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느림의 미학 742 꽃비

김흥만 2023. 4. 1. 19:53

2023.  4.  1.  10;30

밤새 팝콘을 튀겼는가,

아님 하얀 꽃으로 펑펑 축포를 쐈는지 분노가 폭발하듯 세상은

벚꽃 천지가 되었다.

 

매스컴에서는 벚꽃이 예년보다 열흘에서 보름이상 빨리 피었다고

호들갑을 떤다.

1922년 이후 가장 빨리 피었다니 102년 만인가.

어느새 벚꽃나무가 꽃을 피우기 위해 필요한 열량인 즉 적산온도

(積算溫度) 158도를 꽉 채운 모양이다.

 

개나리는 냉각량이 -90도, 가온량이 128.5도,

진달래는 가온량이 96.1도,

벚꽃은 냉각량이 -100도, 가온량이 158도라고 국가농림기상센터의

'김진희 박사'가 썼던 논문이 생각난다.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룬 당정섬 벚꽃 터널로 내려선다.

코로나로 짓눌려 살다가 마스크가 해제된 게 불과 며칠 전이라

오늘따라 산책을 즐기는 사람들의 들뜬 표정이 평화롭다.

 

3년여 코로나를 겪으며 사람들의 머릿속엔 스트레스 호르몬이

가득 찼을 거다.

 

몸과 마음이 지쳤던 사람들의 얼굴에 흐르는 행복감을 바라보며,

이런 벚꽃길의 산책은 피로의 해결책이자 힐링(Healing)이라는

생각이 든다.

 

벚꽃의 꿀을 유난히 좋아하는 직박구리의 청아한 노랫소리가

들린다.

동박새는 동백꽃의 두꺼운 꽃잎 속에 저장된 꿀을 특히 좋아

하는데 오늘은 벚꽃 속에 주둥이를 박은 동박새도 보인다.

 

조팝나무도 꽃이 피고 진달래, 개나리는 물론 4월에 필

복숭아꽃도 피었다.

5월에 피어야 할 철쭉도 꽃잎이 벌어지기 시작하고,

6월에 필 아까시, 이팝나무도 조만간 꽃이 필 모양이다.

                                                         <  복숭아 >

 

자연의 생체시계가 고장 나도 단단히 고장 났다.

매화 →산수유목련개나리진달래철쭉아카시아

밤꽃→이팝나무순으로 피던 봄꽃세상의 질서가 무너졌다.

 

기온이 1도 오를 때마다 진달래와 철쭉의 개화시기는 6일,

왕벚나무와 개나리, 아까시나무는 4일 빨라진다고 한다.

금년봄엔 순서대로 꽃이 피지 않고 한꺼번에 만날 모양이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 꽃이 오래갈 리가 없다.

며칠 후 비바람이 몰아친다는데 꽃잎이 다 떨어지면 그 허망함을

어떻게 극복해야 하나.

 

양달의 목련꽃은 떨어지기 시작하고,

응달에서 자라는 목련의 꽃눈(冬芽)이 늦었지만 잔뜩 부풀었다.

 

사실 봄꽃의 꽃눈은 갑자기 생겨난 게 아니라 지난여름부터

가을까지 미리 준비한 거다.

 

일 년 전 꽃이 떨어지자마자 다시 내년의 꽃눈을 준비하고 추운

겨울 동안 낮은 온도상태를 거쳐 냉각량을 저장해야 꽃을 피울 수

있는 춘화(春花) 현상은 자연의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문제는 벌과 나비 등 곤충이 꽃의 개화시기에 맞춰서 활동을

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지난가을 잠자리를 제대로 보지 못했고,

이번 봄에는 일러서인지 아직 벌과 나비를 보지 못했고

지난주 추웠던 날 나방이 한 마리를 만난 게 전부다.

 

꽃은 곤충이 좋아하는 노란색, 흰색, 붉은색 등 색깔과 향기를

뿜으며 곤충을 유혹하지만 개화시기가 너무 빨라 막상 유혹을

당할 곤충이 없으니 꽃가루받이는 누가 할 것인가.

 

곤충이 등장하기 전에 꽃이 빨리 피고 져 버리면 나무는 열매를

맺지 못하게 되어 번식을 할 수 없고, 곤충도 꿀을 얻을 기회가

사라진다면 우리의 자연은 어떻게 될까.

 

꽃은 꽃가루받이의 매개체를 기준으로 충매화(蟲媒花), 풍매화

(風媒花), 조매화(鳥媒花)로 분류한다.

 

나비와 벌 등 곤충이 수정하는 충매화(蟲媒花) 종류에는 개나리,

민들레, 진달래, 철쭉 등이 있고,

바람이 수정하는 풍매화(風媒花)는 소나무, 자작나무, 밤나무

등이요,

새가 수정하는 조매화(鳥媒花)로는 동백나무, 무궁화, 선인장 등이

있다.

 

지금 만발한 벚꽃엔 직박구리, 동박새가 꽃에 부리를 박고 일찍

겨울잠에서 깬 꿀벌이 꿀을 빨고 있으니 조매화인가, 아님

충매화일까.

 

그것을 전문가가 아닌 내가 판단을 하려고 애쓰니 나는 바보가

아닌가.

 

12;00

덥다.

기온이 영상 27도까지 오른 초여름 날씨이다.

 

사람들도 헷갈리는지 겨울옷을 입은 사람, 봄옷을 입은 사람,

반팔 여름복장을 한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산책로에 뒤섞였다. 

 

이러니 봄꽃들도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헷갈려 생장 억제

호르몬을 조절하고 개화 호르몬(florigen)을 생성하여 여기

저기에서 순서를 지키지 않고 동시에 활짝 피는 모양이다.

 

바람이 불고 새들이 날아오르자 새하얀 꽃잎이 꽃비가 되어

우수수 떨어지는 휴일의 한낮,

산책을 했으니 지긋이 눈을 감고 음악이나 들어야겠다.

 

                         2023.  4.  1.  

                                석천  흥만  졸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