽었는데

충청도 말이 느린 게 아니고 제일 빠르다는 거다.

 

충청도에선

죽음에 대해 "갔슈", 실례하겠습니다를 "좀 봐유", 시원합니다를 "션해유",

어서 오십시요를 "어서 와여", 괜찮습니다를 "됐슈"로 표현한다.

 

이밖에도 "개 혀", "헌겨"등과

부정과 긍정이 혼재된 "괜찮여, 알았슈",  절대부정인 "됐슈", 긍정인

"그류"를 떠올린다.

 

충청도 사람의 화법은 느린 화법이 아니라 '접는 화법'이다.

즉 본심을 드러내지 않는 '접는 화법'으로 에두르는 건 상대에 대한 배려이다.

 

암튼 단답형인 예(yes), 아니오(no)가 아닌 분명치 않은 모호한 화법이지만

말 바꾸기나 말장난이 아니라 우회하되 정확히 목표물을 노리는 화법임에는

틀림없다.

06;00

동쪽 검단산에서 서늘한 바람이 내려온다. 

지금 내 몸을 감싸는 바람은 무슨 바람일까.

첫가을 동쪽에서 불어오는 '강쇠바람'일까, 아님 '새파람'이라 할까.

 

살살 내 몸을 간질이니 '산들바람'이나 '건들바람'이라 해도 좋겠지만

더위를 밀어내는 바람이니 편하게 건들바람이라 해야겠다.

 

                                    2021.  8.  28.

                                         석천  흥만  졸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