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느림의 미학 753 수신거절과 거리 두기

김흥만 2023. 6. 20. 18:31

2023.  6.  20.

어젯밤 9시경 전화벨이 울렸다.

늦은 시간에 오는 전화는 경험상으로 보아 별로 좋은 소식은

아니다.

 

전화기를 뒤집어 놓거나 터치해서 왼쪽으로 밀면 수신거절

멘트가 상대방에게 전달되고 통화가 되지 않는다.

얼마 후 또다시 요란스럽게 벨이 울리기에 똑같은 방법으로

수신거절을 하고 끝내 전화를 받지 않았다.

 

대개 모르는 전화는 발신인이 불분명하지만 내 전화에 번호가

등록이 되어있으면 전화를 건 사람이 누군지 분명하게 뜬다.

 

갑자기 온 전화의 발신인을 보니 별로 반갑지 않은 동창이다.

십 년에 한 번 정도 통화를 할까 말까 한 동창이라 달갑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 수신거절을 한 거다.

                                  <     미나리냉이     >

 

이 정도 살았으면 편견이나 선입견, 소망편향이나 확증편향을

따질 필요도 없이 괜히 전화를 받기 싫은 사람이 있고, 거리를

두고 싶은 사람도 있기 마련이다.

 

물론 수시로 연락처에서 삭제해도 되지만 폰의 정리는 연말에

흘러간 세월을 되돌아보며 하는 작업이라 최근엔 하지 않았다.

 

어떤 친구는 동창회장직을 맡았으면 동창에게서 걸려오는

전화는 무조건 다 받아야 한다고 말하는데 이미 흘러간 버전

(version)이 아닌가.

 

살다 보면 혈연, 학연, 지연, 직장연 등에서 발생한 지인, 친구와

동창 등 수많은 인과관계가 형성되고, 그 복잡한 인간관계에서

성인군자라도 자칫하면 욕을 먹기 십상(十常)이다.

 

같이 학교를 졸업하고 출발점이 같았던 동창이라도 수십 년

각자의 삶을 살았기에 서로가 지향하는 목표와 사고방식이

다른 것도 사실이다.

 

또한 서로 추구하는 이상(理想)이 다르고, 한 가지 사실을

가지고도 접근하는 방식이 서로 다르기에 적절한 타협점을

찾지 못하면 충돌한다.

 

그걸 시간의 실타래라 해야 하는 건가.

나도 yes와 no가 분명한 성격이라 마음속에 풀리지 않은 굵은

매듭이 몇 개 있다.

 

오랫동안 마음 끓이던 일을 마무리 못하고 묶어두었던 매듭,

이리저리 부대껴 너덜너덜해진 삶의 매듭이 가끔 나를 옭아

매기도 다.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과 통화는 지겹고 스트레스를 

받기에 그냥 적당하게 거리 두기를 하는 게 마음이 편하다.

 

이젠 오지랖을 피울 필요도 없으니 수신거절과 적당한 거리

두기로 시간의 굴곡을 견디면서 내 안의 응어리를 빼야겠다.

 

                                   2023.  6.  20.

                                         석천  흥만  졸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