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9. 24. 05;00
소슬(蕭瑟) 바람이 분다.
새벽온도가 18도까지 떨어지고 드러낸 팔뚝에 소름이 돋는다.
개여울에 조용히 서있던 왜가리가 갑자기 왝왝거리고,
그 소리에 흰뺨검둥오리와 쇠백로가 놀랐는지 날갯짓을 하며
푸드덕 댄다.
숲 속으로 들어가자 밤송이와 도토리의 아람 벌어지는
소리가 요란하다.
밤송이는 다소 둔탁한 소리로 딱딱거리고, 도토리는 툭툭
경쾌한 소리를 내며 땅바닥으로 떨어진다.
물 고인 웅덩이에서 개구리와 맹꽁이가 제법 큰소리를 내며
돌발성 난청으로 치료 중인 내 귀를 호강시킨다.
언제부터인가 교앙(驕昻)스럽게 울어대던 매미가 일제히
사라졌다.
그리고 귀뚜라미, 베짱이, 방울벌레, 풀종다리, 쌕쌔기,
풀무치, 여치가 그 빈자리를 메꿨다.
풀벌레 소리는 우는 걸까, 아님 노래하는 걸까?
우리나라를 포함한 동양권에서는 '운다'라고 표현하는데,
서양에서는 '노래한다'라고 표현한다.
물론 듣는 사람의 기분에 따라 우는 것처럼 들리기도 하고,
노래하는 것처럼 들리기도 하기에 딱 부러지게 표현하기가
애매하다.
'좀작살나무' 열매는 익어가며 무슨 소리를 낼까 아름다운
보라색 열매에 귀를 대본다.
< 좀작살나무 >
이 작살나무도 탈 때 소리를 내려나?
자연에선 소리로 이름을 얻은 나무와 풀이 의외로 많다.
엽육(葉肉)에 살이 많아 불에 탈 때 '꽝꽝'소리가 난다 해서
꽝꽝나무,
가지가 꺾어질 때나 불에 탈 때 '딱딱'소리를 내는 딱총나무,
바람에 흔들릴 때 '자작자작' 소리를 낸다는 자작나무,
바람이 불 때마다 소리를 내서 '소리쟁이'로 이름이 붙은 풀도
있다.
산으로는 '대자연의 만물이 내는 온갖 소리'라는 뜻을 가진
진천의 만뢰산(萬賴山)과 양평, 홍천 경계에 소리산이 있다.
이밖에 소리 말고 냄새로 이름이 붙은 식물도 있다.
닭오줌냄새가 나는 계요등(鷄尿燈)꽃이 있고,
노루오줌꽃, 여우오줌꽃이 있으며 썩은 간장 냄새가 지독하게
나는 '마타리'도 있고,
말오줌나무도 있으니 이름이 아름답지 못하다는 생각이 든다.
생긴 모양으로 개불알꽃, 소경불알꽃이 있으며,
고부간의 갈등을 뜻하는 며느리밑씻개, 며느리배꼽,
며느리밥풀꽃이 있는가 하면,
타고 남은 재가 노란색으로 천연물감재료인 노린재나무,
도리깨를 만드는 나무로 물에 담가놓으면 푸른 물이 나오는
물푸레나무와 붉은 색 물이 나오는 붉은서나물도 있다.
또한 효자나무인 이팝나무가 있는가 하면 독(毒)과 질투의
화신인 능소화가 있고, 토질의 성분이 산성 또는 알칼리성
여부에 따라 꽃의 색깔이 달라지는 금낭화와 산수국도 있다.
신작로의 이정표로 5리마다 심었던 오리나무가 있으며,
[ 이십수하삼십객(二十樹下三十客)
사십가중오십식(四十家中五十食)이라~~~,
스무나무 아래의 서러운 나그네에게 망할 놈의 집에선
쉰밥을 주는구나~~~ ]라는
김삿갓의 시에도 나오는 나무로 이십 리마다 심었다는
'스무나무'가 있다.
자연은 사람에게 무한한 베풂과 사랑을 준다.
환삼은 탈모방지제,
가막사리는 폐결핵, 폐암치료제,
버드나무는 진통제,
인동초는 염증치료제,
때죽나무와 여뀌는 마취제 원료로 쓰이고,
까마중은 안토시아닌이 풍부해 눈에 좋고,
박새는 농약원료로 쓰였다.
야관문(夜貫門)으로 불리는 비수리는 천연 비아그라라는
별명이 붙었으며,
소나무를 칭칭 감은 담쟁이를 말하는 송담과 돼지감자로
불리는 뚱딴지는 당뇨에 좋은 약초로,
익모초(益母草)는 여성에게 도움이 되는 약초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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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위로 사람을 지치게 만들었던 여름은 슬그머니 뒷전으로
사라지고, 요란한 소리를 내며 가을이 찾아왔다.
소슬바람과 함께 찾아온 이 가을에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돌발성 난청의 치료제인 스테로이드에 취해 바닥까지 떨어진
체력이나 회복시켜야겠다.
2023. 9. 24.
석천 흥만 졸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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